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63)
마법을 품다 (63)
일행의 여정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브론 일행은 베이커를 제외하고 열심히 떠들었다. 참 시끌벅적한 무리였다.
해가 머리 위로 떠올랐다. 오늘도 육포로 점심을 때우려는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비 오는데?”
“아, 나 젖는 거 싫은데.”
비가 오자, 일행들이 말을 잠깐 세웠다. 그리고 준비해 둔 우의로 갈아입었다.
로딘은 우의를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브론 일행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
“로딘 씨는 우의 없나요?”
“저는 괜찮습니다.”
“아무리 낮이라도 비 맞으면 감기 걸릴 수 있어요.”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로딘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손짓을 읽은 운디네가 로딘의 정수리로 올라가 떨어지는 물을 죄다 빗겨 냈다.
운디네는 하급 정령이라 힘이 약하지만, 그건 전투에 한해서였다. 순수하게 물을 밀고 당기고 움직이는 정도는 운디네에게 숨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어?”
“나 이상한 걸 보고 있나? 빗물이?”
“설마…… 정령인가요?”
엘리스가 물이 빗겨 나가는 현상의 원인을 짐작했다.
마법사가 뭔가를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자연의 움직임을 만드는 건 엘리스가 아는 한 정령뿐이었다.
“예. 맞습니다. 귀여운 녀석이죠.”
“와! 저 정령사 처음 봐요.”
“저도 정령사는 처음.”
“그러면 여기 어딘가에 정령이 있는 건가요? 안녕, 반가워. 나는 엘리스라고 해. 언니가 잘해 줄게. 나하고 같이 살자.”
워낙 정령사가 희귀하다 보니 이 정도 반응은 일반적이었다. 다만 엘리스의 반응은 정신세계가 의심되었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저는 이렇게 가면 비에 젖진 않을 겁니다.”
“혹시 라마톤 강도 정령을 이용해서 건너는 건가요?”
“하급 정령이라 운디네 혼자는 힘들고, 제가 마법으로 좀 도와야죠.”
“아하. 정령의 도움을 받는다니…… 나중에 자랑해야지.”
일행은 다시 말을 타고 길을 재촉했다. 비가 와서인지, 자신들도 모르게 조금씩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스 씨, 질문해도 되나요?”
“예, 뭐든. 편하게 물어보세요.”
“스태프는 일부러 그런 걸 쓰는 거예요?”
“제 스태프요? 스태프가 왜요?”
“담긴 마법이요. 마력 서클 측정.”
로딘은 어제 엘리스를 처음 만났을 때, 스태프에 담긴 마법을 파악했다. 자신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서클을 측정했다는 것도 알았다.
마법사 특유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면 화를 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실력을 파악하려고 마법을 쓴 거니까.
하지만 엘리스의 표정이 너무 순했다. 나쁜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라 로딘은 화낼 시기를 놓쳐 버렸다.
“아,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알겠던데요.”
“와, 3서클 마법사는 그런 일도 가능하구나. 몰랐어요. 아, 스태프요? 이거 좋아서 산 거 아니에요. 돈이 없어서 싼 걸 고르다 보니, 이런 스태프밖에 없더라고요.”
브론 일행과 다니면서 유독 돈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사실 용병들은 다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걸고 의뢰를 받는 이유가 돈인 만큼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용병은 드물었다.
“스태프, 좀 봐도 돼요?”
“제 스태프요?”
“예. 아, 제 것도 보실래요?”
로딘은 엘로브 위원의 저택 지하에서 얻은 스태프를 건넸다. 오브가 없어서 그냥 나무 막대기 같지만, 엄연히 스태프였다.
로딘이 스태프를 건네자, 엘리스도 자기 스태프를 넘겼다.
‘으음.’
로딘은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 스태프 속의 마력을 읽어 나갔다.
스태프에 사용된 재료의 질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마력 서클 측정 마법을 새겨 놓은 방법도 효율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어찌나 험하게 썼는지, 스태프 곳곳에 실금이 가 있었다. 이대로면 외부 충격을 받지 않고 마법만 써도 몇 달 못 버틸 것 같았다.
‘손볼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다행히 스태프 제작에 사용된 마나석이 제법 질이 좋았다. 1서클의 간단한 마법 하나쯤은 더 담을 여력이 있었다.
‘으음. 해 볼…… 음?’
운디네의 강한 경고에 로딘이 급히 고삐를 당겼다. 로딘이 멈추자, 브론 일행도 의아하단 얼굴로 말을 세웠다.
“왜 그러십니까?”
“앞에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요?”
“길의 좌우에 대략 100명 정도.”
정보를 읊으면서 로딘은 새삼스러운 얼굴로 운디네를 쳐다봤다.
이번 정보의 출처는 지토도 아니고, 로딘의 예민한 감각도 아니었다. 정수리에 앉아서 빗물을 막고 있는 운디네가 앞에서 매복한 이들을 알려 왔다.
