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64)
마법을 품다 (64)
공간 이동 아티팩트가 귀하긴 하지만, 그래 봐야 일회용이었다. 100여 명을 동원해서 수십 명을 죽이고 빼앗을 만큼 귀한 보물은 아니었다.
게다가 공간 이동 아티팩트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주변에 마법의 발현을 막는 안티 매직 필드를 먼저 만들었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 아티팩트가 사용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브론의 예상대로 상단주의 목숨이 목적이었나? 아니면 상단주가 가진 정보?’
“크으으…… 이…… 부디…… 헤…… 지…….”
그때 여전히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단주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상자였다. 어떤 장치가 된 건지, 상자 안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상자를 품에 넣었다. 조사는 나중에, 지금은 자리를 피할 때였다.
“지토, 주변 정찰.”
끄덕!
옷으로 있던 지토가 본체로 돌아가더니 곧바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야를 공유하니 주변 모습이 세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조용하네.’
상단주는 치명상을 입은 상태로 공간을 건너뛰어 도망쳤다. 매복했던 자들은 아직 상단주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멀리 도망쳤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이봐요. 괜찮아요?”
포션을 쓸지 잠깐 고민했는데, 곧 의미 없는 행위임을 깨달았다.
포션으로 치료하기에는 이미 부상이 너무 심했다. 출혈도 심해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발……리스 노……바.”
상단주는 ‘발리스 노바’라는 말만 내뱉고 고개를 떨궜다. 로딘은 목 아래의 동맥에 손을 대 보고, 한숨을 쉬었다.
“죽었구나.”
사람이 죽었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어차피 얼굴은 아침에 한번 본 게 전부였고, 이름은 들어 보지도 못했다. 과거에 얼마나 대단했던 사람인지 모르지만, 로딘에게는 생판 남과 다를 바 없었다.
‘시신부터 처리해야겠구나.’
오전에 지나치면서 봤던 자들이 상단주의 시신을 찾으면 자신에게 건넨 물건부터 찾으려 들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면,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용의 선상에 오를 테고.
‘미안합니다.’
로딘은 죽은 상단주의 몸을 빠르게 뒤졌다. 금화와 쇠붙이 같은 것들을 따로 챙겼다.
‘발화.’
화르르.
시신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막기 위해, 바람을 일으켜 아래로 억눌렀다.
연기가 위가 아닌 아래로 내려가 바닥에서 사방으로 퍼졌다. 멀리까지 퍼졌던 연기가 차츰 옅어졌다.
시신은 꽤 오랫동안 탔다. 로딘은 지토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면서 마력을 좀 더 밀어 넣었다. 화력이 더 강해지며 시신은 빠르게 재로 변했다.
‘매직 핸드.’
재료 변한 상단주의 시신을 차근차근 부쉈다. 흔적이 남지 않도록, 시체가 있었다는 것조차 알 수 없도록 철저하게 가루로 만들었다.
곧 가루가 바닥에 쌓였다. 상단주의 몸집이 작지 않았는데, 막상 남은 재는 겨우 한 줌이었다.
바람을 일으켜 사방으로 흩어 버렸다. 이젠 한 줌의 재조차 남지 않았다.
상단주의 몸에서 나온 돈, 단검, 신분패, 꽤 비싼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챙겼다.
‘졸지에 부자가 됐군. 진짜 상단주가 맞기는 맞는 모……, 매복했던 놈들이다.’
그때 지토의 눈이 닿는 외곽에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몇 명의 사람들이 주변을 뒤지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 사방으로 흩어져서 수색하는 모양새였다.
‘역시 위치를 모르고 있어.’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시체를 태우는 데 거의 20분이나 썼다.
‘지토, 돌아와.’
허공에서 선회하던 지토가 빠르게 내려와 옷으로 변했다.
운디네의 도움으로 로딘은 여전히 전혀 젖지 않은 상태였는데, 잠깐 본체로 돌아갔던 지토는 아니었다. 하늘을 나느라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발화.”
마법을 일으켜 일단 물기를 날렸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브론과 엘리스에게 다가갔다.
“브론 씨, 엘리스 씨.”
“어? 로딘 씨. 괜찮은 곳 좀 찾았어요?”
“예. 동굴을 찾았습니다. 같이 가시죠.”
둘과 함께 동굴로 돌아갔다.
먼저 와 있었던 말론과 베이커가 장작으로 쓸 나무를 구해 놨다. 다행히 왜 이렇게 늦었는지 추궁하지는 않았다.
“엘리스! 여기 불 좀 피워 봐.”
“맞아. 비 오니까 더 추워.”
엘리스가 나서기 전에 로딘이 불을 피웠다. 마법으로 가볍게 불을 붙이고, 바람 마법을 이용해 연기를 밖으로 보냈다.
