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8)
마법을 품다 (8)
교실에 적막이 감돌았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교관을 바라봤다.
“수업 시작하겠다. 오늘 너희들에게 가르칠 내용은 발음 기호다. 오늘 수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말한 교관이 칠판에 글자를 썼다.
옆에서 헤들러가 ‘아, 망했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너희들은 대륙 공용어라 불리는 레안토어를 이미 알고 있다. 단! 글자를 모를 뿐이지. 틀렸나?”
교관이 질문을 던졌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입을 열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예, 맞습니다.”
로딘이 급히 대답했다.
침묵이 아무리 중요해도 상황에 맞아야 했다.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아니라 대답을 할 때였다.
“여기서 말 못 하는 놈 있나?”
“없습니다.”
이번에도 대답은 로딘 혼자 했다. 옆에 있는 헤들러도, 뒤에 있는 랜트와 코리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말을 할 줄 아는 놈들이 왜 대답을 안 해? 말 못 하는 놈 있나?”
“없, 없습니다.”
“없습니다.”
“맞다. 너희들은 이미 말을 할 줄 안다. 그 말은 곧 레안토어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발음 기호를 가르치는 이유는 너희들이 알고 있는 말에 맞는 ‘글자’를 배우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관이 교탁 위에 놓인 커다란 단어 사전을 손으로 탕탕 두드렸다. 교실을 울리는 소리에 아이들이 움찔거렸다.
“오늘 너희들은 레반토어에 필요한 77개의 발음 기호 전부를 배운다. 발음 기호를 배우면, 너희들 내무실에 있는 사전을 이용해서 단어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 외워라.”
‘내무실’이라는 단어에 로딘은 지금까지 머물던 곳의 정확한 명칭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숙소라고만 불렀던 곳이었다.
“단어 사전에 적힌 것 전부 말입니까?”
되묻는 로딘의 질문에 교관이 힐끔 쳐다봤다. 눈빛이 살짝 반짝거리는 듯 보였다.
“제일 어린놈이 제일 용감하군. 맞다. 전부 다 외워라. 시간이 날 때마다 읽고 또 읽어서 다 외워라. 두 달 후에 시험을 치르고, 그때 점수가 낮으면 탈락이다.”
“탈, 탈락이면 매, 매를 맞나요?”
한 아이가 물었다. 교관이 질문을 던진 아이를 쳐다보더니, 씩 웃었다.
“물론이다. 지금 밖에서 신나게 맞고 있을 아이들만큼 맞는다. 그게 끝이 아니다. 다시 한 달이 지난 후에 재시험을 치른다. 탈락하면? 두 배로 맞는다. 또 한 달 후에 재시험을 치르는데, 그때도 탈락하면 세 배로 맞는다.”
꿀꺽!
맞는다는 말이 나오자, 아이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로딘은 낮게 한숨을 쉬고 교관의 눈치를 살폈다. 말을 해야 하는 때일까, 겁에 질린 척하며 침묵을 지켜야 하는 걸까.
고민 끝에 말을 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관님은 처음에 우리가 알아서 공부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재시험 공부도 알아서 해야 하는 겁니까?”
“당연히 알아서 해야지. 식사를 건너뛰든, 휴식 시간을 줄이든. 그건 너희 사정이다. 나는 너희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패고 또 패서라도 어떻게든 통과하게 만들 테니, 낙오할 걱정은 할 필요 없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패고 또 팬다는 말이 아이들을 얼어붙게 했다.
“위 기수의 선배들도 다 통과했습니까?”
“맞다. 아! 이 얘기는 해 주는 게 좋겠군. 너희 선배 중에는 네 배까지 맞은 놈도 있다. 물론 피투성이가 되어서 실려 갔고, 한 달 후에 턱걸이로 시험에 통과했다.”
네 배로 맞았다는 건 네 번이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시험이 만만치 않게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매 맞는 거? 물론 아프지. 그런데 말이지. 몇 번 탈락하면 동기들에게 놀림당하는 게 더 힘들걸. 동기들 사이에서도 덜떨어진 놈 취급을 받거든. 수업을 시작하겠다.”
교관이 칠판이 묘한 기호 하나를 그렸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림이었다.
“이건 ‘아’라는 발음이다. 카, 타, 마 같은 발음에 사용된다. 산, 칸, 판 같은 발음도 이 기호가 포함된다.”
발음 기호는 꽤 난해했지만, 외우기 어렵진 않았다. 적어도 로딘에겐 그랬다.
로딘은 예전부터 머리가 좋았다. 기억하려고 마음먹은 건 한 번만 보고 들어도 다 외우곤 했다.
