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88)
마법을 품다 (88)
4일간 별문제 없는 여정이 이어졌다.
5일째의 오전, 로딘은 마차를 급하게 세웠다. 앞쪽 살짝 높은 언덕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형, 도적이야?”
“아닐걸.”
도적이 있기엔 도시가 너무 가까웠다. 불과 3시간 전에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도시 하나를 지나왔고 여기서 다시 3시간을 더 가면 작은 도시가 나온다.
도시끼리 거리가 가까운 만큼 오가는 사람들과 말, 마차가 너무 많았다.
이런 곳에 생긴 도적은 두 도시 모두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 누구 온다.”
“으음. 안으로 들어가 있어.”
언덕에 있던 사람 중 2명이 로딘의 마차로 다가왔다. 둘은 서로 다른 형태의 병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로딘도 앞으로 나가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맞았다.
“무슨 일입니까?”
“이 앞에 영지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
두 병사의 복장이 서로 달랐던 이유는 애초에 속해 있는 영지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두 영지와 관계없는 사람의 접근을 막고, 자기들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오면 자기 진영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오전 중으로 전투를 통해 결판을 지을 거라고 영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영주님도 이번 전투를 오래 끌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잠시만 기다리면 끝날 테니, 불편하더라도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언덕에 있는 사람들은?”
“영지전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참관을 위해 온 다른 영지의 사람들입니다.”
말로만 듣던 영지전이었다. 크론델 선장이 영지전 얘기를 했지만,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저도 올라가 봐도 되죠?”
“예. 물론 됩니다. 하지만 마차를 우리가 지켜 주진 않습니다. 귀중품을 도난당하더라도 저희 책임이 아님을 알려 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돌아갔다. 로딘은 마차를 조금 더 가까이 댄 후, 마차 주변에 마법을 둘렀다.
“나가면 안 돼?”
“전쟁이라네. 너희들이 봐서 좋을 거 없어.”
“나도 안 돼요?”
“응. 너도 안 돼. 내 나이가 되면 그때 마음대로 보러 다녀라.”
비앙카에 이어 래리까지 단속한 후에야 로딘은 언덕으로 올랐다.
언덕은 고작 20여 미터밖에 안 될 정도로 낮았다. 대신 완만해서 100명 이상이 올라도 될 정도로 넓었다.
로딘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가, 가볍게 마법을 사용했다. 로딘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라 언덕 아래를 훤하게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로딘은 일부러 5서클 플라이 마법이 아닌, 3서클 형태의 레비테이션을 사용했다. 실력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오! 마법.”
“마법사라니.”
“나 마법사 처음 보는데?”
“영지전 하면 마법사는 꼭 나오잖아.”
“거긴 너무 멀잖아. 보이지도 않는다고.”
로딘이 마법을 쓴 모습을 보며, 모여 있던 사람들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법을 좀 더 보여 달라는 눈치였다.
로딘은 모른 척했다. 눈요깃거리가 되려고 마법을 배운 게 아니었다.
“좀 걸리겠네.”
로딘은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아직은 서로 대치만 하는 형국이었다.
다시 마차로 돌아왔다. 여전히 후드를 푹 눌러써서 얼굴을 가린 채였다.
로딘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좌우로 분분히 물러났다. 마법사의 앞을 당당히 막을 정도로 담력이 센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었다.
“공부하자.”
“영지전 본다면서요?”
“아직 시작 안 했어.”
래리와 비앙카가 울상을 지었지만, 로딘은 수업을 강행했다.
로딘은 오늘을 끝으로 둘의 수업을 끝낼 생각이었다.
이미 충분히 많은 단어를 익혔다. 더 많은 단어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거나 단어 사전을 이용해서 직접 공부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단어부터 확인하자. 이 단어는…….”
수업을 한창 진행하던 중, 외부에서 희미하게 소리가 들렸다. 로딘은 사람들의 고함인 걸 바로 알아챘다.
“나갔다 올게.”
“예, 형. 우린 여기 있을게요.”
“그래. 비앙카 잘 챙기고.”
로딘은 마차를 나가자마자 바로 몸을 띄웠다. 레비테이션으로 시야를 확보하고, 2서클 이글 아이 마법을 추가했다.
멀리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이 코앞에서 보는 것처럼 가까워졌다.
“양쪽에 100명씩인가?”
가진 전력 전부를 다해서 싸우는 게 아니었다. 양 진영에는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지만, 실제로 앞으로 나서 전투를 벌이는 이들은 양쪽에서 각각 100명씩이 전부였다.
“당연할지도.”