“와! 마법을 진짜 손발처럼 사용하네.”
“맞아. 엘리스한테 시켰으면 어떻게 됐겠냐? 연기가 동굴로 들이쳐서, 아주 난리가 났을걸.”
“당연하지. 쟤는 2가지는 생각 못 하거든.”
또 티격태격하고 있지만, 이젠 익숙했다. 로딘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모닥불 옆에 앉았다.
“비가 언제 그칠까?”
“어쩌면 여기서 밤을 새울지도.”
“내일 새벽은 되어야 그치겠네요.”
구름이 꽤 낮고 어두웠다. 빗발도 거셌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니었다.
“어차피 쉬는 거, 점심으로 수프라도 끓일까?”
“그러자. 오랜만에 베이커 요리 좀 먹어 보자.”
나이가 가장 많은 베이커가 육포를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금세 구수한 냄새가 주변을 장악했다.
그사이에 로딘은 동굴 밖에 마나 집적 마법진을 인쇄했다. 반복하면 연공 효율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주기적으로 해 주는 게 나았다.
“요리 끝. 먹어. 로딘 씨도 먹어 보세요.”
“와, 베이커. 잘 먹을게.”
요리라고 해 봐야 육포를 물에 넣고 끓인 거지만, 간이 절묘하게 잘 맞았다.
“오오, 맛있는데요? 별로 넣은 것도 없는데 이런 맛을 내다니.”
“베이커는 용병이 안 됐으면 요리사가 됐을 거예요.”
“우리 오빠가 요리는 잘해. 잘 안 해 줘서 문제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로딘은 배낭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 읽었다.
“어? 책이네요.”
“예. 마침 할 일도 없고 해서.”
“여행자나 용병 중에 책 읽는 사람을 처음 봤어요. 마법사라서 그런가?”
“에이, 엘리스는 마법산데도 책 안 읽잖아. 쟤는 알던 글자도 까먹어서 문젠데.”
“또 시비지?”
다시 티격태격할 기미가 보여서, 로딘은 그냥 책에 집중하기로 했다.
유쾌한 대화가 싫진 않지만, 조용히 독서에 몰입하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었다.
책에 집중하는 사이에 오후 시간도 다 지나갔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질 기미가 보여, 로딘은 라이트 마법을 시전해서 빛의 구를 띄웠다. 책을 편하게 읽기 위함이었다.
“키야, 자동이다. 자동. 필요할 때마다 딱딱 마법을 사용하잖아.”
라이트 마법이 비추는 빛의 도움을 받아서, 저녁 식사도 베이커가 준비했다. 재료가 없어서, 점심으로 먹은 것과 같은 요리였다. 그래도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근처에 왔군.’
책을 읽는 동안 주변에 몇 명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매복으로 상단주를 공격한 그자들이었다. 세찬 비 덕분인지, 이번에도 운디네가 먼저 파악했다.
‘어떻게 나오려나?’
로딘이 볼 때는 그냥 떠날 확률이 높았다.
상단주는 시체도 남기지 않고 없앴다. 애초에 이곳으로 공간 이동을 해 온 줄도 모를 것이다.
게다가 뭔가를 숨겼다는 걸 의심하기 힘들 정도로 브론 일행의 표정은 평온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자기들끼리 또 티격태격하고. 모든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당연하지. 그들은 뭔가를 숨긴 적이 없으니까.’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로딘뿐. 그런데 로딘은 표정 연기에 자신이 있었다.
꽤 오랫동안 교관들과 위원들을 상대로 서클을 속였고, 가짜 노예 스틱을 만들었다. 위원, 교관, 조교. 전부 합쳐서 100명이 넘지만,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는 비가 그쳐야 할 텐데.”
“맞아. 여기서 덜덜 떨면서 하루를 더 보내긴 싫어.”
“따뜻한 물에 몸 좀 담그고 싶다.”
“나도.”
샤워 얘기에 로딘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양성소의 훈련생들은 죄다 씻는 걸 싫어했다. 매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제대로 씻는 놈들이 없어서 악취로 고생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다행히 양성소 밖으로 나오니, 샤워를 좋아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어제만 해도 브론 일행은 누구 할 것 없이 저녁 식사 전에 샤워를 마쳤다.
‘멀어지나?’
포위 진형을 짤 것 같던 자들이 결국 물러났다. 일단은 의심을 거둔 모양이다.
마침 시간이 났다.
로딘은 바깥에 만들어 놓은 마나 집적 마법진 중앙에 앉아서 연공법을 행했다. 야외이니만큼 1사이클만 돌렸다.
* * *
야외에서 밤을 보낼 때 불침번은 필수였다. 마법사인 엘리스와 로딘은 첫 번째와 마지막 불침번을 맡았는데, 로딘은 새벽 5시부터 아침까지 마지막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더는 안 보이네.’
