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81)
마법을 품다 (81)
로딘은 갑판으로 올라오자마자, 양쪽의 판세를 읽었다.
‘저 노인이 문젠가?’
로딘은 우선 6서클 마법사로 보이는 노인을 전장에서 배제했다. 자신이 6서클 마법사를 상대하면, 이길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안 좋군.’
양측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전력 차이가 컸다.
제국군의 기사단 단장은 이쪽 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거의 호각으로 싸우고 있었다. 이쪽이 조금 더 유리하지만, 큰 차이는 아니었다.
‘대등하다고 보고.’
30명의 용병은 의미 없었다. 저쪽 기사 5명만 나서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개개인의 실력 차이가 컸다.
남은 기사는 95명. 꽤 실력이 있어 보이는 이쪽 편 기사 둘이서 모두 상대할 수 있을까?
‘아슬아슬해. 내가 가세해야 이길 수 있어.’
로딘까지 기사들과의 싸움에 끼어들기 위해선, 저쪽 6서클 마법사가 없어야 했다.
‘순식간에 처리해야 한다.’
6서클 마법사에게 자신이 붙잡혀 있으면 힘들었다.
최대한 빠르게, 마력을 많이 소모하지 않고, 부상도 입지 않은 상태로 6서클 마법사를 처리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었다.
‘까다롭군.’
로딘은 하이드 마력 서클로 몸에 있는 서클 전부를 가렸다. 그리고 지토에게 부탁해 로브를 평상복 차림으로 바꾸고, 갑판을 벗어났다.
마치 겁에 질린 사람처럼 배에서 조심스럽게 내린 후, 싸움이 없는 쪽으로 빙 돌아서 움직였다.
‘연기가 통해야 할 텐데.’
너무 느리게 움직이진 않았다. 겁에 질려서 급하게 발을 놀리는 사람처럼, 적당히 빠른 속도를 냈다.
꽤 그럴듯한 연기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두려워서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 6서클 마법사인 데이브는 멀리서 도망치는 듯한 사람을 봤지만, 신경을 껐다.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는 약자에게 신경을 쓸 바에야 당장 눈앞에 있는 적들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로딘은 적들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빠져나간 후, 빙 돌아서 항구 안으로 들어갔다. 조심조심 움직인 끝에 드디어 원하는 위치에 도착했다.
‘됐다.’
로딘은 그 자리에서 급하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룬어 영창 소리는 워낙 작아서 항구에 흐르는 바람 소리에 묻혔다.
‘유일한 기회다. 놓치면 안 돼.’
마력이나 오러는 소유자에게 어느 정도의 저항력을 선물한다. 그래서 같은 공격을 당하더라도 오러나 마력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작은 피해를 입는다.
“이 마법은 다를 거야. 블랙 썬더 볼트!”
“크어억!”
로딘의 마법이 전방만 노려보던 6서클 마법사의 머리에 내리꽂혔다.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마법사 데이브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로딘이 만든 마법은 5서클의 블랙 썬더 볼트. 원래 존재하는 썬더 볼트를 개량한 마법이었다.
5서클 마법이지만, 거의 6서클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졌다. 특수군 양성소의 엘로브 위원 역시 블랙 썬더 볼트에 맞고 온몸이 숯덩이가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수인을 모두 블랙 썬더 볼트 하나에만 집중했다. 오직 위력을 최대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였다.
“리플랙션, 헬 레이저.”
로딘은 망설이지 않고 다음 마법을 사용했다.
상대는 쓰러졌지만 죽지 않았다. 완벽하게 마무리할 때까지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리플랙션은 로딘이 만든 팔찌 아티팩트에 새긴 마법으로, 마법을 굴절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혼자서는 별 위력이 없지만, 다른 마법과 함께 썼을 때 진가가 드러났다.
“흣!”
데이브는 뒤이어 날아오는 마법을 봤지만, 방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법이 옆으로 빗나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리 옆으로 지나가는 듯하던 마법은 갑자기 꺾이더니, 데이브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억!”
“후우.”
공격이 빗나갈 걸로 예상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데이브가 그 자리에 무너졌다. 압축된 열기에 꿰뚫린 심장은 이미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리플랙션(굴절) 마법은 본래 6서클 마법사를 속일 정도로 절묘한 마법이 아니었다. 상대가 냉정한 상태였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속지 않았을 것이다.
“어?”
“뭐, 뭐야?”
“적이다! 새로운 놈이 나타났다!”
적들은 자기네 6서클 마법사가 죽은 후에야 로딘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너무 늦은 반응이었다.
“원하는 대로 됐군.”