크론델 선장은 영지전이 엄청나게 자주 벌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싸울 때마다 전 병력을 몰아넣으면, 병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으음.”
각각 100명씩 모인 전투인데 평범한 병사는 없었다. 정식 기사 수준인 3급 기사가 대략 10명이었고, 나머지도 2급 정도로 보였다.
“수준은 낮은 편이네.”
전투는 치열했다. 어느 한쪽도 쉽게 승기를 잡지 못하면서 피해가 계속 누적되었다.
그러다 절반 정도가 바닥에 쓰러지자, 서서히 한쪽으로 승기가 기울였다. 3급 기사가 얼마나 많이 살아남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
“끝났구나.”
로딘은 결과를 확신했지만, 자리를 뜨진 않았다.
처음으로 보는 영지전이었다. 앞으로 저 전투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 한 번쯤 봐 둘 필요가 있었다.
뿌우우웅! 뿌우우웅!
승패가 사실상 결정이 났다.
패배를 직감한 진영에서 나팔을 크게 불었다. 한창 적을 학살하던 3급 기사들은 검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영지전이 끝났다.
승부가 정해지자, 중간에서 양쪽의 귀족이 만났다.
그들은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한동안 대화를 나눴고, 어딘가에 사인을 하고 헤어졌다.
“저렇게 끝나는구나. 철천지원수가 되는 건 아닌가 보네.”
영지전에 뭐가 걸려 있느냐에 따라 감정이 남느냐 아니냐가 정해진다.
적당한 수준의 이권을 위한 영지전이었다면 패한 쪽도 마냥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었다. 상대보다 강한 힘을 길러서 되찾으면 되니까.
하지만 영지 존속에 핵심이 되는 무언가가 걸려 있거나,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이 걸려 있을 땐 달랐다.
영지전에서도 가진 모든 전력을 동원할 테고, 패배했을 때의 굴욕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네. 마치 놀이를 하는 것 같군.”
이번 영지전에선 마법사가 등장하지 않았다. 양쪽이 합의해서 마법사 전력을 제외했거나, 아니면 아예 영지 내에 마법사가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형! 어땠어요?”
“으음, 다음에 영지전을 볼 일이 있으면 그땐 같이 보자.”
“진짜요?”
“응. 너희도 봐 둬야겠다.”
로딘은 다시 마차를 몰았다. 영지전의 여운이 꽤 오래 남았다.
* * *
다음 날, 로딘은 동생들에게 마력 연공법을 가르쳤다. 하급 중의 하급으로, 마력 재능 측정에 사용되는 연공법이었다.
“이거 배우면 저도 마법사 될 수 있어요?”
“아니. 그건 재능 측정에 사용되는 거야. 그걸로 마법사가 되려면 천 년은 살아야 할걸.”
“재능이요?”
“여기 적힌 거 다 외우고, 방법도 머릿속에 기억해라.”
로딘은 원래 동생들에게 연공법을 가르칠 생각이 없었다.
마법사나 기사가 보기는 좋지만, 그만큼 위험도 컸다. 의사를 물어보고 정말 간절하다면 가르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범하게 살아가게 둘 생각이었다.
‘귀족들은 영지전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 문제는 일반인들이 휩쓸린다는 거야.’
어제 영지전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서대륙에서 전쟁은 군인들의 몫이었다. 일반인은 그저 휩쓸려 피해를 보는 위치였다.
그런데 중앙 대륙에서 영지전은 너무 흔했다. 이런 곳에서는 오히려 힘이 있어야 영지전에서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언제까지요?”
“사흘 후. 그때까지야. 할 수 있겠지?”
이 정도면 시간은 넉넉하게 줬다. 특수군 양성소에서는 저녁에 알려 주고, 다음 날 바로 연공실로 들어가야 했다.
“재능이 뛰어나면 마법을 가르쳐 주시나요?”
“재능이 충분하다면 기꺼이.”
“재능이 없으면요?”
“오러 재능을 테스트해 봐야지. 그건 내가 할 수 없고, 리치몬드 후작령으로 가면 적당한 사람을 알아봐야지.”
마력 측정에는 미세 마력 측정기가 필요 없었다. 로딘의 감각이 원체 예민해서 오히려 미세 마력 측정기보다 더 정확하게 늘어난 마력 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러 측정은 로딘의 전공이 아니었다. 평균보다 나은 감각을 지니고 있지만, 미세 오러 측정기 없이 상대의 재능을 알아볼 만큼은 아니었다.
“꼭 익힐게요.”
“오빠. 저도요. 저도 마법 쓰고 싶어요.”
“열심히 해라. 사흘 후에 확인하마.”
