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79)
마법을 품다 (79)
로딘이 한바탕 휘젓고 떠난 제국군 진영.
이번 랑스 원정의 총사령관을 맡은 알세인 후작은 수뇌부 회의를 열었다. 꽤 심각한 얼굴이었다.
10명의 천인장과 종군 마법사의 수장인 데이브가 알세인 후작이 연 수뇌부 회의에 참석했다.
천인장들은 알세인 후작만큼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들도 순식간에 수십의 기사와 수백의 병사들을 잃은 장면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군 마법사의 수장인 데이브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군이 입은 피해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듯한 태도였다.
“아까 나타난 마법사, 제가 보기엔 7서클로 보이는데 어찌 생각하시오?”
“그럴 리가요.”
데이브의 음성은 이번에도 담담했다. 남일 대하는 태도였지만, 이곳에 있는 알세인 후작과 천인장들은 그러려니 했다.
데이브는 원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기뻐도 ‘그렇군요.’ 하고 담담하게 반응하고, 분노할 일에도 ‘안 좋군요.’ 정도의 반응만 보이는 사람이었다.
“7서클 마법사가 아니라고요? 제가 알기로 파이어 스톰은 분명히 5서클 마법이었습니다. 그다음에 쓴 마법도 윈드 스톰 같은데. 아닙니까?”
“그가 어떻게 5서클 마법을 연속으로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마법사가 아닌 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까?”
알세인 후작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심각했던 표정은 좀 지워졌지만, 그 자리에 의아함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았다.
“저는 대마법사의 마법을 본 적이 있습니다. 흐음, 압도적이었죠. 5데나급 기사는 휩쓸리는 순간 죽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습니까?”
“예. 대마법사를 초인이라 부르죠. 인간을 초월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그냥 재앙입니다. 하지만 좀 전에 본 장면은 어땠습니까? 3데나급 기사들의 피해가 좀 크긴 합니다만, 4데나급 기사들은 태반이 살아남았죠.”
제국군은 마법사 1명의 등장으로 짧은 시간 어마어마한 피해를 봤다. 병사들은 겁에 질렸고, 기사들도 랑스를 공격하길 꺼리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위력적인 광경을 생각하면 오히려 피해가 적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초반 2개의 마법은 병사들만 덮쳐서 수백을 죽였지만, 외곽에 있던 이들은 가벼운 화상을 입은 정도로 끝났다.
라이트닝 필드에 들어섰던 기사들도 3데나급 기사들만 대거 죽어 나갔을 뿐. 4데나급 기사 중에는 죽은 이가 거의 없었다.
“그러면 데이브 마법사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얼마 전 로하임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도시 하나를 공격하는 중에 6서클 마법사와 만났다더군요. 용병이었는데, 건드렸다가 다친 이들이 좀 나온 모양입니다.”
로딘은 브론 일행과 마을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제국군과 부딪친 적이 있었다. 마법 병단의 마법사들을 호위하는 기사들이었다.
당시에는 부상자만 나왔을 뿐, 죽은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부상자의 등장만으로도 마법 병단의 책임자인 콩테 백작은 엄청나게 불쾌하게 여겼지만, 어쨌든 그 이상의 충돌은 없었다.
당시의 로딘은 잉그렘 제국군을 죽일 목적으로 마법을 쓴 게 아니었다. 길을 여는 걸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마법의 위력도 줄인 상태였다. 굳이 제국군과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 싫어서였다.
“6서클 마법사?”
“예. 동쪽으로 이동했다고 했으니, 랑스에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흐음, 데이브 마법사의 말은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그자가 또 나타나면 곤란한 건 마찬가집니다. 어쨌든 그자는 5서클 마법을 연속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대마법사냐 아니냐는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놈을 상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 또 나타나면 제국군은 또다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 몇을 붙여 주시면 그놈을 제가 처리하지요.”
“음? 어떻게 말입니까?”
“그자가 제국군의 혼을 빼 놨으니, 우리도 그대로 갚아 줘야죠. 밤을 틈타서 랑스로 들어가겠습니다. 본대는 북문에서, 저는 내부에서 흔들면 효과가 클 겁니다.”
데이브는 오늘 나타난 자의 나이가 많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후드를 눌러 써서 얼굴은 못 봤지만, 주름 하나 없는 매끈한 목은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많아 봐야 30대 초반.’
데이브가 생각한 적 마법사의 나이였다.
그 정도로 어리다면 전투 경험도 부족할 터. 올해 70세가 된 자신과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재능을 타고나서 마법 수준은 높았다. 오늘 마법을 쓴 걸 보면, 자신은 모르는 어떤 비전도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경험으로 어느 정도는 메울 수 있다고 봤다. 혼자는 힘들 수 있지만, 기사들 몇 명의 도움을 받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사단 하나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기사단 하나라면 소속된 기사의 숫자는 100명이었다. 당연히 5데나급의 기사단장도 포함될 터. 거기에 6서클 마법사인 자신이 더해지면, 희한한 능력을 가진 6서클 마법사와도 해볼 만했다.
