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7)
마법을 품다 (7)
3기 아이들을 숙소로 돌려보내고, 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위원장을 포함해서 모두 6명. 특수군 양성소를 이끌어 가는 핵심 인물들이었다.
“한고비 넘겼군요.”
5서클 마법사 크세르 위원이 낮게 읊조렸다.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노예 인장을 다 찍었으니, 이제 본격적인 교육을 진행하겠군요.”
“아니요. 본격적인 교육은 몇 달 후고. 우선 글자부터 가르쳐야죠.”
특수군 양성소는 학교가 아니라 군대였다. 아이들의 진도에 맞춰서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친절한 선생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기본을 가르치고, 시간을 준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혼자서 공부하고 훈련해야 했다.
‘혼자’ 공부하기 위해서는 대륙 공용어가 필수였다.
글을 모르면 혼자 책을 읽을 수 없다.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글로 적어서 보고하지도 못한다.
“이번에도 2개월씩이죠?”
“그래야죠. 뭐, 못 따라오는 아이들은 알아서 공부하면 되는 거고.”
“저녁 시간이 바쁘겠군요.”
공용어를 익히기 위해 훈련생들에게 주는 시간은 2개월. 그사이에 훈련생들은 알아서 대륙 공용어를 익혀야 한다.
못 익히면? 저녁 시간에 알아서 공부해야 했다.
낮에 다른 수업을 듣고, 저녁에 나머지 공부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휴식이 없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아이들 사이에 ‘부족한 놈’으로 낙인찍히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뭐, 그거야 알아서 하겠죠. 앞 기수에서도 알아서 했으니.”
“생각 같아서는 외부에서 선생이라도 들이고 싶은데.”
“안 될 말이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이곳은 리아즈 왕국의 ‘특수군 양성소’. 특수라는 뜻은 여러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곳에서는 ‘비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모를까, 그전까지 특수군 양성소는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다.
오직 왕실과 이곳에 있는 소수의 인원만 특수군 양성소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 했다. 리아즈 왕국의 성격 때문이다.
리아즈 왕국은 대륙 서부에서 계급주의가 가장 강한 나라였다. 귀족들은 노예와 평민, 귀족과 왕족의 역할을 명확히 나눠 놨다.
노예가 평민의 자리를 침범하는 건 물론이고, 평민이 귀족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노예가 마법사가 된다? 평민이 기사가 된다? 귀족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물론 전쟁이 벌어지면 억지로 숨길 필요가 없었다. 당장 싸울 병력조차 부족한 상황이면, 계급주의 따위는 무시해도 되었다.
“후우, 답답해서 그럽니다. 답답해서.”
“우리가 다 하려고 할 필요 없습니다. 적절한 아이들을 골랐다면 알아서 성장할 겁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성과가 나와야 할 텐데.”
“나올 겁니다. 첫 기수에도 나왔고, 두 번째 기수에서도 서너 명은 눈이 가더군요.”
1기 훈련생 중에서는 7번과 8번의 성장이 빨랐다. 둘 다 벌써 2데나급의 검사였다. 앞으로 몇 년 더 노력하면 3데나급으로 성장할 확률이 높았다.
“정식 기사가 될지 어떨지는 지나 봐야 알죠.”
“하지만 가능성이 큽니다. 본격적으로 검을 익힌 지 고작 1년 반이에요. 그런데 지금 수준에 이르렀죠.”
“뭐, 저도 가능성이 크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마음을 놓지 말자는 뜻이죠.”
데나는 마법의 서클처럼 경지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도입한 등급 체계였다. 오직 서대륙에서만 사용하는 방식으로, 경지의 구분 역시 마법과 비슷했다.
3서클 마법사부터 정식 마법사로 불리듯, 3데나급의 검사를 정식 기사로 분류했다. 또 5서클 마법사부터 ‘상급 마법사’이듯, 5데나급의 검사 역시 ‘상급 기사’였다. 7서클 마법사를 ‘대마법사’라고 부르는데, 검사 역시 7데나급이 되면 ‘마스터’라고 칭했다.
“10명 중 1명만 제대로 성장해 줘도 좋을 텐데 말이죠.”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도요.”
아이들을 사 온 금액이나 교육비가 만만찮은 건 사실이었다. 고작 22명만 뽑았던 1기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병사 수백 명을 키울 수 있는 금액이 투입되었다.
하지만 병사 수백보다 정식 기사 2명의 가치가 훨씬 컸다.
