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74)
마법을 품다 (74)
오러나 마력이 있는 대상은 쇼크 웨이브에 맞아도 그저 밀려나는 정도에 불과했다. 십수 미터씩 밀려나긴 해도 그 자체로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러와 마력이 없는 자들은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굳어 버린다. 마비와 비슷하지만, 몸속에선 엄청난 통증을 느낀다.
그런데도 움직일 수 없고 정신조차 잃지 않는다.
“남을 죽이려고 했다면 자기가 죽을 각오도 했겠지.”
로딘은 전방으로 느긋하게 걸어갔다.
대략 50명에 달하는 장정들이 그 자리에 굳은 채 눈만 굴리고 있었다.
“윈드 나이프.”
2서클 마법 바람의 칼날을 만들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쇼크 웨이브로 굳은 놈들의 목을 차근차근 찔렀다.
굳이 많은 힘을 강하게 줄 필요도 없었다. 윈드 나이프는 길이가 짧지만 오러가 없는 사람 정도는 쉽게 벨 정도로 예리했다.
푸욱! 푸욱!
무심하게 칼이 살을 파고드는 소리만 울렸다.
칼에 찔리는 놈들은 죽어 가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혓바닥도 굳어서 그저 공포에 질려 죽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서 정확히 52명의 도적 전부가 죽었다.
로딘은 처참한 광경을 가볍게 둘러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꼴은 그만 보고 싶은데.”
이전까지 로딘이 직접 죽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엘로브 위원은 애초부터 노렸지만, 그 외에는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 역시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놈들을 그냥 두면 자신을 죽이고 또 다른 사람을 노렸을 것이다.
“후우, 이런 일은 찝찝해.”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어디 가서 손이라도 씻고 싶었다.
“운디네.”
끄덕.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운디네는 그 기분 다 안다는 듯이 물을 생성했다. 그리고 로딘의 손을 씻기고, 옷에 묻은 피를 깨끗하게 지웠다.
“후우,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매직 핸드.”
로딘은 도적이 아닌 피해자의 시신만 마법으로 한데 모았다. 그리고 마법으로 땅을 파고 그들을 차근차근 눕혔다.
“다음에는 좋은 세상에 태어나길.”
파낸 흙으로 시신을 덮고 말에 올라탔다. 오늘따라 와 닿는 공기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 * *
다섯 가족의 시신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동하면서 산과 들에 버려진 시신이 계속 보였다.
하루에 한두 번씩 시신을 보고 있자니 새삼 지금이 전쟁 중이구나 싶었다.
“탈영병도 있는 것 같은데.”
3일을 이동하면서 3번의 공격을 더 받았다. 그중에는 꽤 그럴듯한 장비를 갖춘 자들도 있었다.
“설마 여기서까지 이상한 꼴을 당하는 건 아니겠지?”
막 도착한 곳은 도시였다.
도시 이름은 호스탕.
베로스 왕국의 남부에 있는 도시로, 이곳을 지나면 이틀 안에 랑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일단의 무리가 로딘에게 다가왔다. 로딘은 사람 숫자를 대충 세어 보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설마 아니겠지?”
“어이, 이봐!”
20여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주변을 자연스럽게 포위한 놈들은 곧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저 말입니까?”
“여행자인가?”
“그렇습니다만?”
“나는 호스탕의 치안대 대장 알폰이다.”
로딘은 치안대라는 말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상대는 전혀 치안대처럼 안 보였다. 복장도 전혀 통일되어 있지 않았고 자세도 껄렁껄렁했다. 누가 봐도 뒷골목 건달이지, 정식으로 훈련받은 병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요?”
“전쟁으로 요즘 치안이 안 좋아. 도둑도 많이 늘었고, 길 가다가 사람도 막 죽인다니까. 어쩌겠어? 우리 같은 치안대가 나서야지.”
원래 그런 일을 막는 게 치안대가 하는 일 아니었던가? 굳이 도둑이 늘고 사람이 죽은 후에야 나섰다는 말이 어이가 없었다.
“그렇군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맞아. 고생이 많아. 그런데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참 서글프지.”
“안타깝네요.”
“너라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요즘 치안을 유지하다 보니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거든. 너도 이곳의 치안을 생각한다면 돈을 좀 내야 하지 않겠어?”
결국 돈을 달라는 얘기였다. 뒷골목 건달처럼 보이더라니 역시나 하는 짓도 다르지 않았다.
“얼마를 말입니까?”
“많이 바랄 수야 있나? 모두가 힘든 처지인데. 대략 100골드 정도면 충…….”
화르륵!
상대가 말을 마치기 전에 로딘이 먼저 마법을 만들었다. 알아서 꺼지라는 의미가 담긴 행동이었다.
