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73)
마법을 품다 (73)
객실로 올라온 후, 로딘은 식사 중에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요새 도시 프랑드르가 무너졌다고 말한 사람은 상인이 아니라 용병이었다.
‘용병이 마법 통신으로 소식을 들었을 리는 없고.’
직접 프랑드르가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내려왔거나 아니면 다른 용병들에게 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실제로 프랑드르가 무너진 지는 꽤 됐다고 봐야 했다.
‘그 용병이 가벼운 차림으로 이동했다면 여기까지 대략 4일이나 5일 걸렸겠지. 그렇다면 5일이나 6일 전에 무너졌을 거야.’
제국 입장에서 프랑드르는 그리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요새 도시는 돈 많은 상인이나 부유한 귀족을 보기 힘든 곳이었다.
‘하루 만에 죽일 놈들만 죽이고 다시 남하하겠지.’
프랑드르와 다르게 본티스는 베로스와 왕국과 교역하는 상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돈 많은 상인도 많고, 작위가 높은 귀족의 숫자도 상당했다.
‘본티스는 제국 입장에서 탐나는 도시야.’
전쟁은 나라 살림을 쪼들리게 만든다. 아무리 잉그렘 제국이 부유해도 긴 전쟁으로 재정이 피폐해졌을 터.
그런 상황에서 부유한 도시는 놓칠 수 없는 먹잇감이었다. 이곳을 치기 위해 프랑드르는 그저 거쳐 가는 작은 장애물에 불과했다.
‘제국군은 곧 들이닥칠 거야. 빠르면 사흘, 아무리 늦어도 닷새 안에는 이곳으로 온다.’
여유가 많지 않았다. 제국군과 마주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로딘은 바로 짐을 챙기고 바깥을 확인했다. 서서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밤에 움직이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없지.”
로딘은 바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말해서 마구간의 말을 가져왔다.
“손님, 어디 가십니까?”
“예, 약속이 있어서 잠깐.”
“조심하십시오. 제국군이 벌써 근처로 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잉그렘 제국에게 본티스의 부유함은 가뭄의 단비였다. 본티스만 확실하게 털 수 있다면, 슬슬 쪼들리는 살림이 한결 나아질 터.
그래서 프랑드르를 무너뜨리자마자 기사단을 보냈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자들은 그냥 보내더라도, 마차를 끌고 있는 부자들만큼은 잡아 놓기 위해서였다.
“그래요? 벌써요?”
“예. 벌써 몇 명은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이런. 사장님은 어디 안 가십니까?”
“여기서 태어나서 평생 살았는데,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잉그렘 제국군이 그래도 평민들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니, 믿어 봐야죠.”
이건 잉그렘 제국이 일부러 퍼트린 소문이었다. 돈 많은 평민들이 미리 도망치는 걸 막기 위해서인데 속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말해 주는 건 의미가 없겠지.’
어차피 여관 주인은 이곳에서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기반이 전부 이곳에 있었고 떠날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조심하세요.”
“예. 손님.”
두 달 이상 쉰 탓일까. 마구간에 묶어 둔 말의 몸집이 너무 두꺼웠다. 얼마나 살이 쪘는지 움직이는 게 둔해 보였다.
말의 등에 올라탔다. 갑작스러운 무게에 녀석이 휘청거렸다.
“어휴, 평소에 좀 데리고 탔어야 하는데.”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새로운 공부에 흠뻑 빠져서 운동도 건너뛰고, 말도 계속 방치했다. 모두 자기 잘못이었다.
로딘은 먼저 말을 몰아 잡화점으로 갔다. 포션을 팔아 치울 때가 됐다.
프랑드르를 무너뜨린 잉그렘 제국군이 이곳으로 올 건 자명한 일. 전쟁을 앞둔 지금이 포션값이 가장 높을 때였다.
로딘처럼 도시를 떠날 사람도 있지만, 여관 주인처럼 떠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들은 원하지 않더라도 싸워야 했다.
포션은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는 사람들의 생명수였다.
“역시 올랐구나.”
잡화점 앞에는 ‘상처 치유 포션 45골드 무한 매입’이라는 글자와 함께 ‘협상 가능’이라는 글자도 추가로 적혀 있었다. 어지간하면 사겠다는 뜻이었다.
“포션 팔러 왔습니다.”
“예. 45골드입니다.”
“개수가 좀 많습니다.”
로딘은 굳이 협상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을 사지로 모는 듯해서 내키지 않았다.
“얼마나……?”
“400갭니다.”
“예? 400개요? 진짭니까?”
