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68)
마법을 품다 (68)
브론과 말론은 돌아오자마자, 짐부터 다시 정리했다.
워낙 급하게 도망치느라 옷도 제대로 입지 못했다. 장비도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브론과 말론은 배낭을 정리하면서 두꺼운 옷을 꺼내 겉에 걸쳤다. 허리띠를 다시 착용하고 배낭에 대충 쑤셔 넣었던 투척용 단검도 허리띠의 고리에 걸었다.
잠시 후, 베이커와 엘리스가 돌아왔다.
“너희들 못 봤지?”
“뭘? 앞뒤 다 빼먹고 뭘 못 봤냐는 거야?”
“저쪽에 뗏목 있더라. 우리 쫓아왔던 사람들이 준비해 뒀나 봐.”
“아! 맞네. 강을 건널 방도가 있으니까, 이쪽으로 온 거네.”
17명의 1기생은 브론 일행과 마찬가지로 동쪽 문을 통해 이곳 라마톤 강으로 도망쳤다. 지금은 거리가 벌어져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도착할 터였다.
“우리가 타고 갈까?”
“뗏목이 커?”
“아니. 작아. 뗏목 타고 가면 말은 다 놓고 가야 돼.”
“그러면 안 되지. 이 말이 우리 승선권인데.”
지금 브론 일행은 자금 사정이 심각하게 안 좋았다. 여관에 한 번 묵을 때마다 ‘얼마나 남았지?’ 하고 하나하나 계산해야 할 정도였다.
아스란 왕국의 항구 도시 엘페소에서 중앙 대륙으로 가는 뱃값 역시 지금 타고 있는 말을 팔아야 해결할 수 있었다.
“뗏목은 두고 가죠. 없어도 돼요.”
“그래?”
“슬슬 준비하세요.”
말도 말이지만, 로딘은 1기생들의 도강 수단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모를까. 뗏목이 없어도 강을 건널 수 있는데 굳이 1기생들에게 피해를 줄 이유는 없었다.
로딘이 말에서 내려 앞으로 나섰다.
“제 말 좀 부탁해요.”
“응. 내가 끌고 갈게.”
“아! 여러분들은 그냥 말 타고 이동해도 돼요. 저만 밑에 있으면 되니까, 편하게 와요.”
로딘이 강을 보며 운디네를 불렀다.
물이 가까워져서 기분이 좋아진 운디네가 팔랑거리며 날아다녔다.
‘장난 그만 치고. 물길 좀 막자. 지나가야겠어.’
끄덕!
운디네가 힘을 사용했다. 당연히 그 힘은 로딘의 마력에서 시작되었다.
운디네가 움직이자, 세차게 흐르던 물길이 바뀌었다. 사람이 지나갈 통로를 만들고 물은 그 위쪽으로만 흘렀다.
“지나가죠.”
로딘은 운디네가 만든 통로를 마법으로 보강했다.
파이어 월과 흡사하지만 물 속성인 4서클 마법 아쿠아 월을 만들어 물의 침습을 막았다. 동시에 땅을 뒤집어서 질척이는 바닥을 좀 더 단단하게 바꿨다.
“와! 멋지다.”
“물 안으로 통로를 만들다니.”
“시간 없어. 빨리 따라가자.”
로딘이 물의 흐름에 집중한 채로 걸었다. 그 뒤를 브론 일행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로딘은 브론 일행이 완전히 지나온 곳의 아쿠아 월을 차례로 없앴다.
“와, 물고기 아냐?”
“보이지도 않는데, 물고기가 있는지는 어떻게 알아?”
“검사인 네 눈에는 안 보이지만, 마법사인 내 눈에는 보이거든.”
“퍽이나.”
엘리스와 말론은 강을 건널 때도 티격태격했다. 저러다 사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로딘은 빠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걸었다. 같은 속도로 브론 일행이 말을 타고 따랐다.
그렇게 대략 20여 분.
평평했던 땅이 서서히 오르막처럼 변했다. 그리고 어느새 머리 위에 있던 물의 벽이 완전히 사라졌다.
“다 건넜다.”
“와! 오늘 한 경험은 어디 가서 자랑해도 되겠다.”
“어? 저기…… 우리 따라왔던 사람들이다.”
1기생들이 어느새 강 건너편에 도착했다. 아직 뗏목을 챙기기 전이었다.
“저 사람들도 역시 강을 건널 생각이구나.”
“가죠. 해 뜨기 전에 최대한 멀어지는 게 좋겠어요.”
“하긴. 제국 놈들은 마법사가 많으니까. 이 정도 강은 금방 건널 거야.”
브론 일행은 강을 통과하는 동안 의도치 않게 힘을 아꼈다. 로딘의 걷는 속도에 맞췄기 때문에 5필의 말도 체력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때 아낀 체력을 지금 사용했다.