‘어렵진 않아. 어차피 외우면 그만이니까.’
교관의 진도는 상당히 빨랐다. 아이들이 이해를 했든 못 했든 신경 쓰지 않고 77개의 발음 기호 전부를 나열하기만 했다.
“수업 끝. 앞으로 두 달 동안은 수업이 없다. 놀고 싶은 놈은 놀아도 좋다. 자고 싶은 놈은 마음껏 자도 된다. 단! 두 달 후의 시험에 통과할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해라.”
“시험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됩니까?”
로딘의 질문이었다. 교관이 가장 작은 로딘을 힐끗 보더니, 설명해 줬다.
“100개의 단어와 100개의 발음 기호가 주어진다. 단어는 보고 정확히 읽은 후, 뜻을 말하면 된다. 발음 기호는 그에 맞는 레안토 글자를 적는다.”
“공부는 어디서 할 수 있습니까? 이곳까지 와야 하나요? 아니면 내무실에서도 할 수 있나요?”
“너희들에게 허락된 장소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내무실도 좋고, 식당에서 공부해도 된다. 이곳으로 와도 되고, 운동장이나 도서관도 가능하다.”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도서관이라는 단어에 로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며칠 전, 도서관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가 보고 싶었다. 안에 있는 책을 마음껏 읽고, 지적인 갈증을 채우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렸다.
“물론이다. 뭐, 어차피 아무도 안 가겠지만. 도서관은 너희들의 지식을 채워 주기 위한 곳이다. 글을 읽을 수 있다면 꼭 한 번은 가 보길 추천하지.”
수업이 끝났다.
코리는 기분이 좋은지 실실 웃고 있었다. 설렘이 가득했던 수업 시작 전보다 표정이 더 밝았다.
반면 헤들러와 랜트는 표정이 안 좋았다.
랜트는 애초에 공부를 싫어하는 녀석.
만만찮은 시험 예고가 있었으니, 우울한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륙 공용어를 잘하는 헤들러의 표정이 구겨진 건 의아했다.
“헤들러, 뭐가 문제야?”
“난 발음 기호 같은 건 배워 본 적이 없다고.”
“대륙 공용어는 잘하잖아. 그런데 발음 기호를 모른다고?”
“내 옆에는 대륙 공용어를 아는 하인이 항상 따라다녔어. 내가 물으면 바로바로 또박또박 말을 해 줬는데, 발음 기호 따위를 왜 배워?”
헤들러가 대륙 공용어를 배운 방식은 지극히 귀족적이었다. 특수군 양성소에서는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럼 외워. 그럼 되잖아.”
“아! 자신 없는데.”
헤들러는 다른 아이들보다 아는 게 많았다. 대륙 공용어, 수학, 예법 등. 다른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지식은 남들보다 좋은 교육을 일찍부터 받은 덕에 얻은 것일 뿐. 머리가 특출나게 좋아서는 아니었다.
새로운 걸 배울 때의 헤들러는 까칠해지고, 예민하게 변했다.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누군가와 비교를 많이 당한 게 아닌가 싶었다.
“너 형제 있어?”
“아! 있었지. 나보다 10살 많은 형.”
“죽었……구나. 괜찮아?”
“다 지나간 일이야. 멍청하게 성공도 못 할 반역을 꾸미다가 죽었는데, 뭐.”
헤들러의 가족들은 반역을 준비하다가 걸려서 몰살당했다.
생존자는 헤들러 단 1명.
부모와 형제들 전부가 같은 날 단두대에 올랐다.
헤들러는 빈민가에 숨어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는데, 대략 1년 정도를 숨어 지내다가 노예 상인에게 잡혔다.
특수군 양성소에서 보낸 바로 그들이었다.
헤들러는 억지로 끌려온 게 아니라, 정당한 거래를 통해서 노예가 되었다.
헤들러가 바란 건 단 하나였다.
베로나 왕국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만 해 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다고 말했고, 노예 상인은 거래를 받았다.
“베로나 왕국에 화가 나진 않아?”
“나지. 왜 안 나겠어? 동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고. 근데 반역이 너무 멍청하잖아.”
헤들러의 말을 들었을 때, 로딘도 그들이 꾸민 반역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따르는 귀족이 거의 없었고, 거느린 병력도 부족한 상태였다.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
로딘은 헤들러의 아버지가 내린 선택을 마냥 무시하지 않았다.
어린 헤들러도 아는 사실을 그의 아버지가 몰랐을 리는 없었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터였다.
헤들러가 모르는 숨겨진 힘이 있었을 수도 있고, 반역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처지였을지도 모른다.
“들어가자.”
“숙소로?”