각 기수 10명당 정식 기사 수준이 단 1명만 나와도 들인 돈의 가치는 충분히 한 셈이었다.
“3기에선 5명은 나와 줘야겠군요.”
“하하, 희망 사항이긴 합니다만.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마법사 쪽이 없어요. 이거야, 원.”
“아! 그건 좀 문제가 있죠.”
1기인 22명 중에서 마법을 진로로 택한 사람은 고작 2명. 한데 둘 다 아직 1서클 마법사였다.
게다가 성장 속도도 느려서, 앞으로 10년이 흘러도 정식 마법사가 되긴 힘들 것 같았다.
2기는 더 심각했다. 2기 34명 중에서 마법을 전공하는 훈련생이 고작 2명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접한 지 몇 달 안 됐기 때문에 성장 속도를 지금 속단하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반년은 더 지나야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다.
“그래도 2기에는 정령사가 있잖습니까?”
“그래 봐야 1명입니다. 딸랑 1명. 게다가 재능도 한심한 수준이에요. 하급 정령하고 간신히 계약한 수준이니. 뭐, 기대감도 안 듭니다.”
“1명이라도 있는 게 어딥니까? 환수 소환사는 아예 없잖아요.”
“그쪽이야, 뭐. 애초에 없을 줄 알았으니까요.”
특수군 양성소에서 교육을 위해 준비한 교육 과정은 검사, 마법사, 정령사, 환수 소환사. 이렇게 4분야였다.
하지만 위원들과 교관 중에서 환수 소환사가 나올 거라고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도 원체 희귀하기 때문이다.
잉그렘 제국과 13국 연합, 연합에 포함되지 않은 탈레흐 왕국을 통틀어도 환수 소환사의 숫자는 채 30명이 안 되었다. 인구 비율로 보면 1,000만 명 중 1명꼴이었다.
“환수. 구경이라도 해 보고 싶네.”
“하하, 본국에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위원장님은 아까부터 조용하신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닐세.”
위원들의 대표인 크레이트 위원장은 6서클 마법사. 여기 모인 이들 중에서 가장 높은 경지였다.
특수군 양성소로 오기 전에는 왕국의 궁정 마법사이자 마법 병단의 단장이었던 인물로, 왕국 내에서의 위상도 가장 높았다.
“그냥 말씀해 주시죠. 무슨 일입니까?”
“하아, 아무것도 아닐세. 따로 조사하고 있는 게 있는데, 잘 안 풀려서 그러네.”
“위원장님. 뭘 조사하는지라도 말씀해 주시죠. 혹시 압니까? 우리가 알고 있을지.”
“흐음.”
크레이트 위원장이 침음을 흘리고 위원들을 살폈다. 아무래도 말을 안 해 주면 물러나지 않을 분위기였다.
“슬라본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네.”
“슬라본이요? 슬라본…… 그게 뭐더라?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슬라본? 그거 뒷골목에서 도는 음모론 같은 거 아닙니까? 술집에서 음유 시인들이 떠들던 거. 맞죠?”
상급 기사인 켈라인이 ‘슬라본’에 대해 기억해 냈다. 주로 술자리에서 들었는데, 엄청나게 황당한 내용이었다.
“맞네. 슬라본. 저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슬라본하고 그 뭐였더라. 무슨 노바? 그런 것도 있었는데.”
“슬라본, 발리스 노바. 맞죠? 고대를 찾는 녀석들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맞네. 바로 그 슬라본일세.”
아주 오래된 소문이었다. 몇백 년 전부터 음지에서 떠돌던 소문인데, 누구의 입에서 처음 나왔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둘 다 고대의 흔적을 쫓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슬라본과 발리스 노바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소문이 도는 동네마다 워낙 정보가 제각각이었다.
수백만 명이 모인 거대 조직이다.
7서클 마법사와 7데나 검사가 널려 있다.
대륙의 여러 왕실을 뒤에서 조종한다.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많아서 진짜라고 믿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슬라본이라는 게 실존하는 조직입니까?”
“모르네. 그저 말년에 호기심이 생겨서 좀 조사해 보고 있었을 뿐. 자네들까지 신경 쓸 내용은 아니라네.”
“하하, 그래도 재미는 있겠습니다. 그 조직 중에 마수림하고 관련된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알브레이트 의원이 실실 웃으며 말을 받았다.
