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65)
마법을 품다 (65)
로딘은 여관에 들어가자마자, 투명화 마법을 사용했다. 이 안에 있는 무리 중 하나에 아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1기 훈련생들이 여기 묵고 있었군.’
켈라인 위원과 1기 훈련생은 잉그렘 제국의 마법 병단을 찾는 수색조로 동원되었다. 전쟁 초기에 특수군 양성소를 떠났으니, 벌써 1년하고도 반년 가까이 흘렀다.
‘저들은 특수군 양성소가 무너졌다는 걸 알고 있을까?’
이런 곳에서 신경전이나 벌이는 걸 보면 모를 수도 있다. 알았다면 도망을 쳤거나 양성소로 복귀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군. 리아즈 왕국에 충성하기로 했다면 여기 있는 것도 말이 되겠네.’
독립적인 작전권을 포기하고, 특수군을 고스란히 바쳤을지도 모른다. 연일 패배를 거듭하고 있는 리아즈 왕국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 어디 갔어?”
“옷 가게로 먼저 갔나?”
“로딘이 어디 가서 길 잃고 다니겠어? 그런데 여기…… 자리가 있긴 한가?”
브론이 두리번거리며 로딘을 찾았다. 말론과 엘리스도 갑자기 사라진 로딘이 신경 쓰여, 연신 뒤를 돌아봤다.
‘상황을 좀 보자고.’
로딘은 투명한 상태로 1층 식당의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1기 수료생 중에 안면 있는 몇 명이 잘 보이는 자리였다.
특수군 양성소에서는 기수가 달라도 수업을 같이 듣는 경우가 많았다.
로딘은 1기의 마법 전공자 11번, 20번과 꽤 오랫동안 같은 수업을 들었다. 또 위원회의 위원인 켈라인 역시 로딘의 얼굴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어이, 용병인가? 지금 중요한 대화 중이니 다시 나갔으면 좋겠는데?”
“예. 나가야죠. 저희도 괜한 분쟁에 끼고 싶진 않습니다.”
한 기사의 강압에 브론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쫓겨난 것과 같아서 기분은 안 좋았지만, 그렇다고 기사가 포함된 정규군과 싸울 순 없었다.
브론 일행이 자리를 비우자,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하아, 그래서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요? 사람들도 있는데.”
“처지가 우스워졌지만, 우리 전력은 만만치 않소. 그러니 그만한 대우를 해 달라는 겁니다.”
50대 중반의 기사의 말에 켈라인이 대거리했다. 심리적으로 밀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켈라인은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1년 하고도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잉그렘 제국의 마법 병단을 찾겠다는 목적을 위해 전선 곳곳을 돌아다녔다. 얼마나 고생했으면, 허리둘레가 반으로 줄어서 전성기 때의 몸매로 되돌아갈 정도였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같은 리아즈 왕국에 소속된 부대들과 힘을 합치기도 했고, 다른 나라의 수색 부대와 함께 움직인 적도 많았다.
1기 수료생들은 누구와 함께 움직이든 항상 좋은 모습을 보였다. 뒤처진 적도 없었고 마법 병단의 매복, 기습을 미리 알아채기도 했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인솔자인 자신과 1기 수료생들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대체 위원들은 양성소가 무너지는 동안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 건 특수군 양성소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돈 후부터였다.
1기 수료생들은 돌아갈 곳을 잃었다. 근거지를 잃으면서 활동 자금도 지원받을 수 없었다.
돈이 없어서 당장 굶게 생긴 판이라, 어쩔 수 없이 켈라인은 왕실에 도움을 청했다. 독립된 작전권도 포기하고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거둬 달라는 요청이었다.
오늘은 바로 그 협상을 위한 자리였다.
“이보시오, 켈라인 경. 어차피 갈 곳도 없지 않소?”
“아무리 그래도 내 지휘권을 박탈하겠다니. 이건 너무하지 않소? 난 전쟁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전선 전역을 돌며 활약했소이다.”
“활약이라……, 물론 활약했지요. 지금은 저들에게 당장 한 끼 식사조차 사 줄 수 없는 처지가 됐고. 내 말이 틀렸소?”
켈라인 위원이 어쩔 수 없이 저자세가 된 이유가 바로 돈이었다.
딱 나흘 동안은 자비로 1기 수료생들을 먹이고 재웠다. 허름한 곳에 재웠고, 빈약한 식사일지언정 굶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계속 돈을 쓰자니 아까웠다.
1기 수료생의 노예 스틱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마냥 돈을 쓸 수는 없었다. 노예 스틱이 없다는 건 자신이 1기 수료생들의 주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아, 이건 너무한 처사 같소. 내가 쌓은 공이 있는데.”
“이보시오. 켈라인 경. 이미 노예 스틱은 왕실에서 회수했소. 저들의 주인은 더 이상 켈라인 경이 아니라, 왕실이라는 말이오. 그런데 왜 자꾸 지휘관 행세를 하려고 드시는 거요?”
