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70)
마법을 품다 (70)
남은 일은 신분 보증.
브론 일행의 신분이 확실해서, 로딘의 신분 보증 문제도 쉽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용병패를 바로 발급받지는 못했다. 용병패 발급을 위해서는 3일을 기다려야 했다.
용병패는 신분패의 역할도 하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를 위해 용병패에는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 외모적 특성, 직업도 기재된다.
로딘의 경우 직업은 마법사였다.
“이거 어때?”
로딘이 심사를 받고 용병패를 신청하는 동안 말론이 일행에게 최적화된 의뢰를 찾아냈다. 이곳 본티스에서 13국 연합 중 동쪽 끝에 있는 아스란 왕국까지 가는 호위 의뢰였다.
“1년짜리 의뢰네.”
“우리 목적지하고 가깝잖아.”
브론 일행의 목적지는 아스란 왕국의 남쪽 항구 도시 엘페소였다. 의뢰의 목적지는 아스란 왕국의 동쪽 끝인 포스락 요새.
같은 나라인 만큼 두 장소는 그리 멀지 않았다.
“포스락 요새에서 엘페소까지 10일 잡고. 그러면 1년하고 10일이 걸리는 거네. 우리끼리 엘페소까지 가면 얼마나 걸릴까?”
“반년은 넘지. 한 7개월? 8개월? 그 정도 아닐까?”
“4개월에서 5개월 정도 더 걸리지만,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거잖아.”
“아끼는 수준이 아니지. 하루에 1골드잖아. 엘리스는 2골드고.”
의뢰서에는 브론, 베이커, 말론 같은 2데나급 검사의 의뢰비로 하루 1골드를 책정했다. 그들의 실력에 걸맞은 의뢰비는 아니었다.
중앙 대륙에서 브론 일행은 개인당 하루에 1골드 20실버에서 많을 때는 1골드 50실버까지 받았다. 서대륙에서 용병 의뢰가 귀하다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상당한 헐값이었다.
다행이랄까. 특수 직군은 ‘2골드’라는 항목이 적혀 있었다.
특수 직군은 마법사, 정령사, 선행 정찰이 가능한 레인저 같은 이들을 뜻했다.
“몇 달이라……,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괜찮네. 어차피 우린 용병이니까.”
“맞아. 의뢰를 받아서 해결하는 게 우리 일이잖아.”
“오랜만에 우리한테 맞는 일이지.”
모두가 의뢰에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로딘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로딘은 특별한 목적지가 없었다. 용병패를 받기 위해 본티스로 왔지만 이다음은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분위기를 보면 모두가 찬성하는 것 같네. 그런데 출발은 언제야?”
“5일 후.”
“로딘은 어때? 같이 갈 생각 있어?”
로딘의 목적지는 원래 본티스. 이다음 계획이 없다는 걸 브론 일행도 알고 있었다.
“아직 모르겠어요. 일단 생각 좀 해 볼게요.”
로딘은 일단 보류했다.
브론 일행과 함께하는 건 즐거웠다. 계속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좀 지친 것도 사실이었다. 양성소에서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냈고 양성소를 나온 후에는 끊임없이 이동하느라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이젠 좀 쉬고 싶었다. 적당히 조용한 곳에 정착해서, 익힌 마법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또 죽은 상단주로부터 얻은 물건들을 확인할 시간도 필요했다.
“그래. 기왕이면 함께했으면 하지만 강요하진 않을게. 말론, 베이커, 엘리스. 우린 일단 의뢰 수락부터 하자.”
“응.”
“가자. 의뢰받으러.”
브론 일행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의뢰를 신청하고, 숙소를 적어 냈다.
나중에 의뢰인이 찾아와서 실력이나 장비를 확인한 후, 마음에 들면 용병 길드에 고용 계약 신청을 하게 된다.
그러면 용병 길드에서 용병들과 의뢰인 사이의 계약을 중개해서 정식 의뢰가 체결되는 식이다.
용병 길드를 나와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샀고, 처분할 건 처분했다.
로딘은 본티스를 돌아다니다가 정령석과 환수석을 하나씩 샀다.
당장 정령석과 환수석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운디네와 지토 모두 아직 성장기가 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막상 필요할 때 없으면 운디네와 지토의 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었다. 정령석과 환수석이 큰 것도 아니니, 미리 사서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 * *
외부 볼일을 끝내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로딘은 이번에도 숙박비를 내고 혼자서 방을 썼다.
“흐음.”
