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69)
마법을 품다 (69)
로딘의 도박이 먹혀들었다.
이유는 다르지만, 잉그렘 제국의 마법 병단은 로딘과 브론 일행에 대한 추격을 포기했다.
이틀의 야영 끝에 도시 본티스에 도착했다.
본티스는 이웃한 베로스 왕국과의 국경 도시이면서 교역의 중심 도시였다. 하루에 오가는 상단 숫자만 300여 곳이고, 상주하는 인구 역시 100만이 넘었다.
물론 국경 도시이니만큼 군인의 숫자도 많았다. 잉그렘 제국과의 전쟁 때문에 병력의 절반 이상이 빠졌지만, 여전히 2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로딘, 어떻게 들어갈 생각이야?”
“알아서 들어갈게요.”
본티스는 국경 도시라서, 검문이 꽤 삼엄한 편이었다. 신분패 없이는 출입이 안 되고, 신분패가 있더라도 의심스러운 사람은 따로 조사받는 경우도 많았다.
로딘은 신분패가 없었다.
공간 이동 후에 죽은 상단주로부터 얻은 신분패가 있지만, 써선 안 되는 물건이었다. 신분패에 출생 연도가 기록되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예. 알아서 넘어갈게요. 안에서 봐요.”
“그냥 마법사 인증하면 통과시켜 줄 텐데.”
“어디서 마법을 배웠는지 설명하려면 골치 아파요. 제 말만 좀 부탁할게요.”
고삐를 건네주고, 브론 일행을 먼저 보냈다.
브론 일행은 비록 중앙 대륙에서 발급받은 것이긴 하지만, 신분패를 가지고 있었다. 잠깐 실랑이가 있었지만, 경비를 서던 이들도 결국 브론 일행을 막지 않았다.
그사이에 로딘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 인비져빌리티 마법을 사용했다. 모습이 투명해지며 곧 지워지듯 사라졌다.
“플라이.”
로딘은 하늘을 날아 어렵지 않게 본티스 안으로 들어갔다.
본티스에 있던 이들 중 강자는 죄다 북부 전선으로 배치되었다. 마법사고 기사고 할 것 없이 몽땅 떠난 후라 이곳에는 평범한 병사들만 남았다.
경계를 서던 누구도 5서클 마법사인 로딘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로딘은 자연스럽게 브론 일행과 합류했다. 바로 여관을 잡아 짐을 풀고, 용병 길드를 찾아 나섰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겠지.”
“어휴, 망할 서대륙. 의뢰도 없고 길드 찾기도 어렵고.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말론과 엘리스의 대화였다. 의아한 내용이 있어서 로딘이 둘을 돌아봤다.
“서대륙에 의뢰가 없어요?”
“거의 없지. 마수가 없으니까.”
“마수림이 가까운데 마수가 없다고요?”
로딘의 상식으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대륙의 잉그렘 제국과 탈레흐 왕국은 마수림의 마수들로 엄청나게 고통받고 있었다. 탈레흐 왕국은 국가 예산의 30%를 마수 방어에 쓸 정도로 마수가 골칫거리였다.
그런데 마수가 없다니. 뭔가 상식이 어긋나는 기분이었다.
“마수로 고통받았다는 건 과거 얘기야. 너도 30년 전 잉그렘 제국이 마수림 토벌했다가 실패했다고 알고 있지?”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죠. 50만 명이나 동원했다가 몇백 명만 살아 돌아왔으니까.”
“잉그렘 제국 입장에서는 실패가 맞긴 하지. 상급 기사들, 고서클 마법사들이 죄다 죽어 나갔으니까. 그런데 또 마냥 실패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당시 토벌 이후로 30년째 마수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거든.”
“그래요?”
로딘은 몰랐던 사실이었다. 책을 통해서만 얻은 지식의 한계였다.
로딘은 30년 전의 처참한 실패를 기록한 책을 봤다. 그때 이후로 잉그렘 제국이 13국 연합의 공격을 받고, 상당히 손해 봤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마수림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한 내용은 그동안 읽은 책에 나와 있지 않았다.
‘맞아. 리아즈 왕국은 마수림과 붙어 있지 않으니. 그런 쪽은 관심이 없겠지.’
특수군 양성소에 보관된 책은 지극히 리아즈 왕국의 입장에서 관심이 가는 책들이었다. 관심 밖의 내용이 기록된 책은 애초에 수집하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아예 안 나타나는 건 아니야. 많을 땐 서너 마리씩, 어쩔 땐 한두 마리씩 나타나는 일도 있다고 하거든. 그런데 1년에 몇 번 나타나지도 않는 놈들을 잡겠다고 잉그렘 제국이나 탈레흐 왕국에 죽치고 있을 순 없잖아.”
브론 일행도 몇 번 마수 사냥을 하려고 해 봤다. 탈레흐 왕국에도 몇 달을 머물렀고, 장시간 죽치고 마수를 잡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수가 너무 짰다.