“100명이요? 그렇게 많이?”
“우릴 노리는 느낌은 아니에요. 살기 같은 것도 없고. 그냥 지켜보는 느낌?”
“그러면 대체 저 앞에서 무……, 아! 상단.”
브론은 자신들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을 상단을 떠올렸다.
마차 1대와 그를 호위하는 50명에 달하는 용병. 과한 전력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앞에 매복한 이들을 막기 위해서일지도 몰랐다.
“어떻게 하실래요?”
“공격받을까요?”
“아니요. 그렇진 않을 것 같네요. 상단도 우리하고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거든요.”
매복한 자들 입장에서 봤을 때, 거리가 멀었다면 한쪽을 먼저 처리하고 다음 차례를 기다렸을 것이다. 굳이 목격자를 남겨 둘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브론 일행과 뒤에서 이동 중인 상단주의 일행은 너무 가까웠다.
말을 타면 고작 10분 정도였고, 두 발로 달려도 얼마 걸리지 않을 거리였다.
“우리가 지나가면 그냥 보고 있을 거라는 얘긴가요?”
“아마도요. 뭐, 아니면 싸우면 되죠.”
“알겠습니다. 우린 조심스럽게 이동하죠.”
검사인 브론, 말론, 베이커가 칼을 뽑고 천천히 말을 몰았다. 그 뒤에선 엘리스가 스태프를 돌려받고, 마법을 준비했다.
‘으음.’
로딘은 앞선 바위 뒤에 매복한 자들의 전력을 진즉 파악했다. 숫자는 상단을 호위하는 자들의 2배. 실력도 이쪽이 더 위였다.
‘마법사 전력도 이쪽이 높아.’
상단주의 마차에 함께 타고 있던 마법사 역시 3서클로 나름 나쁘지 않은 실력이었다. 게다가 2명이니, 용병들을 지원하면 전력을 크게 끌어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복한 자들 중에는 마법사가 모두 5명이나 됐다. 심지어 그중 1명은 4서클 마법사라, 상단 마차 안에 있는 이들보다 강했다.
‘나하곤 상관없지.’
매복한 자들 틈을 지나면서도 로딘은 태연했다. 저들 전부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매복한 자들보다 운디네에게 더 관심이 갔다.
‘운디네, 너 성장할 때 됐어?’
도리도리.
‘아무리 비가 와도 그렇지. 이 정도 감지 범위는 너무 넓잖아.’
꾸벅.
‘예상 밖이네. 난 네가 평생 성장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아직 운디네가 성장할 때는 아니었다. 그래도 거의 가까워진 건 분명했다. 그런 사실이 로딘은 의아하게 느껴졌다.
로딘은 정령 친화력이 높은 편이 아니었다. 교관도 같은 얘길 했었다. 간신히 계약은 할 수 있지만,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울 거라고.
‘10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로딘은 ‘벌써?’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적어도 30년은 더 지나야 운디네가 성장할 줄 알았다.
‘정령석을 구해야겠네.’
정령의 성장에는 정령석이 있는 게 나았다. 없어도 성장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오래 걸리고 실패 확률도 높았다.
코리는 이미 두 속성의 정령 전부를 중급으로 성장시켰다. 정령이 성장할 때, 당연히 특수군 양성소에서 정령석을 지원받았다.
‘음?’
운디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매복한 자들이 있던 곳을 벗어났다. 예상대로 그들은 브론 일행을 공격하지 않았다.
‘현명한 선택이야.’
앞서가는 자신과 브론 일행을 공격하면, 뒤에 오는 상단도 당연히 전투에 낄 수밖에 없다. 매복한 자들 입장에선 적이 늘어나는 셈이다.
하지만 앞서가는 이들을 보내 주면, 뒤에 있는 자들만 공격할 수 있게 된다.
“지나왔네요.”
“로딘 씨 예상대로네요.”
“흐음.”
“글쎄요. 뒤에서 벌어질 싸움에 불똥이 튀지 않아야 할 텐데.”
불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목격자를 죽이기 위해 뒤를 쫓아와 공격할 가능성도 있었다.
“조금 속도를 내 볼까요?”
“전력으로 달리려고?”
“일단 거리를 벌리는 게 중요하니까. 가자.”
브론이 먼저 말의 속도를 높였다.
기다렸다는 듯, 빗줄기가 굵어졌다. 이젠 숫제 쏟아지는 수준으로 비를 퍼붓고 있었다.
“으으, 비 싫어. 이럇!”
“이럇! 가자.”
“으아악!”
그때 뒤쪽에서 희미하게 비명이 들렸다. 드디어 매복한 자들과 상단주 일행이 맞붙은 것이다.
“쯧, 역시나 싸움이 벌어졌군요.”
