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66)
마법을 품다 (66)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력이 동쪽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6서클 마법사였던 크레이트 위원장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설마 대마법사?”
대마법사라면 이 정도 마력의 유동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대마법사를 본 적이 있어야 알지.
“그렇다고 8서클 마법사일 리는 없잖아!”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고, 로딘은 급하게 배낭을 챙겼다. 2개의 배낭을 양어깨에 하나씩 메고 창을 열었다.
창으로 뛰어내리면 마구간까지 코앞이었다. 말을 챙기기 위해 가장 가까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창틀에 다리를 걸치고 막 뛰쳐나가려던 로딘이 순간 멈칫했다.
“음? 아직도 마법 발현이 안 된다고?”
마법 준비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대마법사나 8서클 마법사라면 벌써 마법이 날아왔어야 정상이었다.
“아! 마력 집중이구나.”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여러 마법사가 마력을 모아서 강한 마법을 쓰는 수법. 이런 걸 마력 집중이라고 부른다.
마력 집중은 여러 마법사가 가진 마력을 모으는 방식이다. 많은 마력을 투입하니, 그만큼 마법의 위력이 강해지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마력이라는 게 모으기만 한다고 바로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여러 마법사의 마력이 모이는 만큼 성질은 제각각이고, 이런 개성 강한 마나를 진정시키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좀 있구나.”
중심 역할을 하는 마법사의 역량과 모이는 마력의 양에 따라서 마력을 진정시키는 시간이 정해진다.
이 정도 마력 유동이라면 적어도 6서클 마법사가 중심일 터. 역량이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력의 양도 말도 안 되게 어마어마했다. 아무리 6서클 마법사라도 순식간에 마력을 진정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적어도 몇 분. 어쩌면 수십 분 정도는 시간이 있어.”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창틀에 올려 둔 다리도 다시 내렸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고 바로 객실을 나왔다. 그리고 옆방을 크게 두드려, 브론 일행을 깨웠다.
“흐음냐. 로딘, 무슨 일이야?”
“브론, 적이 왔어요. 당장 짐 챙겨요.”
“적이라니? 우리한테 적이 어디 있어?”
“아무튼, 짐 챙겨요. 늦으면 다 죽어요. 엘리스도 누가 좀 깨우고. 아쿠아 샤워!”
여전히 잠에 취한 브론의 몸을 마구 흔들었다. 그걸로 부족해서, 마법으로 물까지 만들어서 끼얹었다.
“어푸, 무슨 짓이야!”
“살고 싶으면 서둘러요! 빨리!”
“아니. 이게 대체!”
“빨리요! 말은 제가 1층으로 가져올게요. 당장 움직여요. 당장!”
브론을 두고, 로딘은 급하게 마구간으로 갔다. 말 5필을 모두 챙겨서, 1층 여관 입구에서 기다렸다.
다행히 브론은 로딘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긴가민가하면서도 일행을 전부 깨웠고, 급하게 짐을 챙겨 나왔다.
브론 일행 전부가 1층까지 내려오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은 엘리스는 베이커가 아예 등에 업고 내려왔다.
“출발하죠.”
“무슨 일인데? 설명 좀 해 주라.”
“가면서 해 줄게요. 빨리요.”
로딘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일행들도 말에 탔다.
아직 비몽사몽인 엘리스 때문에 잠깐 지체했지만, 베이커가 어떻게든 들어서 말에 실었다.
“서쪽에서 마력 유동, 안 느껴져요?”
“아니, 우리가 마력을 어떻게 느껴. 야! 엘리스, 엘리스! 정신 좀 차려 봐.”
브론이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엘리스를 흔들었다. 엘리스가 몸을 뒤로 슬쩍 빼며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흔들지 좀 마. 깼어. 눈만 좀 감고 있는 거지. 난 이미 깨어 있다고.”
“마력 유동 같은 거 느껴져?”
“아니. 나는 모르겠는데.”
“답답하네요. 이게 안 느껴진다고요? 서쪽에서 미친 듯이 마력이 모이고 있는데?”
로딘은 마력을 못 느끼는 엘리스가 답답했다. 자고 있을 땐 몰라도, 지금은 느껴야 정상 아닌가 싶었다.
로딘이 보는 엘리스는 마법적인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매번 말론이 놀리지만, 실제로는 어느 마탑으로 들어가도 될 정도의 마력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머리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고, 천성이 게을렀다. 또 산만한 성격이라 마법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안 느껴지는데?”