반년을 기다려서 마수를 사냥했는데, 받은 보수는 고작 1개월 치 생활비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의뢰를 받으면 받을수록 손해였다.
“그러면 중앙 대륙은 어떤데요? 용병들이 할 일이 많아요?”
“여기보다는 훨씬 많지. 중앙 대륙은 어느 산, 어느 숲을 가든 마수는 꼭 있거든.”
“숫자는 적당하고요?”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횟수거든. 자주 나타나야 돈을 주고 용병을 쓰지.”
용병의 필요성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위험에 있었다.
‘에이, 안 나타날 거야.’라고 생각할 땐 용병을 고용하지 않는다. ‘마수가 나올지도 몰라.’ 하고 두려워할 때 용병을 고용한다.
“중앙 대륙은 마수가 자주 나타나는 거네요. 서대륙은 30년 전부터 마수가 거의 안 나타나고. 그러면 서대륙에선 용병이 하는 일이 없나? 대체 무슨 일을 해요?”
“상단이나 고위 인사 호위. 제일 많은 게 그거지. 전쟁이 벌어진 후부터는 전쟁 용병도 많이 늘어난 것 같지만.”
“아하, 호위.”
“특히 요즘에는 호위 의뢰가 더 많아진 것 같더라.”
원래 13국 연합은 어느 나라든 치안이 좋은 편이었다. 산지가 많지 않아서 도적들이 숨을 곳이 적고, 오랜 전쟁 준비로 병사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다.
어딘가에서 도적이 나타났다는 얘기만 들려도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토벌해 버리니 도적들이 설 곳이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도적들을 토벌했던 병사들은 죄다 북쪽의 전선에 배치되었다. 전쟁 대비라는 명목으로 세금이 너무 많이 올랐고, 그러면서 힘없는 평민들의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심지어 전투 중에 도망친 탈영병까지 가세했다. 이젠 도시와 가까운 곳에서도 심심찮게 도적이 나타났다.
“전쟁 때문이지, 뭐. 그런데 아무리 의뢰가 많으면 뭐 하냐? 우리 목적지하고 같아야 의미가 있지.”
“일단 용병 길드에서 확인이나 해 보자. 혹시 아냐? 아스란 왕국으로 가는 의뢰가 있을지.”
브론 일행은 리아즈 왕국의 왕도에서도 용병 길드에 들렀었다. 혹시나 동쪽으로 가는 의뢰가 있을까 싶어서였는데, 남쪽의 항구 도시 멜코스로 향하는 의뢰밖에 없었다.
“확인은 해 보자. 있으면 좋고. 없으면 뭐, 어쩔 수 없지.”
“저기다. 용병 길드.”
“하아, 진짜 구석에 처박혀 있네.”
용병 길드는 상업 지구와 빈민가 그 사이에 있었다. 건물은 허름하고 드나드는 용병도 많지 않았다.
“로딘, 너 앞으로 3년 동안은 사고 치면 안 된다. 알지?”
“걱정하지 마세요. 사고를 쳐도 들키지 않게 칠게요.”
“안 친다는 말은 안 하는구나.”
“미래 일을 누가 확신하겠어요? 그래도 노력할게요.”
신분패가 없는 사람이 용병 길드에서 용병패를 받기 위해서는 신분 보증인이 필요했다. 로딘의 경우는 브론 일행이 그 보증인이었다.
대신 앞으로 3년 사이에 사고를 치면, 신분 보증을 섰던 보증인이 책임을 져야 했다.
그게 금전적인 문제든, 생사가 걸린 것이든.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신분 보증인이었다.
“들어가자.”
브론이 앞장서서 용병 길드의 문을 열었다.
다행히 허름했던 바깥과 다르게 안은 제법 잘 꾸며져 있었다. 탁자와 의자도 심하게 낡지는 않았고 곳곳에서 쉬고 있는 용병들도 많았다.
‘평범한 식당 같네.’
물론 식당은 아니었다.
이곳에는 사람이 왔는데도 ‘어서 오세요.’ 같은 환영 인사가 없었다. 용병 길드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도 앉아서 옆 사람과 떠들기 바빴다.
브론은 카운터에 있는 직원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베이커, 말론, 엘리스는 의뢰를 살펴보기 위해 벽보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용병이 되려고 하는 동생이 있는데.”
“용병 자격 심사를 받기 위해 오셨군요. 이쪽인가요?”
옆 사람과 열심히 떠들던 직원은 브론이 오자, 자세를 바로 고쳤다. 다행히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예. 제가 용병이 되려고 합니다.”
“심사를 신청하면 사흘 안에 연락드릴 겁니다. 연락처 남기고 가…….”
“잠깐만. 이 녀석은 마법삽니다. 일반적인 심사가 아니라, 마법 검증 시험을 쳐야 합니다.”
카운터 직원의 말을 브론이 끊었다. 마법사와 검사의 검증 절차가 다른 모양이었다.
마법사라는 단어가 들리자, 홀에 있던 용병들도 이쪽을 쳐다봤다. 마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기한 동물을 본 얼굴들이었다.
