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67)
마법을 품다 (67)
1기 생들은 특수군 양성소에 들어온 지 가장 오래된 이들. 나이도 가장 많고 자유에 대한 갈망도 강했다.
특히 가정을 꾸리겠다는 욕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여자들도 꽤 많이 봤고, 그러면서 이성에 눈을 뜬 것이다.
결정을 내렸다. 더는 누군가의 칼이 되어서 움직이지 않기로.
“움직이자.”
“맞아. 굳이 왕국 기사들하고 싸울 필요는 없지. 조용히 사라지자.”
“어디로 가지?”
“일단 베로스 왕국으로 넘어가야지. 여긴 답이 없어.”
노예 스틱이 가짜가 되었을 뿐, 1기 수료생이 노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노예 제도가 확실하게 자리 잡은 리아즈 왕국에서는 노예의 굴레를 벗기 어려웠다.
“마침 국경도 멀지 않잖아. 라마톤 강 건너서 이틀이면 국경이야.”
“그런데 강은 어떻게 건너지?”
“우리가 타고 올 때 사용한 배를 타야지.”
“흐음, 2번 반복해야 할 텐데.”
켈라인 위원이 사실상 왕실에 항복하고 왕실의 호출을 받아서 라마톤 강을 건넌 게 불과 9일 전이었다. 그전까지 켈라인 위원이 이끄는 1기 수료생은 라마톤 강의 동쪽에 있었다.
강을 건널 때 사용한 방법은 간단했다. 1기들이 12일에 걸쳐서 직접 근처의 나무를 패고 잘라서 뗏목을 만들었다.
그들이 만든 뗏목은 크기가 작아서 한 번에 10명 이상은 탈 수 없었다. 또 마법사의 도움이 없으면 수평을 잡기 힘들 정도로 부실했다.
“마법사들이 고생하겠네. 할 수 있지?”
“다른 방법 있어? 해야지, 뭐.”
“그러면 시간 끌 필요는 없겠지? 나가자.”
“가자.”
1기는 결국 어둠을 틈타 도망치기로 했다.
제국군이 마법을 쓰기 대략 몇십 분 전.
그들은 도망을 치기 위해 묵고 있던 여관 건물을 나왔다. 그리고 좁은 골목을 이용해서 동쪽 상업 거리를 통과했다.
멀리 성벽이 보일 즈음, 갑자기 다급하게 말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1기들이 어둠에 몸을 숨기고 호흡을 멈췄다.
그때 갑자기 서쪽이 환해졌다. 1기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멈췄고, 대낮처럼 밝아진 서쪽을 멍하게 바라봤다.
“뭐, 뭐야?”
“글쎄. 마법 같은데. 한스, 저거 뭐야?”
“나도 몰라. 저런 마법을 내가 어떻게 알아?”
“나 보지 마. 나도 몰라. 저건 딱 봐도 엄청 고위 마법이잖아. 나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마법이라고.”
서쪽을 환하게 밝힌 마법은 한스와 폴도 본 적이 없는 마법이었다.
책이라도 많이 읽었다면 형태를 보고 마법을 유추했을 텐데, 11번과 20번은 딱 가르치는 것만 배운 전형적인 양성소 마법사들이었다.
“뭔가 느낌이 안 좋다.”
“어? 저 사람들은 뭐지?”
그때 그들의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요한 상업 지구 전체를 깨우는 큰 소리였다.
“적이다! 제국 놈들이 쳐들어왔다!”
1기생들은 외침을 듣고도 의미를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뜻이지?’ 하는 얼굴로 잠깐 멍하게 서 있었다.
“제국군이다. 서쪽에서 제국군이 온 거야.”
“젠장. 제국의 마법 병단이다. 뛰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누군가의 소리에 1기생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느려 터진 마법사 폴과 한스를 3데나급 검사인 7번과 8번이 각각 업고 어둠을 질주했다.
* * *
말을 달리던 로딘과 브론 일행은 앞서 달리는 무리를 발견했다. 적인지 아군인지 파악이 안 되어서 브론이 살짝 말의 속도를 늦추었다.
앞서 달리는 이들의 숫자가 무려 17명. 무턱대고 안으로 파고들었다가 협공당하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무시하고 달려요!”
“저들은?”
“적 아니니까 그냥 달려요!”
로딘의 조언에 브론 일행은 다시 말의 속도를 높였다. 뒤에서 말이 달려오자 앞서 달리던 이들이 좌우로 길을 열었다.
힐끗.
브론이 뒤를 돌아봤다. 엘리스도 서서히 하강하는 마법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멈추지 말고 달려요!”
“이럇!”
불길은 서서히 내려앉는 중이었다. 통제력 미숙으로 속도가 정말 느리지만, 어찌 됐든 저 마법은 어딘가와 충돌하게 되어 있었다.
브론 일행은 연신 뒤를 힐끔거리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마을 전체를 한 번에 깨우는 거대한 소리. 한참 멀리 떨어진 브론 일행마저 반사적으로 귀를 부여잡았다.