로딘과 브론 일행은 속도를 올리며 동쪽으로 계속 달려갔다.
로딘은 말을 달리면서 오늘 싸운 제국군을 생각했다.
‘대마법사로 착각해 줄까?’
일부러 4서클 마법 사이에 5서클 마법인 윈드 스톰을 끼워 넣었다. 5서클 마법을 주문 없이 시동어만으로 사용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후드를 푹 눌러 써서 얼굴도 가렸다. 어려 보이는 외모를 감춰서 늙은 마법사로 봐 주길 바랐다.
대마법사로 봐 준다면 추격은 없을 거다. 제국의 마법 병단이 강하다곤 하지만 대마법사가 상대라면 전멸을 각오해야 했다.
‘아니겠지. 위력부터가 부족하니까.’
착각해 준다면 다행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마법사로 봐 줄 것 같진 않았다. 꼼수로 시간이라도 늦추면 다행이었다.
‘당장은 따라붙은 제국군이 없으니까.’
* * *
제국군의 마법 병단 소속의 기사 500명.
평소 그들은 자기에게 배정된 마법사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전쟁의 시작부터 전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의 임무는 오직 배정된 마법사를 지키는 일이었다.
마법사보다 먼저 죽을 순 있어도 절대로 마법사가 자신보다 먼저 죽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게 자신들의 존재 이유였다.
그래서 항상 마법사의 곁에 있지만 오늘은 조금 상황이 달랐다.
마법사가 한자리에 모여 마법을 쓴 탓에 기사들에게는 다른 임무가 내려왔다.
마을에서 나오는 모든 생명체의 말살.
그 임무를 위해 마을을 둘러쌌고, 적이 마을을 나올 것도 당연히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리아즈 왕국의 수색대도 아니고, 용병으로 보이는 무리에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직도 이게 꿈인가 싶었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어찌 됐든 보고는 해야 했다.
러셀 자작은 동쪽을 담당하던 기사들의 대표로 상급자가 있는 마을의 서편으로 넘어왔다.
“그러니까 한 무리가 빠져나갔다는 건가?”
“한 무리가 아니라 두 무리로 보였습니다. 앞서 말을 타고 지나간 자들은 용병으로 보였고, 바로 이어서 발로 뛰어 빠져나간 자들이 우리를 쫓던 수색조 같았습니다.”
이번에 제국의 마법 병단이 리아즈 왕국의 중심부까지 내려와 마을을 공격한 건 자신들을 쫓던 수색대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제국의 마법 병단은 뒤를 쫓는 이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해 왔다. 큰 위협도 안 되는 수색대를 처리하는 것보다 상부에서 내려온 목표를 타격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유가 생겼다. 상부에서 마법 병단의 피로도를 고려해서 한 달의 휴식을 줬기 때문이다.
무려 1년 하고 7개월 만에 얻은 한 달의 휴가.
마냥 쉬어도 되지만, 마법 병단은 이번 기회를 이용해 뒤에 따라붙은 꼬리 하나를 제거하기로 했다. 그게 오늘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뒤를 쫓던 귀찮은 놈들도 놓쳤다는 건가?”
“전부는 아닙니다. 대략 10여 명만 도망쳤고, 적들의 본대는 마을 안에서 큰 피해를 입은 걸로 보입니다.”
제국의 마법 병단을 쫓는 리아즈 왕국의 수색대에 1기생만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1기는 극히 일부일 뿐이었고, 북부군에서 차출된 병력이 훨씬 많았다.
북부군에서 마법 병단을 쫓기 위해 보낸 병력은 무려 4,500명이었다. 고작 17명만 남은 1기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그럼, 아군 사상자는?”
“다행히 사망자는 없습니다.”
사망자가 없다는 말에 콩테 백작이 안도했다. 어찌 됐든 최악은 피한 셈이었다.
마법 병단의 기사 전력을 책임지는 인물은 6데나급 기사인 콩테 백작이었다. 40대 중반의 나이로 상당히 젊은 강자이면서, 동시에 황실의 외척이기도 했다.
“사망자는 없다? 부상자는 많다는 소리군.”
“예. 34명이 부상을 당했고, 그중 9명은 중상입니다.”
죽은 기사가 없는 건 다행이지만, 중상자 9명은 꽤 큰 타격이었다.
중상자가 생기면 기동력에 문제가 생긴다. 그들이 완치될 때까지 마법 병단은 느려질 테고, 수색대를 피하기 위해서는 정찰에 더 많은 마법사를 동원해야 한다.
“용병으로 보이는 놈에게 당했다고?”
“예. 로브를 입고 있긴 했지만, 리아즈 왕국군의 정규군 복장은 아니었습니다. 또 뒤를 따라서 나온 수색대 놈들과도 상관없는 이들로 보였습니다.”
로딘은 의도적으로 1기생과 거리를 뒀다. 제국군이 자신과 1기생을 별개의 무리로 봤으면 해서였다.
