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80)
마법을 품다 (80)
대런, 제퍼슨, 실비아.
이들은 헤지스 상단의 식객으로 꽤 긴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머물 곳과 식사를 제공받으면서, 정말 편하게 검술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런 도움을 받았기에 상자를 회수하는 일은 꼭 성공하고 싶었다.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꼭 만났어야 하는 그렘 상주가 실종되어 버렸다. 남은 건 그렘 상주를 기습한 흔적과 수십의 시체들뿐이었다.
상황이야 어찌 됐든 임무는 실패였다. 무려 5데나급 강자를 셋이나 동원하고도 결국 빈손으로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허무하군요.”
“우리가 5급 기사면 뭘 합니까? 싸울 상대가 있어야지.”
“뭐, 어쩌겠습니까?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 것을.”
서대륙에서 검사의 경지에 ‘데나’를 붙이지만, 중앙 대륙에서는 ‘데나’를 빼고 ‘급’만 붙인다.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중앙 대륙의 분위기가 명칭조차 자연스럽게 줄여 버린 것이다.
“그래도 헤지스……, 음?”
“어떤 놈들이…….”
대화하던 대런이 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동시에 제퍼슨과 실비아도 옆에 놓은 검을 챙겼다.
“적입니다.”
“수가 많아요.”
셋이 응접실을 박차고 나갔다. 아래로 계단이 보이고, 그 너머 항구에 꽤 많은 이들이 칼을 쥔 채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랑스의 병사로 보이진 않는데요.”
“혹시 그놈들 아닐까요? 그렘 상주를 습격한 자들.”
“그들이 왜?”
“그렘 상주가 살아서 도망쳤을지도 모르지요. 저놈들은 당연히 우리가 상자를 회수했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혹시나 하고 던져 본 가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말하고 나니 그건 아니다 싶었다.
“저놈들이 횃불을?”
“항구에 불을 지를 생각 같은데요.”
“움직이죠. 이러다 우리 배가 상할 수도 있겠어요.”
셋이 나서기 전, 배를 지키던 용병들은 일찍부터 주변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파악했다.
익숙하지 않은 복장을 갖춘 자들의 움직임은 도적들이 보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모두 긴장하라.”
“우리는 배를 지킨다.”
용병들은 배를 지키기 위해 헤지스 상단에서 고용한 이들. 당연히 항구보다 배가 먼저였다.
타닥!
“잘하고 있군.”
긴장하고 있는 용병들의 앞에 대런, 제퍼슨, 실비아가 나타났다. 이들은 헤지스 상단에 고용된 입장이 아니라서, 용병들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용병들은 이 3명이 어마어마한 강자이며, 배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사님들.”
“적들은?”
“항구에 불을 지르고 있습니다. 아직 배를 공격하진 않았지만, 저기 보시다시피.”
항구에 불을 충분히 지른 자들이 배가 있는 곳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마치 ‘다음 차례는 너야.’라고 말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어이없는 것들이네.”
“숫자를 좀 줄여 놔야겠습니다.”
대런이 나서려고 할 때, 제퍼슨이 팔을 잡았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대런에게 제퍼슨은 한 곳을 가리켰다.
“마법삽니다.”
“으음.”
그들이 있는 배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갑옷을 입은 기사와 마법사가 서 있었다. 그 뒤로 이미 불을 지르고 돌아온 자들 20명 정도가 더해졌다.
“마법사라?”
“우릴 보고도 꼼짝도 안 하는군요. 강자일 겁니다.”
검사들은 상대를 보면 대강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특별한 방법으로 경지를 속이는 사람도 있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다.
마법사에게 하이드 마력 서클이라는 마법이 존재한다. 그리 어려운 마법이 아니라서, 3서클 마법사이기만 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사가 자기 경지를 속이는 건 일종의 비전이었다. 극히 소수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기예라, 검사들이 자기 실력을 숨기는 일은 거의 보기 힘들었다.
대런, 제퍼슨, 실비아는 맨 앞에서 당당하게 선 기사가 5급의 실력임을 바로 알아봤다. 상대도 마찬가지로 이쪽의 실력을 알아봤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5급 기사 셋보다 더 나은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으음.”
“바트, 갑판을 비워라!”
“예.”
출항을 고작 몇 시간 앞둔 밤이었다. 그래서인지, 일찍 배에 승선한 승객이 꽤 많았다. 그들 중 상당수가 갑판에서 아무런 걱정도 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트는 갑판에서 구경하고 있는 이들을 선실 안으로 내려보냈다.