매복했던 자들이 다시 나타날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저녁 시간에 잠깐 주변을 포위하듯 진형을 짠 후 더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들기 전 주변에 깔아 둔 알람 마법을 형식적으로 확인했다. 역시나 알람을 건드린 흔적은 없었다.
‘비도 그쳤고.’
불침번을 시작할 때는 여전히 비가 내렸는데, 알람 마법을 확인하는 사이에 비가 서서히 그쳤다. 비가 그치자, 바람이 더 차가워졌다.
로딘은 동굴 밖으로 나가 라이트 구를 띄우고 책을 읽었다. 어제 상단주가 죽기 전에 건넨, 그리고 죽은 후 품에서 꺼낸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여긴 안전하지 않아.’
태연하게 책을 읽으며 아침이 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장작을 추가해서 불이 꺼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저 멀리서 마치 노을처럼 붉은빛을 뿌리며 해가 떠올랐다. 사위가 밝아지며 주변 풍경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비에 젖은 주변은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어제 낮에도 분명히 봤던 광경이건만 마치 다른 장소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마나도 평화롭게 돌아다니고 있구나.’
마력은 마나를 인위적으로 가공한 것.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반면 가공되기 전인 마나는 세상 어디에나 있다. 또 대체로 느릿하고 일정하게 움직이는 편이다.
“일어나세요.”
로딘은 시간을 가늠해 보고, 먼저 브론부터 깨웠다.
잠깐 뒤척이던 브론은 간신히 눈을 뜨더니, 다른 동료들을 1명씩 깨우기 시작했다.
“하아암.”
“아! 비는?”
“그쳤어. 좀 춥긴 하다.”
잠에서 깬 이들은 알아서 몸을 풀며 아침을 맞았다.
검사들은 직접 몸을 움직이며 굳은 몸을 풀었고, 엘리스는 적당히 외진 곳으로 가더니 마력 연공을 행했다.
로딘 역시 어제 만들어 놓은 마나 집적 마법진 중앙에 앉아서 마력 연공법을 행했다.
2사이클을 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엘리스도 마력 연공을 마치고 눈을 뜨는 중이었다.
“후아, 이 시간이 너무 좋아.”
“아침은 베이커가 만드는 수프?”
“응. 좋지.”
로딘은 베이커가 육포를 찢어 수프를 만드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들어가는 건 육포, 호밀 가루, 물, 소금이 전부였다. 정말로 특별한 게 없었다.
‘이거야말로 진짜 재능이구나.’
로딘은 자신의 마법적인 재능만큼이나 베이커의 요리 재능이 특별해 보였다. 수많은 미식가를 위해 지금 당장 식당을 개업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정말 맛있네요. 어떻게 요리를 이렇게 해요?”
“너무 평범해서, 민망합니다.”
“와, 혹시 식당 차릴 거면 미리 말씀하세요. 거기에 정착해야겠어요.”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다시 동쪽으로 향했다.
비가 그쳤지만, 바닥은 질퍽했다. 말들이 걷기 힘들어할 정도라 일행도 느릿하게 움직였다.
10일이 흘렀다.
이동 중에 정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비도 오지 않았고, 사건 사고도 없었다.
“생각보다 이른 것 같긴 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쉬자. 어때?”
“일단 여관부터 찾고, 좀 돌아다니자고. 다들 살 것도 많을 텐데.”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한참 남은 시간이었다. 저녁보다는 오후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른 때에 마을을 찾았다.
그렇다고 여길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이미 일행은 나흘 동안 야영으로 고생했다. 더는 길바닥에서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와, 마을 크다.”
“여긴 그저 그런 시골 마을 같진 않은데?”
도시라 부르기엔 작아도 마을이라고 부르기엔 무리일 정도로 큰 곳이었다. 오가는 사람도 많고, 건물들도 큼직큼직했다.
“라마톤 강이 지척이잖아. 아무래도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겠지. 아, 로딘, 너 옷 산다고 하지 않았어?”
“가면서 보이면 그때 사죠, 뭐.”
열흘을 보내면서 로딘은 브론 일행과 상당히 친해졌다.
브론 일행은 로딘을 편하게 대하게 됐고, 로딘도 마음에 세워 둔 벽을 낮추고 형·누나처럼 대했다.
“어, 여관은 저기가 좋겠다.”
“가자.”
“씻자!”
“먹자!”
로딘과 브론 일행은 밝게 웃으며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멈칫했다.
“여기 분위기가 왜 이래?”
“글, 글쎄. 그래도 우리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여관의 1층 식당에 보이는 사람은 대략 20명.
그들이 정확히 두 패로 나뉘어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누구 1명이 칼만 뽑으면 서로 우르르 달려들 것 같은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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