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9)
마법을 품다 (9)
로딘은 밤 9시가 되기 전에 단어 사전 공부를 끝냈다. 머릿속으로 오늘 외웠던 단어들을 주르륵 나열했다.
‘됐네.’
600장이 넘는 단어 사전에는 30,000개가 넘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개중에는 평생 쓸 일이 있을까 싶은 단어들도 많았다.
로딘은 가리지 않고 다 외웠다.
그리고 수차례 머릿속을 뒤져 잊지 않은 단어를 찾았다. 어느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단어가 없게 됐다.
탁!
단어 사전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러자 코리가 후다닥 달려왔다.
“로딘, 로딘.”
“말해.”
“공부 끝났어?”
“응.”
코리는 로딘이 단어 사전을 다 외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오늘은 한번 빠르게 훑어봤고, 앞으로도 계속 단어 사전을 끼고 공부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로딘 너. 발음 기호. 다 외웠다고 했지?”
주변을 보니, 헤들러와 랜트도 간절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발음 기호를 기억하지 못해서, 공부를 못 한 듯했다.
“응. 적어 줘?”
“그렇게 해 줄 수 있어?”
“마침 시간도 남았는데. 그렇게 할게.”
도서관은 밤 9시에 문을 닫는다. 고작 10분 남은 상황이라, 지금 도서관으로 가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잠을 자기에는 조금 일렀다.
애매하게 남은 시간이니, 친구들을 도우며 시간을 보내면 얼추 맞을 듯했다.
“적을 거 있어?”
“여기.”
어젯밤, 개인에게 공책 한 권과 펜 한 자루가 지급되었다.
반년에 한 번씩 보급되는 물품이라, 정말 아껴 써야 하는 물품이었다.
물론 한 번 보고 다 기억하는 로딘에게는 필기가 필요 없긴 했다. 아마 앞으로도 공책과 펜을 쓸 일은 없을 터였다.
로딘은 오늘 배운 발음 기호를 배운 순서대로 주욱 적어 내려갔다. 그러자 헤들러가 잽싸게 다가왔다.
“옆에 예시로 들 단어 하나씩만 써 주라.”
헤들러는 발음 기호를 모를 뿐 아는 대륙 공용어 단어는 많았다. 옆에 단어를 적어 주면 그 단어를 이용해서 발음 기호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럴게.”
77개의 발음 기호를 다 적고, 그 옆으로 해당 발음이 사용되는 단어를 적었다. 최대한 쉬운 단어를 선택해, 헤들러가 모르는 단어가 없도록 했다.
“고맙다. 고마워.”
“역시 우리 로딘이 최고야!”
“고마워.”
코리가 껴안으려고 달려들어서, 가볍게 피했다. 헤들러가 그런 코리의 허리를 잡아 번쩍 들었다.
“귀한 로딘 몸에 흠집 내지 마라.”
“헤헤.”
* *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로딘은 도서관으로 직행했다.
어제 교관이 말했던 것처럼 앞으로 오전에는 대륙 공용어 수업이 없었다. 적어도 2개월 동안 오전 시간은 자유였다.
반대로 다른 아이들에게는 부담이 큰 교육 방식이었다.
스스로 공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어른의 지시와 강제가 사라지면 노력 자체를 게을리하기 십상이었다.
‘나한텐 좋아.’
로딘은 도서관에 들어가면서 한 차례 제지를 받았다. 도서관을 지키는 조교였다.
“도서관 이용 시간은 밤 9시까지다.”
“예, 늦지 않게 나갈게요.”
“책은 절대 훼손하지 마라. 또 저기 오른쪽 통로는 아직 네게는 허락되지 않으니, 근처에도 가지 마라.”
“알겠습니다.”
조교가 가리킨 오른쪽은 심화 서고로 가는 길이었다. 심화 서고에는 전공이 정해진 후에야 허락되는 책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로딘은 맨 먼저 역사서가 꽂혀 있는 책장으로 갔다.
이곳이 특수군 양성소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왜 특수군 양성소라는 기형적인 곳을 만들어야 했을까?
과거에도 이런 조직을 만든 적이 있었을까?
그걸 알기 위해서 역사부터 뒤져 보는 게 순서였다.
최근의 역사가 기록된 책을 꺼내 그 자리에서 독파했다. 아직은 확 와닿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
“음?”
저 멀리서 조교가 의아한 듯 쳐다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로딘도 조교가 온다는 느낌을 받고, 책을 덮었다.
“저쪽에 책상 있잖아. 거기로 책 가져가서 읽어.”
“여기서 읽으면 안 되는 건가요?”
로딘은 책을 가지고 책상으로 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책상까지 갔다가 다 읽고 다시 가져오면 족히 5분에서 10분은 걸릴 텐데, 그 시간조차 책을 읽는 데 쓰고 싶었다.
