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86)
마법을 품다 (86)
해적을 모두 처리하고, 대런 일행이 복귀했다. 그러기가 무섭게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폭풍이 몰아쳤다.
캐플턴호는 대형 상선이라, 폭풍을 혼자서 헤쳐 나갈 충분한 역량이 있었다. 정 힘들면 5서클 마법사인 로딘에게 도움을 청해도 되었다.
하지만 해적선의 공격을 받은 상선이 문제였다. 크기가 작은 데다, 폭풍에 대한 대비도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해적 대비도 안 되어 있고, 폭풍에 잡을 손잡이도 없고. 저런 초짜가 바다로 나왔다가 물귀신이 되는 법인데.”
폭풍이 친다고, 선원들 전부가 선실로 들어가선 안 되었다. 어떻게든 돛을 조정해서 바람에 입을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그런데 저 작은 상선은 갑판에 선원들이 잡을 손잡이와 긴 밧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또 돛의 방향을 멀리서 틀 수 있는 장치도 빠져 있었다.
오직 짐만 싣겠다고 작정한 듯,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것들을 죄다 치운 상태였다.
“어쩔 수 없지.”
크론델 선장이 선의를 베풀었다. 밧줄을 내려 바람에 미친 듯이 흔들리는 작은 상선과 캐플턴호를 묶은 것이다.
캐플턴호의 육중한 덩치 덕분에 작은 상선은 폭풍우 속에서도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거의 5시간 동안 미친 듯이 흔들렸지만, 어찌어찌 버텨 냈다.
폭풍우가 사라지자, 캐플턴호는 작은 상선과 연결된 밧줄을 바로 회수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테비아 왕국의 항구 도시 하손으로 배를 몰았다.
캐플턴호가 작은 상선을 구했던 시간, 로딘은 선실로 돌아왔다. 래리와 비앙카가 눈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로딘을 맞았다.
“형! 괜찮아요?”
“오빠!”
로딘은 래리와 비앙카를 가볍게 안아 주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앉아 봐.”
“왜요?”
“자, 이것들. 너희 선물이다.”
로딘은 갑판으로 올라가기 전에 완성한 장신구 중 팔찌를 꺼냈다. 좌표를 알리는 마법을 담아 놓은 아티팩트였다.
“이게 뭐예요?”
“아티팩트.”
“그게 뭔데요?”
“마법이 담긴 물건이야. 이 팔찌는 너희들의 위치를 내가 알 수 있게 해 주지. 만약 밤이 늦었는데도 너희들이 안 보이거나, 뭔가 의심스러운 정황이 느껴지면 그땐 내가 너희들을 찾으러 갈 수 있어.”
래리와 비앙카가 팔찌를 한참 쳐다봤다. 로딘의 말을 제대로 이해 못 한 얼굴이었다.
“저번처럼 납치될 수 있잖아. 그래서 준비한 거야. 팔뚝에 착용하고 다녀.”
“저번처럼 물이 저희를 지켜 주진 않는 건가요?”
“운디네는 내 옆을 떠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건 운디네에게 너무 가혹하잖아.”
“맞아요.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시키면 안 돼요.”
비앙카가 먼저 팔찌를 잡아서 손목에 착용했다. 워낙 커서 손목 위에서 마구 돌아다녔다.
로딘은 비앙카의 손목을 잡고, 팔찌에 마력을 살짝 불어 넣었다. 그러자 비앙카의 손목에 맞도록 팔찌가 줄어들었다.
“와! 신기해요.”
“마법이야. 래리도 착용해.”
“예.”
래리도 팔찌를 착용했고, 로딘이 마력을 불어 넣어 크기를 줄였다. 아주 조이지도, 너무 여유롭지도 않은 딱 정당한 정도였다.
“너희들이 자라면서 팔찌가 좀 답답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거야. 너희들은 마력이나 오러가 없어서 자동으로 조절되지 않아. 그러니까 손목이 조인다 싶으면 찾아와서 말해.”
“예.”
“알았어요.”
