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78)
마법을 품다 (78)
여관으로 들어가면서 카운터를 방문했다. 배가 출발하는 날까지 숙박을 연장했다.
별채도 마음에 들고 식사도 흡족했다. 굳이 다른 곳으로 갈 이유가 없었다.
별채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로딘은 래리와 비앙카를 불렀다.
“앞으로 매일 오전에 너희들에게 대륙 공용어를 가르칠 생각이야.”
“대륙 공용어요?”
“너희들, 아까 옷 사면서 간판에 적힌 글자 봤지?”
“꼬불꼬불이요. 막 요렇게 휘어 있어요.”
“그래. 너희들이 그 글자들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칠 거야. 나하고 같이 살려면 글자는 쓰고 읽을 수 있어야 해.”
로딘의 말에 래리는 눈을 빛냈다. 글자를 배우려는 각오가 엿보였다.
하지만 비앙카의 얼굴은 뚱했다. 심통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앙카는 글자 같은 걸 왜 배워야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그림이 옆에 그려져 있어서, 무슨 상점인지 다 알 수 있는데 왜 고생해야 하나 싶었다.
“놀고 싶은데.”
“비앙카, 글자를 모르면 어른이 되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멍청하다고 무시당할 거야. 넌 그래도 좋아?”
“아니요. 비앙카는 멍청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글자를 배워야지. 글자를 배우면 재미있는 동화책도 읽을 수 있어. 하늘나라 공주님, 두꺼비 마법사의 결혼, 영웅의 탄생. 어때? 읽고 싶지?”
오늘 산 동화책을 비앙카가 볼 수 있는 곳으로 빼냈다. 그리고 동화책의 제목을 하나하나 읽어 줬다.
책 제목까지 읽어 주니, 그제야 비앙카의 표정이 변했다. 대륙 공용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생긴 모양이다.
“내 교육은 그리 쉽진 않아. 각오해야 할 거야.”
“힘들어요?”
“비앙카는 멍청하지 않지? 그러면 버틸 수 있을 거야. 멍청이는 못 버티거든.”
“비앙카는 배울 수 있어요.”
로딘은 특수군 양성소에서 글을 배웠지만, 딱히 누구한테 배웠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발음 기호 외에는 모두 혼자서 터득했고, 그 과정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니까 가능한 일일 뿐. 다른 사람에게 그런 속도를 기대할 순 없었다. 랜트와 코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떠올리면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내일부터 공부 시작이다.”
“예.”
“할 수 있어요.”
자신 있게 외친 래리와 비앙카였지만, 다음 날 오전부터 시작된 첫 교육에서 바로 좌절했다. 로딘의 설명을 들을 땐 이해했는데, 돌아서면 잊어 먹었다.
5일 후에는 신분패를 발급받는 곳에서 래리와 비앙카의 신분패를 받았다. 아니, 돈을 주고 샀다. 가격은 각각 100골드와 120골드로, 나이의 10배가 가격이었다.
* * *
로딘이 도시 호스탕에서 치안대를 가장한 녀석들을 마법으로 겁주고 있었던 시간, 잉그렘 제국군은 리아즈 왕국의 교역 도시인 본티스를 무너뜨렸다.
본티스는 국경과 가깝고 국경을 넘으면 바로 베로스 왕국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틀 안에 베로스 왕국으로 넘어올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잉그렘 제국군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본티스에서 장시간 머물며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베로스 왕국은 잉그렘 제국의 선택 덕분에 무려 10일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다행이군.”
식당에 들렀다가 잉그렘 제국이 며칠 전 본티스를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병력을 이끌고 랑스까지 오려면 적어도 20일은 걸릴 터였다.
반면 로딘이 예약한 배편은 내일이 출항일이었다. 다행히 제국군과 만나지 않고 서대륙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배를 타고 중앙 대륙…….”
땡땡땡땡땡!
그때 상념을 깨는 시끄러운 타종 소리가 울렸다. 이상한 불길함이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래리! 비앙카!”
“형, 이게 무슨 소리예요?”
“로딘 오빠. 엄청 시끄러워.”
소리만 시끄러운 게 아니었다. 여관 밖의 골목을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움직임이 보였다.
“너희들 여기 꼼짝 말고 있어. 밖에서 상황 좀 알아보고 올게.”
“안 가면 안 돼요?”
“금방 돌아올 거야. 여기서 나가지 말고 기다려.”
로딘은 급하게 여관을 나갔다. 여관 주변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갑작스러운 타종 소리에 놀란 사람은 로딘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주변을 뛰어다니며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하고 있었다.
“이봐요! 이 소리는 뭐예요?”
“나도 몰라요.”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도 모르고요?”
“아마 북문이겠지.”
북문. 로딘이 검문을 받아서 들어왔던 곳이었다. 잉그렘 제국군이 온다면 가장 먼저 적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했다.