“말론, 엘리스. 관심 꺼라. 우리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알아. 안다고. 그냥 좀 기분이 그래.”
브론 일행은 기본적으로 선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상황 파악을 못 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었다.
상대가 건달패거리처럼 약한 놈들도 아니고, 만만찮은 실력을 갖춘 자들이 적어도 100명이었다. 저런 싸움에 끼는 건 일행 전부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였다.
한참을 앞서 달리던 브론이 고삐를 당겼다. 전력 질주에 지친 말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워, 워. 이 정도면 되겠네요.”
“워, 워.”
“내가 다 지친다.”
말을 타고 몇십 분을 달렸다. 전투가 벌어진 곳과 꽤 거리가 벌어졌다.
“자리 좀 옮겨야겠는데?”
“맞아. 비가 너무 많이 오잖아. 속옷까지 다 젖었다고.”
비를 뚫고 말을 타고 미친 듯이 달렸다. 우의는 아무 효과도 없었다.
“으으으. 그냥 더 달려서 마을까지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다음 마을까지 얼마나 남았는데?”
“나야 모르지.”
“동굴 같은 거 어디 없나?”
분명한 건 길을 따라가서는 절대 비를 피할 곳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동굴을 노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보거나, 아니면 더 열심히 달려서 마을을 찾는 것.
둘 중 하나의 선택지만 남았다.
“로딘 씨도 선택하세요. 일단 마을이 나올 때까지 달려 보자. 손!”
로딘은 손을 들었다. 엘리스도 손을 번쩍 들고 마구 흔들었다.
로딘은 정령이 있으니, 굳이 산을 헤맬 필요가 없었다. 마법사인 엘리스는 산을 헤매는 행위 자체를 싫어했다.
“그러면 산속으로 들어가서 찾아보자. 손.”
“나도 산.”
“산.”
“그런데 산이 너무 작지 않나? 높이도 그렇고. 동굴 같은 게 있으려나 모르겠네.”
지금 일행이 도착한 곳은 어느 마을에나 있을 법한 뒷산이었다. 아침에 마실 삼아 올라갔다 내려와도 될 정도로 산이 작았다.
“뭐, 없으면 어쩔 수 없지. 일단 좀 뒤져 보자.”
“나하고 엘리스는 이쪽으로, 말론, 베이커, 로딘 씨는 반대쪽. 한 시간 후에 적당한 곳을 찾든 아니든. 다시 돌아오는 걸로.”
“응.”
로딘은 말론, 베이커와 함께 달려가던 길의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경사가 살짝 있는 오르막 방향이었다.
경사진 곳을 20여 분 움직였을 때, 로딘이 손을 들었다. 이번에도 정찰에 먼저 성공한 건 지토가 아니라 운디네였다.
손짓을 본 말론과 베이커가 걸음을 멈췄다.
“찾았어요?”
“예. 운디네가 찾았네요. 이쪽이요.”
몇 분 걷지 않아서 적당한 크기의 동굴을 찾았다. 깊이는 고작 5미터. 작은 동굴이지만, 5명이 비를 피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다른 사람들 불러올게.”
“아니요. 제가 가죠. 마법사인 제가 아무래도 더 빠를 거예요.”
“그러실래요?”
“예. 운디네 덕에 저는 비도 안 맞으니까.”
로딘은 말을 근처에 묶어 두고 경사로를 빠르게 내려갔다. 경사는 완만했는데, 비에 젖어 땅이 꽤 미끄러웠다.
‘멀리 안 갔구나.’
운디네는 반대쪽으로 이동한 브론과 엘리스의 움직임도 파악했다. 동시에.
‘음?’
느긋하게 움직이던 로딘이 걸음을 멈췄다. 잠깐 생각하는 듯하던 로딘이 이내 방향을 틀어 옆으로 달렸다.
‘어디야?’
휙! 휙!
운디네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렸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사람 1명이 죽어 가고 있었다.
‘아침에 본 상단주구나.’
상단주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부상도 심했고, 의식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의문은 상단주의 손에 있는 물건을 보자마자 풀 수 있었다. 공간 이동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였다.
‘현재는 만들 수 없는 유물이야.’
공간 이동 마법은 무려 7서클. 아티팩트가 아니라 그냥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대마법사뿐이었다. 당연히 아티팩트 제작은 현재로선 불가능했다.
하지만 오래전 과거, 보통 고대라 부르는 시기에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공간과 관련된 아티팩트를 제작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아마 상단주가 사용한 물건은 고대의 아티팩트일 것이다. 현재는 유물로 분류되는 보물이었다.
‘일회용이군.’
상단주의 손에 잡혀 있던 유물은 한 번 사용되고, 이미 기능을 잃었다. 더는 쓸 수 없지만, 로딘은 재빠르게 사용된 유물을 챙겼다.
‘이 아티팩트 때문에 공격당한 건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