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77)
마법을 품다 (77)
항구 도시 랑스는 베로스 왕국에서 왕도 다음으로 번화한 도시였다. 중앙 대륙에서 주기적으로 넘어오는 상단과 그들이 푸는 물자는 베로스 왕국 대부분의 상인을 몰려들게 했다.
원래도 거주인이 많고, 유동 인구도 어마어마한 랑스.
최근에 그 숫자가 더 늘어났다. 전쟁을 피해 모인 피난민들과 중앙 대륙으로 망명 혹은 도피하려는 이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었다.
사람이 몰리면 상권도 살아나기 마련이다. 최근 몰린 사람들로 복작거리자, 중앙 대륙의 상단들도 서대륙의 항구 도시들로 수없이 많은 상행을 보냈다.
중앙 대륙의 상단은 13국 연합 남부의 항구 도시에 물자를 풀고, 서대륙의 특산품을 실었다. 그러고도 남는 공간에는 망명 혹은 도피하려는 이들을 큰돈을 받고 태웠다.
중앙 대륙에서 서대륙으로, 서대륙에서 중앙 대륙으로. 수없이 많은 이들이 오가다 보니 랑스는 전쟁 전보다 더 활기차게 변했다.
로딘은 랑스로 들어서자마자 마시장에서 말을 전부 처분했다. 오랫동안 함께해 정이 들었던 살찐 말도 함께 정리했다.
“로딘 오빠. 사람이 많아요.”
“손 놓지 않게 잘 붙어 다녀라. 래리, 네가 비앙카 꼭 챙기고.”
“예. 비앙카는 저한테 맡겨 두세요.”
“아니야! 비앙카가 래리 오빠 챙기는 거야!”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말론과 엘리스 판박이였다. 왠지 10년 후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배편보다는 숙소부터 잡는 게 낫겠지.’
선착장은 정반대 편에 있으니, 일단은 머물 곳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호객하는 사람이 없다? 장사가 다 잘된다는 얘긴데.’
가까이 있는 여관에 들어가서 방을 알아봤다. 역시나 빈방이 없었다.
“골치가 아픈데.”
“형, 어떡하죠?”
“여관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좀 돌아보자.”
빈방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전부 사람들로 들어차 있었다.
방이 있는 여관도 한 곳 있긴 있었는데, 로딘은 바로 몸을 돌려서 나왔다.
1층 식당에 있는 손님들 전부가 거친 건달로 보였다. 혼자라면 모를까, 아이들까지 있는 상황에서 묵기에 적절한 여관은 아니었다.
“전 괜찮아요. 형 뜻대로 하세요.”
“저는 좋아요.”
아이들을 데리고 계속 여관을 돌아다녔다. 신나게 두리번거리던 래리와 비앙카도 슬슬 말수가 줄어들었다.
‘이거 도시 안에서 노숙하는 거 아냐?’
한참을 뒤지다가, 상업 지구 중앙에 있는 큰 여관까지 오게 됐다. 겉에서 보이는 모습만 봐도 지금까지 본 여관보다 몇 배는 컸다.
“형. 여긴 비싸지 않을까요?”
“돈은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다.”
큰 여관이라 그런지 입구의 크기부터 달랐다. 양쪽으로 문을 열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문의 재질도 상당히 고급이었다.
짤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로 옆 카운터에 앉아 있던 20대 여성이 웃는 얼굴로 맞았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묵을 방이 필요해서 찾아왔습니다.”
“어떡하죠? 지금 빈방이 없는데. 죄송합니다, 손님.”
이 여관도 빈방이 없었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도시까지 들어와서 노숙하게 생겼다.
“아예 없는 겁니까?”
“별채는 남았는데.”
“별채는 어떻게 됩니까?”
“하루 800골드부터 2,000골드까지 다양합니다. 당연히 숙박비가 비쌀수록 더 크고, 좋은 곳이랍니다.”