“잘 느껴 봐요. 엘리스는 마력 재능이 나쁘지 않으니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계속 재촉했음에도 엘리스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지금 서쪽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느끼는 데 필요한 건 순수한 마력 재능이었다. 엘리스는 그 재능 면에서는 나름 괜찮은 편이었고.
그런데도 전혀 못 느꼈다. 그렇다면 다른 마법사들도 전혀 못 느끼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1기는 전혀 모르고 있겠구나.’
1기의 11번 수련생과 20번 수련생의 마력 재능은 엘리스보다 못했다. 엘리스가 못 느꼈으니, 그쪽도 보나 마나였다.
“아, 난 모르겠다. 뭔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달려요. 살려면.”
“계속 이 길로 달리면 돼?”
“예. 우린 동쪽으로 가죠. 라마톤 강으로.”
브론 일행은 말의 속도를 높였다. 아직 상황 파악은 안 됐지만, 로딘에 대한 믿음이 일단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엘리스, 마력 집중. 들어 본 적 있죠?”
“어? 그거……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 배웠는데.”
“맞아요. 중앙에서 통제하는 마법사가 통제력을 잃으면 다 같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로딘 네 말은 지금 서쪽에서 누군가가 마력을 모으고 있다는 뜻이지? 마력 집중으로?”
“예. 제 생각은 그래요.”
마력 집중이라는 말에 엘리스는 상대의 숫자가 적지 않음을 깨달았다.
마력 집중은 마법의 위력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편법인데, 적어도 10명 이상이 모여서 마법을 사용한다. 서쪽에 적어도 10명 이상의 마법사가 모여 있다는 의미였다.
“그 위험한 짓을 대체 왜?”
“마력 집중 과정은 아시죠?”
“듣기는 했지. 마력 모으고 안정화하고 마력 발동. 간단한 순서잖아.”
남의 마력을 모아서 쓰기에 ‘안정화’라는 단계가 들어가 있을 뿐, 마법사가 마법을 쓰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안정화 중이에요. 마력이 원하는 만큼 모였다는 뜻이죠.”
“마력 유동은 어느 정도로 느껴져?”
“적어도 7서클. 어쩌면 그 이상이요. 제가 대마법사를 본 적이 없어서,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요.”
로딘은 서쪽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어느 정도 위력의 마법을 만들 수 있는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양의 마력이었다.
“말도 안 돼. 그만한 마력을 모으려면 100명 이상의 마법사가 모여야 하는데.”
“설마 제국? 왜, 소문 돌았잖아. 잉그렘 제국에서 마법사 500명을 모아서 마법 병단을 만들었다고.”
“나도 들었다.”
“젠장. 이거 이미 포위된 거 아냐?”
그제야 브론 일행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마법 공격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이후에 들이닥칠 적들의 공격도 조심해야 했다.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 길을 열심히 달렸다. 그러다 로딘이 우뚝 말을 세웠다. 로딘이 멈추자 다른 사람들도 멈춰서 로딘을 응시했다.
“왜?”
“멈췄어요.”
“뭐가?”
“마력 유동. 안정화가 끝났어요. 곧 마법이 날아올 거예요.”
로딘이 말에서 상체만 돌려서 뒤를 돌아봤다. 로딘의 동작에 브론 일행들도 무심코 서쪽을 바라보게 됐다.
“와!”
“저, 저게 뭔데?”
서쪽 하늘 위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불 회오리가 만들어졌다. 불길이 어찌나 큰지, 서쪽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하늘을 점령하듯 이글이글 타오르던 불길이 느릿하게 내려앉는 중이었다. 로딘과 브론 일행이 떠나온 상업 지구 쪽이었다.
“파이어 블레스트.”
“저게 파이어 블레스트라고? 말도 안 돼.”
“크기는 10배쯤 크지만, 분명히 파이어 블레스트예요. 6서클 마법이고. 그러니까 중심에서 마력을 쓴 주체가 6서클 마법사라는 거죠.”
“6서클 마법을 8서클처럼 쓰네.”
그만큼 많은 양의 마력을 집중했기에 가능한 마법이었다. 마력을 모은 마법사들 태반은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일 게 뻔했다.
“가죠.”
“제국 놈들 좋은 꼴만 시켜 줄 수는 없지. 적이다! 제국 놈들이 쳐들어왔다!”
말론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적막하던 새벽을 깨울 정도로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이었다.
이 새벽에 쫓기듯이 나온 일에 대한 보복인지 아니면 사람을 살리겠다는 숭고한 생각인지.
아무튼 말론의 외침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많은 이들을 깨웠다.
웅성대며 여기저기서 반응이 일었고, 그들은 창밖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진 장면을 목격했다.
