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94)
마법을 품다 (94)
상대의 몸에서는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마법을 쓰고 있다면 답은 하나였다.
‘아티팩트를 쓰고 있어.’
로딘은 살인자가 지나간 골목으로 갔다. 아주 희미한 마력이 근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정체가 누굴까?’
사람을 구하려면 지금 뛰쳐나가야겠지만, 로딘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사람을 구하려고 이 야밤에 나온 게 아니었다.
‘누군진 알아야지.’
로딘은 궁금한 걸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마법 병단보다 마탑 출신의 마법사와 비슷한 성향이었다.
‘안티 매직 필드.’
로딘은 골목 입구에 5서클 안티 매직 필드를 사용했다. 저 안에 닿는 순간 마법이 취소되는 마법이었다.
아티팩트의 수준이 높다면 취소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일시적으로 정지시킬 순 있었다. 그 정도면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됐고.’
안티 매직 필드를 펼친 곳에서 적당히 떨어져서 기다렸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는 마력이 느껴졌다.
‘이미 살인을 마쳤으려나?’
상대는 아무런 의심 없이 골목을 걸었다. 그러다 로딘이 펼쳐 둔 안티 매직 필드 위를 지나쳤다.
‘오호, 아티팩트 수준이 높은데?’
안티 매직 필드 위에서 잠깐 본 모습이 드러났지만, 해당 공간을 지나자마자 다시 투명해졌다.
상대가 사용하고 있는 아티팩트는 5서클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즉, 현시대에 만든 아티팩트는 아니었다.
‘역시 고대 유물이군.’
인비져빌리티는 4서클 마법으로, 현재의 마법사들이 물건에 담을 수 없는 마법이었다. 게다가 5서클 안티 매직 필드 위에서도 아주 잠깐만 기능이 정지할 정도라면,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아티팩트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저 사람이 누구지?’
잠깐 드러났던 모습을 떠올려 봤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적어도 이 동네에서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입은 옷이 상당히 고급이었고, 얼굴도 멀끔했다. 무엇보다 허리에 찬 검이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기사가 분명해. 그것도 신분이 꽤 높은 기사야. 하지만 실력은 별로야.’
신분은 높고 실력은 낮은 기사. 로딘이 잠깐 보고 판단한 살인자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빈손이었고.’
뭔가 목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갔지만, 성과 없이 나왔다. 그 살인자는 또 다른 대상이 있는 집으로 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떨까?’
거리를 두고 살인자를 따라갔다. 살인자는 지은 지 얼마 안 된 집 앞에서 잠깐 멈춰 선 상태였다.
‘저곳도 용병의 집이지.’
마가렛에게 근처에 있는 용병 출신의 집에 대해 들었다. 저 집 역시 글렌이라는 용병 출신 거주민의 집이었다.
‘상대도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을 텐데.’
어제 7명이나 죽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는 용병 출신 거주민들이 아무런 대비도 안 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첫 집에선 아무런 소란도 벌어지지 않았다.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수단을 저 살인자가 가지고 있었다.
‘움직이네.’
투명화 상태였던 살인자의 느낌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로딘은 급하게 문 입구에 다시 안티 매직 필드를 펼쳤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상대의 모습을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그래야 빈손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안티 매직 필드가 펼쳐지고 채 3분도 되지 않았다. 집 안으로 들어갔던 희미한 마력의 느낌이 다시 문으로 돌아왔다.
‘상대가 반항조차 못 하고 죽었다? 무슨 수단을 쓴 거지?’
하지만 의문은 짧았다. 그보다는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아주 짧은 시간.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20대 중반의 남자는 왼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다.
‘말 모양인가? 아닌가?’
상대가 들고 있던 물건은 네 발 달린 어떤 동물의 조각상이었다. 몸체는 가을 하늘을 닮은 파란색이었고, 크기는 어린아이 주먹 정도로 작았다.
‘저게 목표였나? 뭔지는 몰라도.’
욕심일 수도 있지만, 왠지 그냥 주기 싫었다. 그래서 투명화 상태로 걸어가는 상대의 뒤에 바짝 붙었다.
상대는 특별한 아티팩트를 가졌을 뿐, 마력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편은 아니었다. 실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고.
‘검사 같은데 이렇게 둔해서야.’
로딘은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바짝 달라붙었다. 콧김이 닿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가까웠다.
그런데도 상대는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이 정도면 예민하지 않다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둔하다고 봐야 했다.
‘해 볼까?’
로딘은 상대의 바로 뒤에서 3서클 마법 그리스를 펼쳤다.
그리스는 마찰 계수를 낮춰 미끄러지게 만드는 마법. 상대는 거기에 당해 그대로 발라당 넘어지고 말았다.
“크악!”
