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95)
마법을 품다 (95)
볼라스 왕국의 수호상으로 알려진 이 조각상은 사실 환수, 정령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당연히 환수나 정령이 봉인되어 있지도 않았다.
조각상의 비밀을 풀었다면서 환수나 정령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원래부터 환수 소환사이거나 정령사였다. 조각상으로부터 환수나 정령을 얻은 게 절대 아니었다.
그건 프루발 환영의 수업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루발 환영은 아직 마법을 가르치는 수업까지 진행되지 않았지만, 무슨 마법이 있는지 정도는 수업에서 언급되었다.
“아공간 마법이 8서클이라고 했지?”
프루발 환영에 등장한 아공간 마법은 현재의 누구도 사용할 수 없는 고위 마법이었다. 지난 1,000년 동안 8서클 마법사는 등장한 적조차 없으니, 그보다 더 과거라 하더라도 그리 흔했을 리 없었다.
그런데 8서클 마법인 아공간에는 생명체를 보관할 수 없었다. 환수, 정령 모두 아공간에 넣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볼라스 왕국에서 8서클 아공간보다 더 수준이 높은 수납형 아티팩트를 제작할 수 있었을까?
1~2개도 아니고, 무려 12개나 제작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대륙 전체를 다스렸다는 고대 마도 제국이나 프루발 정도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하지. 이건 지도니까.”
훼손된 책에 나온 내용이었다.
당시의 볼라스 왕국은 이미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주변의 11개국이 볼라스 왕국을 노렸고, 볼라스 왕국은 긴 전쟁으로 남은 병력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강제 징집을 너무 심하게 해서 민란도 일어났다. 내, 외부로 적이 가득해서 더 버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볼라스 왕국은 보물을 12곳으로 나눠서 묻어 두고, 그 보물의 위치를 석상에 담았다.
“어차피 가까운 곳에 있진 않겠지.”
볼라스 왕국은 중앙 대륙에 속한 국가였지만, 지금 있는 레녹스 왕국보다 한참 동쪽에 있던 나라였다. 동대륙과 중앙 대륙을 나누는 이코스 강과 인접한 곳으로, 이곳에서 말을 타더라도 2~3달은 가야 하는 먼 곳이었다.
“보물을 숨겼어도 아마 원래 자기 나라의 영토에 숨겼을 테니까. 어디 보자.”
말 형태의 석상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리고 세밀하게 조종하며, 내부에 담긴 마법진을 읽어 나갔다.
“어? 이거…… 흑마법?”
만약 볼라스 왕국이 흑마법을 주력으로 삼던 나라였다면, 여러 나라로부터 공격당해 멸망한 것도 이해가 된다. 당시 흑마법에 대한 증오심이 볼라스 왕국을 ‘악(惡)’으로 여기게 했을 것이다.
지금은 흑마법사라고 해서 무작정 공격당하진 않는다.
그게 흑마법사의 이미지가 좋아져서가 아니었다. 여전히 혐오하긴 하지만, 워낙 수가 적으니까 봐주는 것에 가까웠다.
‘내 근처로만 오지 마’와 같은 반응이랄까.
“이건 흑마법이 맞는 것 같은데.”
로딘은 흑마법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책에서 이런저런 얘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마법진을 이루는 섬뜩한 의미의 룬어 조합과 마법진을 그리는 기괴한 방식은 흑마법에 대한 설명과 일치했다.
“이거…… 지도가 아닌 것 같은데?”
심화 3 서고에서 본 책만 믿기에는 조각상의 느낌이 너무 안 좋았다. 어쩌면 볼라스 왕국이 자기들의 멸망을 예감하고, 조각상에 수작을 부려 놨을지도 모른다.
“자세히 좀 볼까?”
마법진에 새겨진 룬어를 하나하나 따로 떼어 놓고, 의미를 되새겼다. 생소한 룬어가 꽤 많이 나왔는데, 앞뒤 맥락으로 끼워서 맞출 수 있었다.
“영혼이 있고 옮긴다는 뜻, 저장한다는 뜻. 다 들어있는데. 영혼을 담아 놓고, 그릇으로 옮긴다.”
마법진에 새겨진 룬어를 얼추 파악했다. 내용을 확인하니, 등골이 서늘했다.
“이것 봐라. 진짜로 부활을 꿈꾼 건가? 불가능할 텐데.”
이론적으로는 가능했다. 실제로 백마법에도 영혼에 작용하는 마법이 있으니, 흑마법에는 훨씬 다양한 영혼 마법이 존재할 것이다.
문제는 육체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파장이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 육체에나 들어가 봐야 육체도 붕괴하고 영혼도 소멸해 버린다.
“정확한 파장에 맞는 육체가 나타날 줄 어떻게 알고? 게다가 너무 늙은 영혼은 담지도 못하는데.”