“말론 저놈은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일단 달려요! 멈추지 말고.”
“가자! 이럇!”
“적이다! 제국군이 대규모 마법을 썼다!”
말론이 또다시 길거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말론은 랜트와 닮은 점이 많았다. 키나 덩치도 그렇고, 몸 전체가 근육 덩어리라는 점도 비슷했다. 뒷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랜트였다.
하지만 성격은 정반대였다.
랜트는 말수가 적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편이었다. 목소리도 굵어서, 10대 초반에도 뭔가 어른 같은 느낌을 풍겼다.
그런데 말론은 장난기가 많고 그만큼 말도 많았다. 엘리스와 쉬지 않고 말다툼을 벌이고 지기 싫어서 어떻게든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도 있었다.
“하앗!”
“이럇!”
야밤에 깨어난 많은 이들이 서서히 내려앉는 마법을 목격했다. 어떤 이들은 살겠다고 튼튼한 구조물 뒤에 몸을 숨겼고 어떤 이들은 무작정 반대편으로 도주했다.
* * *
특수군 양성소 1기의 11번 폴과 20번 한스는 제국군이 마법을 쓸 때 이미 깨어 있었다.
저녁에 몰래 받은 쪽지의 내용을 동기들에게 공개하고, 자신들의 거취를 결정하기 위해 자정 무렵 모였다. 그들은 이 방 저 방을 옮겨 가며 치열하게 의견을 나눴다.
쪽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굳이 왕실에서 보낸 카이트 경이나 켈라인 위원에게 휘둘릴 필요가 없었다. 이 새벽을 틈타 도망을 쳐도 되었다.
문제는 쪽지가 거짓일 경우였다. 죄다 도망쳤는데 거짓말이면 그들은 죽은 목숨이었다.
밤새 나온 의견도 결국 쪽지를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갈렸다.
3기 108번 로딘은 원래 유명했다.
무려 7년 차에 5서클 마법사가 된 희대의 천재. 위원회마저 성장이 부담스러워 서고에 처박아 버린 인물이었다.
‘쪽지를 로딘이 쓴 게 사실이라면, 내용도 믿을 수 있다.’
여기까진 쉽게 의견이 통일되었다. 다만 쪽지를 건네준 사람이 정말 로딘이 맞는지가 문제였다.
“잠깐만. 나 108번이 쓴 글씨체, 알 것 같거든.”
옥신각신하며 결정을 못 내리던 순간, 11번 폴은 불현듯 함께 수업을 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폴은 급하게 배낭에서 수업 때 사용했던 공책을 가져왔다.
로딘은 배움을 나누는 데 인색한 사람이 아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 조언도 하고 질문에 답도 잘 해 줬다.
공책에는 그런 로딘의 흔적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이해가 안 되어서 ‘이게 무슨 뜻이야?’ 하고 물으면 로딘은 짧은 시간에 폴을 이해시키기 위해 핵심을 적어 주곤 했다.
당시에 남긴 설명에 사용된 글씨체와 오늘 받은 쪽지의 글씨체를 비교해 봤다.
“어? 똑같다.”
“맞지? 누가 봐도 같은 글씨체지?”
“맞아. 이거 왼손으로 쓴 글씨체야. 확실해.”
같이 8년 넘게 수업을 받은 만큼 폴과 한스는 로딘이 왼손과 오른손을 다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책에는 왼손으로 적은 글씨와 오른손으로 적은 글씨가 다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받은 쪽지는 왼손으로 쓴 글씨체와 완벽히 일치했다.
“그러면 다들 믿는 거지?”
“108번이 확실하다면 노예 스틱이 가짜라는 것도 맞는 얘기일 거야.”
“우리를 여러 부대에 흩어 놓으려고 했잖아. 그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아. 노예 스틱이 가짜라는 걸 아니까, 우리를 붙여 놓는 게 부담스러웠던 거지.”
1기는 1년 하고도 6개월째 전선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목표로 했던 제국의 마법 병단이 아니라, 다른 제국군을 만나서 싸운 적도 많았다.
전투를 거듭할수록 경험이 쌓였고 미숙하던 검술과 마법도 차츰 정돈되었다.
그 덕일까. 원래 3데나급 기사가 2명뿐이었는데, 이젠 4명으로 늘었다. 2서클에 머물렀던 20번 한스는 3서클 마법사가 되었고, 원래 3서클이었던 폴은 마법이 훨씬 완숙해졌다.
대신 피해도 컸다.
22명이었던 1기는 어느새 17명으로 줄어들었다. 전투 중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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