로딘은 상대가 넘어지는 틈에 바닥에 떨어지는 조각상을 낚아채 슬쩍 숨겼다. 그리고 뒤로 빠르게 걸으며, 상대와 거리를 뒀다.
삑삑!
“웬 놈이냐!”
“크으. 이런.”
“저기다!”
넘어지면서 뭔가가 잘못된 걸까. 고대 유물로 발동한 투명화 마법이 풀렸다.
20대의 젊은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넘어지면서 소리까지 치는 바람에 치안대의 이목에도 걸렸다.
‘음?’
살인자를 잡을 듯이 달려왔던 치안대원들이 이내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나자빠진 20대 사내를 부축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공자님을 뵙습니다.”
“순찰 중이었나?”
“예. 어젯밤에 살인 사건이 발생해서 순찰을 강화했습니다. 그런데 공자님께서 여긴 왜?”
“나도 어젯밤의 살인 사건 얘기를 들었다. 그런 흉악한 놈을 우리 영지에 둘 수는 없는 일. 해서 이 몸이 직접 그놈을 잡으려고 나왔다.”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로딘은 치안대원과 공자라는 자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치안대원들의 공손한 태도에 상대의 신분이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리치몬드 공작의 아들인가? 아니군. 나이를 보면 손자쯤 되겠어.’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니, 어이가 없었다.
후작의 손자라는 작자가 조각상을 얻겠다고 한밤에 영지민을 죽인 사건이었다. 알려지면 이 일을 저지른 범인뿐 아니라, 리치몬드 후작도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마스터에 오른 고귀한 리치몬드 후작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겠지.’
로딘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치안대원이 가까이 있으니, 전보다 더 조심해야 했다.
* * *
해리슨 리치몬드는 검술에 재능이 없었다. 어릴 때 오러 재능 점수가 무려 7점. 리치몬드 후작가의 선조들을 통틀어서 최악의 재능이었다.
그렇다고 검술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만 복잡한 동작을 하면 발이 꼬이고, 순서를 헷갈리기 십상이었다.
마스터 혹은 검공이라 불리는 위대한 검사가 그의 할아버지였다. 이미 6급 기사로, 차기 마스터라 불리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그런데 자신만 재능이 형편없었다. 같은 핏줄을 타고났는지 의심스러운 정도로 처참했다.
물론 그는 리치몬드 후작가의 핏줄이 분명했다. 실력은 형편없지만, 외모는 그의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누가 보더라도 ‘부자지간?’하고 알아볼 정도였다.
검에 재능이 없었던 해리슨 리치몬드는 다른 곳에 관심을 뒀다. 굳이 땀 흘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물건, 바로 아티팩트였다.
특히 약 2,000년 전에 멸망한 볼라스 왕국의 유물에 관심이 많았다.
볼라스 왕국의 가장 유명한 유물은 12수호상이라 불리는 아티팩트였다. 각 아티팩트에 환수와 정령을 담아 둔 물건인데, 원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볼라스 왕국은 공들여 만든 12개의 수호상을 공신 가문에 내렸다. 그들이 대대로 왕국을 수호하길 바라서였다.
하지만 바랐던 것과 다르게 볼라스 왕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멸망했다. 수호상을 만들고 채 5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해리슨 리치몬드는 12개의 수호상에 관해 들은 후, 적극적으로 수호상을 찾아 나섰다. 물론 직접 움직이진 않고, 주로 돈이나 권력을 이용해 사람을 부렸다.
9살 때부터 수호상을 찾기 시작했으니, 무려 15년.
그동안 해리슨은 4개의 수호상을 찾았다. 아니, 정확히는 3개는 찾았고, 4번째는 찾기 직전이었다.
“손에 넣은 줄 알았는데.”
4번째 수호상 얘기를 들은 건 우연이었다.
재작년 몬스터 토벌을 위해 모인 용병 중 1명이 술김에 과거의 무용담에 대해 떠들었는데, 그때 조각상 얘기가 나왔다. 단순 장식품으로 보이는 조각상은 한 용병대가 챙겼고, 자신은 칼을 챙겨 나왔다는 얘기였다.
문제는 무려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
그래서 행적을 하나하나 되짚어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끈기 있게 조사하기를 2년, 불과 10일 전에야 자기 영지 내에 당시 용병대에 속한 용병 중 일부가 살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잃어버리다니. 하아.”
4번째 수호상을 찾고 나오다가 넘어졌다. 갑자기 미끄러진 게 좀 이상했지만, 설마 누군가 개입했으리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문제는 넘어지면서 수호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치안대에게 귀한 물건을 흘렸다고 말해 두긴 했는데, 그들이 과연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찾아내겠지? 치안대를 무려 100명이나 동원했는데. 못 찾으면 다 잘라버려야지.”
넘어질 때, 수호상을 떨어뜨렸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주변을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한밤중이라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수색도 제대로 못 했다.
“제길.”
