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76)
마법을 품다 (76)
로딘은 지금의 지도를 지우고 예전의 지도를 다시 눈앞에 펼쳤다. 역시나. 아무리 봐도 현재의 지도와는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어디 지도지?’
두 지형이 붙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굳이 지도를 2개로 나눠서 저장해 뒀을 리 없었다.
“음?”
회중시계를 넣고 아이들을 바라봤다. 여전히 자는 척하고 있지만 깨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 떴으면 일어나거라.”
로딘의 말에도 아이들은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여자아이 쪽이 조금 꼼지락거렸지만, 눈을 뜨진 않았다.
“늦으면 아침은 나 혼자 먹어야겠네.”
“흐아암!”
“아앗!”
그제야 아이들이 막 깬 척하면서 일어났다. 배는 고픈 모양이다.
“먹자.”
“예.”
“잘 먹겠습니다.”
계속 데우고 있던 수프를 그릇에 나눠 줬다.
아이들이 어제는 눈치를 좀 보는 것 같더니 오늘은 수프를 받자마자 맛있게 먹었다.
로딘도 아이들의 식사 속도에 맞춰 아침을 먹었다. 그래서 식사가 끝나는 시간도 비슷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뭐?”
식사를 마치고, 남자아이가 대표로 인사했다. 그런데 단어 선택이 로딘의 신경을 건드렸다.
“어……, 감……사…….”
“아저씨라고? 나보고?”
“아, 아니라잖아.”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자기들끼리 한참 뭐라고 소곤거렸다. 자기들끼리 미리 얘기해 보고 정한 호칭인 듯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줌마.”
“아, 아줌마? 아! 머리야. 나 아줌마 아니거든!”
언성이 높아졌다. 의도한 건 아닌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저절로 소리가 커졌다.
“예? 어…… 그러면.”
“나 14살이다. 겨우 14살이라고!”
“아! 누나. 죄송해요.”
“언니. 미안해요.”
호칭이 왜 이렇게 튀는 건지 모르겠다. 아저씨에서 몇 번 수정했는데 뜬금없이 언니와 누나가 되어 버렸다.
물론 로딘도 자신이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양성소에서는 이 얼굴 때문에 헤들러, 랜트, 코리에게 꽤 오래 시달렸다.
선이 고운 외모에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아서 가는 목소리. 여자로 착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양성소에서 꽤 오래 해 온 운동 덕에 체형은 완전히 남자였다.
랜트 같은 괴물 옆에 있으면 왜소해 보이지만 검술 전공의 다른 녀석들과 함께 있으면 차이가 안 날 정도로 몸이 좋았다.
“하아, 나 남자야.”
어쩔 수 없이 로딘이 쓰고 있던 후드를 완전히 벗었다. 살짝만 보였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다.
“어? 죄송합니다.”
“어? 왜요?”
이 멍청한 되물음은 여자아이였다. 얼굴을 보고도 왜 남자냐고 되묻고 있었다.
“남자니까 남자지.”
“우리 엄마보다 예쁜데.”
“그래도 나는 남자야.”
“이상하다.”
여자아이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로딘은 이런 논쟁을 오래 끌고 싶지 않았다.
“운디네.”
로딘이 운디네를 이용해 식기를 깨끗하게 씻었다.
순식간에 깨끗해진 식기의 모습이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쟤들도 좀 씻기자.”
끄덕!
운디네가 아이들 몸에 물을 뿌렸다. 허공에서 생성된 물은 아이들의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사라졌다.
꾀죄죄한 몰골이었던 아이들의 모습이 바뀌었다. 피부는 뽀송뽀송해졌고, 엉겨 붙었던 머리도 부드럽게 풀렸다.
“자, 이제 결정할 시간이야. 그 전에, 여기 있는 거 보이지?”
“예.”
“뭔지 알아?”
“돈이요.”
로딘이 가리킨 쪽에는 200골드가 넘는 돈이 쌓여 있었다. 어제 약탈자들에게서 빼앗은 돈이었다.
“이건 앞으로 너희들 돈이다.”
“왜요?”
“너희 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거니까. 그건 그렇고 어제 너희들한테 생각해 보라고 했지? 어떻게 할래? 랑스로 데려다 줄까? 아니면 여기서 헤어질래? 원하는 대로 해 줄게.”
로딘은 옆에 있던 돈을 아이들에게 밀어줬다. 가지고 이 자리를 떠나도 된다는 신호였다.
아이들은 돈과 로딘을 연신 번갈아 봤다.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저…….”
“편하게 말해.”