“예. 400개 있습니다.”
로딘은 배낭을 열어서 안에 있는 포션을 슬쩍 보여 줬다. 그리고 하나를 꺼내, 잡화점 주인에게 직접 건넸다. 포션 효과를 확인하는 절차를 위해서였다.
“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확인하겠습니다. 그리고 확인은 무작위로 10개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러죠.”
포션 효과를 확인한다고 1병을 다 쓰진 않는다. 바늘로 찔러서 딱 1방울만 묻히고, 그걸 특별한 동판에 떨어뜨리면 포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잡화점 주인은 가방에서 무작위로 9개를 더 꺼냈다. 로딘이 건넨 것까지 10병을 쥐고, 가게 안에서 포션 효과를 확인했다.
“오, 품질이 좋습니다. 마샬 마탑에서 만든 건가요?”
“사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돈 좀 가져오겠습니다. 워낙에 큰돈이라서.”
400개의 포션을 45골드에 팔기로 했다. 모두 18,000골드였다.
잡화점 주인은 상점에 붙은 집의 지하로 들어가서 직접 돈을 꺼내 왔다. 잉그렘 제국의 건국 황제가 새겨진 금화였다.
“직접 세어 보시죠.”
“그러죠.”
금화만 18,000개. 포션 400개보다 훨씬 부피가 컸고 무게도 무거웠다.
로딘은 18,000개의 금화를 모두 세어서 배낭에 쏟아 넣었다. 포션이 있을 때보다 족히 3배는 무거워졌다.
“감사합니다. 손님.”
“예. 그럼, 이만.”
로딘은 말을 천천히 몰아 도시를 빠져나갔다. 다행히 성문이 닫히기 전에 본티스를 나올 수 있었다.
말이 통 속도를 못 냈다. 도시를 나오고 1시간이 지났는데 얼마 벗어나지도 못했다.
“멈춰라!”
그때 눈앞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제국군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부랑자 같은 차림의 도적놈들이었다.
“어이, 말하고 가방 다 놓…….”
“파이어 볼.”
콰앙!
놈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마법부터 날렸다. 가장 유명한 파이어 볼이 협박하던 녀석의 발치에 떨어졌다.
“으악!”
“또 막으면 죽는다.”
작게 읊조린 말에 도적들이 좌우로 확 흩어졌다. 파이어 볼에 간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도적은 거의 기다시피 해서 옆으로 피했다.
“이럇!”
말 허리를 가볍게 찼다. 몸이 좀 풀리는지, 말이 전보다 조금 경쾌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전쟁이 지속되는 한, 어딜 가든 안전하지 않았다. 오늘 같은 야반도주를 또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중앙 대륙으로 넘어가야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브론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 게 나을 뻔했다. 그랬으면 적어도 이동 중에 심심하진 않았을 텐데.
“멜코스 아니면 랑스, 어디로 가는 게 낫지?”
이곳에서 중앙 대륙으로 넘어가려면 배를 타는 게 가장 편했다. 돈은 많이 들지만, 대신 배 안에서 편하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본티스와 가까운 항구 도시는 2곳이었다.
리아즈 왕국의 남단에 있는 항구 도시 멜코스와 베로스 왕국의 남쪽 항구 도시인 랑스.
거리는 베로스 왕국의 랑스가 더 가까웠다. 말을 타고 느긋하게 움직여도 10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또 배를 탔을 때도 항해 거리가 조금은 짧았다. 멜코스에서 출발한 배가 랑스를 포함한 13개국의 항구 도시를 전부 거쳐서 가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신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곳은 국경 근처이긴 하지만 리아즈 왕국 영토였다. 국경을 넘어가려면 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절차가 문제가 아니지. 자칫하면 징집될 수도 있어.”
본래라면 용병을 강제로 징집해 전장으로 밀어 넣진 않을 것이다. 용병 길드가 용병들이 그런 꼴을 당하는 걸 두고 보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당장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뒷일을 걱정할 정신이 어디 있을까. 일단 쓸 수 있는 수단은 다 쓰려고 할 게 분명했다.
“랑스로 가자.”
국경은 그냥 넘기로 했다. 마법을 이용하면 들키지 않고 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 *
잉그렘 제국은 13국 연합을 전체적으로 압박하다가 어느 순간 전력을 서쪽으로 집중했다. 그렇게 집중한 병력으로 13국 연합 중 가장 서쪽에 있던 리아즈 왕국부터 몰아붙였다.
잉그렘 제국의 집중된 힘은 무서웠다. 리아즈 왕국의 전선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무려 5일 전에는 수도마저 제국군의 창칼을 버티지 못하고 함락되었다.
