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84)
마법을 품다 (84)
로딘은 크론델 선장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고개를 깊게 숙였다.
소문으로만 정보를 들은 자신보다 서대륙과 동대륙을 매년 오가는 크론델 선장의 안목이 더 믿을 만했다.
“로딘 씨가 뭘 바라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이름을 알리고, 영주에게 등용되길 바란다면 작은 영지가 좋습니다. 특히 신흥 귀족의 영지는 정말 자주 싸웁니다. 그만큼 고용되어 활약할 기회가 많죠.”
“제 성격하곤 안 맞네요.”
“안락한 생활을 원한다면 반대로 하시면 됩니다. 크고 강한 영지, 전통이 오래된 영지가 좋죠.”
오래되었다는 건 이미 자리를 확고하게 잡았다는 뜻이다. 또 그 시간만큼 수많은 도전을 이겨 냈다는 의미도 되었다.
“크고 강한 영지라……, 고맙습니다.”
“어떤 가문인지도 알아 두시면 좋죠. 귀족들은 크게 마법 가문, 검술 가문, 학자 가문, 상인 가문. 이렇게 넷이 있습니다.”
“아까도 들었는데, 학자 가문과 상인 가문이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모든 학자와 모든 상인이 귀족인 건 아니죠. 하지만 오랫동안 귀족으로 버텨 온 가문도 많습니다.”
학자 가문과 상인 가문은 말 그대로 영주의 가문이 대대로 학자이거나 상인이었던 이들이다. 당연히 영주 개인의 무력은 그리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도전을 이겨 냈다. 강자들을 고용해서 부족한 무력을 채운 것이다.
“놀랍네요.”
“중앙 대륙에서 돈은 정말 중요합니다. 용병이 많고, 돈에 움직이는 강자들도 많거든요.”
“그러면 가문의 특징은 어떻게 됩니까?”
“마법 가문은 말 그대로 마법사를 우대하죠. 영지전에 도움을 청하지 않더라도 마법사라면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행정 절차 같은 건 거의 무사통과죠.”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스스로를 고고하고 선택받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마법사가 아니면 깊이 사귀지 않는 편이었다.
“검술 가문은요?”
“그들은 급하게 고용한 용병들을 믿지 않습니다. 뜨내기 검사들도 싫어하죠. 오직 자기들이 장시간 공들여 키운 기사들이나 영지의 검관에서 장시간 검을 배운 이들만 믿습니다. 로딘 씨가 검술 가문의 영지에 자리 잡는다면, 평생 영주와 엮일 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로딘은 무려 5서클 마법사였다. 심지어 대런, 제퍼슨, 실비아, 크론델 선장은 로딘을 6서클 마법사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영주와 엮이지 않는다니. 자기 무력에 대한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갔다.
“재미있네요.”
“치안대와 경비는 병사를 쓰지만, 그 외에는 전부 기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상인 가문하고 학자 가문은요?”
“상인 가문과 학자 가문은 합리적이죠. 그리고 돈으로 사람을 쓰는 걸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로딘 씨가 마법사라는 게 알려지면, 무조건 찾아갈 겁니다. 그리고 고용하기 위해 꽤 열심히 매달릴 겁니다.”
크론델 선장의 조언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로딘은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지, 어느 정도는 마음을 정했다.
‘내가 이상한 건가?’
로딘은 마법사였다. 그것도 나이에 비해 상당한 수준인 5서클 마법사.
그런데도 마음으로 결정한 곳은 기사 가문이었다. 왠지 기사 가문의 영지에 자리 잡으면 귀찮은 일을 겪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중앙 대륙은 전체적으로 합리적이고, 효율을 중시합니다. 서대륙에선 검사의 경지를 ‘데나’급이라고 하죠? 중앙 대륙은 그조차 길다고 그냥 ‘급’이라고만 부릅니다.”
“어떤 분위기인지 짐작이 되네요.”
이런 성향은 로딘도 좋아했다. 특수군 양성소에서도 겉치레를 중시하는 예법 수업이 제일 싫었다.
“저기 오늘 목적지가 보이는군요.”
“그러게요. 서대륙의 마지막 도시네요.”
멀리 보이는 도시는 아스란 왕국의 항구 도시 엘페소였다. 다른 도시에서처럼 이곳에서도 이틀을 묵고, 모레 아침에 출항할 예정이었다.
* * *
캐플턴호가 엘페소에 정박했다. 마지막 항구라는 걸 아는 승객들이 일제히 내려 항구의 여관을 찾아갔다.
“우리도 내리자.”
“형, 안 내리면 안 돼? 내려봐야 할 것도 없는데.”
“오늘은 내가 용건이 있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엘페소는 브론 일행이 원래 배를 타려고 했었던 항구 도시였다. 물론 아직은 도착하려면 멀었다. 대략 반년은 더 지나야 도착하지 않을까 싶었다.
동생들과 배에서 내려 여관에 숙박했다. 이틀을 계산했고, 바로 저녁을 먹었다.