갑판에 남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승객도 있었는데, 용병들은 그런 승객들에는 신경을 껐다. 자기가 남겠다고 했으니, 뒷감당도 자기 몫이었다.
“얼추 됐군.”
적들이 전부 검사였다면 굳이 갑판을 비우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이긴다면 갑판까지 적이 올라가지 못할 테고, 자신들이 패한다면 어차피 선실에 있든 갑판에 있든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상대 쪽에 마법사가 있었다. 어쩌면 6서클일지도 모르는 강자였다.
그런 강자가 사용하는 마법을 상대하다 보면 반드시 갑판으로 화가 번지게 되어 있었다.
* * *
배를 지키는 용병 바트에 의해 갑판에 있던 승객들이 우르르 선실로 내려왔다. 사람이 갑자기 몰리며 쓰러지고 넘어지는 승객들이 속출했다.
갑판에서 놀고 있던 래리와 비앙카도 같은 지경에 처했다. 사람들에 휩쓸려서 이리저리 휘청거리다가, 결국 비앙카의 발이 누군가의 발에 걸렸다.
“비앙카!”
“아악!”
비앙카는 쓰러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소리부터 질렀다.
쓰러지면 아프겠지. 사람들에게 밟히면 어쩌지. 그런 걱정으로 넘어지던 몸이 어느 순간 멈췄다.
“어?”
“괜찮아?”
로딘은 프루발 환영 선생의 수업을 듣다가, 배 밖에 뭉쳐진 마력을 느꼈다. 마법사. 그것도 상당히 고위 마법사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래리와 비앙카의 몸에 묻혀 놓은 마력의 흐름을 따라왔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지금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게 먼저였다.
“로, 로딘 오빠.”
“래리, 너도 이리 와.”
로딘은 양손으로 래리와 비앙카를 잡았다. 매직 핸드를 두 개 만들어서 둘을 보호하듯 감쌌다.
“선실로 돌아가자.”
“오, 오빠. 밖에 막 이상한 사람들이 불을 질러.”
“맞아요, 형. 쇠로 된 옷을 입은 것 같았어요.”
“그렇구나.”
비앙카와 래리의 설명을 듣고, 로딘은 제국군이 왔음을 짐작했다. 아마 낮에 당했던 일의 보복을 위해 들어온 게 아닐까 싶었다.
‘괜히 건드린 건가?’
이미 늦었다. 후회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지금은 동생들을 살릴 걱정을 하는 게 먼저였다.
‘배도 부서지지 않게 해야지.’
배가 부서지면 육로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 이동하는 내내 제국군에게 쫓길까 걱정해야 한다.
“들어가.”
래리와 비앙카를 선실로 넣었다. 그리고 방의 문에 마법으로 임시 잠금장치를 만들고, 선실의 벽과 문에 일시적 강화 마법도 새겼다.
영구적으로 새기려면 마나석을 써야 한다. 과정도 복잡했다. 지금은 한두 시간 유지되는 마법을 쓰는 게 고작이었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절대 나오지 마. 나는 알아서 들어올 테니까.”
“형은요?”
“나가 봐야지. 도울 게 있으면 돕고.”
“조심하세요.”
“로딘 오빠, 조심해. 다치지 말고. 알았지?”
“그건 장담 못 하겠네. 상대가 좀 강해야 말이지.”
로딘은 빈말을 내뱉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항상 냉정하진 않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는 듯이 말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동생들도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했다. 당장 불안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야 혹시나 문제가 생겼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다.
“오빠!”
“형!”
동생들의 외침을 뒤로하고, 로딘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가볍게 심호흡한 후 천천히 갑판으로 올라갔다.
* * *
대런, 제퍼슨, 실비아는 본능적으로 지금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깨달았다.
눈앞의 기사는 셋 중 누가 나서도 할 만하지만, 그 뒤에 선 마법사가 너무 거슬렸다. 셋이 함께 덤벼도 쉽지 않을 강자가 분명했다.
게다가 상대의 기사 숫자가 예상보다 많았다. 40명에서 50명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모이니 거의 100명이었다.
반면 배를 지키는 용병의 숫자는 고작 30명. 게다가 개개인의 실력도 상대가 월등히 뛰어났다.
“안 좋군.”
“맞아. 골치 아프게 됐어.”
걱정 없는 듯한 마법사의 태도가 거슬렸다. 마법사를 믿는 듯한 적 기사들의 표정도 불안했다. 마법사만 없으면 할 만하지만, 저 마법사를 배제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 나하고 실비아가 저 마법사를 맡지. 제퍼슨, 넌 반드시 앞에선 저놈을 죽여야 해. 그것도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빠르게라……, 그게 내 특기지.”
