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83)
마법을 품다 (83)
로딘의 마법에 죽은 남자 고웬은 수배 중인 범죄자였다. 잉그렘 제국뿐 아니라 13국 연합의 리아즈 왕국, 베로스 왕국, 패리 왕국에도 수배자 명단에 오른 상태였다.
원래 고웬은 이번 전쟁에 동원된 잉그렘 제국의 병사였다. 그것도 십인장으로, 나름 부하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실수로 상관을 죽인 후, 부대에서 도망쳤다. 뒤늦게 제국군에서 급하게 추격대를 파견했지만, 고웬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탈영병이 된 고웬의 범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기저기 떠돌면서 같은 탈영병들을 휘하로 거두더니, 급기야 100명이 넘는 부하를 거느린 세력을 만들었다.
고웬은 부하들을 이끌고, 13국 연합과 잉그렘 제국군의 진영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을 죽이고 약탈했다. 마을에서는 민간인들을 학살했고, 젊은 여자는 욕구를 풀 대상으로 만들었다.
승승장구하던 고웬은 패리 왕국의 북부에서 발목이 잡혔다. 잉그렘 제국의 별동대에게 걸린 것이다.
단 한 번의 기습으로 고웬 패거리들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고웬은 살기 위해서 몇 명만 데리고 도망쳤고, 이곳 패리 왕국의 항구 도시에 이르게 되었다.
“꺼져. 너희들도 죽여 버리기 전에.”
“예, 예. 알겠습니다.”
로딘의 차가운 말에 살아남은 자들이 허겁지겁 도망쳤다. 죽은 고웬의 시체를 챙길 생각도 못 했다.
로딘은 디그 마법으로 땅을 파서 시체를 처리했다. 좀 번거로웠지만, 이곳이 도시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시체를 그냥 두면 치안대가 조사하겠다고 찾아올 게 뻔했다.
“래리, 비앙카. 오늘 일로 느낀 거 없어?”
“느낀 거요?”
“음……, 음. 나쁜 아저씨는 죽어요?”
로딘은 동생들을 데리고 여관으로 돌아가며,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래리는 오늘 일로 느낀 게 많은 표정이었다. 비앙카도 충격을 받았는지, 아직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많다. 그리고 래리, 네가 가진 힘으로는 동생을 지킬 수 없지. 그러니 밖으로 나올 때는 두 번 세 번 생각해라. 아니면 너뿐 아니라 비앙카도 죽는다.”
“아! 제 잘못이군요.”
“그리고 비앙카. 만약 네가 래리를 졸라서 나온 거라면, 넌 오늘 래리를 죽일 뻔한 거다. 네 어리광이 너뿐 아니라 래리까지 위험하게 할 수 있다. 명심해. 세상은 너희들에게 몹시 위험한 곳이라는걸.”
“아! 래리 오빠. 미안.”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한 하루였다. 로딘도 세상은 귀찮은 일이 아주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무도 몰랐지만, 고웬은 로딘의 부모와 형을 죽인 원수였다. 오늘 로딘은 자신도 모르게 부모와 형의 원수를 갚았다.
하지만 정작 로딘은 그 사실을 몰랐다. 심지어 고웬도 원한이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모른 채 죽었다.
* * *
다행히 다음 날까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로딘과 래리, 비앙카는 여관에서 여독을 충분히 풀고, 다시 배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이후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종종 항구에 들렀지만, 이전과 같은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다.
“흐음, 드디어 끝났구나.”
언어가 통한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부터 프루발 환영 선생의 수업은 정말 쉬웠다. 내용 자체가 기초에서 중등 수준이었기에 로딘에게는 그저 언어를 익히는 기회일 뿐이었다.
“드디어 2시로 넘어가는구나.”
회중시계의 시침을 2로 옮겼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언어가 익숙해졌다는 게 중요했다.
“시작할까.”
회중시계의 시침을 2시로 고정했다. 프루발의 환영 선생은 ‘고등 과정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수업을 시작했다.
‘으음, 수준이 꽤 높다.’
첫 수업은 수학이었는데, 도서관에서 봤던 수학보다 훨씬 복잡한 공식이 등장했다.
로딘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럴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시침이 1일 때 도서관에서 배운 수학 수준의 최상위 내용이 나왔다. 그렇다면 시침 2부터 시작하는 수업은 더 수준이 높은 게 당연했다.
‘오호.’
때로는 감탄사를 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로딘은 수업에 집중했다.
수학에 이어서 지리, 행정, 건축, 법,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수업이 이어졌다.