“그렇지는 않지만…… 안 불편하냐?”
“괜찮아요. 그냥 여기서 읽을게요.”
“그러든가. 난 분명히 말렸다. 나중에 허리 아프네. 어깨 아프네. 투덜대면 가만 안 둔다.”
“예, 제 선택이에요. 조교님 탓하지 않을게요.”
조교가 멀어졌다. 로딘은 다시 책을 한 권씩 꺼내서 읽었다.
‘좀 더 효율적으로.’
앉았다 일어나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서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꺼내서 바닥에 놓았다.
‘아깝다.’
키가 좀 컸으면. 힘이 좀 더 좋았으면 더 많은 책을 한꺼번에 꺼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 없는 게 아쉬웠다.
2시간째.
계속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대강의 상황이 그려졌다.
이 일의 발단은 잉그렘 제국이 아니라 리아즈 왕국이 속한 13국 연합이었다.
‘선전 포고했다는 내용이 없어. 애매하게 넘어갔지만, 분명해.’
책에는 리아즈 왕국에 유리하도록 지극히 편파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잉그렘 제국의 실수는 크게 과장했고, 13국 연합의 잘못은 축소했다. 리아즈 왕국이 저지른 실수는 어쩔 수 없는 일로 둔갑했다.
하지만 여러 책을 조합하니, 진실이 보였다.
‘마수림…… 그렇게 무서운 곳인가?’
잉그렘 제국은 건국 초기부터 지금까지 마수림으로 고통받았다. 비정기적으로 쳐들어오는 마수림의 마수를 막느라 막대한 국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그게 싫었던 건지 아니면 고대 마도 제국의 유적이 마수림에 숨겨져 있다는 말 때문이었던 건지.
약 25년 전, 잉그렘 제국은 무려 50만 병력을 동원해 마수림을 공격했다. 항시 유지하던 정규병의 대부분을 마수림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문제는 이 원정이 불과 1년도 되지 않아서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생존자가 채 800명도 안 된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하아, 어마어마하게 죽었어.’
50만 명을 들이부었는데, 고작 800명 미만. 생환율이 1%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어찌 됐든 마수림 토벌을 시도하면서 잉그렘 제국이 입은 피해는 컸다.
바로 그때, 정보를 파악한 13국 연합이 전격적으로 잉그렘 제국을 침공했다. 당연히 선전 포고 따위는 없는 기습이었다.
‘완전 점령이 가능하다고 봤던 걸까?’
13국 연합 역시 가진 병력 대부분을 동원했다. 잉그렘 제국을 완벽하게 점령해 나눠 가질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잉그렘 제국의 저력은 만만치 않았다.
잉그렘 제국은 순간적으로 국토의 절반을 잃기도 했다. 심지어 황도 코앞까지 13국 연합의 병력이 몰려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어마어마한 숫자를 징집해서 13국 연합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리고 잃었던 땅의 절반 이상을 되찾았다.
‘대단하네.’
이런 나라와 13국 연합의 전쟁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전쟁은 필연이구나.’
힘들게 점령했던 땅 대부분을 내주자, 13국 연합은 잉그렘 제국과 휴전 협정을 맺었다.
13국 연합도 전력을 기울인 전쟁에서 병력을 대부분 소진한 상태. 더는 전쟁을 이어 갈 여력이 없었다.
잉그렘 제국은 정예병이 아니라 사회 일선에서 일해야 할 민간인을 대거 징집해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상황. 역시나 전쟁을 계속 이어 가기 어려웠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만들어진 20년의 휴전.
‘휴전은 이미 끝났는데.’
25년 전에 잉그렘 제국은 마수림에 50만 병력을 밀어 넣었다. 1년 후에는 13국 연합이 전격적으로 잉그렘 제국을 침공했고, 다시 2년이 더 흐른 후에 휴전 협정을 맺었다.
22년 전의 일이니, 20년간의 휴전은 이미 끝났다.
휴전 종료를 앞두고 리아즈 왕국에서 부랴부랴 만든 조직이 이곳 특수군 양성소였다.
‘특수군 양성소는 결국 귀한 인력을 투입하기 힘든 곳에 쓰일 칼받이를 교육하는 곳이군. 이름만 거창하지, 전혀 특수하지 않아.’
한숨만 나오는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왜 아직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걸까?’
이유는 모르지만, 아직 잉그렘 제국과 13국 연합은 여전히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잉그렘 제국 내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13국 연합은 전쟁을 바라지 않을 거다.
50만 병력을 잃은 잉그렘 제국을 기습 침략했을 때도 실패했던 전쟁이다. 다시 전쟁을 이어 간다고 이긴다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잉그렘 제국은 20여 년 전의 전쟁으로 자기 영토의 20%가량을 잃은 상태. 전쟁 재개의 이유로 충분했다.