“플라이.”
룬어와 수인법을 조합해 5서클 플라이 마법을 사용했다. 로딘의 몸은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직접 확인해야겠어.’
비행의 방향을 북문으로 잡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몇 분 만에 북문에 닿을 수 있었다.
“멈춰라!”
“하아.”
로딘이 다가가자, 경비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여차하면 베기라도 할 기세였다.
하지만 로딘은 경비들을 상대할 정신이 없었다. 하늘에서 본 북문 밖의 상황 때문에 잠시 멍한 상태였다.
“이봐!”
“제국군이 얼마나 온 겁니까?”
“뭐?”
“안에서 타종 소리 듣고 찾아온 겁니다. 위에서 보니까 제국군이 제법 많던데요.”
로딘의 거듭된 설명에, 그제야 경비들이 검을 내렸다. 제국군이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병력은 1만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기사 전력하고 마법사 전력은요?”
“기사 전력은 300명 정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 마법사 전력은 파악이 안 됩니다. 있는 것 같긴 한데, 이곳에선 보이지 않습니다.”
병력 1만에 기사 3백.
이 정도 군대를 지원하는 마법사의 숫자라면 최소 10명에서 최대 30명 정도일 것이다. 고위 마법사가 포함되어 있다면 숫자는 더 줄어들 수도 있었다.
“마법사님.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잠시만요. 위에서 확인 좀 해 보겠습니다.”
로딘은 매직 핸드를 사용해서, 성벽 위로 올라갔다. 플라이 마법은 진즉에 취소한 상태였다.
“으음.”
직접 적들을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제국군이 어떻게 도착했는지 짐작되었다.
잉그렘 제국군의 몰골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건 물론이고, 얼굴도 하나같이 피로에 젖어 있었다.
‘랑스에 욕심을 낸 거구나.’
본티스라는 돈 많은 도시를 점령하고, 잉그렘 제국군은 무려 10일 동안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 동안 제국군이 마냥 쉬기만 했을까? 아니었다. 본티스의 돈 많은 상인들과 귀족들의 재산을 깡그리 약탈했다.
저택을 뒤지고, 창고를 탈탈 털었다. 직접 잡은 귀족과 상인들을 고문해서 그들이 숨긴 재산을 찾아냈다.
본티스라는 교역 도시를 하나 정복했을 뿐인데, 제국의 재정 상황이 꽤 많이 나아졌다.
‘긴 전쟁은 잉그렘 제국에도 큰 부담이었을 테니. 여기가 욕심날 수밖에.’
실제로 잉그렘 제국은 본티스의 약탈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자마자, 리아즈 왕국의 멜코스와 베로스 왕국의 랑스에 병력을 급속 파견했다.
두 도시 모두 중앙 대륙과 교역하는 항구 도시였다. 수도를 제외하면 각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이기도 했다.
“안 좋군.”
로딘은 후드를 푹 당겨서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그리고 성벽 아래로 내려가, 잉그렘 제국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하루만 끌면 돼.’
내일이면 배를 타고 랑스를 떠난다. 딱 하루. 잉그렘 제국이 랑스를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면 충분했다.
‘빠르게 보여 주고 빠진다.’
수인을 맺어 마법 3개를 연속으로 준비했다. 모두 5서클 마법이었다.
지연 마법이 아니라 마법을 대기 상태로 두는 건 오직 로딘만 가능한 특기였다.
손으로 맺은 룬어의 속도 차이로 마법의 완성 시점을 조절하는 방식인데, 로딘은 현재 3개의 마법까지 완성 시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입은 오직 하나뿐. 그 때문에 입으로만 룬어를 영창하는 사람은 시간 차이를 두고 마법을 완성하는 게 불가능했다.
물론 로딘에게도 5서클 마법을 연속으로 시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좌표 계산도 까다롭고, 룬어가 꼬이기라도 하면 자칫 자신에게 반동이 되돌아올 수도 있었다.
“적이다!”
“기사! 다가오는 놈을 죽여라!”
로딘의 접근에 잉그렘 제국군도 당황했다.
1만의 병력이 있는 곳으로 당당하게 다가오는 단 1명.
그런데 분명히 아군은 아니었다. ‘대체 뭐지?’ 하고 어리둥절해하느라 대응이 늦었다.
“파이어 스톰!”
로딘의 1번째 마법이 선두에 있던 병사들의 정중앙에 떨어졌다. 갑자기 생긴 불의 폭풍에 수백의 병사들이 휘말렸다.
“크악!”
“으아악!”
“도망쳐!”
“윈드 스톰!”
로딘의 2번째 마법이 바로 이어졌다. 퍼져 나갔다가 서서히 꺼져 가던 불길이 바람의 폭풍을 만나 더 거세게 타올랐다.
“막아!”
“마법사! 마법사!”
“적이다! 물러서지 마라!”