둘의 대립은 결국 지휘권 문제로 시작되었다.
왕실로부터 1기 수료생의 적합한 지휘권을 받은 사람은 에드워드 카이트. 즉, 이 순간부터 켈라인 위원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켈라인 위원은 1기 수료생을 통째로 넘기기 아까웠다. 함께해 온 시간도 있고, 10년 이상 가르친 노력도 보답받고 싶었다.
“내 입장을 조금만 생각해 주시오. 카이트 경.”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려. 이봐! 1기 수료생이라고? 너희들 노예 스틱은 이미 왕실이 회수했다. 더는 켈라인 경의 명령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당장 무기 집어넣고, 내 명령에 따르도록.”
둘의 대화를 듣고 로딘은 상황을 파악했다.
‘켈라인은 1기를 통째로 넘기기로 했어. 그런데 막상 주려니 아까웠던 거야.’
켈라인은 그저 약간의 이득을 얻기 위해 기웃거리는 중이라면 1기 수료생들은 혼란에 빠져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상태였다.
갑자기 지휘권이 바뀌었다. 노예 스틱도 왕실로 넘어갔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어차피 지시받은 대로 움직였던 삶. 명령하는 주체가 바뀌었을 뿐, 하는 일은 그대로였다.
문제는 내리는 명령 그 자체에 있었다.
리아즈 왕국의 왕실은 에드먼드 카이트라는 새로운 주인을 보내고, 1기 수료생들을 여기저기 흩어 놓길 바랐다.
최전선의 가장 서쪽부터 가장 동쪽까지. 최소 단위로 흩어 놓고, 그들끼리 뭉치지 못하게 하겠다는 속셈이었다.
“이들은 10년 이상 함께 훈련받고 성장한 이들이오. 흩어 놓기보다는 모아 놓고 지휘권을 행사하는…….”
“그만. 왕실의 명령은 떨어졌소. 이들의 새로운 지휘관은 나고, 나는 이미 명령을 내렸소이다.”
“하아.”
1기 수료생들은 갑작스럽게 떨어진 명령에 어리둥절했다.
흩어진다? 언젠가는 그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 1기 수료생들이 죽을 때까지 함께 지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너무 갑작스러운 명령이었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아하, 역시 왕실은 다르네.’
리아즈 왕국의 왕실은 카이트 경에게 1기 수료생들을 여러 부대에 흩어 놓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함께 있는 게 부담스럽다는 거고, 그건 완벽히 통제할 자신이 없다는 의미였다.
‘노예 스틱이 가짜라는 걸 눈치챘어.’
노예를 부리다 보면 말을 안 듣거나, 효용 가치가 떨어졌을 때 폐기를 결정하게 된다. 보통 노예의 폐기는 노예 스틱을 부러뜨리는 것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노예 스틱이 가짜였다.
앞으로 1기 수련생 중 누군가를 폐기하려면 직접 잡아서 죽여야 했다. 노예 스틱을 부러뜨리는 쉬운 방식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살아남은 1기 수련생들도 의심할 수 있었다.
‘쉬운 방법을 두고 왜 저런 방식을 택할까?’
이런 의심이 모이면 당연히 ‘혹시?’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왕실은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1기 수련생을 흩어 놓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재미있네. 왕실의 선택은 이해가 가. 그런데 어쩌지? 내가 들어 버렸네.’
로딘은 낯익은 1기 11번 훈련생과 20번 훈련생에게 눈을 주었다. 마법 전공자들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수련생이었다.
‘재미있네.’
로딘은 쪽지를 하나 적어서 11번 훈련생과 20분 훈련생의 주머니에 몰래 넣었다. 뒷일은 그들의 몫이었다.
* * *
로딘은 여관을 나가자마자 바로 브론 일행을 찾을 수 있었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엘리스와 베이커가 남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로딘! 어딜 갔다 온 거야?”
“주변 좀 돌아봤어요. 사람이 많네요.”
“어유, 네가 어디 가서 길을 잃고 다니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디 갈 때는 미리 말 좀 해. 걱정했잖아.”
“알았어요.”
로딘은 브론 일행과 다른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다행히 이곳은 손님이 많지 않아서 조용했다.
짐을 풀고는 마을을 돌아다녔다.
로딘은 옷 몇 벌과 야영에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브론도 낡은 장비 몇 개를 바꿨고, 베이커는 식재료를 충분히 사서 여관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어쩔까? 일찍 출발해? 아니면 충분히 쉬고 오전 늦게?”
“언제 출발하든, 어차피 다음 마을은 건너뛸 거잖아.”
“맞아. 어차피 한동안 마을로 안 갈 거면, 내일은 충분히 쉬고 출발하자.”
브론 일행은 마을을 만나도 들어가는 일이 드물었다. 계속 밖에서 야영했고, 피로가 좀 쌓였다 싶을 때만 마을의 여관에 묵었다.
