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85)
마법을 품다 (85)
갑판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평화롭던 분위기가 돌변했다.
선원들은 다급하게 뛰어다니며, 돛과 닻을 점검하고 다녔다. 전투를 위해 고용된 용병들은 병장기를 잡고 갑판에 자라 잡았고, 선원 일부는 갑판에 나와 있던 승객들을 선실로 안내했다.
“래리! 비앙카 데리고 선실로 들어가.”
“형은요?”
“난 상황 보고 움직일게.”
“예. 조심하세요.”
래리가 비앙카의 손을 잡고 선실로 내려갔다.
출항 전의 혼란스러웠던 때와 다르게 오늘은 승객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 배에 무려 5급 검사 3명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이었다.
“흐음. 해적이라……, 함께 가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됩니까?”
“우리 배의 최고 마법사 전력 아닙니까? 오히려 부탁을 드려야죠.”
“저도 궁금하네요.”
크론델 선장이 선장실로 올라갔다. 로딘은 그 뒤를 따르며, 선원들의 질서 정연한 모습을 구경했다.
‘훈련이 잘되어 있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야.’
크론델 선장을 따라 선장실에 들어갔다. 파수를 보던 선원 1명이 급하게 다가왔다.
“해적선이라고?”
“예. 우리가 목표는 아니고 앞에서 이미 상선을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숫자는?”
“상선은 규모 80 정도이며, 갑판에 무장 병력이 대기 중입니다. 해적선은 70에서 80 규모의 배 한 척과 60에서 70 규모의 배 4척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로딘도 함께 보고를 들으며, 대강의 상황을 파악했다. 다만 규모를 설명하는 숫자만 이해가 안 되었다.
“상당한 숫자군. 아! 로딘 씨, 숫자는 배의 크기를 말하는 겁니다. 저희 상선의 규모가 91입니다.”
“그렇군요.”
이 상선의 규모를 들으니, 다른 숫자들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아직 전투가 시작되진 않은 건가?”
“예. 갑판에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상 석궁은?”
“양쪽 모두 보이지 않습니다.”
선상 석궁은 배에 장착하는 거대한 석궁을 말한다. 사용하는 볼트 역시 상당한 크기라, 배를 정확히 맞힐 수만 있다면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 배들이 선상 석궁을 다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 무게와 크기 때문에 화물과 인력을 적재하는 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마력포가 없구나.’
책에서 본 고대의 이야기에는 마력포가 자주 등장했다. 포 자체는 선상 석궁 못지않게 크지만, 따로 거대한 볼트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공간을 적게 차지했다.
그러면서도 위력은 선상 석궁하고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책에는 최상급 마력포 한 방으로 배를 두 동강 낸 얘기도 나왔다.
“결국 백병전이구나. 가까이 댄다.”
“개입하실 생각입니까?”
“대런 님하고 제퍼슨 님, 실비아 님한테 도움을 청할 생각이다.”
“아! 그분들이라면야.”
서대륙에선 워낙 거대한 규모의 전쟁이 벌어져서 5데나급 검사와 5서클 마법사가 흔해 보였을 뿐. 실제로 5급 검사나 5서클 마법사는 엄청나게 희귀하고 강력한 전력이었다.
중앙 대륙의 어지간한 영지에선 5급 검사 1명도 보기 힘들었다. 중상위 귀족 정도라면 5급 검사 한두 명은 있지만, 그들이 직접 나서서 싸우는 일은 드물었다.
존재만으로 영지전의 억지력을 가지는 존재. 그만큼 귀한 전력이 5급 검사이며 5서클 마법사였다.
“배를 서서히 붙여라. 난 응접실에 갔다 오겠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저는 주변 좀 살펴보겠습니다.”
로딘은 선장실을 나와서 바로 플라이 마법을 사용했다. 하늘 높이 뜬 상태로 주변을 찬찬히 살폈다.
지토를 보내도 되지만, 보는 눈이 많았다.
로딘은 입고 있던 옷이 환수로 변하는 장면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진 않았다.
‘으음?’
높은 곳에 올라오니, 전방에서 상선을 둘러싸고 접근 중인 해적선들이 보였다. 또 반대쪽으로 저 멀리 먹구름도 볼 수 있었다.
‘가까워지나?’
먹구름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주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날씨는 끝났구나.’
어떻게 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로딘은 해적선 방향으로 날아갔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니, 해적선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로딘은 간단한 마력 실드만으로 화살을 막아 냈다.
팅! 팅!
거리가 아직 멀었다. 화살이 닿긴 했지만, 위력은 약했다. 2서클 마법만으로 막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지.’
로딘은 싸우려고 나선 게 아니었다. 애초에 남의 싸움에 끼어드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다.