귀에서 삐이― 이명이 들렸다. 바로 옆 사람이 하는 말도 잘 안 들렸다.
로딘은 바로 뒤에 있는 브론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브론도 의미를 파악하고 다시 말의 속도를 올렸다.
“바로 통과합니다.”
“뭐라고?”
―바로 통과합니다. 멈추지 말고 달려요.
어쩔 수 없이 로딘은 텔레파시 마법을 사용해서, 브론 일행 전원에게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 달려오고 있는 1기를 힐끗 쳐다봤다.
‘용케 살아남았네.’
다시 앞을 바라봤다. 치안대 몇 명이 당황한 얼굴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곳은 도시가 아니라 조금 큰 마을에 불과했다. 성벽은 당연히 없었고 나무로 만든 울타리가 전부였다.
―멈추지 마세요. 계속 달립니다.
로딘이 앞서서 울타리 사이에 난 길을 통과했다.
울타리 주변으로 치안대 몇 명이 서성거렸지만, 일행을 전혀 막지 못했다. 아니, 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럇!”
“로딘! 앞에 뭐가 있어.”
뒤에서 브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청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못했는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몇 배는 컸다.
“봤어요!”
“뭐라고?”
―앞에 있는 건 제국의 기사들 같아요. 길은 제가 열 테니까 무시하고 달려요.
말이 달리는 방향 앞쪽에 대략 100명 정도의 기사들이 보였다. 지토와 시야를 공유해 보니, 입은 복장에 잉그렘 제국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제국의 기사들이야?”
“예. 잉그렘 제국이네요.”
로딘은 말을 달리게 둔 채로 마법을 시전했다. 룬어 영창에 수인까지 더 해서 3개의 마법을 마지막 단계 직전까지 만들었다.
‘쫓아오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잉그렘 제국의 마법 병단은 500명의 마법사와 500명의 기사로 이뤄져 있었다. 그들은 1년 하고 7개월 동안 전선을 돌아다니며 수십 개의 부대와 마을을 공격했고 어마어마한 성과를 올렸다.
마법사와 기사를 1명씩 묶어서,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게 그들의 특징.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마법사 500명이 한자리에 모여 마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기사 전력이 중간에 붕 떴다.
한자리에 있는 마법사 500명을 지키겠답시고 기사들까지 전부 모여 있는 건 인력 낭비였다.
그래서 100명의 기사는 마법사들을 지키고, 나머지 400명은 마을 주변을 에워싸 밖으로 나오는 이들을 처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적이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하앗!”
앞쪽에 포진한 기사들이 말을 타고 마주 달려왔다. 양쪽에서 달리니,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체인 라이트닝!”
기사가 달려들자마자 로딘이 미리 준비해 둔 마법 하나를 날렸다.
4서클 체인 라이트닝.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가 충격을 받을 때마다 복제되듯 퍼져 나가는 마법이었다. 다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위력도 나쁘지 않았다.
대신 모든 번개 속성이 그렇듯이 상대를 맞히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피해!”
“막아!”
서로 엇갈린 명령에 제국군 기사들의 반응 속도가 느렸다.
로딘이 날린 번개는 처음에는 하나였다. 고작 하나로 시작한 번개는 맨 앞에 있던 제국의 기사를 맞혔고, 그 후에 2개로 분화되었다.
2개로 나뉜 번개가 주변으로 번지면서 곧 4개, 8개로 순식간에 늘어나더니 전방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크악!”
“커억!”
“피해!”
“산개하라!”
10여 명의 기사가 그 자리에서 감전되어 낙마했다. 당장 죽은 자들은 없지만 꽤 오랫동안 움직일 수 없는 부상을 입었다.
“막아!”
“절대 놓치지 마라!”
“놈이 다시 마법을 쓰기 전에 처리해라!”
마법에 한 번 당했음에도 제국의 기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는 듯,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달라붙어라!”
“마법사부터 죽여라!”
이미 마법을 사용했으니, 한동안은 안전할 거라는 게 제국 기사들의 생각이었다. 마법사가 마법을 쓸 때는 캐스팅이 필요한 게 상식이니까.
하지만 로딘은 수인을 이용해 마법을 순차적으로 만들어 둘 수 있었다. 그렇게 준비한 2번째 마법이 전방에 작렬했다.
“윈드 스톰!”
전방에 생성된 거대한 바람의 폭풍은 달려들던 기사들을 사방으로 날려 버렸다.
4서클 마법이었던 체인 라이트닝과 다르게 윈드 스톰은 5서클 마법이었다. 범위도 넓고, 위력도 체인 라이트닝보다 월등하게 강했다.
어마어마한 위력은 말이고 사람이고 가리지 않았다. 걸리는 족족 사방으로 날아갔고 그 덕에 앞쪽에는 뻥 뚫린 공간이 만들어졌다.
로딘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윈드 스톰의 마법을 향해 달려가는 모양새였다.
“이, 이거 우리가 맞는 거 아냐?”
“그냥 달려. 어떻게든 되겠지.”