로딘은 속으로 안도하면서, 바로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6서클 마법사가 죽었지만, 아직 남은 적은 많았다. 지체하면 할수록 아군의 피해만 커질 뿐이었다.
“체인 라이트닝.”
라이트닝 필드를 쓰고 싶었지만, 이 마법은 적아를 구분해서 공격하는 마법이 아니었다. 로딘처럼 절묘하게 계산해서 마법을 쓰더라도 아군의 피해를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4서클인 체인 라이트닝을 사용했다. 마법에 닿을 때마다 번져 가는 번개의 각도를 하나하나 계산해서, 오직 적에게만 번개가 옮겨지게 했다.
상당히 피곤한 작업이지만, 지금처럼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선 할 만했다.
“누구?”
“승객이요.”
“아! 하아.”
팔이 시뻘겋게 익은 남자가 다가와 앞을 막았다. 혹시나 마법사인 로딘에게 다가올 적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로딘은 앞을 막은 기사를 믿고 편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라이트닝 볼트! 라이트닝 볼트!”
2서클의 간단한 마법을 쉬지 않고 날렸다. 마법이 하나 날아갈 때마다 적 기사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죽일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지만, 로딘은 개의치 않았다. 적당한 피해만 주면, 나머진 아군의 용병들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었다.
“매직 애로우! 파이어 애로우! 라이트닝 애로우! 홀드! 윈드 시클! 아이스 스피어! 매직 애로우! 홀드!”
그리 높지 않은 서클의 마법을 그야말로 퍼부었다.
앞을 든든하게 지켜 주는 존재가 있으니, 아예 마법 연습을 하듯 거침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파이어 볼!”
“크악!”
“마법사를 좀…….”
그러다 적이 뭉쳤다 싶으면 폭발 형태의 마법으로 적들의 진형을 깼다.
‘오호, 이쪽도 상당히 강하구나.’
로딘은 아군 진형의 3명을 보며 이채를 발했다.
기사 단장으로 보이는 적과 싸우고 있는 남자 용병. 적 기사들 틈으로 들어가 종횡무진 활약하는 여자 용병, 그리고 자신의 앞을 막은 채로 다가오는 적을 착실하게 베어 넘기고 있는 아군까지.
이 3명은 아군 진형 내에서 유독 강한 실력자였다. 양성소에서 함께 지낸 헤들러, 랜트도 이들보단 한수 아래였다.
“매직 애로우! 파이어 애로우! 아이스 볼트! 파이어 월! 윈드 스피어!”
로딘이 마법을 쓸 때마다 적 1명씩 피해를 입었고, 곧 아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후우.”
“감사합니다. 덕분에 승리했습니다.”
“저 배가 부서져선 저도 곤란해서 말이죠.”
전투가 끝났다. 여기저기 부상자들이 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다치셨군요. 리커버리.”
로딘은 앞을 지켜 준 남자의 팔에 5서클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다행히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법 한 방으로 꽤 많이 치료되었다.
“아! 치유 마법을 하시는군요.”
“예. 그런데 좀 지치네요.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제가 붙잡아 둔 겁니까? 들어가십시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로딘은 피곤한 얼굴로 배에 올랐다. 느릿하게 갑판을 지나, 선실로 내려갔다.
* * *
제대로 된 전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엘로브 위원과 싸운 후로 몇 개월만이었다.
마력 소모가 그렇게 크진 않았는데, 정신적으로 꽤 지쳤다. 만사 다 때려치우고, 어디 휴양지에라도 가서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 마음을 놓지 않는 게 중요했다. 원래 운동도 한계라고 생각될 때 한 번 더 하는 게 효과가 크지 않던가.
로딘 역시 정신적인 피로를 억지로 참고, 프루발 환영 선생의 수업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선원이 찾아왔다. 선원은 선장을 비롯한 식객 셋이 로딘과 그 일행을 초대한다는 전언을 남기고 사라졌다.
“래리, 비앙카.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육포 안 먹어도 돼?”
“그럴 모양이다. 우릴 초대하는 사람이 있네.”
원래 오늘 아침은 배에서 제공되지 않았다. 식사가 정식으로 제공되는 건 오늘 점심부터였다.
그래서 오늘은 육포나 씹으며 식사를 때워야 하나 싶었는데. 때마침 초대를 받았다.
“어? 어디로 가?”
“옷 입어라. 나가자.”
래리와 비앙카가 예전에 로딘이 사 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로딘은 운디네에게 둘을 씻기게 하고, 선실을 나섰다.
초대를 받은 장소는 최상층 선장실 옆이었다.
배의 구조가 복잡해서 길을 찾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선원 1명이 안내를 해 줬다.