래리와 비앙카. 둘 다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아직 공부 습관이 들지 않아서 진득하게 앉아 있는 걸 힘들어하지만, 점점 나아질 거라 믿었다.
사흘이 흘렀다. 새벽 다섯 시에 로딘은 잠든 래리와 비앙카를 깨웠다.
“혀……엉. 왜요?”
“오빠. 졸려.”
“일어나. 외우라고 한 건 다 외웠지?”
로딘은 이불을 확 치우며, 래리와 비앙카가 다시 잠들 수 없게 했다.
래리와 비앙카가 어떻게든 더 자려고 몸부림쳤다. 베개에 머리를 박고, 바닥에 머리를 박고 난리를 쳤다.
물론 소용없었다. 로딘은 아예 운디네를 이용해 얼굴에 물을 끼얹어 버렸다.
“우앗! 잠, 잠깐만요.”
“으악! 로딘 오빠!”
“일어났지? 시작해.”
“확인 한 번만 더 해 보고요.”
몇 번 발버둥 치던 래리와 비앙카가 결국 다시 잠들기를 포기했다. 대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사흘 전에 준 룬어를 다시 중얼거렸다.
“시간 없다. 바로 시작해.”
“알았어요. 저부터 할까요?”
“같이 해. 딱 1사이클만 돌린다.”
미세 마력 측정기가 있을 때, 보통은 1시간 동안 마력 연공법을 행한다. 연공실이 없다면 보통 4시간 동안 마력 연공법을 행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마력 양이 너무 적으면 미세 마력 측정기로도 측정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딘은 미세 마력 측정기보다 더 예민한 감각이 있었다. 연공실이 없더라도, 재능을 파악하는 데에는 1사이클이면 충분했다.
“보고 읽지 말고. 눈을 감고. 집중해.”
“예.”
래리와 비앙카가 곧 1사이클 초입에 접어들었다. 집중에 들어가는 시간은 둘이 거의 비슷했다.
‘재능이 별로 없구나.’
비앙카의 마력 연공법이 먼저 끝났다. 1사이클에 걸린 시간은 대략 20분. 하급 중의 하급 마력 연공법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상당히 오래 걸린 편에 속했다.
래리는 그보다 더 걸려서, 거의 30분이 흐른 후에야 1사이클이 끝났다. 아무래도 래리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았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어.’
눈을 뜬 래리와 비앙카가 기대감 담긴 눈으로 쳐다봤다. 로딘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이다. 3시간 후에 한 번 더 연공법을 행한다.”
“3시간이요?”
“응. 아침부터 먹어라.”
“예.”
특수군 양성소에서는 단 1시간의 연공과 측정으로 재능이 결정되었다. 훈련생의 숫자가 많으니, 어쩔 수 없이 사람의 개성을 무시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마다 연공 효율이 높은 시간대가 달랐다.
새벽에 유독 연공 효율이 높은 사람, 자기 직전에 효율이 높은 사람, 심지어 해가 중천에 더 있는 한낮에 효과가 높은 사람도 있었다.
즉, 재능을 정말 정확하게 측정하려면 여러 시간대에 연공을 해 보고 늘어난 양을 확인해야 했다.
3시간이 흘렀다. 래리와 비앙카가 다시 연공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3시간. 또 3시간.
새벽 5시부터 시작한 연공은 3시간마다 진행되어서, 자정이 다 되어서야 끝났다.
“으음. 오늘 너희들 재능을 측정해 봤어.”
꿀꺽!
이미 자정이 지난 지도 한참.
주변은 로딘이 피워 놓은 모닥불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재능은 보통 1점부터 99점까지로 측정돼. 99점이 가장 높고, 1점이 가장 낮아. 우선 래리.”
“예.”
“넌 안 되겠다. 마력 재능이 2점에서 3점 사이야. 이 정도면 연공법을 하루 종일 행하더라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로딘의 말에 래리의 고개가 떨어졌다.
실망이 큰 듯,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새 울먹이기 시작했다.
“형, 형…… 난 정말 안 돼요?”
“마력은 그래. 나중에 오러 재능도 측정해 봐야겠지.”
“오……러.”
“너무 상심할 필요 없다. 오러 쪽은 내가 잘 모르니까. 리치몬드 후작령으로 가면 찾아보자.”
로딘은 래리가 마력에 재능이 없다는 걸 첫 연공 때 알아봤다. 혹시나 해서 3시간 간격으로 계속 측정했지만, 역시나 예상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시간대에 따라 재능이 다를 거라는 예상은 맞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새벽에 마력 재능이 거의 1이었던 래리가 밤이 된다고 10 이상의 재능이 나올 확률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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