떠도는 소문 중에는 슬라본이 마수림의 마수들을 조종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고대에는 수억이 넘는 마수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마법이 있었는데, 슬라본이라는 조직이 그 마법을 물려받았다는 말이었다.
“자, 자. 그냥 잊게. 1기 훈련생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 보세. 1기의 훈련생들 시설이…….”
* * *
로딘을 포함한 4인방이 숙소를 나왔다. 헤들러와 랜트는 연신 하품을 해 댔고, 코리도 눈을 반쯤 감은 채 시체처럼 움직였다.
“대체 몇 시에 잔 거야?”
“몰라. 기억 안 나.”
로딘의 물음에 헤들러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젯밤 로딘을 제외한 셋은 밤새도록 떠들었다.
특별한 주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신변잡기와 양성소에서 보낸 시간을 반복해서 떠들다가,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로딘. 넌 눈만 붙이면 자더라.”
“내가 좀 그렇지.”
로딘은 어디서든 자려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잤다. 잠이 드는 데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또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려고 마음먹으면 오차가 거의 없이 원하는 시간에 일어났다. 억지로 더 자겠다고 보챈 적도 많지 않았다.
“저기다.”
먼저 이동하던 3기 아이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교실이었다.
4인방은 둘씩 짝지어 중간쯤에 앉았다. 앞에는 교탁이 있고, 그 위에는 숙소에 있는 것과 같은 엄청난 두께의 책이 올려져 있었다.
“저거 그거지? 단어 사전.”
“맞네. 두께도 같고.”
“하아, 싫다.”
헤들러와 코리는 오는 내내 표정이 밝았다. 수업에 대한 걱정을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오직 랜트만 표정이 안 좋았다.
“코리. 대륙 공용어 공부한 적 있어?”
“아니.”
“걱정 안 돼?”
“난 예전부터 글을 배우고 싶었다고. 기회가 왔는데, 오히려 고맙지.”
헤들러는 이미 대륙 공용어를 알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면, 코리는 글자를 배운다는 기대감에 설레고 있었다.
반면 랜트는 아침 내내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게 표정에서 보였다.
“싫다. 싫어. 대체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건데.”
“힘내. 설마 저걸 다 외우라고 시키겠어? 몇 개만 공부하면 될 거야.”
“후우.”
랜트의 한숨에 땅이 꺼질 지경이었다. 헤들러가 계속 응원했는데도 표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로딘. 넌 괜찮아?”
“난 너하고 비슷해.”
“공용어 배우고 싶었구나.”
“응,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거든.”
로딘은 예전부터 지식에 관한 갈증을 느껴 왔었다.
그건 비단 글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공용어나 수학, 농업, 사냥 등 다방면에 걸친 관심이었다.
하지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지식을 나누는 행위에 거부감을 느끼는 동네의 분위기가 더 문제였다.
“야! 잡아!”
“흥! 잡힐까 보냐!”
“안 서? 너 가만 안 둬!”
주변 아이들 몇 명이 장난을 치며 사방을 뛰어다녔다. 자기 동네에서 지내던 습관을 전혀 고치지 못한 모습이었다.
‘저래도 괜찮나?’
드르륵!
로딘의 의문은 문을 강하게 열고 등장한 교관에 의해 풀렸다.
“64번, 67번, 79번, 92번, 95번, 96번, 100번, 101번. 뒤로!”
“어? 어?”
“왜, 왜요?”
상황 파악을 못 한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지, 아직도 태연한 얼굴이었다.
“조교! 끌고 나가.”
열린 문으로 조교들이 우르르 등장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 있던 8명의 아이들을 강제로 일으킨 후, 교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왜? 왜 이래요?”
“잘, 잘못했어요!”
“안 그럴게요.”
“안 떠들게요.”
뒤늦게 아이들이 빌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교관은 아이들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조교들도 표정 없이 아이들을 밖으로 내몰기만 했다.
교실 밖으로 아이들이 사라진 후, 문이 닫혔다. 그리고 들린 목소리.
“엎드려뻗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퍼억! 퍼억!
“으아앙! 살려 주세요! 앞으로 안 떠들게요.”
아이들의 애원하는 소리가 점점 작게 들리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조교들이 아이들을 먼 곳으로 끌고 간 것이다.
‘후우, 조심해야겠다.’
호되게 당할 아이들이 불쌍하지만, 로딘은 자신이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안도했다. 노예 인장까지 찍은 마당에 맞기까지 하면 정말 비참할 것 같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