래리, 비앙카는 식사가 끝났는데도 나가지 않았다. 배에서는 겁 없이 잘도 돌아다녔지만, 항구에서는 여전히 외출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로딘은 평소처럼 프루발 환영 선생의 수업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회중시계 수업이 2시로 접어들면서, 로딘은 수업 시간이 더 기다려졌다.
이미 아는 걸 지루하게 또 들었던 1시 수업보다 모르는 걸 새롭게 배우는 2시 수업이 더 즐거웠다.
다음 날, 로딘은 아침 식사만 마치고 바로 여관을 나섰다. 그리고 서대륙에서 싸게 구할 수 있는 약초를 사들였다.
오늘 산 약초는 고대 비전의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재료였다. 중앙 대륙에서도 살 수 없는 약초는 아니지만, 서대륙에서 사는 게 훨씬 쌌다.
딱 10리터 만들 분량만 사서 여관으로 돌아왔다. 가격은 정확히 388골드가 들었다.
약초 구입을 끝낸 후에는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반지와 목걸이, 팔찌를 2세트 사고, 비앙카 머리카락 색에 맞는 머리핀도 몇 개 샀다.
“일과 끝이다. 공부하러 가자.”
“예.”
다음 날, 늦지 않게 캐플턴 호에 승선했다. 곧 배가 출항하자, 로딘은 어제 사 둔 장신구들을 늘어놓았다.
“형, 뭐해?”
“너희들 줄 선물 만들려고.”
“무슨 선물?”
“너희들을 지켜 줄 수 있는 물건으로.”
아티팩트가 뭔지 설명하면 얘기가 길어진다. 그래서 설명을 대충 뭉뚱그리고 장신구에 집중했다.
‘마나석은 하급이야. 고위 마법을 담을 순 없어. 기껏해야 2서클 마법 아니면 1서클 마법 여러 개 정도.’
로딘은 아티팩트 제작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헤들러와 랜트에게도 아티팩트를 만들어 줬고, 자신이 쓰려고 만든 아티팩트에도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프루발의 상자와 회중시계, 반지를 얻으면서 자신감이 팍 꺾였다.
프루발의 아티팩트는 자기가 만든 아티팩트를 쓰레기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 수준에 못 이를 거로 생각하니, 자괴감마저 느껴졌다.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계속 만들어 보면서 실력을 키우고, 프루발의 환영 수업을 꾸준히 들으면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야 했다.
‘하나는 무조건 신호를 보내는 용도로 만들어야겠어.’
언제까지고 동생들이 외출할 때마다 운디네를 보낼 순 없었다.
운디네는 소환된 정령이고, 정령은 정령사와 떨어져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운디네를 래리와 비앙카에게 붙이는 건 운디네가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과 같았다.
‘잘 안 빼는 팔찌가 좋겠지.’
어제 새로 산 팔찌에 위치를 확인하는 좌표 계산 룬어를 새기고, 특정한 시동어에 신호가 오도록 가지고 있던 팔찌와 연동했다.
‘팔찌는 이걸로 끝났고.’
다음은 반지와 목걸이. 먼저 반지를 꺼내 놓고, 잠시 새길 마법을 고민했다.
‘페더 폴이 좋겠네.’
깃털처럼 떨어진다는 이름처럼, 추락 속도를 늦춰서 부상을 피할 수 있는 효과가 담긴 마법이었다.
5서클 플라이 마법이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면, 3서클 혹은 4서클 레비테이션은 허공으로 떠오르는 마법이었다.
이에 비해 2서클인 페더 폴은 천천히 떨어지게 하는 마법이다. 당연히 플라이와 레비테이션보단 수준이 낮았다.
하지만 반지에 새길 수 있는 마법은 이 정도가 한계였다. 더 높은 수준의 마법을 새기려면 크기가 커지거나, 더 좋은 마나석을 써야 했다.
‘아니면 내 실력이 더 나아져야겠지.’
지금 당장 실력을 몇 단계씩 끌어 올릴 수는 없으니,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남은 건 목걸이.
여기 새길 마법은 이미 결정했다.
‘마력 실드나 아쿠아 실드가 좋은데.’
둘 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소유자를 보호하는 마법이었다.
마력 실드는 속성을 방어하는 능력은 약했지만, 물리적인 공격을 막는 데는 쓸 만했다. 불량한 뒷골목 양아치나 거친 용병들을 상대로 적합한 마법이었다.
이에 비해 아쿠아 실드는 속성. 특히 불 속성을 막는 능력이 뛰어났다.
불 계열 마법은 마법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속성. 상대가 마법사라면 아쿠아 실드를 새기는 게 나은 선택이었다.
‘마력 실드가 낫겠지.’
마법사보다는 양아치나 용병을 만나서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았다. 지금은 확률 높은 일을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운 나쁘게 만약 마법사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아이들을 노린다면?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다.
“으으으.”
마법을 모두 새겼다. 목걸이, 팔찌, 반지. 래리와 비앙카에게 줄 액세서리를 아티팩트로 만들었다.
거의 5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일에 몰두했더니, 온몸이 뻐근했다. 목은 가볍게 돌리기만 했는데 뚜두둑 소리가 났다.