‘이유는 알았으니 뭐, 결론은 하나네. 강해져야 한다는 것.’
시기가 문제일 뿐 전쟁은 필연이었다.
반드시 벌어질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내 실력도 어느 정도는 숨겨야 하고.’
10만큼 강하면, 10만큼의 전력이 필요한 임무에 투입된다.
20만큼 강하면, 당연히 20만큼의 전력이 필요한 임무에 투입될 테고.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20만큼 강하면서 대외적으로는 10만큼 강한 걸로 보여야 했다. 그래야 할 만한 임무에 투입되어 살아남을 수 있다.
‘근데 재미있네.’
원래는 역사를 조금만 파 보고, 수학을 비롯한 다른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특히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약초, 의술, 금속 제련 같은 지식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역사를 읽다 보니, 손을 떼기 힘들었다.
재미있고, 배울 점도 많았다.
‘아, 시간이 벌써.’
점심시간이 이미 몇 분 지났다.
아직 늦진 않았지만, 내무실 동기들은 이미 식사를 끝냈을 것이다.
* * *
오전에는 도서관, 오후에는 수업을 들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다시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손이 가는 대로 책을 골라 읽었다.
그렇게 1개월.
로딘은 도서관에서 1,0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역사부터 시작한 독서는 약초, 의학, 수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마구 가지를 뻗었다.
“로딘. 왔어?”
도서관은 밤 9시에 문을 닫는다. 시간이 됐는데 나가지 않으면 조교가 직접 찾으러 오기도 했다.
로딘은 도서관이 문을 닫는 시간에 맞춰 내무실로 들어왔다.
“로딘! 로딘. 기다렸어.”
“왜 이래? 무슨 사고라도 터졌어?”
“사고라면 사고지.”
코리가 손으로 단어 사전을 가리켰다. 두툼한 사전은 위에서부터 대략 10% 정도 넘어간 상태였다.
“사전이 왜? 찢어 먹기라도 했어?”
“그건 아니고. 진도가 안 나가. 이제 요만큼 읽었다고.”
“아!”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벌써 주어진 시간의 절반이 흘렀다.
“좀 도와주라.”
“흐음. 한 달 동안 나머지를 다 봐야 한다는 거지?”
“응. 망했어. 난 돌머린가 봐.”
자책하는 코리를 두고, 책의 두께를 가늠해 봤다.
‘나하곤 달라. 코리 입장에서 생각해야 해.’
하루 만에 다 외운 사전이지만, 그건 자신만 가능한 것. 다른 이들에게 같은 능력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어? 헤들러하고 랜트는?”
“헤들러는 옆방에.”
“놀러?”
“아니, 염탐. 시험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보고 있거든. 랜트는 씻으러 갔어. 곧 올 거야.”
랜트가 씻는다는 소리는 반가웠다.
코리는 그래도 몇 번은 씻었고, 헤들러는 이틀에 1번은 샤워를 했다. 그런데 랜트가 씻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곳만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방도 하는 얘기를 들어 보면 비슷했다.
‘대체 씻는 걸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매일 두 번씩 샤워하는 로딘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철컥!
그때 문이 열리고, 헤들러와 랜트가 들어왔다.
헤들러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했고, 랜트는 머리에 물기를 잔뜩 묻힌 채였다.
“왔어? 어때? 다른 방은?”
“다 똑같아. 아마 통과하는 사람이 1명도 없을…… 아닌가? 로딘. 넌 어때? 한 달 후에 시험 치면 통과할 수 있겠어?”
“아마도?”
“그럼, 얘밖에 없을 듯. 죄다 엉망이야.”
코리의 질문에 헤들러는 다른 방도 죄다 탈락할 거라 말했다.
매도 함께 맞는 게 나은 건지.
랜트와 코리가 눈에 띄게 밝아졌다.
“나만 망한 게 아니군.”
“나도.”
“흐흐흐. 다 같이 망하자. 우린 매 맞는 사람들.”
꼴을 보니, 공부를 포기할 것 같았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동기로서, 로딘은 그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헤들러. 네 말은, 다른 방도 공부를 거의 못 했다는 뜻이야?”
“응, 내가 확인해 봤어. 반의 반의 반의 반도 못 봤어. 전부 다.”
“설마.”
로딘은 이런 상황이 이해가 안 갔다.
단어가 많고, 어렵긴 했다. 아마 아예 모르는 외국어라면 성인이라도 다 외우기 어렵겠지. 하지만 단어 사전에 적힌 단어는 익숙한 단어가 많았다.
언어를 이미 알고 글자만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부를 알면 외우기도 쉽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던 단어들을 보고 ‘아, 이렇게 쓰는구나.’ 하고 외우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자, 이리 모여 봐. 코리 너부터.”
“나?”
“일단 여기로 와.”
로딘은 코리부터 단어 사전이 있는 곳으로 끌고 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