로딘은 배낭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서 살피고 있었다. 공간 이동 후, 죽은 상단주가 건네준 상자였다.
‘이걸 열어도 되나?’
장시간 파고든 끝에 여는 방법을 알아냈다. 상자에 숨겨져 있는 마법도 대부분 파악한 상태였다.
‘정말 오래된 거 같은데.’
이 상자에는 시간을 기록하는 마법이 새겨져 있었다.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듯, 상자를 밀봉한 그 순간부터 일정한 주기로 상자에 시간의 흐름을 기록해 놓았다.
기록된 시간은 999회.
적어도 999년 동안은 이 상자가 열린 적이 없었다. 상자에 새길 수 있는 최대의 횟수가 999회일 뿐, 실제로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됐던 물건이 분명했다.
‘담긴 마법이나 수준이 너무 높아.’
이 상자에 담긴 마법은 모두 6개였다. 그중 4개는 확실하게 어떤 마법인지 파악했지만, 2개는 ‘이거 같은데?’ 수준의 두루뭉술한 짐작이었다.
‘전격 마법은 확실하고.’
강제로 열면 상자를 쥔 사람을 감전시키는 마법이었다. 마법에 새겨진 룬어의 복잡도를 봤을 때, 로딘이 만든 블랙 썬더 볼트 수준이었다.
블랙 썬더 볼트는 엘로브 위원을 죽일 때 사용한 마법이었다. 5서클 마법이지만 개량을 통해 위력만큼은 6서클 수준이었다.
‘강제로 열면 어지간하면 죽어.’
상자에 담긴 마법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상자의 내구성을 올리는 강화 마법.
이건 현재도 널리 쓰이는 마법진이었다. 특히나 무기와 방어구에 많이 사용되는데, 로딘도 당연히 이 마법진을 알고 있었다.
‘조금 다르지만 그건 위력의 차이야.’
현재 알려진 마법진과 상자에 새겨진 마법진. 사용된 룬어가 조금 다른데 효과 자체는 같았다. 다만 더 단단하냐 덜 단단하냐의 차이일 뿐이다.
‘마나 흡수 마법진. 이건 익숙해.’
로딘이 연공 전에 인쇄 마법으로 새기는 마나 집적 마법진과 비슷한 마법도 들어 있었다. 몇 곳의 룬어만 다른데 이 역시 위력의 차이였다.
‘어떤 게 더 좋은지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어.’
시간을 기록하고 강제로 여는 사람을 번개 마법으로 공격한다. 거기에 강화 마법과 마나 흡수 마법진도 들어 있었다.
이렇게 4가지 마법진은 로딘도 파악했고 효과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긴가민가한 마법은 2가지.
충격을 흡수하는 마법진과 상태 보존 마법이었다.
로딘은 충격 흡수 마법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주로 고급 마차 제작에 쓰이는데 마법진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사용된 룬어가 대체로 낯설었다. 마법진에 사용된 룬어 중에서 절반 이상은 처음 보는 룬어였다.
‘트라시아 마탑의 주력 상품이지.’
충격 흡수 마법이 새겨진 마차는 외부의 진동이나 충격을 흡수해 내부는 안락하게 유지한다. 엄청나게 고가의 마차로, 주로 고위 귀족이나 돈 많은 상인들이 탄다.
트라시아 마탑에서만 독점해서 제작하고 판매하는데, 마차 판매만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상태 보존 마법. 이게 사실이면 충격인데.’
상태를 보존한다는 건 안에 든 물건이 시간의 흐름을 비켜 간다는 의미였다.
시간을 다루는 마법이라니. 가능한 건지부터 의심스러운 마법이었다.
‘대마법사는 가능할까?’
아는 룬어를 통해 효과를 대강 짐작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시간과 관계된 마법이 있다는 내용은 그 어떤 책에도 나온 적이 없었다.
“후우우.”
6개의 마법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상자에서 손을 뗐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강화 마법을 제외한 5개의 마법이 모두 고위 마법이었다. 이런 대단한 마법을 담고 있는 상자가 눈앞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대체 상자를 이루는 재질은 뭘까?
제작할 때 어느 정도의 마나석을 사용했을까?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가 만든 걸까?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이 상자와 관련된 전부를 배우고 싶었다.
‘열어도 되려나?’
아직도 상자를 열어 본 적이 없었다. 상자가 품고 있는 마법이 너무 대단해서 섣부르게 손을 대기 무서웠다.
‘열긴 열어야 하는데.’