로딘은 불필요한 수업이라고 건너뛰지 않았다. 결국 다 알고 있어야 나중에 진행될 수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역사 수업도 있으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 역사가 수업 내용에서 빠져 있었다. 혹시나 해서 분침을 몇 번 앞으로 돌려 봤는데도 역사는 나오지 않았다.
프루발의 역사는 적어도 5천 년은 지난 과거였다. 마도 제국과 겹치거나, 그보다 더 오랜 옛날이었다.
그 당시의 역사를 알 수 있다면 마도 제국이 어떻게 됐는지, 프루발과 마도 제국이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아쉬움을 접고,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베로스 왕국의 항구 도시 랑스부터 13국 연합의 최동단 아스란 왕국의 항구 도시 엘페소 근처까지 걸린 시간은 3개월이었다.
로딘은 시간이 날 때마다 프루발 환영 선생의 교육을 받으며, 머릿속에 많은 것들을 채워 넣었다.
“수학은 확실히 수준이 높아.”
로딘은 그간 자신의 수학 실력이 부족하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법에 필요한 수학뿐 아니라,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폭넓고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자칭 수학자라는 크루퍼 교관도 자신보다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다. 마법을 사용할 때도 누구보다 빠른 수식 계산으로 남들을 압도해 왔다.
그런데 프루발의 수학은 자신의 수준을 까마득히 웃도는 수준이었다. 마치 성인과 어린아이처럼 격차가 컸다.
생전 처음 보는 수학 기호들과 공식에 질리는 기분이었다.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동안 자신이 배운 게 수학이 맞나 싶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네.”
오후 수업을 조금 일찍 끝냈다. 오늘은 왠지 머리를 좀 식히고 싶었다.
“애들은 애들이구나.”
납치 사건이 있었던 날부터 한동안 래리와 비앙카는 로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납치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까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그 생활은 채 열흘도 가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슬금슬금 갑판을 들락거리더니, 요즘은 매일 갑판에 나가서 놀다가 들어왔다. 심지어 식사 시간에 늦은 적도 있었다.
“뭐 하고 놀고 있나?”
로딘은 래리와 비앙카에게 운디네를 붙여 놨다. 위험한 상황이 생겼다면 바로 마력 소모량에 변화가 생겼을 터.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건 안전하게 잘 놀고 있다는 뜻이었다.
갑판으로 올라갔다. 꽤 많은 승객이 갑판에서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헛. 참 나.”
갑판 한쪽에 캐플턴호의 선장인 크론델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래리와 비앙카가 간식을 오물거리며 바다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여기 있었어?”
“어? 형!”
“로딘 오빠!”
“로딘 씨, 나오셨군요. 이쪽에 앉으시죠.”
크론델 선장이 권한 자리에 앉았다.
선장이라서일까. 앉아 있는 의자가 고급 여관에서나 보던 푹신한 소파였다. 래리와 비앙카도 소파에 앉아 있었고, 크론델 역시 소파에 반쯤 기댄 채였다.
“감사합니다. 바람이 좋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해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건지, 요즘 유독 바람이 적당합니다.”
바람이 너무 강하면 배가 위험해지고, 바람이 너무 없으면 속도를 낼 수 없다. 지금 불고 있는 이 정도 바람이 항해하기에 가장 좋았다.
“이런 날이 드문가 보죠?”
“드물지요. 바다는 변덕스럽고, 고약한 성품을 가지고 있거든요. 순탄하게 항해하는 배를 보면 꼭 심술을 부린답니다.”
“계속 이런 바람이 불기를 바라야겠네요. 그런데 너희들은 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
“같이 노는 친구들이 있는데, 엄마가 불러서 들어갔어요.”
비앙카의 표정이 시무룩해 보였다. 래리의 표정은 평온한 걸로 봐서 비앙카의 친구인 것 같았다.
“형은 어쩐 일로 나왔어요?”
“그냥 바람이나 좀 쐬고 싶어서. 나오니까 좋네. 앞으로 종종 나와야겠다.”
“맞습니다. 로딘 씨, 자주 나오십시오. 이번 승객 중에는 알아 두면 도움 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가요?”
로딘은 갑판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쭈욱 훑어봤다.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불편하십니까?”
“조금은 그렇죠.”
“어차피 저 사람들 대부분 피난 가는 겁니다. 아직은 자기가 귀족이랍시고 콧대를 높이죠. 하지만 중앙 대륙으로 가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중앙 대륙이라고 서대륙의 귀족들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나라의 귀족이든, 귀족이라면 그만한 대우를 해 주는 편이었다.