“이걸 언제 줄 수 있으려나?”
아티팩트를 만들긴 했지만, 목걸이와 반지는 아이들에게 줘 봐야 소용없었다.
마력 실드 마법이 담긴 목걸이, 페더 폴 마법이 담긴 반지는 발동형 아티팩트.
약간의 마력이나 오러라도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위치 좌표를 항시 알려 주는 팔찌는 지속 형태의 아티팩트라 지금도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었다. 대신 처음 마법을 발동할 때는 도와줘야 했다.
“좀 쉬자.”
바로 프루발 환영 수업을 들으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크론델 선장의 조언을 들은 날, 종종 갑판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특별한 용건이 없더라도 머리를 식히기에 좋은 장소였다.
갑판은 오늘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곳곳에 앉아서 차와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많았고, 해먹에 누워서 여유롭게 잠든 사람들도 있었다.
“음악만 있으면 파티장이네.”
갑판을 쭉 훑어봤다. 오늘도 크론델 선장은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바다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어? 저 아이가 비앙카 친구인가 보네.”
비앙카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와 갑판을 열심히 뛰어다녔다.
비앙카가 도망가면 그 친구가 쪼르르 따르기도 하고, 또 반대로 그 친구가 도망가면 비앙카가 까르르 웃으면서 쫓았다.
“즐거워 보이네.”
“어? 형!”
비앙카와 그 친구를 바라보며 웃고 있던 래리가 로딘을 발견했다.
로딘은 언제나처럼 후드를 푹 눌러쓴 상태였다.
옷차림만 보면 얼굴을 가리고 음흉한 일을 꾸미는 사람 같지만, 래리는 로딘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형도 참 불편하겠네.”
“여기 있었어?”
“예. 육지하곤 너무 달라요. 전쟁을 걱정하는 사람도 없고요.”
래리의 말처럼 모두가 웃고 있었다. 전쟁에 대한 걱정으로 시름에 잠긴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좋네. 혹시 괴롭히는 사람은 없어?”
“없어요.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래리의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에 로딘은 실소가 터질 뻔했다. 저 많은 사람이 전부 좋은 사람일 리가 있나.
사람들이 아이들에게도 친절한 이유는 이곳이 캐플턴호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뱃값을 자랑하는 배의 승객이니, 당연히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배의 승객은 보통 귀족이거나 상단을 운영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특별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함부로 상대를 무시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큰코다칠 수 있었다.
게다가 래리와 비앙카가 좋은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화려하진 않아도 좋은 옷감으로 만든 비싼 옷을 사 줬는데, 그 덕분에 래리와 비앙카는 좀 사는 집 아이들처럼 보였다.
“비앙카 잘 좀 봐 줘.”
“예. 걱정하지 마세요.”
래리를 두고, 크론델 선장이 있는 방향으로 갔다. 로딘의 접근을 알아챈 크론델 선장이 웃으며 앞의 자리를 권했다.
“또 보는군요. 로딘 씨.”
“예, 선장님. 오늘도 바람이 적당해서 좋네요.”
“계속 이런 바람이면 좋겠지요.”
바람이 몸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시원한 바람이 여름의 더위를 씻어 주고, 새로운 활력을 주는 듯했다.
“중앙 대륙에 정착할 생각이라고 하셨죠?”
“예. 동생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그럴 생각입니다.”
래리와 비앙카도 성장해야 하지만, 로딘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지낼 곳이 필요했다.
도서관의 심화 서고에 있던 마법은 두서가 없었다. 위원장인 크레이트도 자기 마법을 생각나는 대로 마구 적어서 책으로 만들었고, 리아즈 왕국에 보관되어 있던 마법 기록들도 순서 가리지 않고 마구 뒤섞여 있었다.
일단 다 외웠지만, 스스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또 프루발의 환영 수업도 끝까지 들어야 했다.
“테비아 왕국에 자리 잡을 생각입니까?”
“사실 어디에 자리 잡을지 결정한 건 아닙니다. 거기가 서대륙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라, 일단 테비아 왕국으로 가기로 한 겁니다.”
가장 빨리 출발하는 중앙 대륙행 배가 캐플턴호였고, 이 배의 종착지가 테비아 왕국의 항구 도시 하손이었다. 아마 다른 왕국으로 가는 배를 더 빨리 탈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 배를 탔을 것이다.
“그렇다면 레녹스 왕국은 어떠십니까? 리치몬드 후작령이 로딘 씨에게 어울릴 겁니다.”
“리치몬드 후작령은 어떤 곳입니까? 전에 크론델 선장님이 말씀하신 분류라면요?”
“검술 가문이라고 봐야죠. 리치몬드 후작님은 마스터급 기사니까요.”
“아! 마스터.”
마스터라는 말에 로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동시에 본능적인 호기심이 싹텄다.
말로만 들었지, 아직 7서클 대마법사나 마스터를 본 적이 없었다. 한 번쯤은 만나 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적이 아닌 사이로.
“음?”
“해적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