영혼에도 노화가 존재하고, 영혼이 늙으면 육체 역시 늙어야 파장이 맞는다.
즉, 죽기 직전에 새로운 삶을 위해 영혼을 옮겨 봐야 죽기 직전이거나 이미 죽은 몸 외에는 들어갈 곳이 없었다.
“불러 봐?”
마법진을 파악하면서 내부에 봉인된 영혼을 부를 방법은 찾아냈다. 의외로 간단해서, 로딘이 아닌 누구라도 방법만 알면 할 수 있었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 안 되겠어.”
영혼을 부르는 건 포기했다. 대신 이 아티팩트의 마법진에 사용된 룬어에 관심을 가졌다.
“확장이라……, 재미있네. 이렇게 사용하는 거구나.”
영혼의 안락한 봉인을 위해서인지, 이 조각상 내부에는 공간을 확장하는 개념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내부가 얼마나 확장됐는지는 영혼이 되어 봉인되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공간을 확장했다는 게 중요했다.
“이걸로 공간 확장 아티팩트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공간과는 개념이 달랐다. 아공간은 아예 다른 공간에 자기만의 보관소를 만드는 방식이라면, 이건 원래 있던 공간을 크게 확장하는 마법진이었다.
창고 혹은 마차 같은 곳에 사용하면 훨씬 넓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었다. 가방 같은 작은 물건에 새겨도 쓸 만했다.
“무게는 경량화 마법으로 해결하면 되니까, 쓸 만하겠는데?”
로딘으로서는 생소한 방식의 룬어 사용법이었다. 흑마법사만의 마법진 사용법 같았다.
하지만 흑마법이든 백마법이든 필요할 때 갖다 쓰면 그만이다. 로딘은 분류상 백마법사에 속하지만, 백마법만 써야 한다는 편견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좋은 걸 배웠어. 으음, 그렇다면 이 조각상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건데.”
내부의 마법진은 이미 다 파악했다. 머릿속에 다 담아 놨으니, 굳이 불결한 조각상을 곁에 둘 이유가 없었다.
* * *
연공실을 나오니,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마가렛이 차려 준 점심을 맛나게 먹었다.
“로딘 오빠, 좋다.”
“뭐가?”
“맛있는 음식. 마가렛 할머니 최고!”
비앙카는 별채가 있는 쪽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마가렛은 별채에서 매튜와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그러게. 고용하길 잘했다.”
“히히. 로딘 오빠도 최고.”
“그렇게 웃지 마. 누구 생각나서 별로야.”
로딘은 말을 하면서 어깨 위를 흘겨봤다. 어깨에 앉은 운다인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구?”
“있어. 물로 된 애.”
―히히히.
운다인 녀석. 또 이상하게 웃고 있었다.
저 웃음이 운다인의 의사 표현이니 하지 말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계속 듣고 있자니, 기분이 영 별로였다.
“그게 뭐야? 물로 된 애라니.”
“그런 게 있다. 난 좀 나갔다가 올게.”
“어디 가?”
“아티팩트 하나 만들어 보려고. 재료 좀 사야겠어.”
볼라스 왕국의 조각상을 통해 공간 아티팩트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지체할 것 없이 만들어 보기로 했다.
“빨리 와.”
“금방 올 거야.”
로딘은 돈과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상업 지구는 거리가 좀 멀어서, 역마차를 타야 했다.
돈을 지불하고 역마차를 탔다. 도로가 잘 닦여 있어서, 흔들림은 거의 없었다.
‘서대륙도 이런 건 배웠으면 좋겠네.’
랑스에는 역마차가 있었지만, 다른 도시에선 보지 못했다. 꽤 큰 도시에 속하는 본티스에도 역마차는 없었다.
‘아니지. 난 이제 서대륙인이 아니니까. 서대륙이 어떻든 신경 쓸 필요 없지.’
역마차는 부드럽게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상가가 잔뜩 모여 있는 상업 지구였다.
얼마 전 마가렛과 조리 도구를 살 때도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도 느꼈는데, 상업 지구에는 사람이 참 많았다. 영지에 사는 사람 전부가 이곳에 모여 있는 것만 같았다.
“고맙습니다.”
마차에서 내려 필요한 물건을 하나하나 샀다.
미스릴이 필요해서 주괴로 하나 샀고, 상급 마나석도 몇 개 샀다. 마법진을 새길 때 도움이 되는 은가루와 시약도 넉넉하게 챙겼다.
“아!”
상업 지구를 돌다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용병 길드가 보였다.
언제 한번 와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시간을 내기가 애매했다.
가까운 곳도 아니고, 상업 지구로 나올 일이 없으면 아무래도 잘 안 가게 되는 곳이었다.
“온 김에 들러 봐야겠네.”
양손에 짐을 들고 용병 길드로 향했다.