출항 전 랑스에서는 자칫 배가 부서지면 항해에 문제가 생기게 되니, 어쩔 수 없이 나섰을 뿐이다. 배와 상관없는 장소에서 싸웠다면, 모른 척했을 것이다.
오늘은 배가 위험할 일은 없었다. 대런, 제퍼슨, 실비아가 있는 이상 배의 안전은 확보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항해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은 낮았다.
“혹시 있으려나? 이글 아이.”
로딘이 나선 건 혹시나 공격받는 선박에 헤들러, 랜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겸사겸사 크세르 위원이나 하비뇽 위원이 보이면 처리할 생각도 있었다.
“아니구나.”
상선의 갑판에서 전투를 준비 중인 사람 중에 아는 얼굴은 없었다. 선원들은 대부분 20대의 남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선장으로 보이는 사람도 나이가 많지 않았다.
‘아티팩트인가?’
상선에서 마력이 느껴졌다. 꽤 고위 아티팩트인지, 풍기는 마력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로딘은 바로 관심을 껐다. 어떤 아티팩트인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남의 물건일 뿐이었다.
“배는 심하게 낡았는데.”
상황 파악만 끝내고, 로딘은 다시 캐플턴호로 돌아왔다. 때마침 5급 검사인 대런, 제퍼슨, 실비아가 갑판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로딘 씨, 정찰 다녀오신 거예요?”
“예. 전력이 어떤지 좀 살펴봤어요. 죄다 검사들이라, 봐도 모르겠더군요.”
마법사가 없다는 언질을 줬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한 도움이었다.
“하하하,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로딘 씨는 구경만 하십시오.”
“예. 그러겠습니다.”
캐플턴호는 점점 해적선과 가까워졌다.
그사이에 해적선 5척이 앞서 포위당했던 상선에 먼저 닿았다.
배와 배 사이에 나무다리가 놓이고, 그 위를 해적들이 달리며 상선에 난입했다.
‘싸우기 시작하네.’
멀어서 전투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남은 이글 아이 마법으로 보면,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고 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쪽은 관심 둘 필요도 없다는 건가?’
저들은 뒤에서 캐플턴호가 나타났음에도 개의치 않고, 원래 목표로 잡은 상선부터 공격했다.
해적선 5척이면 어지간한 상선 2~3척은 손쉽게 털어 먹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상선의 등장을 오히려 맛 좋은 먹잇감으로 여기는 듯했다.
“막아!”
“하앗!”
“왼쪽부터 처리해!”
캐플턴호는 전투 중인 상선과 계속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상선에서 벌어진 전투 소리도 바닷바람을 타고 조금씩 전해졌다.
쿵! 끼이익!
상선 쪽으로 들어가면서 포위 중인 해적선과 부딪혔다. 작은 진동이 느껴졌지만, 캐플턴호는 계속 무시하고 전진했다.
쿠웅!
또 한 번의 진동과 함께 드디어 전투가 한창 진행 중인 상선에 닿았다.
“다리를 걸어라!”
“다리를 걸어! 빨리! 빨리!”
선원들이 빠르게 움직였지만, 5급 검사인 대런, 제퍼슨, 실비아가 더 빨랐다.
그들은 다리가 채 걸리기도 전에 갑판 난간을 뛰어넘더니, 상대편의 상선으로 넘어갔다.
그 후부터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해적들에게 5급 검사는 천재지변과 다를 바 없었다.
제퍼슨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1명씩 목숨이 사라졌다. 여럿이 공격해 봐야 대런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실비아는 외곽을 돌면서 해적 복장을 한 이들을 순식간에 줄여 나갔다.
“대단하군요.”
“선장님은 저분들의 싸움을 많이 본 게 아닙니까?”
“아니요. 저도 이번 항해에서 처음으로 저분들을 만났습니다. 저분들은 헤지스 상단의 식객분들입니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상단을 나서는 일이 거의 없지요.”
전투는 점점 끝을 향해갔다. 5급 검사의 활약에 해적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패배를 예감했는지, 해적선 한 척이 슬쩍 다리를 치웠다. 동료를 내버려두고 도망칠 속셈이었다.
한 척이 움직이니, 다른 해적선들도 상선에서 다리를 치우고, 거리를 벌렸다.
그때, 몸놀림이 가장 가벼운 제퍼슨이 갑판을 딛고 날았다. 바다 위를 훌쩍 뛰어넘은 제퍼슨이 멀어지려는 해적선으로 뛰어들었다.
제퍼슨이 움직이니, 실비아 역시 다른 해적선으로 뛰었다. 갑판을 밟고 움직이는 모습이 경쾌했다.
둘이 떠나고, 원래의 전장이었던 상선에는 대런만 남았다. 남은 해적은 대략 스물. 하지만 대런 혼자서 그들을 죄다 쓸어 버렸다.