이 역시도 돈 때문이었다.
여관에 숙박하면 당연히 숙박비가 들고, 식사비도 추가로 쓰게 된다. 재정적인 여유가 부족한 브론 일행은 돈을 아끼기 위해 마을을 대부분 건너뛰었다.
“라마톤 강까지는 두세 시간이면 가잖아.”
“그렇지. 강 건너는 건 로딘이 해결해 준다고 했으니까. 좋아. 내일은 아침 먹고, 충분히 쉬고 출발하자.”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엘리스는 여자라 당연히 혼자서 방을 썼다.
브론, 말론, 베이커는 역시나 돈을 아끼기 위해 한 방에 묵었다.
유일하게 남자이면서 혼자 묵는 사람은 로딘뿐이었다.
로딘은 자금에 여유가 충분했다. 상단주의 시체를 수습하면서 챙긴 돈만 10,000골드가 넘었다. 여차하면 포션을 팔아서 돈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이것도 비싸게 팔릴 텐데.”
로딘은 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 살폈다. 죽은 상단주가 가지고 있던 귀중품이었다.
“아티팩트는 아니지만.”
목걸이에 박힌 보석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이아몬드인데, 크기가 거의 호두알만 했다. 어지간한 고위 귀족도 이런 보석은 쉽게 구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대로 팔면 안 되겠지.’
이만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는 절대 흔하지 않았다.
시장에 나오는 순간 누군가는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볼 터. 자칫 죽은 상단주와 관계된 사람들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
“나중에 아티팩트나 만들지, 뭐.”
다이아몬드 정도면 아티팩트 재료로도 최고였다. 특히 이 정도 크기의 다이아몬드라면 질 좋은 마나석을 함께 썼을 때, 5서클 이상의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도 만들 수 있었다.
“이건 아직 조사를 좀 더 해 봐야겠고.”
목걸이를 옆으로 치우고, 이번에는 상자를 꺼냈다. 죽은 상단주가 건네준 물건이었다.
상자는 외부로 마력을 거의 풍기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히 아티팩트였다. 로딘은 그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마력을 풍긴다는 건 사실 낭비되고 있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로딘 역시 아티팩트를 만들 때, 마력이 최대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만드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상자는 그 이상이었다.
감각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자신도 이 상자에서는 아무런 느낌도 못 받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집중하고 있어야, 희미하게 마력이 느껴질 정도였다.
“며칠 더 걸릴 것 같은데.”
로딘은 아직 상자를 열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틈틈이 연구했는데, 아직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상자에 내부의 기운을 막고 특정한 사람만 열 수 있는 마법이 걸려 있다는 것까지는 확인했다.
남은 건 특정한 사람의 방법을 흉내 내서 상자를 여는 것.
“얼마 안 남았어.”
상자를 한쪽에 내려놓고 이번에는 책을 꺼냈다.
로딘은 밤마다 책을 읽었고, 다 읽은 책은 그때그때 태워서 없앴다.
양성소를 나오고 벌써 열흘이 넘었다. 그동안 심화 1 서고에서 가져온 책은 거의 다 태우고 3권만 남았다.
그러다 보니, 특수군 양성소를 출발할 때와 비교해 배낭이 많이 가벼워졌다. 포션을 완성하면서 재료가 차지하던 부피가 줄었고, 책을 태우면서 그만큼 배낭에 빈 자리가 생겼다.
오늘 야영 장비를 사고, 옷을 몇 벌 더했다. 그래도 여전히 배낭에는 빈 자리가 많았다.
“아닌가? 배낭을 2개씩 들고 다니는 내가 이상한 건가?”
짐은 어차피 말에 묶어 놓는다. 직접 들고 다니는 시간이 짧으니, 딱히 무겁다고 느끼지 못했다.
400개의 포션과 여분의 옷, 오늘 산 물건들과 육포를 모두 꺼내 옆으로 치웠다. 이제 텅 빈 배낭만 남았다.
탁탁!
배낭을 두드리니, 먼지가 풀풀 났다. 손으로 대충 털어 내고, 운디네를 이용해서 적당히 씻었다.
배낭이 조금은 깨끗해졌다. 빼놓은 물건들을 다시 배낭에 차근차근 채워 넣었다.
“큰 도시로 가면 정령석 알아볼게.”
아직 운디네가 성장할 시기는 아니었다. 조금 더 함께 지내야 했다.
그래도 멀지 않은 건 분명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운디네의 감지 범위는 꽤 넓었다. 표정 변화도 전보다 더 선명해서, 마치 말 못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새벽 4시 무렵. 아직 해도 뜨지 않아 어두운 시간에 깊은 잠에 빠졌던 로딘이 눈을 번쩍 떴다.
‘마력?’
서쪽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마력이 감지되었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력에 로딘은 소름이 돋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