“저희 좀 키워 주시면 안 될까요? 저 청소도 잘해요. 빨래도 하라면 할게요.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게요.”
“저도 다 할게요. 키워 주세요. 저 식사도 조금만 먹을게요. 밤에 안 떠들게요.”
아이들이 내린 결론에 로딘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들에게 가장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하지 않았으면 하는 선택이었다.
‘애가 애를 키워야 한다니.’
속이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버리고 가면 저 아이들은 무조건 어른들에게 해코지당할 테니까.
“너희들 남매야?”
“아니요. 같은 동네에 ……어요.”
뒷말이 잘 안 들렸지만, 의미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두 가족은 같은 동네에 살았고 피난길에도 함께 움직였다. 그래서 약탈자들에게 당할 때도 함께였다.
“나이가 어떻게 되지? 이름은?”
“저는 래리예요. 12살이에요.”
“제 이름은 비앙카입니다. 10살입니다.”
“아이고.”
나이를 들어 보니 기가 찼다. 자신이 14살인데, 저들이 각각 12살, 10살이었다. 고작 2살, 4살 차이인데, 자신은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빨래 열심히 할게요. 청소 열심히 할게요.”
“버리지 마세요. 비앙카는 많이 안 먹을 거예요.”
“버린다고 안 했어. 많이 먹어도 돼. 너희들한테 청소, 빨래하라고 시킬 일 없고.”
“진짜요?”
“많이 먹어도 돼요?”
아이들은 로딘의 말을 허락으로 알아들었다.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바로 출발할 거야. 저 돈은 일단 맡아 둘게. 200골드니까 나중에 너희들 성인이 되면 말해 100골드씩 줄 테니까.”
“안 그래도 되는데요.”
“내가 그러기로 했어. 너희들 말 탈 줄 알아?”
“아, 아니요.”
대답한 래리는 물론이고, 대답이 없던 비앙카도 당연히 말을 탈 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로딘이 아이들을 들어서 말 위에 올렸다. 1명씩 올리고, 로딘은 고삐를 잡았다.
“우리 때문에 걸어가는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 말은 바로 생길 테니까.”
“어떻게요?”
“가 보면 알아.”
고삐를 잡고 10여 분을 이동했다. 나무에 묶인 8필의 말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어?”
“와! 말이다.”
“너희들 가족들 죽인 놈들이 타고 온 말일 거야. 어제 찾았는데, 그냥 여기 뒀어.”
약탈자의 숫자에 비해 말의 숫자가 적었다. 말 1필을 여럿이 공동으로 소유해서였다.
로딘은 말을 다 풀어서, 자기 말에 묶었다. 그리고 1필만 따로 빼서 등에 올라탔다.
“가자. 안 떨어지게 꼭 잡아.”
“달리실 거예요?”
“아니. 매직 핸드.”
로딘은 마법의 손으로 아이들을 잡고 천천히 말을 몰았다.
느릿한 속도였지만, 상하 진동은 꽤 컸다. 래리와 비앙카가 몇 번이나 말 밖으로 튕겨 나가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매직 핸드가 아이들을 잡았다. 아이들은 자기 몸이 붕 뜨기만 하면 호들갑을 떨어댔다.
“으아아, 떨어진다.”
“오빠! 안 떨어져! 신난다!”
여정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이런 소란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이는 저래야지.’
이동은 빠르지 않았다. 낙마를 막으려 속도를 늦춘 탓에 평소 속도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 * *
이동 속도가 느린 탓에 랑스까지 이틀이 걸렸다. 그것도 해가 거의 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삼엄하게 검문하는 병사들과 랑스로 들어가기 위해 선 긴 줄이 보였다. 로딘도 아이들을 데리고 줄의 맨 후미에 섰다.
“오래 걸리네.”
“말에서 내릴까요?”
“그냥 타고 있어.”
“엉덩이 아파요.”
“그럼 내려오고.”
로딘의 도움을 받아 래리와 비앙카가 말에서 내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어린애가 맞긴 하지.’
로딘은 래리와 비앙카를 보면서 종종 ‘난 저 나이에 뭘 했지?’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건 도서관, 내무실, 식당, 수업뿐이었다.
‘세리온 교관은 살아 있으려나?’
양성소를 떠나는 날, 세리온 교관이 말을 타고 양성소를 나가는 모습을 보긴 했다. 북쪽으로 가지만 않았다면 안전하게 빠져나갔을 것이다.
“로딘 오빠. 다시 말에 탈래.”
“그래? 왜?”
“잘 안 보여.”
“그래라.”