“하아, 지금 협박하는 거야? 꼴에 마법사라고 자존심이라도 세우려고?”
“글쎄요. 어떨까요?”
상대의 반응을 보니, 검사인 모양이다. 대충 2데나급 정도 되지 싶었다.
오러에 관해선 감각이 그리 예민한 편이 아니지만, 풍기는 분위기만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상대는 3데나급 이상의 검사는 절대 아니었다.
“오호, 실력에 자신 있나 봐?”
“해 볼까요?”
로딘은 바로 불덩어리를 주변에 전개했다. 파이어 볼이 아닌 4서클의 파이어 월이 주변을 둘러쌌다.
열기가 중앙을 후끈하게 데우더니 이내 주변으로 조금씩 퍼져 나갔다. 로딘과 남자를 중심으로 십여 미터가 텅 비었다.
열기가 퍼지자, 포위망을 갖췄던 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당당하게 나섰던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그, 그…….”
“어떤 걸 좋아하세요? 굽는 거? 아니면 얼리는 거? 전 번개로 태우는 걸 선호하는데.”
로딘은 불을 만들었다가 얼음을 만들고, 마지막에는 번개까지 소환했다. 바닥을 꿰뚫듯이 때린 번개가 구릿한 냄새를 풍겼다.
“그……, 그게…….”
“꺼지세요.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고. 오늘 너무 많이 죽여서 봐주는 겁니다.”
“예. 예.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하아.”
도시에 들어와서도 이런 상황이라니. 검문을 쉽게 통과했다고 좋아했는데, 귀찮은 일만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랑스로 가기 전에 이 도시에 들른 이유는 물자 보급을 하기 위해서였다.
항구 도시 랑스는 베로스 왕국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였다. 지금쯤이면 사람이 잔뜩 몰렸을 게 뻔했다.
사람이 많아진 만큼 물자도 부족할 수 있다. 아예 살 수 없는 물건도 있을 테고 가격이 몇 배로 뛴 물건도 많을 것이다.
적당한 가격에 충분한 식량을 사 두려면 랑스로 가기 전에 사는 게 나았다.
다행히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도시에는 꽤 많은 상점이 여전히 성업 중이었고 가격도 예상보다 많이 오르진 않았다.
먼저 육포와 건량을 잔뜩 샀다. 혹 배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한 달은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또 배에서 심심할 때 아티팩트 제작도 할 수 있으니, 마나석도 보이는 대로 사들였다. 아직 중급 마나석을 건드릴 때는 아니라서 하급 마나석으로만 100개를 샀다.
“이 정도면 됐군.”
여관에 묵기 위해 들렀다가 바로 발길을 돌렸다.
상점의 물가는 대략 50% 정도 오른 수준이었는데 숙박비는 거의 4배가 올랐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냥 도시를 나왔다.
* * *
도시 호스탕을 나와서 남쪽으로 이동하기를 몇 시간.
로딘은 별생각 없이 걷다가 전방이 시끄럽다는 걸 알아냈다. 싸우는 소리는 아니고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 같았다.
로딘은 크게 개의치 않고 느긋하게 말을 몰았다. 앞을 막으면 혼내 주겠지만 길을 비키면 로딘 역시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다.
“멈춰!”
눈앞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떤 상황인지를 한눈에 파악하자마자 로딘이 말을 박차고 뛰었다.
“멈춰! 콜링 썬더!”
반사적으로 앞에 있던 한 남자의 몸에 마법을 사용했다.
허공에서 떨어진 번개가 칼을 휘두르던 남자의 몸을 순식간에 숯으로 만들었다.
“망할 새끼들이 진짜. 파이어 볼! 콜링 썬더! 윈드 시클!”
연속으로 마법을 사용해, 근처에 있던 놈들을 하나씩 죽여 버렸다.
순식간에 몇 놈을 처리하고, 로딘이 자리에서 멈췄다.
로딘이 멈춘 자리 옆에는 무릎이 꿇린 채 목을 내밀고 있는 2명의 아이가 있었다.
“개자식들이. 인간이길 포기했구나.”
약탈자들은 이번에도 죄 없는 피난민들을 죽였다. 이곳까지 오면서 여러 번 봤던 장면이라 그리 놀랍진 않았다.
문제는 피난민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하필이면 어린아이들이었다.
약탈자들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아이들을 무릎 꿇리고 놀이하듯이 목을 쳤다.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아이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펑펑 울면서도 어른들이 무서워서 반항조차 못 했다.
“하아, 그라운드 베리어.”
땅을 일으켜 일단 살아남은 아이들의 앞에 세웠다. 높게 세워진 흙의 벽이 아이들의 시야를 가렸다.