답답함에 소리를 치고, 침대 옆을 쳐다봤다.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작은 조각상 3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아, 그나저나 사용은 어떻게 하는 걸까?”
기록에 의하면 분명히 수호상에 환수, 정령이 담겨 있다고 했다. 거짓이 아니라면 이 조각상으로 분명히 환수, 정령을 부릴 수 있을 터.
그런데 아직도 이 조각상의 사용법을 찾지 못했다.
“또 마법사를 불러 봐야 하나?”
이런 일은 마법사가 전문이라는 생각에 몇 번 의뢰도 해 봤다. 영주성의 마법사에게는 수십 번이나 부탁했었다.
하지만 수호상의 사용법을 알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4대 마탑에서 나온 마법사도 한 달 내내 끙끙대더니, 포기하고 돌아갔다.
“멍청이들. 마법사라는 놈들이 아티팩트 사용법도 못 알아내다니.”
해리슨이 가진 아티팩트가 수호상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늘 사용한 투명화 마법이 담긴 상의도 있고, 대비하고 있던 용병 출신 남자를 한 번에 죽인 허리띠도 가지고 있었다.
허리띠에 담긴 마법은 하이드 나이프라는 이름인데, 보이지 않는 칼날을 날리는 마법이었다.
그 외에도 몇 개의 아티팩트가 더 있었다. 전부 비싼 돈을 주고 산 유물이었다.
리치몬드 후작가는 레녹스 왕국에서 첫손에 꼽히는 고위 귀족이었고, 거느린 상단만 3곳이었다. 아티팩트를 사는 데 돈이 부족한 적은 없었다.
“메이븐 왕국에 연락을 해 볼까? 거기는 알 것 같은데.”
수호상은 소유자가 아예 없는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12개의 수호상 중 몇 개는 소유자가 알려져 있고, 실제로 사용까지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쪽과 연락하면 수호상의 사용법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순순히 알려 주진 않겠지?”
알려진 수호상의 소유자는 5명. 그중에서 수호상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고작 2명이었다. 3명은 수호상을 소유하고 있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용법을 모르는 상태였다.
“그 3명도 분명히 2명에게 문의했을 거야. 그런데 알려 주지 않은 거겠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대가를 요구했거나.”
속은 답답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있었다.
수호상을 실제로 사용한다고 알려진 메이븐 왕국의 귀족은 로튼 후작가인데, 조만간 갈 일이 있었다. 그쪽에서 마스터인 할아버지를 정식으로 초빙한 것이다.
“영지전이라고 했지? 잘하면 영지전을 도와주고 방법을 알아낼 수도 있을 거야.”
물론 영지전을 돕는 사람은 마스터인 할아버지였지, 자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역시 수호상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들어줄 것이다.
“할아버지만 믿자. 할아버지만.”
* * *
사람을 속이려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까지 함께 속여야 한다. 특히나 어린아이가 있다면 쉽게 떠들 수 있으니, 적이라 생각하고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다.
로딘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서는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다.
새벽은 언제나 운동부터 시작이었다. 그러려고 마당이 넓은 집을 산 것이기도 했다.
1시간의 운동을 끝내자, 눈을 비비며 비앙카가 나타났다.
“로딘 오빠, 운동해?”
“다 끝났어.”
“그러면 연공실 갈 거야?”
“응. 가서 한 사이클만 돌리려고.”
비앙카는 새벽에 연공 하지 않았다. 밤 8시 전후로 연공 효율이 가장 높아서 그 시간에 집중적으로 하는 편이었다.
“우웅.”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평소에는 아침 먹기 직전에야 간신히 일어나더니.”
“나도 몰라. 저절로 깼어.”
“쉬어. 아니면 마가렛 찾아가서 놀든지.”
“힝. 그냥 공부나 할래.”
비앙카가 방으로 쏙 들어갔다.
비앙카는 요즘 공부에 재미를 붙인 모습이었다. 그게 부끄러운지, 아닌 척하지만. 틈이 날 때마다 공부하려는 모습이 수시로 보였다.
비앙카가 방으로 들어가고, 로딘은 지하의 연공실로 들어갔다.
“흐음. 뭔지는 알겠네.”
로딘은 어젯밤에 얻은 조각상을 살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굳이 마력을 주입해 내부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모양의 석상 그림을 특수군 양성소의 도서관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볼라스 왕국의 유물. 환수와 정령이 담겼다고 하던가? 사실은 아닌데 말이야.”
로딘도 도서관의 심화 2 서고에서 책을 볼 때만 해도 조각상에 환수나 정령이 봉인된 줄 알았다. 가능한지 아닌지는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 책에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까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호숫가의 심화 3 서고의 훼손된 책을 보며 잘못된 정보라는 걸 깨달았다. 정확히 말하면 볼라스 왕국에서 의도적으로 퍼트린 헛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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