“그러면 그자는 데이브 마법사님께 맡기겠습니다. 밤에는 저희가 시선을 끌어 보지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사실 지금 잉그렘 제국은 전쟁을 위해 준비해 둔 자금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본티스를 약탈해서 겨우 숨을 돌렸지만, 말 그대로 숨을 돌린 수준에 불과했다.
더 많은 자금을 손에 넣지 못하면, 전쟁을 지속하는 건 어려웠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리아즈 왕국의 멜코스와 이곳 랑스를 온전하게 손에 넣어야 했다.
본티스는 리아즈 왕국의 대표적인 교역 도시였지만, 교역 대상은 겨우 왕국 하나였다.
반면 항구 도시 랑스는 왕국이 아니라 중앙 대륙과의 교역을 오래전부터 해 온 곳이었다. 당연히 본티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유했다.
돈 많은 상인들과 귀족들이 떠나기 전에 랑스를 점령할 수 있다면, 어쩌면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큰 수입을 올릴 수도 있었다.
* * *
왠지 여관에 있으면 내일 출발하는 배를 못 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근거가 있는 건 아닌데, 그런 불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로딘은 저녁을 먹고, 짐을 챙겼다.
첫날 인쇄해 둔 마나 집적 마법진을 지웠고, 운디네를 움직여서 침구를 포함해 손이 닿은 모든 물건을 씻었다.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는 건 로딘의 습관이나 다름없었다.
여관을 떠난다는 말에 래리와 비앙카가 시무룩해졌다.
로딘은 따로 달래려 애쓰지 않았다.
래리와 비앙카에게는 부모가 없었다. 자신이 보호자 역할을 하겠지만, 부모의 역할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건 어려웠다.
결국 아쉬움, 불편함, 그리움, 이런 감정은 스스로 다스릴 수 있어야 했다. 옆에 따라다니면서 로딘이 감정까지 다 관리해 줄 수는 없었다.
책까지 더해지면서 훨씬 무거워진 배낭 두 개를 양어깨에 멨다. 이걸 들고 항구까지 가려면 꽤 고생하겠지만, 다행히 랑스에는 운송용 역마차가 있었다.
로딘은 여관 바로 앞에서 마차를 탔다. 당연히 짐도 마차에 실었다.
이때만큼은 시무룩했던 래리와 비앙카의 얼굴이 밝았다. 마차를 타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아쉽지만 마차는 그리 오래 달리지 않아 목적지인 부두에 도착했다.
짐을 들고 내리니, 래리와 비앙카가 아쉬움을 토했다.
“재밌었는데.”
“그치? 래리 오빠도 재밌었지?”
“응.”
“가자. 배도 재미있을 거다.”
배 입구에 용병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하나같이 표정이 엄숙하고, 자세가 잘 잡혀 있었다.
‘수준이 높아 보이는데?’
브론 일행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뛰어난 용병들이 수십이었다. 개중에는 브론보다 강해 보이는 느낌의 용병도 있었다.
‘뭐, 검술은 나도 잘 모르니까.’
로딘은 마력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것과 달리, 오러의 감각은 그리 예민하지 않았다.
재능을 측정했던 때, 로딘의 오러 재능은 12점. 보통 사람보다는 월등히 뛰어나지만, 제대로 된 기사들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감각도 재능을 그대로 따라갔다. 평균 이상은 되지만, 기사들하고 비교하긴 민망했다.
“선실에 묵으려고 찾아왔습니다.”
“손님이시군요. 배표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여기.”
배표 4장을 모두 제출했다. 그러면서 옆에서 두리번거리는 래리와 비앙카를 옆으로 끌고 왔다. 일행이라는 의미였다.
“네 분.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오시죠.”
선원은 로딘 일행을 3명이 아니라 4명이라고 말했다. 사람 숫자보다 배표를 우선시하는 태도였다.
선원을 따라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대략 갑판에서 2개 층 정도를 내려와서 4인 선실로 안내되었다.
‘음? 생각보다 괜찮은데?’
배 안이라서 침대가 다닥다닥 붙은 답답한 공간을 생각했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 승객을 실으려면 그게 효율적일 테니까.
그런데 실제로 본 4인 선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침대 4개가 양쪽 옆에 있는 건 예상과 같았지만, 그 사이에 넷이 둘러앉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공간이 있었다.
“여깁니다. 직원은 갑판과 선실 1층에 항시 머물고 있으니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찾아와 주십시오. 내일 아침 식사는 제공되지 않고, 점심부터 제공됩니다. 식사 시간은 아침 7시, 정오, 저녁 5십니다. 그 시간 외에 뭔가를 드시고 싶다면 1층 식당에서 따로 값을 치르고 주문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원의 설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말도 더듬지 않았고, 고민하는 기색도 없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선원이 나가고, 로딘은 배낭부터 내려놨다. 책 때문에 묵직했던 배낭이 쿵 소리를 냈다.