다행히 방이 있었다. 돈은 걱정하지 않았다. 별채면 독립된 공간일 테니, 아이들과 지내기에 최적이었다.
“800골드 별채는 방이 몇 개나 되죠?”
“3개의 방과 공용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장실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고, 고용인을 부르면 목욕도 가능합니다. 물론 식사도 훨씬 고급으로 바뀌고요.”
“좋네요. 거기로 할게요. 일단 사흘을 묵겠습니다.”
로딘은 배낭에 손을 넣어서 금화를 한 뭉치 꺼냈다. 그걸로 부족해서 몇 번을 더 금화를 꺼내 2,400골드를 맞췄다.
“감사합니다, 손님. 숙박비 받았고요, 열쇠는 여기 있습니다. 지미! 손님 별채 8번으로 안내해 드려.”
“예. 손님. 저를 따라오시죠.”
지미라는 이름의 20대 초반 남자의 안내를 받아, 여관 건물 뒤로 돌아갔다. 큰길 좌우로 저택 같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로딘 일행은 여관의 본체와 가장 가까운 건물로 안내받았다.
설명받은 대로 넓은 공용 공간을 중심으로 붙은 방이 3개였다. 방 앞쪽에는 운동을 해도 될 정도로 넓은 공터도 있었다.
“이곳입니다. 손님. 저쪽에 사람 2명 보이시나요?”
“예. 보입니다.”
“저들이 이 별채를 담당하는 직원입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저들에게 시키면 됩니다. 저들이 친절하지 않아 불쾌함을 느끼신다면 언제든지 카운터로 알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지미라는 사람이 떠나갔다. 마지막까지 친절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우와!”
“오빠! 집 댑따 크다. 우리 여기서 사는 거야?”
“아니. 우린 나중에 배 탈 거야. 그때까지 여기 묵자.”
“우리 배 타?”
“응. 중앙 대륙으로 갈 거야.”
로딘은 래리, 비앙카와 함께 별채의 방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흠잡을 곳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여기.”
로딘은 별채를 담당한다는 직원에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직원 1명이 후다닥 달려와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손님.”
“저녁을 못 먹어서요. 지금 식사할 수 있나요?”
“예. 이곳 별채의 손님께서는 아침, 점심, 저녁, 끼니마다 6인분의 식사를 무료로 드실 수 있습니다.”
별채마다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식사의 수가 정해져 있었다. 방이 3개인 이곳의 손님에게는 매 끼니 6인분이 무료였고, 추가로 돈을 지불하면 더 많은 식사를 하는 것도 가능했다.
“좋네요. 6인분 전부 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로딘은 방 중 한 곳에 짐을 풀었다. 그러자 래리와 비앙카도 남는 방을 하나씩 골랐다.
잠깐 쉬고 있으니 곧 식사가 도착했다. 9가지 종류로 된 화려한 요리였다.
“우와!”
“맛있겠다.”
지금까지 먹어 본 어떤 요리보다 화려했다. 손을 대기 미안할 정도였다.
그래도 허기를 달래기 위해 한 입 먹었다. 놀랍도록 맛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먹자.”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 냐암!”
6인분에 달하는 양이지만, 식사는 깔끔하게 끝났다. 래리와 비앙카가 얼추 1인분 정도씩을 먹었고, 로딘이 나머지 음식을 다 먹어 치웠다.
“로딘 오빠! 사랑해.”
“맛있는 거 먹을 때만?”
“헤헤.”
식사를 마치고, 밖에 있던 직원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직접 와서 빈 그릇을 가져갔다. 뒤이어 걸레를 가져와 바닥에 흘린 음식물의 흔적까지 깨끗하게 지웠다.
“돈이 아깝지 않네.”
이 맛, 이 분위기를 놓치기 싫었다. 왠지 앞으로도 좋은 곳에서 비싼 요리만 먹게 될 것 같았다.
“아, 좋다.”
“졸리다.”
“자라. 늦었다.”