* * *
해적을 만난 장소에서 하손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20일.
하지만 그 20일은 이전의 몇 개월보다 더 험난했다.
그간의 순탄한 항해가 꿈이었던 것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폭풍우를 만났다.
당연히 갑판에서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사라졌다. 승객들은 선실에서 흔들림을 버텼고, 선원들은 폭풍우 속에서 배를 관리하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악몽도 결국에는 깨는 법.
하손과 이틀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갑작스럽게 폭풍우가 사라졌다. 고요해진 바람을 뚫고 캐플턴호가 유유히 바다를 갈랐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파수를 보던 선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간판을 울렸다.
“육지다!”
“하손이다!”
오랜만의 맑은 날씨라 갑판으로 나왔던 승객들이 유독 크게 환호를 내질렀다.
로딘도 오늘만큼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난 18일 동안의 항해는 유독 힘들었다. 잦은 폭풍우로 배가 너무 흔들린 데다가, 래리와 비앙카가 유독 멀미를 심하게 했다.
“오빠, 이제 배 안 타도 돼?”
“응. 저기 내리면 더는 배를 탈 일이 없을 거야. 대신 마차를 타겠지.”
“응. 마차는 좋아. 신나. 재밌어.”
“글쎄다. 마차도 오래 타면 배보다 몇 배는 더 힘들걸.”
서서히 움직이던 캐플턴호가 하손의 부두에 배를 댔다. 커다란 나무다리가 내려지고, 승객들이 밝게 웃으며 갑판을 벗어났다.
이곳은 캐플턴호의 종착지. 현재 타고 있는 모든 승객이 내리는 곳이었다.
로딘은 승객들의 맨 마지막 순서로 내렸다. 크론델 선장과 아쉬운 작별 인사도 나눴고 대런, 제퍼슨, 실비아와도 가볍게 작별을 고했다.
“가자.”
“형, 바로 마차 사실 거예요?”
“아니. 오늘 출발하긴 좀 늦은 것 같으니까. 여관 잡고, 점심부터 먹자.”
동생들을 데리고 나오니 바로 검문에 걸렸다. 로딘 일행뿐 아니라, 캐플턴호에서 내린 모든 승객이 검문 대상이었다.
항구 도시 하손은 사실상 바다를 접한 모든 국가와의 국경이나 다름없었다. 타국인이 자국에 마구 들어오는 걸 허용할 수는 없는 노릇. 검문은 당연한 절차였다.
로딘은 용병패를, 래리와 비앙카는 랑스에서 돈을 주고 산 신분패를 제시하고 검문을 통과했다. 미리 신분패를 준비해 두길 다행이었다.
“오빠! 역마차다.”
“그러게. 랑스하고 같네.”
역마차라는 제도 자체가 원래 중앙 대륙에 있던 시스템이었다. 누군가가 그 시스템에서 사업성을 봤고, 랑스에서 같은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타고 갈까?”
“응.”
어차피 마차를 타긴 타야 했다.
리치몬드 후작령까지 가려면 어차피 마차를 사야 했는데, 마차와 말은 보통 성문 근처에 있기 마련이었다. 항구와는 반대편이었다.
로딘은 동생들과 줄을 서서 마차에 탔다. 마부에게는 성문과 가까운 쪽의 여관 거리로 가 달라고 말했다.
마차는 거의 한 시간을 달린 후에야 멈췄다. 주변에 여관 십여 곳이 보였고, 길 끝이 북쪽 성문으로 가는 길로 이어져 있었다.
마차에서 내려 가장 화려해 보이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별채를 빌렸다.
랑스에서 지낸 별채 생활은 꽤 만족스러웠다.
독립적인 거주라, 누군가에게 방해받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덕에 마음 놓고 프루발 환영의 수업을 받아도 되었다.
끼니마다 가져다주는 식사도 환상적이었다. 방 앞에는 운동할 공간도 있었고, 동생들이 조금 크게 떠들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여기가 더 좋네.”