“로딘 오빠. 배가 댑따 커요. 구경하러 가도 돼요?”
“너무 멀리 가지 말고 편하게 쉬어. 2시간 후에는 취침이니까, 늦지 말고.”
“예. 래리 오빠, 나가자. 구경하자.”
“그래.”
래리와 비앙카에게 미약한 마력을 묻혀 놨다. 너무 멀리 떨어지지만 않으면 찾을 수 있는 마법적인 조치였다.
아이 둘을 보내고, 로딘은 바닥에 마나 집적 마법진을 인쇄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프루발 환영 선생의 수업을 들었다.
* * *
선실의 최상층.
선장이 머무는 선실 바로 옆의 응접실에 3명이 모였다. 둘은 잘 단련된 탄탄한 몸에 강인한 인상을 가진 40대 남자였고, 1명은 역시나 잘 단련된 몸에 순한 얼굴을 가진 40대 여자였다.
“결국 실패했군요.”
“하아, 그렘 상주는 죽었겠지요?”
“습격의 흔적으로 봐선 살아 있다고 보기 어렵겠죠. 그래도 시체를 발견한 건 아니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가능성이 있음을 어필한 제퍼슨의 목소리도 그리 밝지 않았다. 당사자조차도 그렘 상주의 생존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흐음, 역시 이 배는 좋네요. 아직 출항을 안 했지만, 흔들림도 적고.”
“대형 선박이니까요. 그나저나 도미닉 헤지스 상단주가 아쉬워하겠습니다.”
“우리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만나서 싸웠는데 패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갔을 땐 이미 그렘 상주가 실종된 상태였으니.”
이들이 탄 배는 헤지스 상단에서 운영하는 무역선 겸 여객선이었다. 짐을 먼저 싣고, 남는 공간에 사람을 태우는 식으로 서대륙과 중앙 대륙을 오가는 무역을 해 왔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3명은 모두 5데나급 기사로, 용병이 아니었다. 당연히 헤지스 상단에 고용되어 급여를 받고 상단의 일을 하지도 않았다.
이들의 지금 신분은 헤지스 상단의 식객.
평소에는 상단의 본단에 머무르며 그저 식량만 축내다가, 정말 상단이 위험한 상황이 오면 움직이는 비싼 몸들이었다.
“대체 그 상자가 뭘까요? 뭐기에 도미닉 헤지스 상단주가 우리에게 부탁한 건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 귀한 보물이죠.”
“그게 무슨 소립니까? 모르니까 귀한 보물이라니?”
“헤지스 상가의 선조가 우연히 얻은 물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상자를 못 열었어요. 대마법사에게도 부탁했는데, 상자를 여는 데 실패했죠. 그러면서 알게 된 거라고는 강제로 열다가는 대마법사도 위험하다는 것뿐이었죠.”
18년 전, 헤지스 상단은 가문의 보물로 간직하던 상자를 잃어버렸다. 상자를 되찾기 위해 가진 정보망을 총동원했는데도 흔적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약 6개월 전, 서대륙의 한 경매장에 헤지스 가문의 보물이었던 상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돌았다. 이런저런 정보를 확인해 보니, 헤지스 가문의 보물이 확실했다.
본단은 급히 서대륙에서 상행 중이던 휘하 상주 그렘에게 상자의 회수를 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수 완료’라는 대답을 마법 통신으로 받았다.
대런, 제퍼슨, 실비아를 파견한 건 그 후였다. 헤지스 상단의 최고 전력을 보내서, 반드시 상자를 회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오호, 대마법사를 위험하게 만들다니. 정말 위험한 상자였군요.”
“그러니 우리를 보낸 거겠죠.”
“그런데 그렘 상주를 죽이고 상자를 가져갔다면, 그놈들에겐 상자를 열 방법이 있는 겁니까?”
“그건 모르죠. 분명한 건 그렘 상주를 공격한 자들이 만만찮은 조직이라는 겁니다. 적어도 100명 이상을 동원했어요.”
셋은 헤지스 상단의 식객이지만, 원래 한 영지의 상급 기사였던 인물들. 헤지스 상단의 상단주라도 함부로 부릴 수 없는 이들이었다.
그만큼 강한 전력이지만, 이번에 개입한 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렘 상주가 기습당했던 장소에서 만만찮은 조직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마법의 흔적도 있었죠.”
“우리야 마법을 잘 모르지만, 주변 흔적만 보면 꽤 강한 마법이 사용된 건 분명해요.”
“마법사와 100명 이상의 검사를 거느린 조직입니다. 헤지스 상단도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들은 모두 5데나급 기사. 그것도 6데나급을 코앞에 둔 강자였다. 어떤 상황이 와도 해결할 자신이 있으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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