다행히 그 생각은 적중했다. 제국군 역시 1기생들과 브론 일행을 같은 무리로 보지 않았다.
“얼굴은 확인했나?”
“죄송합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로하임.”
“왜?”
기사를 책임지는 사람이 콩테 백작이라면, 핵심인 마법 병단의 마법사를 책임지는 사람은 로하임이었다.
콩테 백작과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낸 친구 사이로, 그 친분 때문에 마법 병단에도 함께 들어왔다.
“러셀 자작, 자네가 본 마법에 관해 설명 좀 해 주게. 로하임, 그놈이 어떤 마법을 썼는지 확인 좀 해 줘.”
“듣는 것 정도라면야. 얼마든지.”
지금 로하임은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고, 자세도 나무에 비스듬히 기댄 채였다.
마법사 로하임은 마력 집중으로 위력이 큰 마법을 쓰느라, 가진 마력이 완전히 바닥났다. 또 중심축 역할을 하면서 정신적으로도 한계였다.
“그자가 첫 번째로 사용한 마법은 번개였습니다. 아주 작은 번개가…….”
러셀 자작의 설명은 꽤 자세했다. 현장에 없던 콩테 백작조차 당시의 상황을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6서클 마법사 로하임은 러셀 자작의 설명으로 사용된 마법 3가지를 쉽게 파악했다. 워낙 자세한 설명이라, 마법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체인 라이트닝, 윈드 스톰, 파이어 월. 각각 4서클, 5서클, 4서클이군.”
“5서클이라……, 로하임. 내가 알기로 5서클 마법을 시동어만으로 사용하려면 7서클은 되어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들은 적이 있는데.”
“네 말대로 2개 서클 아래의 마법을 주문 없이 쓸 수 있는 건 맞아.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라. 지연 마법이라는 게 있거든.”
로하임은 머릿속에서 7서클 마법사에 대한 가정을 삭제했다. 이유는 단 하나, 7서클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7서클 마법사란 존재는 이 세상을 통틀어도 서너 명뿐이었다. 하필 공격한 마을에 7서클 마법사가 있을 확률? 한없이 0에 가까웠다.
또 7서클 마법사는 4데나급, 3데나급 기사들이 몰려든다고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7서클 대마법사가 도망칠 이유도 없었다.
넉넉하게 단 몇 분이면 몰려드는 기사를 떼로 죽여 버릴 수 있는 존재가 7서클 대마법사였다.
“지연 마법이 뭔데?”
“마법을 미리 사용하고, 일정 시간 후에 발동되도록 하는 일종의 기술 같은 건데.”
사실 로하임은 마법은 파악했지만, 마법사에 관해서는 전혀 감을 못 잡았다. 그래서 결과를 보고 억지로 꿰맞추는 방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 순서상 윈드 스톰이 첫 번째라는 뜻이야?”
“응. 맞아. 윈드 스톰을 먼저 썼을 거야. 대신 발동 시간을 늦춘 거지. 그 후에 체인 라이트닝을 쓰고, 발동을 늦췄던 윈드 스톰이 발동되고, 마지막으로 파이어 월을 써서 추격을 막은 거야.”
억지로 꿰맞췄지만, 로하임은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고 확신했다. 다른 마법사가 이 자리에 있더라도 같은 결론을 내릴 거라 믿었다.
“그래? 난 네가 그런 방식으로 마법 쓰는 건 본 적이 없는데.”
“한 적이 없으니까. 할 줄도 모르고. 지연 마법은 몇몇 마탑에서만 배울 수 있는 비전이거든.”
“그런 마법사가 왜 용병으로 있는 건데?”
“나야 모르지. 세상 경험하러 나왔는지, 전쟁 상황이 궁금해서 구경하러 왔는지. 직접 만나서 물어봐야 알지.”
로하임은 점점 몸이 늘어졌다. 너무 피곤해서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었다.
“추격대를 얼마나 편성할까?”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제국은 원한을 잊지 않아. 당했으면 갚아 줘야 한다고.”
비록 사망자는 없었다고 하지만, 부상자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순순히 보내 주기에는 콩테 백작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상대는 마탑 소속이야. 그것도 4대 마탑이거나 그에 비견할 만큼 큰 마탑 소속일 거라고. 홧김에 건드리기엔 너무 강한 상대야.”
“흥. 마탑. 내가 무서워할 줄 알고?”
“넌 화풀이할 수 있겠지. 곤란을 겪는 건 네가 아니라 제국이야.”
“젠장.”
제국을 언급한 후에야 콩테 백작도 복수심을 억눌렀다.
잉그렘 제국은 지금도 13국 연합 전체와 싸우고 있었다. 전황이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길게 진행되는 전쟁이 마냥 편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마탑까지 적이 된다?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황실에서도 상황을 알면 좋게 보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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