리아즈 왕국 국왕의 선택은 도주였다.
왕도가 포위되기 이틀 전, 왕실의 모든 재산과 왕족, 친위 기사단과 근위 기사단을 데리고 남쪽으로 빠져나갔다.
대외적으로는 수도를 남부의 항구 도시 멜코스로 옮기고 결사 항전하겠다는 것.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멜코스는 중앙 대륙으로 건너갈 수 있는 선박이 출발하는 지점이었다.
리아즈 왕국의 왕실이라면 이곳에 왕실 소유의 배도 몇 척은 있을 터. 언제든지 중앙 대륙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 소식이 베로스 왕국에도 전해졌다.
베로스 왕국과 인접한 패리 왕국은 13국 연합 내에서도 최약체로 꼽히는 나라였다. 게다가 제국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병력을 대부분 잃고 영토를 절반 이상 내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아즈 왕국의 수도를 점령하고 기세가 오른 잉그렘 제국과 싸운다?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게다가 베로스 왕국은 북고남저형의 지형이었다. 북쪽을 점령한 잉그렘 제국이 낮은 지대의 베로스 왕국을 편하게 공격할 수 있었다.
병력은 부족한데 훈련도도 떨어졌다. 거기다 지형적으로도 불리했다.
워낙 궁지에 몰린 탓에 원래는 용병들이라도 강제로 징집하려고 했었다. 숫자라도 불려야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 의견은 무시되었다.
베로스 왕국은 남은 모든 병력과 왕실의 친, 인척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혼자서는 자신 없으니 다른 나라와 힘을 합치려는 생각에서였다.
“어라?”
로딘은 열심히 동쪽으로 말을 달렸다. 해가 뜨고 정오가 조금 지날 즈음 국경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국경이 텅 비어 있었다. 귀족과 상인들은 아무런 검문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오가는 중이었다.
“흐음, 설마 땅을 비우기로 한 건가?”
그다지 좋은 생각으로 보이진 않았다. 국민을 버린 국왕은 설사 전쟁에 승리하더라도 설 자리를 잃는 법이다.
‘차라리 도망칠 생각이라면 이해하지만.’
로딘은 아직 리아즈 왕국의 국왕이 멜코스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베로스 왕국이 국경을 비운 모습을 보고 ‘혹시?’ 하는 생각을 가졌다.
“잘됐네. 귀찮은 일을 덜었어.”
로딘은 국경을 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베로스 왕국으로 들어섰다.
베로스 왕국에 들어선 후에도 로딘은 계속 남쪽으로 이동했다. 국경 근처에 도시가 있었는데도 들르지 않았다.
남쪽으로 말을 달리던 로딘이 고삐를 당겼다. 말이 급정거하며 몸무게가 앞으로 쏠렸다.
로딘은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후 전방을 바라봤다. 30구가 넘는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하아, 도적들인가?”
한 나라의 왕이 병사들을 죄다 끌고 사라졌다. 당연히 치안 공백으로 이어졌고 그 틈에 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눈앞의 처참한 장면은 그 결과물이었다. 공권력을 피해 도시 외곽으로 나온 이들이 피난민들을 약탈하고 죽인 것이다.
“대략 다섯 가족인가?”
노인, 어른, 애 할 것 없이 전부 죽어 있었다. 그것도 옷까지 다 벗겨진 상태였다.
상황에 따라선 옷도 재산이 되는 법. 이곳을 공격한 도적은 옷까지 재산 취급하며 싹 쓸어 갔다.
“아이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
로딘은 어릴 때 노예가 됐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래서 아이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강했다. 또 아이가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 2배로 화가 났다.
이번에는 불합리한 수준이 아니었다. 죄 없이 그 자리에서 잔인하게 죽었다.
“나까지 노리겠군. 차라리 잘됐어.”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최하 수십의 장정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죽여!”
“먼저 죽이면 임자다!”
“쩝.”
놈들은 ‘멈춰.’라든가 ‘가진 걸 내놓고 꺼져.’ 같은 소리도 하지 않았다. 무기 하나씩 쥐고 무작정 달려들고 있었다.
일단 죽이고 빼앗겠다는 태도였다.
“그렇다면 나도 봐줄 이유가 없지.”
가볍게 수인을 맺으면서 룬어를 영창했다. 마법은 놈들이 도착하기 전에 완성되었다.
“쇼크 웨이브.”
부채꼴로 퍼진 5서클의 쇼크 웨이브가 달려오던 장정들을 통째로 덮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