매직 핸드로 비앙카를 다시 말 위에 올렸다. 그러자 비앙카가 고개를 위로 쭉 빼고 주변을 구경했다.
“사람이 정말 많아. 래리 오빠, 사람이 정말 정말 많아. 양손으로도 부족해.”
“저……, 형.”
래리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표정만 봐도 뭘 바라는지 알 것 같았다.
“너도 다시 탈래?”
“예. 다른 말에 타면 안 돼요?”
“그래라.”
래리도 비앙카 바로 옆에 있는 말 위에 올렸다.
지금 로딘은 혼자서 말 9필을 관리하고 있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살찌고 게으른 말과 약탈자들이 탔던 8필의 말까지.
혼자 관리하기엔 좀 과하게 많았다.
‘마법사가 아니었으면 힘들었겠지.’
매직 핸드 마법으로 고삐를 4개씩 묶어서 잡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고삐와 로딘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래리와 비앙카가 말 위에서 주변을 신나게 구경하는 사이에 줄은 꾸준하게 줄어들었다.
가끔 앞쪽에서 소란이 생기기도 했지만, 금세 경비들이 출동해 상황을 진정시켰다.
“오늘 못 들어가는 거 아닌가?”
보통의 도시는 해가 떨어지면 성문을 닫는다. 당연히 검문도 해가 떨어지면 중지였다.
지금 이곳 랑스는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이대로면 10분이면 주변이 어두워질 텐데, 아직 앞에 있는 사람만 수십 명이었다.
‘아! 다행이다.’
다행히 앞에 줄 선 사람의 숫자가 순식간에 확 줄어들었다. 상단이 짐꾼과 용병들의 신분을 한 번에 제출하고 검문을 받은 것이다.
상단주가 제출한 목록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랑스 안으로 들어갔다. 줄이 확 줄어들면서 앞에 줄 선 자들의 숫자가 10명 이하가 되었다.
‘오호, 또.’
이번에는 용병대였다. 역시나 5명이 한 번에 검문을 받고, 랑스 안으로 사라졌다.
그때 검문소 안쪽에서 병사들이 나왔다. 그리고 줄을 선 이들을 세더니, 적당한 곳에서 잘랐다.
“여기까지. 이 뒤에 선 분들은 내일 아침에 오십시오.”
“아!”
“젠장.”
“몇 명만 더.”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이 아쉬움을 토했지만, 병사들은 냉정했다. 할 말을 마치더니 어디선가 줄을 가져와서 앞과 뒤를 분리했다.
다행히 로딘은 병사들이 그은 선 바로 앞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오늘 검문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래리하고 비앙카는 신분패가 필요 없겠지?’
규정상 10살부터 정식으로 신분패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규정에 따르면 래리와 비앙카 모두 신분패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 10살에 신분패를 받는 사람은 영주성에 사는 이들뿐이었다.
영주성이 아닌 외지의 마을에 사는 이들은 13~4살은 되어야 신분패를 받는다.
보통 신분패를 발급하는 곳이 영주성에 있기 때문이다.
‘뭐, 여차하면 마법으로 들어가면 되지.’
로딘은 되도록 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당장 문제가 생길 것 같다면, 얼마든지 법을 어길 수 있었다.
로딘은 법에 구애되어 할 일을 못 하는 성격과 거리가 멀었다.
“다음!”
줄은 빠르게 줄어서 어느새 로딘 차례가 되었다.
로딘은 래리와 비앙카를 말에서 내리고 옆에 섰다. 검문을 서던 병사가 손을 내밀기에, 그 위에 신분패를 올렸다.
“오호, 용병이…… 아! 마법사셨습니까?”
“예.”
“용병 마법사는 드문데, 으음. 아이들은 신분패가 없습니까?”
“예. 아직 어려서요.”
마법사임을 알게 된 후부터 병사의 태도가 공손하게 변했다. 랑스에서도 마법사는 대우받는 직업이었다.
“일단 통과시켜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신분패도 최대한 빨리 받으시는 게 좋습니다. 랑스는 어리더라도 신분패가 있으면 작은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거든요. 아! 랑스에는 자체적으로 신분패를 발급하는 기관이 있으니, 한번 찾아가 보십시오. 서쪽 광장으로 가면 보이실 겁니다.”
“그렇군요. 가 보겠습니다. 그런데 말을 팔 만한 곳이 있을까요? 어쩌다 보니 얻게 된 말이라.”
“마법사님에게 덤빈 얼치기 도적놈들이 있었나 보군요. 들어가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마시장이 있습니다. 가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럼.”
검문을 통과했다. 래리와 비앙카를 다시 말 위로 올리고, 랑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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