이번에 묵은 여관은 랑스보다 전체적인 면에서 더 발전되어 있었다. 별채도 조금 더 넓고, 시설은 더 깨끗했다.
그런데도 숙박비는 랑스보다 쌌다. 거의 절반 정도의 가격이라, 랑스에서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형, 여기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괜찮아. 이 정도는.”
“그래도요. 아껴야 할 것 같은데.”
“네가 형 걱정을 다 하네. 이제 다 컸구나.”
점심을 먹고, 로딘은 바로 여관을 나갔다.
먼저 들른 곳은 마 시장.
말 2필과 그에 맞는 마차를 샀다. 생각 같아선 사두마차를 사고 싶었는데, 귀족이 아니면 안 판다고 해서 포기했다.
마차를 여관의 마구간에 맡기고, 하손의 상업 지구를 돌아다녔다.
“으음, 역시 장신구는 중앙 대륙이 더 싸구나.”
서대륙의 약초가 상당히 쌌던 것과 다르게, 기술이 필요한 제작품은 중앙 대륙이 훨씬 쌌다.
서대륙은 장인에 대한 대우가 좋은 곳이 아니었다. 아직도 노예 제도가 남은 국가가 많아서, 온갖 속임수로 뛰어난 장인들을 노예로 만드는 일이 흔했다.
반면 중앙 대륙은 장인에 대한 대우도 좋고, 장인이 만든 물건에 대한 가치도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뛰어난 장인이 많이 배출되었고, 서대륙이나 동대륙의 장인들도 중앙 대륙으로 많이 넘어왔다.
“애들 장신구는 여기서 살 걸 그랬네.”
가격도 가격인데, 훨씬 예뻤다. 여자아이인 비앙카에게는 서대륙의 투박한 팔찌보다 하손에서 파는 섬세한 세공의 팔찌가 더 잘 어울렸다.
“목걸이라도 바꿀까?”
동생들을 주려고 목걸이에 담은 마법은 마력 실드. 시장에 내놔도 충분히 팔리는 물건이었다.
“반지도 그냥 여기서 파는 걸로 할까?”
반지에 담은 마법인 페더 폴이 좀 애매하긴 했다. 동생들에게는 적절한 마법이지만, 시장에서 팔릴지는 확신이 안 섰다.
“잡화……, 아니구나.”
서대륙에는 잡화점에서 온갖 물건은 다 팔았다. 마나석도 팔고, 포션도 팔았다. 해열, 기침처럼 흔한 질병에 쓰이는 약초도 잡화점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하손은 모든 물건이 전문적이었다. 잡화점에는 정말로 잡화만 팔았고, 마법적인 물건은 따로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저기가 좋겠다.’
꽤 크게 열린 마법 물품 상점에 들어갔다. 꽤 많은 손님이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역시 포션은 진짜 싸구나.’
진열대에 적힌 상처 치유 포션의 가격이 21골드였다. 40골드가 넘었던 서대륙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래도 평상시의 가격인 10골드보단 한참 비쌌다. 서대륙의 전쟁이 여기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례합니다.”
“예, 손님. 어떤 물건을 사러 오셨습니까?”
“물건을 팔려고 합니다.”
로딘은 마력 실드가 담긴 목걸이와 페더 폴이 담긴 반지를 2개씩 꺼내 내놓았다.
상인의 눈이 순간 반짝하더니 목걸이와 팔찌에 고정되었다. 꽤 신중하게 살피는 모습이었다.
“흐음, 저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습니다. 설명을 좀 해 주시겠습니까?”
“예.”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어려운 건 당연했다.
로딘은 아티팩트에서 마력이 무의미하게 새어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력을 최대한 긁어서 새길 마법에 죄다 투입하는 편이었다.
이렇게 하면 아티팩트의 위력이 높아진다. 같은 마법을 담았어도 실제 가치는 훨씬 높다고 봐도 무방했다.
또 마력이 새어 나오지 않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장신구처럼 보였다.