똑똑!
“손님 모셔 왔습니다.”
철컥!
문이 열리고, 어제 팔을 다쳤던 남자가 보였다. 로딘은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래리와 비앙카도 집에서 배운 대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윗집 마리에 딸…… 아, 아닌데.”
“하하하. 마법사님 동생들인가 보죠?”
“예. 올해 12살, 10살입니다.”
“어휴, 한창 귀여울 때네. 이런, 제가 길을 막고 있었군요. 들어오세요.”
사내가 길을 열었다.
로딘은 동생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오늘은 육포나 뜯어야 하나 걱정했는데.”
“어제 도움을 받았으니, 이 정도는 해 드려야죠.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습니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 중에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외에는 고요한 식사가 30분가량 이어졌다.
식사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원들이 들어와 빈 그릇을 내갔다. 그리고 중앙 대륙에서 먹는 차인 듯한 검은 액체가 테이블에 놓였다.
“드셔 보십시오. 요즘 중앙 대륙에서 가장 있는 차입니다. 저도 즐겨 마시고요.”
“으악! 써.”
설명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비앙카가 먼저 차를 마셨다. 그리고 마신 그대로 다시 뱉어 냈다.
“아이쿠, 우리 어린 숙녀에게는 너무 썼나 보구나.”
“써요.”
“어쩜 이리 예쁠까?”
헤지스 상단의 식객인 실비아가 비앙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좋은지, 비앙카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헤헤.”
“우리 꼬마 숙녀. 앞으로 언니 말 잘 듣고 착하게 자라야 한다. 알겠지?”
“예?”
“크음.”
‘언니’라는 단어에 로딘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차를 마시고 얼굴을 찌푸린 비앙카보다 더 구겨진 채로, 식사 때문에 잠시 벗었던 로브의 후드를 다시 썼다.
“형이에요.”
“뭐?”
“남자라고요. 로딘 형은 남. 자.”
“아!”
그제야 이 장소의 주인들 얼굴이 어색해졌다. 실비아는 미안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로딘은 맛있는 음식으로 좋았던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불현듯 올해 초에 헤들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 로딘. 나이를 먹을수록 미모가 활짝 펴는구나. 이러다 리아즈 왕국 최고 미녀가 되겠어.’
웃으면서 한 말이지만, 로딘은 그때 꽤 충격을 받았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계속 미러 이미지 마법을 사용해서, 남자다운 표정을 연습할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예. 이해합니다.”
로딘은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지만, 이 자리에서 화를 내긴 싫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남자다운 얼굴은 아니었으니까.
단순히 여성스럽다 정도면 괜찮은데, 자기 얼굴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여자 중에서도 미모로 손가락 안에 드는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변성기가 빨리 와야 해. 변성기가.’
목소리라도 굵어야 남자 취급을 받지 싶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변성기가 오는 때는 마법사에게 그리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갑자기 굵어진 목소리가 룬어 영창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책에서도 그런 내용을 읽었고, 세리온 교관에게도 같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우리 식사하느라 서로 인사도 못 했군요. 저는 이 배의 선장으로, 크론델이라고 합니다. 검술을 조금 익혔지만, 실력은 보잘것없고요. 그냥 헤지스 상단에서 오래 일한 늙은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저는 헤지스 상단의 식객으로 있는 대런입니다.”
“저는…….”
선장인 크론델과 헤지스 상단의 식객이라는 대런, 제퍼슨, 실비아를 소개받았다. 로딘도 자신을 마법사로 소개하고, 동생 둘도 자기 이름을 소개했다.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로딘 마법사님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겁니다.”
“맞습니다. 특히 대런, 저 녀석 팔을 고쳐 주신 것도 고맙습니다. 치료가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했을 겁니다.”
어제 팔을 다친 검사의 이름이 대런이었다. 특수군 양성소에서 한때 자신에게 도전했던 155번과 이름이 같았다.
어제 대런은 꽤 위험한 상태였다. 6서클 마법사의 마법에 맞아서 꽤 크게 다쳤고, 치료가 조금만 늦었다면 팔 하나는 못 쓸 뻔했다.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어제 피해가 꽤 컸던 것 같던데.”
“다행히 죽은 용병은 셋뿐입니다. 부상자가 21명으로 좀 많은데, 포션으로 조금씩 치료하고 있습니다.”
“부상자 치료는 저도 돕겠습니다. 치유 마법을 좀 할 줄 알아서요.”
“아! 안 그래도 어떻게 부탁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선뜻 나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아침 식사는 끝났다.
서로 소개했지만, 딱히 길게 대화할 정도로 상대에게 관심이 많진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