빈방이 없어서 꽤 오래 헤맸다. 시간도 꽤 늦어서, 래리와 비앙카는 잘 시간이 한참 지났다.
애들을 방으로 보냈다. 래리는 그나마 제정신이었지만, 비앙카는 이미 눈을 반쯤 감은 상태였다.
로딘은 방으로 들어와, 마나 집적 마법진부터 인쇄했다. 그리고 옆에서 눈을 감고, 프루발 환영 선생의 수업을 들었다.
* * *
랑스는 넓은 곳이었다. 여관에서 배를 타는 선착장까지는 걸어서 2~3시간은 걸린다. 북부 성문에서 선착장까지는 3~4시간 거리였다.
그래서 랑스 곳곳에는 역마 사업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돈을 받고 마차로 사람을 태워 주는 업종인데, 거리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진다.
다음 날, 아침을 먹은 로딘은 래리, 비앙카와 함께 여관 앞에서 마차를 탔다.
마차를 처음 타 본 래리와 비앙카가 뒤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즐거워했다.
로딘도 역마차라는 업종은 신기했다. 혹시나 호위 같은 사람이 마차를 지키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순수하게 사람을 옮겨 주고 돈을 버는 직업이었다.
랑스는 마차가 달릴 수 있는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마차는 흔들림이 거의 없어서 편했고 두 발로 걸어가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로딘 일행이 탄 마차는 30분 만에 배표를 파는 곳에 도착했다. 걸어왔다면 2시간 이상 걸렸을 거리였다.
“실례합니다. 중앙 대륙으로 가려고 하는데요. 언제 배가 있죠?”
“중앙 대륙의 어디로 가시는지? 가장 가까운 테비아 왕국으로 가는 배편은 열흘 후에 있고, 레녹스 왕국으로 가는 배편은 한 달은 기다려야 합니다.”
중앙 대륙 국가들의 국력은 다 고만고만하지만, 레녹스 왕국은 고만고만한 나라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강국이었다.
국토 대부분이 평지라, 농업 생산력이 뛰어났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곡물이 중앙 대륙 곳곳으로 팔려 나갔다.
또 위치가 좋아서 교역의 중심 역할을 하는 도시도 많았다. 마나석과 아티팩트 거래도 활발한 편이고, 그 외의 제조업 분야도 많이 발전한 곳이었다.
“테비아 왕국이면 됩니다. 열흘 후에 출발이라고요?”
“예. 정확히는 11일 후 아침에 출발입니다. 그 전까지는 승선하셔야 하고요.”
“3명입니다. 여기 있는 동생들과 함께 갑니다. 각각 12살, 10살이고요.”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애 엄마가 업고 타는 갓난아기가 아닌 이상은 무조건 1명으로 칩니다.”
워낙에 대형 함선이라 무게는 따지지 않았다. 정해져 있는 선실의 사람 숫자대로, 무조건 뱃값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혹시 우리가 3인실을 이용하게 됩니까?”
“아니요. 우리 배에는 3인실이 없어요. 아마 4인실에서 혼자 온 다른 사람과 함께 방을 쓰게 될 겁니다.”
“4인 가격의 뱃값을 내면 한 자리를 비워 줄 수 있습니까?”
“4인실을 셋이서만 쓰고 싶다는 거죠? 그냥 4인 뱃값을 내면 가능하지요.”
“그럼, 4인 뱃값을 내겠습니다.”
가격 할인은 단 한 푼도 없었지만, 부르는 대로 가격을 지불했다.
돈을 주고 배표의 역할을 하는 서류를 받았다. 모두 4명분의 서류였다.
“중앙 대륙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여기서 테비아 왕국이면 대략 넉 달 좀 더 걸리죠. 바람이 좋으면 조금 더 당겨질 수도 있지요.”
“중앙 대륙으로 바로 가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가는 길에 동쪽에 있는 항구도 차례로 거치지요. 중간중간 항구에 안 들르면 피곤해서 못 버팁니다.”