상자를 여는 법은 어젯밤에 알아냈다. 그리고 하루 동안 꼬박 고민했다.
결론은 일단 열자는 것.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무섭지만, 마냥 회피하는 건 답이 아니었다.
“후후, 준비는 좀 해야겠지.”
여관방의 벽에 충격을 막는 실드와 배리어를 사용했다. 주변을 빙 둘러서,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라도 외부로 영향이 가지 않도록 조치했다.
또 펼쳐 놓은 실드와 배리어를 따라서 사일런트 마법도 사용했다.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발음이나 굉음이 밖으로 전해지지 않도록 하는 마법이었다.
“내 몸에도.”
몸에도 배리어와 실드를 펼쳤다. 만일을 생각해 4중으로 마법을 펼친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까지 해서 열어야 하나?”
조그마한 상자 하나 열면서 너무 유난을 떠는 느낌이었다. 막상 열었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면 괜스레 민망할 것 같았다.
“후우, 나는 겁쟁이니까.”
상자를 양손으로 잡고 마력을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그리고 마력을 가늘게 뽑아내 미리 파악한 대로 움직였다.
상자의 내부에 새겨진 마법진은 많았고 엄청나게 복잡했다. 마법진과 마법진 사이의 틈이 정말 실 한 가닥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로딘은 마법진 사이사이로 실보다 더 가늘게 뽑아낸 마력을 움직였다. 그리고 미리 파악한 잠금장치 부분으로 마력을 보냈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제 방법을 알아내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도해 봤다. 머릿속으로는 수십 번 상자를 열었고 그보다 더 많이 실패했다.
‘하자.’
마력으로 복잡한 패턴을 그렸다. 상자의 ‘열림’을 명령하는 마법진을 가동하기 위해 룬어를 작고 세밀하게 그려나갔다.
‘됐다.’
몇 분 동안 진땀을 흘린 끝에 상자를 열었다.
‘철컥’ 같은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로딘은 상자가 열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후우우. 다행히 터지진 않았구나.”
원래 이 상자를 여는 특별한 시동어가 있었다. 내부의 마법진을 보면 시동어가 들렸을 때 어떤 핏줄이나 마력의 패턴에 반응하도록 장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로딘은 그 시동어가 뭔지도 몰랐고 특정한 핏줄도 아니었다. 또 가진 마력의 패턴이 이 상자가 원하는 마력 패턴과 일치할 확률도 낮았다.
그래서 마력을 직접 상자에 주입해서, 마법진의 ‘열림’ 마법이 가동되도록 했다.
정확한 시동어가 들렸고 그 당사자가 상자가 원하는 사람인 것처럼 속인 것이다.
“할 만하네.”
괜히 허세를 부려 봤다. 또 하라고 해도 진땀을 흘릴 테지만, 그냥 기분을 내고 싶었다.
“그럼, 뭐가 들어 있나?”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때 상자에서 2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팍하고 튀어나왔다.
“음? 으음.”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랐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상대는 진짜 사람이 아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환영이었다.
―프아하니 사프라오, 크헤이로 치치렐 파오스.
환영은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뭐라고 말했다. 목소리는 또렷하고 명료했으며 몸짓은 큼직했다.
하지만 의미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환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대륙 공용어가 아니었다. 로딘이 아는 그 어떤 언어와도 달랐다.
“지금 사용되는 언어는 아닌 것 같은데.”
로딘은 열심히 떠들고 있는 환영을 빤히 쳐다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계속 듣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뭐라고 하는지 궁금했는데 아쉽……, 어?”
무심코 환영을 봤다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환영의 손짓에 그림이 나타났다. 그림은 과일이었고, 환영의 입에서는 반복된 발음이 이어졌다.
“가르치는 거야. 확실해.”
환영은 지금 교육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 누구인지, 가르치는 언어가 어떤 시대의 언어인지는 몰랐다.
분명한 건 교육을 위해 어마어마한 실력의 마법사가 공들여서 환영을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아! 내가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교육을 받을 수는 있다. 다만 교육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매번 동작의 의미를 유추해야 했다.
말을 알고 교육을 받는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느릴 게 분명했다.
말을 아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과 말조차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건 난이도가 달랐다.
하물며 교육을 진행하는 환영은 친절한 선생이 아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더 많은 자료를 준비하고 더 세심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입력된 교육 방식을 그대로 반복할 뿐이다.
그걸 보고 이해하는 건 순전히 학생의 몫이었다.
“흐음.”
일단 환영에서 시선을 돌리고, 상자 내부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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