“아! 마법사요? 경지가 어떻게 되세요?”
“3서클 마법삽니다.”
“잠시만요. 지부장님께 바로 연락드릴게요.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카운터 직원이 사라지고, 10분도 되지 않아서 40대 남자가 나타났다. 허겁지겁 달려왔다는 게 복장으로도 확인되었다.
“후우, 후우. 3서클 마법사시라고요?”
“예. 한 달 전에 3서클에 올랐습니다.”
용병계에서 마법사는 극히 드문 존재였다. 어지간한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용병을 다 뒤져도 마법사는 몇 안 나왔다.
로딘도 브론 일행에 2서클 마법사 엘리스가 끼어 있는 걸 신기하게 봤던 기억이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네요.”
가볍게 말을 받으며 로딘이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제야 어려 보이는 예쁘장한 얼굴이 드러났다.
“아! 나이가…….”
“14살입니다.”
“허어, 정말 대단하네요. 14살에 3서클 마법사라니. 마탑에 가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다.”
“저는 형들하고 누나가 좋아서요.”
지부장이 마탑을 언급한 건 소개해 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로딘은 브론 일행을 핑계로 지부장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일단 마법사로 용병 자격 심사를 신청했으니, 실력을 확인해야 할 텐데요. 아! 마법사님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용병 길드의 절차가 그래서요.”
“괜찮습니다. 기분 나쁘지 않으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마법사 중에는 당연한 의심조차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워낙 스스로를 고고하게 여기는 존재라, 비위를 맞추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뒤쪽에 장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예. 가시죠.”
지부장을 따라 용병 길드 건물 뒤쪽에 마련된 공터로 갔다.
준비된 공터는 넓었다. 외곽 쪽에 잡초가 듬성듬성 나 있었지만, 중앙의넓은 바닥은 관리를 제대로 한 듯 말끔하고 평평했다.
공터 중간에는 최근에 세운 듯한 허수아비 3개가 차례로 늘어서 있었다.
“3서클 마법 3가지를 사용해 주시면 됩니다. 허수아비에 써야 하는 마법이면 허수아비에 쓰시면 되고요. 땅바닥 같은 곳에 쓸 수 있는 마법이면 바닥에 부탁드립니다. 허수아비가 비싼 건 아닌데, 세우는 게 좀 번거로워서요. 아! 마법을 사용한 후에는 어떤 마법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제가 아는 마법이 별로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이것부터 할까요?”
로딘은 룬어를 읊는 척 중얼거렸다. 옆 사람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파이어 볼!”
1번째 마법이 완성되었다. 로딘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성인 머리통만 한 불덩어리가 전방으로 날아갔다.
콰앙!
불덩어리는 허수아비가 아닌 바닥과 충돌했다. 동시에 바닥이 크게 파이며 사방으로 파편을 흩날렸다.
“이 마법은…….”
“이건 저도 알겠습니다. 파이어 볼 맞죠?”
“예. 맞습니다.”
“하하. 3서클 마법사의 대표적인 마법이죠. 3서클 중에서는 최고의 위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파이어 볼을 못 쓰는 3서클 마법사는 3서클 마법사 취급도 못 받는다고 하더군요.”
다른 말은 맞지만, 파이어 볼이 3서클 마법 중에 최고 위력인 건 아니었다.
로딘이 아는 3서클 마법 중 위력이 가장 강한 마법은 콜링 썬더였다. 번개를 끌어 내리는 마법으로, 달리 ‘낙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 예.”
“다음 마법 보여 주십시오.”
“예.”
로딘은 이번에도 중얼거리며 캐스팅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마법을 완성했다.
“……윈드 시클!”
바람으로 만들어진 낫이 공터의 왼쪽에 있던 허수아비를 베었다. 허수아비는 대번에 허리가 잘려 나갔다.
“와! 이건 뭡니까?”
“윈드 시클. 바람을 압축해서 만든 낫입니다. 대인 마법으로 쓸 만합니다. 빠르기도 하고요.”
“좋네요. 마지막 3번째 마법 부탁드리겠습니다.”
“3번째는……, 으음.”
잠깐 고민해 보고 마법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보여 준 마법은 모두 공격 마법이었다. 용병들이 선호하는 마법이지만, 너무 치우친 감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마법을 선택했다. 룬어를 영창하고, 손을 바닥으로 뻗었다.
“……그라운드 배리어!”
1미터 앞의 땅이 순식간에 일어나더니 전방에 벽을 세웠다. 높이가 2미터 정도에 가로로 3미터 정도 되는 작은 성벽이었다.
“방어 마법입니다. 이름은 그라운드 배리어. 제법 단단해서 기사들의 공격도 몇 번은 막아 낼 겁니다.”
“오오, 마법은 역시 신기합니다. 잠시 기록 좀 하겠습니다.”
용병 심사는 간단하게 끝났다. 지부장은 마법을 기록하고 로딘과 함께 원래 있던 1층 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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