다만 그 나라가 멀쩡히 존재할 때의 얘기였다.
망한 나라의 귀족은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돈이라도 많이 가지고 있다면 돈 많은 평민 취급을 해 주겠지만, 돈조차 없다면 그냥 한때 귀족이었던 평민에 불과했다.
“어찌 됐든 전화(戰火)는 피할 수 있겠죠. 중앙 대륙은 서대륙보다 평화롭지 않습니까?”
“하하하, 잘못 알고 계시는 겁니다. 중앙 대륙은 서대륙, 동대륙하고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전쟁이 자주 벌어지는 곳입니다. 전쟁 횟수만 따지면 서대륙과 동대륙을 합쳐도 중앙 대륙을 못 따라올 겁니다.”
“그래요? 평화롭다는 건 헛소문입니까?”
로딘은 브론에게 중앙 대륙이 평화롭다는 말을 들었다. 브론은 중앙 대륙 사람이니 잘못 알고 있었다고 보긴 어려웠다.
혹시 속인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브론이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었다.
“으음, 뭐랄까. 이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양 대륙의 문화가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서대륙은 국가가 중심이죠. 실제로 국왕의 권력이 정말 강하고, 국왕의 한마디로 그 나라의 모든 것들이 정해집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전혀 당연하지 않습니다. 중앙 대륙은 가문이 중심이거든요. 수많은 가문이 자기 영지에서 왕처럼 군림합니다. 그런 가문 중에는 검술 가문, 마법 가문도 있지만, 학자 가문과 상인 가문도 있습니다.”
로딘은 국가가 아니라 가문 중심이라는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서대륙 역시 귀족 가문은 자기 영지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이 한마디면 이해가 될 겁니다. 영지의 법은 그 영지의 영주가 만듭니다. 왕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죠. 반역만 아니면 사실상 영지 내에서 무제한의 권한을 가진 이들이 영주입니다.”
“흐음. 난장판일 것 같은데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영지가 없는 건 아니고요. 하지만 영지는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는 영주 가문의 재산입니다. 영주들은 자기 땅이 망가지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대륙의 국왕보다 더 세심하게 영지를 관리하죠.”
국왕보다 영지를 더 세심하게 관리한다는 부분이 귀에 꽂혔다.
국가보다 영지의 크기가 작으니, 세심하게 살피기도 쉬울 것이다. 또 인구가 적으니, 영지민 관리도 더 편할 테고.
“그 정도로 자치권이 강하다면, 국왕은 아예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대부분의 상황에선 그렇습니다. 국왕은 그저 수많은 가문 중 가장 큰 가문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국왕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혹시 외세에 맞서 싸우는 겁니까?”
“정확합니다. 왕실은 다른 일에는 나서지 않지만 단 하나, 다른 나라의 공격이 있을 땐 전력으로 영지를 보호합니다. 그 대가로 매년 영지 세금의 10%를 받고 있죠.”
서대륙의 리아즈 왕국은 영지로부터 매년 40%의 세금을 걷는다. 워낙 많이 걷어 가니, 귀족들은 영지의 살림을 위해서 40%보다 더 많이 걷게 되고 그건 곧 영지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고작 10%로 나라를 지킨다……, 겨우 그걸로 군 전력이 유지가 될까요?”
“물론 이런 체제를 그대로 서대륙에 옮겨 놓으면 문제가 되죠. 서대륙은 일단 병력을 움직이면 최소 수십만 명이니까. 하지만 중앙 대륙은 국왕이 직접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보통 수만 명입니다. 많은 곳도 10만 명이 채 안 됩니다.”
서로 고만고만하니, 10%만으로도 유지가 된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어떤 나라도 세금을 잔뜩 걷어서 수십만 명의 병력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재미있군요. 그러면 영지의 영지민이 되는 건 쉽습니까?”
“너무 과한 전력은 안 됩니다. 아마 100명만 넘어가도 좋게 보지 않을 겁니다.”
“영지 내에서 너무 큰 세력이 되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중앙 대륙은 소수 정예를 선호합니다.”
특수군 양성소의 크세르 위원과 하비뇽 위원은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훈련생 중에서 나름 정예만 데리고 중앙 대륙행을 결정한 것도 영주들의 과도한 경계와 견제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까 전쟁이 자주 벌어진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아! 그건 영지전을 말하는 겁니다. 영지들끼리는 정말 자주 싸웁니다. 작은 이권 때문에 싸우고,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온갖 이유로 싸우죠.”
“크론델 선장님은 제가 어떤 곳에 정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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