뒤늦게 적들이 로딘을 향해 몰려왔다. 병사는 별로 없고, 대부분 기사였다.
“풀 플레이트 메일이라……, 딱 좋은 상대네. 라이트닝 필드!”
로딘은 3번째 마법을 쓰자마자 몸을 돌렸다. 그리고 태연하게 성벽으로 돌아갔다.
“크아악!”
“으으으.”
“적, 적…….”
“피해랏! 들어오……, 크악!”
라이트닝 필드는 번개 다발이 흘러 다니는 지역을 만드는 5서클 마법이었다. 5서클 마법 중에서도 마력 소모가 특히 큰 마법으로, 그만큼 위력도 강했다.
5서클 마법 중 대인 마법으로는 블랙 썬더 볼트가 최강이라면, 범위 마법으로는 라이트닝 필드의 위력이 가장 강했다.
번개 다발을 맞은 기사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전기가 잘 통하는 갑옷을 입은 탓에 피해가 더 커졌다.
바닥을 통해 사방으로 전해지는 번개는 수십의 기사를 쓰러뜨렸다. 그중 경지가 낮았던 절반의 기사가 감전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끌었을 거야.’
로딘은 5서클 마법을 연속으로 보여 줬다.
저들은 이제 고민할 것이다. 공격의 주체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마법사인지를.
‘7서클이라고 생각하면 그대로 물러나겠지만, 그럴 리는 없지.’
애초에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정체를 고민하느라 하루 정도만 허비하기를 바랄 뿐. 그거면 충분했다.
“와!”
“마법사님. 대단하십니다.”
로딘이 다시 성벽 위로 돌아왔다. 적어도 겉으로는 별것 아닌 일이라도 한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마법을 지켜본 경비병들이 일제히 감탄을 터트렸다.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적들이 병력을 물리고 있습니다.”
“일시적인 효과일 뿐입니다. 다시 재정비해서 올 겁니다.”
“그렇겠지요. 후우.”
로딘은 더 말을 붙이지 않고, 성벽을 내려갔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여관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 * *
항구 도시 랑스의 북문 앞에 포진했던 제국군이 병력을 뒤로 물렸다. 적어도 성벽 위에서 날리는 마법은 피해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제국군이 랑스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강행군으로 랑스까지 이동했으니, 병사들이 피로를 풀 시간을 줘야 했다. 또 랑스를 한 번에 밀어내기 위해서는 진형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잠깐 시간을 벌었을 뿐이라는 걸 로딘도 알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서 랑스를 공격해 올 터. 시간이 많지 않았다.
로딘은 여관으로 돌아가지 않고, 항구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어서 오세요. 전쟁 때문에 정신이 없군요.”
“예. 안 그래도 그 일로 찾아왔습니다. 내일 출발하는 건 변함없는 겁니까?”
“예. 일정은 그대롭니다. 내일 아침 8시 출발이고요.”
로딘이 타려는 배는 베로스 왕국이 아니라 중앙 대륙에 소속된 상단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제국군을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아닐 텐데.’
자신들이 중앙 대륙 소속의 상단이니, 잉그렘 제국군이 건드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상당히 무모한 생각이었다.
지금 잉그렘 제국은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전투마다 계속 이기고 있다고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했다.
이미 전쟁이 너무 길어진 상태였다. 마수림이 언제 준동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하게 전쟁이 길어지는 건 잉그렘 제국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또 13국 연합이라는 많은 적을 상대하면서, 잉그렘 제국은 전선이 너무 길게 늘어졌다. 넓은 전선만큼이나 보급품 수송에 소모되는 인력과 자원도 커지고 있었다.
“혹시 잉그렘 제국군이 중앙 대륙에서 온 배들은 건드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요. 그건 제가 할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상단에 소속된 일개 직원일 뿐입니다. 결정은 윗선에서 내리는 거겠죠.”
괜한 소리를 해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로딘은 속으로 자책하며, 화제를 돌렸다.
“내일 아침 출발이면 저와 동생들은 여관에서 새벽에 출발해야겠군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아, 원하신다면 배로 와서 선실에 묵어도 됩니다. 배는 어제 도착했고, 이미 물자는 다 실은 상태거든요.”
그러고 보니, 배의 갑판에 선원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 몇 명이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었다. 미리 와서 선실에 묵고 있는 손님이었다.
“배에 묵어도 된다고요?”
“예. 나눠 드린 배표에 선실 번호가 적혀 있을 겁니다. 오늘부터 선실 입장이 가능합니다. 대신 식사는 내일 점심부터 제공됩니다. 그 전까지는 알아서 끼니를 해결하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녁에 동생들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처음에는 바로 래리와 비앙카를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 지금은 여관보다 배가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식사가 따로 제공되지 않는다는 말에 생각을 바꿨다. 아무래도 저녁 식사까지는 여관에서 해결하고 와야 할 듯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