“에잇!”
로딘이 달리자, 브론 일행도 어쩔 수 없이 말의 속도를 유지했다. 이러다 마법의 영향권에 들겠다고 걱정하던 그 순간, 바람의 폭풍이 꿈이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브론 일행은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을 돌파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따라붙은 1기생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제국군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예상 못 한 마법으로 길을 열어 줬지만, 다시 따라붙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로딘의 마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파이어 월!”
4서클인 불의 벽이 일행의 뒤를 막아섰다. 커다란 불길이 등장하자, 제국군도 더는 쫓지 못했다.
“젠장!”
“저놈 뭐야!”
제국군으로선 운이 없었다. 제국의 마법 병단에는 6서클 마법사뿐 아니라 6데나급 기사도 있었다. 그들 중 1명만 있었다면 이 정도 마법에 이런 타격을 입지도 않았을 텐데.
아쉽게도 6데나급 기사는 마법을 쓰고 탈진한 마법사들을 지키고 있었다. 마을의 정반대 쪽이라 당장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웠다.
* * *
로딘과 브론 일행은 한참을 더 달린 후에야 멈췄다. 어느새 따라붙었던 1기생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 그 사람들은 뭐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근데 말도 없이 잘 따라오더라. 전원 기사급인가?”
“그건 아닌 것 같고. 수준이 전체적으로 높긴 하더라. 기사급도 몇 명 있는 것 같고. 업힌 사람들은 마법사 같던데.”
로딘과 브론 일행은 말을 타고 있었다. 반면 1기생은 전원 두 발로 뛰었다.
1기생들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훈련 수준도 낮지 않았다. 그 덕에 짧은 시간은 말과 비슷한 속도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금세 거리가 벌어졌다. 짐까지 직접 들고 움직인 1기생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지쳤고, 그사이에 로딘과 브론 일행이 치고 나갔다.
“그런데 로딘! 너 뭐야? 아까 네가 처음에 쓴 마법, 그거 체인 라이트닝이잖아. 맞지?”
“맞아요. 미안해요. 속여서.”
“그러면 넌 4서클 마법사인 거야?”
엘리스는 5서클 마법인 윈드 스톰을 알아보지 못했다. 맨 처음 사용한 체인 라이트닝과 마지막에 사용한 파이어 월만 알아봤다. 두 마법 모두 4서클 마법이었다.
“아니요. 5서클 마법사예요.”
“진짜? 와! 하긴, 마법을 무지 빨리 사용하긴 하더라.”
“역시. 로딘은 천재였어.”
14살짜리가 5서클 마법사임을 밝혔는데, 의심하는 사람이 1명도 없었다. ‘그럴 줄 알았어.’ 같은 반응이라, 로딘이 더 당황스러웠다.
“제 말이 믿어져요?”
“마법을 봤는데, 못 믿을 게 뭐 있어? 그리고 넌 처음 봤을 때부터 그냥 놀라웠어.”
“칭찬으로 들을게요.”
“슬슬 보이네. 저거 맞지? 라마톤 강.”
어둠에 잠긴 거대한 강이 흐릿하게 보였다. 달빛에 반사된 물결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은 것 같은데?”
“그러게. 로딘. 여기 건널 수 있는 거 맞아?”
“예. 어렵지 않아요.”
3서클 마법사인 척할 때도 강을 건널 방도는 있었다. 물의 정령인 운디네가 물을 조종하고, 1서클 마법인 샤워와 2서클 마법의 실드를 조합하면 가능했다.
하물며 지금은 5서클 마법사임을 온전히 밝힌 상태였다. 운디네와 5서클 마법을 결합하면 일시적으로 강의 흐름을 멈춰 버리는 일도 할 수 있었다.
“근데 밤이라 그런가. 좀 무섭다.”
“나도. 발이 안 떨어지는데.”
“좀 쉬죠. 해 뜨고 움직여도 될 거예요.”
제국군이 쫓아오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지토를 하늘로 띄우진 않았지만, 기사들이 붙었는지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럴까? 안 그래도 배가 살살 아팠다.”
“나도. 자다 깨서 화장실도 못 갔다니까.”
브론과 말론이 강 옆의 수풀로 들어갔다. 잠깐 풀이 들썩이더니, 이내 물소리가 들렸다.
“아이씨. 좀 멀리서 쌀 것이지.”
엘리스가 불결하다는 듯이 귀를 막았다.
로딘은 엘리스의 불만이 이해됐다.
실제로 물소리가 좀 크게 들렸다. 진짜 가까운 곳에서 볼일을 보는 듯했다.
“가야지. 오빠도 갈 거지?”
“응. 나도 좀 비워야겠다.”
“망 좀 봐 줘.”
“응.”
역시나 동생을 챙기는 사람은 오빠인 베이커였다. 브론과 말론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차분하게 주변을 경계했다.
“로딘, 넌?”
“전 됐어요.”
잠시 후, 브론과 말론이 돌아왔다. 교대하듯 엘리스와 베이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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