배표를 파는 사람은 공용어를 쓰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발음이 이곳과 달랐다. 아무래도 중앙 대륙에서 쓰는 말투가 아닌가 싶었다.
“감사합니다. 늦지 않게 오겠습니다.”
“아! 종종 무작위로 신분패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혹 아이들이 신분패가 없으면 받아 두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요?”
“여기만큼 신분패를 편하게 받을 수 있는 곳도 드물지요. 받을 수 있으면 받아 두십시오.”
항구 도시 랑스는 돈만 주면 신분패를 만들어 주는 곳이었다. 밖에서 범죄를 저질렀든, 출생지가 불분명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랑스 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겐 가차 없었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면 바로 신분패를 압수하고, 다시는 재발급해 주지 않았다.
“신분패라…….”
“우리가 검사한다는 게 아닙니다. 중앙 대륙으로 넘어가면 종종 해군이 와서 무작위로 검사를 하지요. 우리도 귀찮지만, 군부와 싸울 수는 없으니까 원하는 대로 들어주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미리 준비해 두겠습니다.”
배표를 샀다. 오늘 해야 할 중요 일과는 끝났다.
“음, 나온 김에 너희들 옷이나 좀 사자.”
“로딘 오빠. 돈 있어요?”
“내 걱정해 주는 거야?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 옷 몇 벌 사 줄 돈은 있으니까. 가자.”
다시 마차를 타고 상업 지구로 돌아갔다.
올 때와 비슷한 시간을 들여 숙박 중인 여관 근처에 내렸다. 주변이 전부 성업 중인 상가였다.
“와! 크다.”
“건물이 커요. 엄청나게 커요.”
“저기보다 우리가 묵은 여관이 더 큰 것 같은데.”
아이들을 데리고 상업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옷 3벌씩, 신발도 3켤레씩 샀다. 속옷은 여유롭게 5벌씩 사서, 여관의 별채로 배달을 요청했다. 노점에서 비앙카에게 어울리는 머리핀과 머리띠도 샀고, 둘이 쓸 만한 모자도 몇 개 샀다.
“로딘 오빠, 배고파.”
“곧 점심시간이네. 저기만 들렀다가 돌아가자.”
로딘은 아이들을 데리고 서점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책 특유의 기분 좋은 냄새가 풍겼다.
“냄새. 이상해.”
“대륙 공용어를 가르치려고 하는데, 단어 사전 있습니까?”
“있지요. 이쪽으로.”
서점 주인이 안쪽에서 책 10권을 꺼내 왔다. 1권의 두께는 특수군 양성소에서 봤던 단어 사전보다 얇았는데, 대신 10권이 1세트였다.
“이거 주시고요. 이야기책 같은 것 있습니까?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걸로요.”
“저…… 손님은 공용어를…….”
“저는 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이쪽에서 찾아보시죠. 제목을 보고 고르시면 됩니다.”
서점 주인은 로딘을 다른 장소로 안내했다. 책장 몇 개가 서 있는 곳이었는데, 책장마다 동화로 보이는 책들 수십 권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으음, 뭐가 좋을까?”
로딘은 제목을 보고 몇 개를 골랐다. 래리가 좋아할 법한 영웅 얘기도 몇 권 고르고, 비앙카가 좋아할 법한 아기자기한 얘기의 동화도 몇 권 추가했다.
“이렇게 주십시오.”
“들고 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우린 배달은 안 하는데.”
“제가 들고 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옷은 지금 갈아입은 옷을 제외하고 전부 여관으로 보내도록 했다. 그 덕에 당장은 돈이 든 배낭 외에는 짐이 없었다.
서점 주인이 책을 쌓더니, 끈으로 묶었다. 로딘은 묶인 끈을 들고 무게를 가늠해 봤다.
‘여관까진 갈 수 있겠네.’
상당한 무게였지만, 다행히 여관도 가까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