“생포 따위는 없군요.”
“예. 지금 우리 배가 향하는 테비아 왕국은 해적들에게 현상금을 걸지 않습니다. 포상도 없고요. 그러니 데려가 봐야 짐밖에 안 되지요.”
“그래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애초에 테비아 왕국이 해적왕이었던 자가 수백 년 전에 세운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해적들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요.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테비아 왕국에 정착하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해적이나 도적이나 거기서 거기. 그런 곳에서 동생들을 키우고 싶진 않았다.
“제가 좀 도와줄까요?”
“어떻게요?”
“대런 씨, 다른 배로 옮겨 드려요?”
어느새 상선에서의 싸움은 끝났다. 상선의 선원들이 죽은 해적들의 시체에서 무기만 빼고, 바다로 버리고 있었다.
“그래 주시면 고맙죠.”
“그러면.”
대런에게 플라이 마법을 사용했다. 대런의 몸이 그 자리에서 떠올랐다.
5서클 마법사가 타인에게 행한 지속 형태의 마법이라, 움직임이 자연스럽진 않았다. 그래도 느릿하게 다른 배로 넘어갈 수는 있었다.
다른 배에 다다른 대런이 다시 학살을 벌였다. 그사이에 횡액을 피한 해적선만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내가 마무리할까?’
잠깐 든 생각을 바로 지웠다.
어차피 남의 싸움이었다. 필요 이상 개입해 봐야 득 될 게 없었다.
“석궁을 준비하라!”
“예.”
로딘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크론델 선장의 캐플턴호는 선상 석궁을 갖춰 놓은 선박이었다. 그것도 무려 전후방에 하나씩, 2개나 있었다.
석궁을 멀어지려는 해적선에게 조준했다. 이미 거대한 볼트는 장착된 상태였다.
“발사!”
슈슝! 콰직!
동시에 2발의 석궁이 해적선의 옆구리로 날아갔다. 파열음과 함께 해적선의 선체에 커다란 구멍 2개가 뚫렸다.
또 선체 안으로 사라진 볼트 때문에 해적선이 크게 기울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니, 반대쪽이 위로 치솟으며 배가 멈춰 버렸다.
“다시 준비!”
“준비!”
“발사!”
슈슝! 콰지직!
단 2번. 4발의 거대한 볼트가 해적선 2척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노를 저어 움직이는 해적선은 이미 기동할 능력을 잃었다.
1척은 앞쪽이 바다로 너무 기울어서 물이 들어찼다. 파손이 심해서 배가 정상적인 자세로 되돌아오는 건 불가능했다.
또 다른 한 척은 옆으로 기울어서, 배의 오른쪽 노 전부가 허공에 떠올랐다. 왼쪽 노만 저어서는 그 자리에서 빙빙 돌 뿐이었다.
“강하군요.”
“두 대륙 사이에 유독 해적이 많습니다. 대륙 사이를 안전하게 항해하려면 선상 석궁은 필수죠.”
“저 배에는 없는 것 같던데요.”
“욕심이죠. 짐을 조금이라도 더 실으려는 욕심 때문에 무기를 소홀히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다 해적들에게 털리는 거고요.”
거대한 석궁은 로딘도 오가면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볼트를 빼더라도 사람 5~6명 무게는 될 정도로 큼직했다.
그런 석궁이 무려 2대였다.
볼트의 무게를 합하면, 적어도 20명 이상의 승객과 비등한 무게일 터. 캐플턴호는 그만큼의 이득을 포기하고 무기를 싣고 다녔다.
“그나저나 리치몬드 후작령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는 게 좋습니까?”
“하손에 내려서 육로로 가는 길도 있고, 하손에서 레녹스 왕국의 메인스 항구로 배를 타고 갔다가, 육로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육로를 추천해 드립니다.”
하손은 이 배의 목적지인 테비아 왕국의 항구 도시 이름이다. 캐플턴호를 타고 대략 20일 정도 후에 도착할 곳인데, 서대륙과 가장 가까운 중앙 대륙의 항구 도시였다.
“육로라……, 마차부터 구해야겠네요.”
“하손은 상당히 번화한 곳입니다. 메인스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중앙 대륙의 항구 도시 중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죠. 말이든 마차든 구하긴 쉬울 겁니다.”
“리치몬드 후작령은요?”
“그곳은 내륙 지방이라……, 작은 호수와 강이 있긴 하지만, 대륙 무역의 중심인 항구와 비교하긴 어렵죠. 그래도 여러 왕국의 육로가 교차하는 곳이라 꽤 번창한 상업 도십니다. 물품을 구하기도 쉽고요.”
항구 도시만큼 번화하지 않아도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다면 불만은 없었다.
거기에 내륙 지방이라면, 서대륙 사람들과 엮일 일도 적을 터.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만족스러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