남들이 아티팩트의 존재를 모르니, 회심의 한 수처럼 아티팩트를 쓸 수 있었다.
‘아직 멀었지만.’
로딘도 나름 마력을 죄다 긁어서 쓰는 편이지만, 프루발의 상자, 반지, 회중시계와 비교하면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프루발의 아티팩트는 마력 감각이 놀라울 정도로 예민한 로딘조차도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기 어려웠다.
“먼저 목걸이부터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 목걸이에는 마력 실드가 담겨 있습니다. 시동어는 ‘마력 실드’, 마력을 주입해서 사용해 보시면 됩니다.”
“오오! 반지는요?”
상점 주인의 표정이 전보다 한결 밝아졌다. 목걸이에 들어 있는 마법이 ‘발동형’ 아티팩트였기 때문이다.
발동형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드물었고, 제작되는 아티팩트 역시 몇 종류 안 되었다.
마력 실드는 이미 만드는 곳이 3곳이나 있지만, 가격은 높고 공급은 연간 20개 이하였다. 당연히 고작 20개의 아티팩트가 마탑과 거리가 먼 이 상점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반지에 담겨 있는 마법은 페더 폴. 추락 시에 속도를 늦추는 마법입니다. 역시나 시동어는 ‘페더 폴’이니 확인해 보시죠.”
“반지도 마음에 드는군요. 희소성이 있겠네요. 잠시 확인 좀 하겠습니다. 30분 정도 걸릴 테니,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상인이 목걸이와 반지를 전부 챙겨서 뒤로 사라졌다.
상인은 정확히 30분 정도가 지난 후에 되돌아왔다. 잔뜩 흥분한 얼굴이었다.
“이거 몇 회나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목걸이는 한 번 사용하면 대략 5시간에서 6시간 정도 지나야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페더 폴은 1시간 정도고요.”
“마력 실드가 알려진 것보다 단단한 것 같던데.”
“예. 효율을 최대한 끌어 올려서 마력 실드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4급 검사의 오러 공격을 한 번은 막아 줄 겁니다.”
로딘의 대답에 상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만들어지는 마력 실드 아티팩트는 3급 검사의 오러를 막을 수 있는 아티팩트도 있고, 4급 검사의 오러를 만들 수 있는 아티팩트도 있었다. 시중의 아티팩트 중에서 상위급이라고 생각하면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마력 실드가 목걸이에 담겼다는 게 놀라웠다.
현재 마탑과 아티팩트 제작소에서 만드는 마력 실드는 대부분 무기나 방패, 갑옷, 허리띠처럼 크기가 꽤 큰 장비들이었다. 목걸이처럼 작은 액세서리에 마력 실드를 담은 아티팩트는 고대 유물을 제외하면 로딘이 내놓은 목걸이가 최초였다.
“혹시 유물은…… 아닌가요?”
“설마요. 유물이면 이런 곳에 가져왔겠습니까? 마탑으로 가져갔지.”
“그건 그렇지요.”
상인의 입에서 나온 유물이란 말은 고대에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고대의 물건은 담긴 마법의 종류가 뭐든 가격이 더 비싸진다. 골동품으로서의 가치와 마법진의 연구 자료로도 의미가 있어서였다.
“1,200골드에 사겠습니다.”
“흐음.”
“물론 만족스러운 가격이 아니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좀 더 검증을 거칠 때까진, 이 정도가 한곕니다. 아직 재사용 가능 시간도 정확하지 않고요.”
“알겠습니다. 팔겠습니다.”
일단 목걸이는 팔기로 했다. 래리와 비앙카에게는 좀 더 예쁜 걸 사서 아티팩트를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페더 폴은…… 으음, 손님도 아시다시피 목걸이만큼의 가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지를 돌아다니는 모험가들은 살 만하지요. 600골드를 드리겠습니다.”
“600골드…… 으음, 알겠습니다.”
목걸이와 반지를 합쳐서 1,800골드. 2세트이니 3,600골드를 벌었다. 제작 시간이 채 3시간도 안 되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수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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