이 정도면 약탈자들의 죽음을 아이들이 못 보게 가릴 수 있을 것이다.
“보지 마라. 좋은 꼴은 아닐 테니.”
로딘의 등장에 약탈자들은 본능적으로 한곳에 모였다. 도망을 치든 맞서 싸우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있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야! 어이 쓰레기들. 내가 너희들을 죽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 말해 봐.”
“……그……, 당신은 누…… 구요?”
한 명이 용기 있게 말했다. 로딘은 입을 연 자를 힐끗 쳐다보고 이내 다른 놈들을 찬찬히 훑었다.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데.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지?”
“당……,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
“왜? 지나가는 사람은 개입하면 안 돼? 너희들이 애들을 죽이든 말든 그냥 모른 척해야 한다고?”
“그건…….”
로딘은 놈들을 비릿하게 노려보고 작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뭔가 일이 생길 거라는 걸 느낀 놈들이 발악하듯 전보다 더 바짝 붙었다.
“죽이든 말든 너희들 자유라고? 나도 그래. 너희들을 죽일 거야. 내 마음대로. 파이어 스톰.”
“이, 이…… 우리가 더 많아! 공격해!”
똘똘 뭉쳐 있던 놈들이 로딘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마법이 시전되는 게 먼저였다.
약탈자들이 채 두 걸음도 걷기 전, 무리의 정중앙에 5서클 파이어 스톰이 작렬했다. 파이어 스톰의 거친 바람과 뜨거운 열기는 순식간에 약탈자들을 태워 목숨을 앗아 갔다.
“크아악!”
“으악!”
“시끄럽게. 사일런트.”
놈들의 비명을 마법으로 막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됐는지. 나라 꼴이 왜 이 모양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만 답답해졌다.
세상 전부를 구하겠다고 서대륙 전역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만한 능력도 없고 그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런 꼴을 볼 때마다 기분이 더러울 뿐이다.
“후우. 쓰레기는 처리했는데.”
죽어 마땅한 놈들은 다 죽었다. 남은 건 죽음 앞에서 구사일생한 아이들뿐이었다.
“그런데 어쩌지?”
막상 아이들을 구하긴 했는데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버려두고 가면 무조건 죽을 테고 데리고 가자니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나도 겨우 14살인데.’
대략 10살에서 5살 사이의 아이들이었다. 잘 먹고 자란 아이들은 아닐 테니, 한두 살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애가 애를 키우는 건 이상하잖아.’
로딘은 아이들과 상황이 다르긴 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힘들어지는 이들은 아이들이다. 저 아이들을 도시에 데려다 놓으면 백이면 백 이런저런 범죄에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것이다.
반면 로딘은 마법사. 어느 도시에서건 마법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 한 명의 인격체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하아, 일단 저것들부터 처리해야지. 매직 핸드.”
마법의 손을 만들어서 불타 죽은 녀석들을 뒤집었다. 그리고 마력을 좀 더 가늘게 뽑아서, 품에 있던 것들을 죄다 밖으로 꺼냈다.
‘많이도 빼앗았구나.’
죽은 놈들의 품에서 나온 금화가 얼추 200개였다. 누군가의 집안에서 오래오래 가보처럼 내려왔을 물건도 있었다.
특이한 것들을 옆으로 치우고 시체는 멀리 던져 버렸다. 땅에 파묻자니 귀찮고 태우려니 마력이 아까웠다.
“얘들아.”
“예?”
“너희들, 나이가 어떻게 되냐? 한 명씩 말해 볼래?”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코지라도 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다.
“후우, 너희들을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야. 뭐,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 됐고. 너희들은 어쩌고 싶어?”
“예?”
“예? 말고 다른 대답이 듣고 싶은데. 너희 부모님 중 살아 계시는 분?”
“어? 엄마! 엄마!”
갑자기 두 아이가 어딘가로 후다닥 달려갔다. 좀 전까지 그 겁 많던 아이들이 맞나 싶었다.
로딘은 말을 끌고 와서 올라탔다. 그리고 이미 죽어 있던 아이들 일곱의 시신을 매직 핸드로 들었다.
‘하아.’
죽은 아이들의 시신을 들고 후다닥 달려간 아이들을 따라갔다. 다행히 아이들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약탈자들을 불태워 죽인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수십의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약탈자들에게 먼저 당한 아이들의 가족들이었다.
“엄마!”
“아빠! 일어나! 엄마!”
두 아이의 가족은 이미 다 죽었다. 두 아이가 있던 곳에 이미 죽어 있던 다른 아이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로딘은 아무 말 없이 두 아이를 지켜봤다. 중천에 떴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