“응, 내무실로.”
* * *
4인방은 나란히 걸어 3층의 1호실. 즉, 301호 내무실로 들어왔다. 각자의 침대로 흩어진 헤들러, 랜트, 코리가 널어놓은 빨래처럼 늘어졌다.
“배고프다.”
“조금만 참아.”
점심시간까지 불과 30분이 남았다. 수업을 조금 일찍 끝낸 교관 탓에 시간이 애매해졌다.
“단어 사전. 지금 볼 사람 있어?”
로딘의 질문에 셋의 시선이 쏠렸다.
랜트는 두꺼운 사전과 로딘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저걸 볼 자신이 없다.”
“아무튼 볼 사람 없지? 그럼 내가 좀 볼…… 에이 씨. 누가 좀 들어 주라.”
단어 사전이 너무 두껍고 무거웠다.
지금 로딘의 몸으로는 책상까지 옮기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자 헤들러가 일어나서 사전을 가뿐하게 들어 줬다. 헤들러는 키만 큰 게 아니라, 힘도 좋았다.
“고마워.”
“발음 기호는 다 외웠어?”
“응, 몇 개 안 되잖아.”
헤들러가 옮겨 준 사전의 첫 장을 넘겼다. 한 면에 대략 30개 정도의 단어가 발음 기호와 함께 적혀 있었다.
“도서관은 안 가? 너 전에는 도서관 노래를 불렀잖아.”
“글을 몰라서 가 봐야 책을 못 읽으니까. 나중에 가야지.”
“어우, 난 널 이해할 수가 없다. 책이 뭐가 좋다고. 아, 모르겠다.”
헤들러가 침대에 벌렁 누웠다. 그러자 랜트와 코리도 뒤질세라 침대에 누워 이불을 돌돌 감았다.
그사이에 로딘은 단어 사전에 적힌 글과 오늘 외운 발음 기호를 맞춰 봤다.
대략 10초.
옆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시 10초가 흐르고 한 장을 넘겼다. 두 면을 읽는 데 대략 20초였다.
로딘은 빠르게 한 장씩 넘기며, 사전에 적힌 단어들을 머릿속에 박아 넣었다.
“점심시간이다!”
“가자. 가자.”
어느새 정오가 가까워졌다. 로딘도 단어 사전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에 먼저 온 아이들이 많았다. 일부는 발음 기호를 적은 쪽지를 보며 열심히 입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 하네.”
“우리도 공부 열심히 해야 되는 거 아냐?”
“맞아. 다른 방 놈들한테 질 순 없지.”
“맞아. 지면 안 되지.”
쓸데없는 곳에 경쟁심을 불태우는 헤들러와 코리였다. 둘은 은근히 성격이 비슷했다.
식사를 마치고, 로딘은 다시 단어 사전을 파고들었다.
빠르게 장을 넘기며 통째로 외웠는데, 오후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사전을 절반 이상 넘긴 상태였다.
“또 공부구나.”
“머리 아파.”
오후 수업은 수학이었다. 운동장 33바퀴를 돌았던 날 조교가 가르친 숫자를 복습하고, 더하기와 빼기의 개념도 이날 함께 배웠다.
더하기와 빼기는 로딘이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시골에서 촌장님은 각 마을의 수확물을 합칠 때, 더하기의 개념을 적용했다. 또 다른 집에 수확물을 나누거나 일부를 상인에게 팔 때는 빼기의 개념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수학 기호’는 로딘에게 낯설었다. 촌장님은 수학 기호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학 기호는 이것 외에도 많다. 곱하기 나누기도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수학 기호가 있지. 앞으로 매일 오후에 나하고 수학 기호의 사용법을 배운다.”
수업이 끝났다. 어느새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아이고.”
“하나도 모르겠다.”
“엄마·아빠는 저런 거 없이도 잘만 살았는데.”
로딘은 아이들을 쭉 돌아봤다. 수학 수업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단 1명도 없었다.
‘이상하네.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싫어하지?’
로딘은 수업이 재미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더하기 빼기를 복습하는 건 좀 별로였지만, 새로운 수학 기호의 존재는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도서관 이용해도 된다고 했지?’
다 공부하고 싶었다. 오늘 배우지 않은 수학 기호도 배우고, 지금 공부 중인 대륙 공용어도 다 배울 생각이었다. 역사도 궁금하고, 예법이나 왕법에도 관심이 갔다.
“나가자.”
“응, 나가자. 이 교실에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그냥…… 그냥…… 기분이 아주 나빠졌어.”
“나도. 수학 없는 세상으로 가고 싶어.”
헤들러, 코리, 랜트의 대화였다.
로딘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