제퍼슨은 얇은 검을 사용하는 속도 위주의 기사. 강자를 상대로 유독 힘을 못 쓰는 단점이 있지만, 비슷하거나 약자를 상대로는 학살이 가능한 검술을 구사했다.
“일단 용병들은……, 흐음.”
도울 여력이 없었다. 저 앞에 선 100명을 상대로 알아서 버티길 기대하는 수밖에.
“그러면 내…….”
피슈융!
전투는 갑작스럽게 벌어졌다. 대화를 하는 와중에 캐스팅을 끝낸 마법사가 커다란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젠장! 일단 피해!”
“흩어져!”
“6서클이다!”
상대의 경지를 알아본 사람은 실비아였다.
그는 영지에 소속되어 있을 때, 6서클 마법사를 본 적이 있었다. 심지어 대련도 해 봤다. 당시에는 거의 힘도 못 쓰고 패했었다.
부아아아앙!
불은 바닥에 닿는 것과 동시에 전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불로 만든 파도를 보는 것 같았다.
“하앗!”
“파압!”
이미 전투가 시작되었다. 대치를 더 이상 이어 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대런, 제퍼슨, 실비아가 달려 나갔다. 그러자 상대 쪽에서도 우두머리로 보이는 5급 기사와 100명의 기사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실비아!”
“알아!”
실비아는 가까이 접근하는 기사를 유려하게 넘기고, 뒤로 달렸다. 어떻게든 마법사에게 달라붙기 위해서였다.
실비아의 움직임에 맞춰, 대런 역시 마법사의 동선을 파악했다. 그리고 놈의 뒤를 노리며 빠르게 쇄도했다.
채챙!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다른 자들에게 막혔다. 스물이 넘는 적이 대런과 실비아의 앞을 막으며, 어떻게든 발을 붙잡았다.
그때, 또다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6서클 마법이었다. 상대 마법사가 사용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이 어떻게든 접근하려는 대런에게 날아왔다.
대런이 급히 몸을 틀었다. 하지만 불꽃은 대런을 지나치기 전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콰아아앙!
“크윽!”
대런이 팔을 부여잡고 옆으로 몸을 돌렸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팔에서 연기가 풀풀 피어올랐다.
다행히 팔이 망가지진 않았다. 팔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폭발했기에, 위력이 줄었다. 대런이 반대쪽으로 몸을 던진 덕도 있었다.
“대런!”
“젠장!”
상처를 무시하고 대런이 다시 달렸다. 대런이 움직이자, 실비아도 다시 앞으로 달렸다.
마법사와 검사의 싸움은 결국 빨리 붙느냐 아니냐로 승패가 갈린다. 공격 거리가 짧은 검사가 마법사를 상대로 붙지 못하면 승산이 없었다.
채챙!
“하앗!”
“꺼져라!”
어떻게든 마법사에게 붙으려는 대런과 실비아였지만, 앞을 막는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무시하기에는 그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홀드! 파이어 블레스트!”
연이어 2개의 마법이 날아왔다. 홀드와 파이어 블레스트.
상대를 붙잡아 두는 효과가 있는 홀드 마법은 고작 3서클 마법이었다. 5급 기사를 상대로 사용해 봐야 채 1초도 붙잡아 둘 수 없었다.
하지만 마법사는 두 마법을 연속으로 사용하면서, 그 짧은 시간을 절대 짧지 않게 만들었다.
홀드에 맞아 잠깐 멈칫했던 대런은 금세 홀드 마법을 풀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전에 파이어 블레스트가 먼저 작렬했다.
퍼엉!
“크윽!”
마법에 제대로 적중당한 대런이 뒤로 한참을 날아갔다. 가슴 앞섶이 시뻘겋게 익은 상태였다. 내부도 흔들려서 입에서 연신 피가 흘렀다.
“대런!”
“젠, 젠장.”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큰 타격을 받았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하아, 안 되나?”
“빌어먹을.”
상대의 우두머리 검사를 상대하는 제퍼슨도 상황이 마냥 좋진 않았다. 분명히 상대를 밀어붙이고는 있지만, 빠르게 승부가 결정될 형세가 아니었다.
상대는 유독 방어가 단단했다. 방패를 쥐고 팅팅 공격을 막아 내는데, 놀랍도록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블랙 썬더 볼트!”
그때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아주 작은 소리라, 정작 마법에 맞은 대상도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