용병이 많은 지역이라서인지, 용병 길드 건물로 수없이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있었다.
검을 찬 용병, 창을 든 용병, 심지어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용병까지. 복장과 장비가 각양각색이었다.
‘들어가는 사람이…….’
손을 쓸 수 없어서 잠깐 기다렸다. 매직 핸드를 쓸까도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것조차 귀찮았다.
잠깐 기다리니, 용병 1명이 건물 안에서 급하게 뛰어나왔다.
로딘은 그 용병이 나오기 무섭게 발을 내밀어 문이 닫히는 걸 막았다. 그리고 몸을 들이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짤랑!
문종 소리가 울렸지만, 놀랍게도 쳐다보는 사람이 1명도 없었다. 워낙 많은 용병이 오가기 때문이다.
“실례합니다.”
로딘은 카운터로 가서 직원을 불렀다. 직원이 힐끔 쳐다보더니, 뚱한 얼굴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죠?”
“제가 용병패를 받고 의뢰를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용병패가 언제까지 유효한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용병패를 제시해 주시겠어요?”
“여기요. 매직 핸드!”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매직 핸드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을 사용하자, 그제야 카운터 직원의 눈에 가득하던 귀찮음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상당히 강한 호기심이 담겼다.
용병이 많은 이곳에서도 용병 마법사는 드물었다. 하루에 1~2번 볼까 말까였고, 그조차도 1서클이나 2서클 마법사에 불과했다.
반면 로딘은 2서클 매직 핸드를 시동어만으로 사용했다. 최하 4서클 마법사라는 뜻이었다.
“으음. 동패군요. 동패는 1년에 한 번의 의뢰는 꼭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경고만 받지만, 나중에는 용병패 회수 절차에 들어가게 됩니다.”
“1년이라……, 몇 달 안 남았네요.”
“예. 여기 새겨진 용병패 제작 일자를 보면 앞으로 3개월도 안 남았군요. 적당한 의뢰를 하나 하셔야겠습니다. 아! 당연히 동패 용병에게 맞는 의뢰를 해야 합니다. 그보다 낮은 의뢰를 해 봐야 소용이 없어요.”
“그렇군요. 의뢰 좀 살펴보겠습니다.”
서대륙처럼 이곳에도 동패 의뢰는 벽에 벽보처럼 붙어 있었다. 은패 용병이 되면 그때부터는 벽에 붙는 의뢰가 반, 카운터 직원이 선별해서 주는 의뢰가 반이었다.
‘뭔가 이거다 싶은 게 없네.’
호위 의뢰는 너무 오래 걸린다. 왕복 1개월 일정이라, 선뜻 고르기가 꺼려졌다.
몬스터 토벌은 더 길었다. 가고 오는 기간과 토벌 기간을 합쳐서 무려 3개월짜리였다. 이 의뢰를 받으면 의뢰를 완수하기 전에 용병패부터 취소되게 생겼다.
‘음? 포션? 검과 방패와 갑옷? 이런 건 왜 사 달라는 거지?’
로딘은 의뢰서를 뽑아, 카운터로 가져갔다.
카운터 직원은 의뢰서를 확인하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조금 골치 아픈 의뢰지요.”
“이런 의뢰가 왜 들어온 거죠?”
“길드로 안 오셔서 모르시나 보네요. 요즘 용병들 사이에 화제가 되는 얘긴데. 중앙 대륙의 5개 국가가 서대륙의 전쟁에 참전하기로 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질 얘기였다.
대체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왜 참전하려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예? 아니, 왜요?”
“잉그렘 제국이 서대륙을 통일하면, 중앙 대륙까지 마수가 뻗쳐 올 수 있다고 걱정하는 거죠.”
“괜한 걱정 같은데.”
“그런 얘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서대륙을 통일한 잉그렘 제국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거든요.”
이해 못 할 걱정은 아니었다.
서대륙은 중앙 대륙보다 작지만,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다. 중앙 대륙의 왕국 62개 중에서 50개쯤 합치면 서대륙과 비슷한 넓이였다.
잉그렘 제국이 서대륙을 통일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영토를 가진 최강의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잉그렘 제국이 중앙 대륙을 노려보기만 해도 중앙 대륙의 왕국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어야 하는 처지였다.
“포션하고 무기는 지원군이 쓸 물건이군요.”
“중앙 대륙의 지원군도 쓰고, 란데르트 왕국에도 제공될 겁니다.”
“란데르트 왕국을 지원하는 형식입니까?”
“중앙 대륙의 다섯 국가 중에서 3곳은 란데르트 왕국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2곳은 아스란 왕국과 힘을 합쳤고요. 우리 레녹스 왕국은 란데르트 왕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란데르트 왕국은 서대륙의 13국 연합 중에서는 최강대국이었다. 잉그렘 제국과 비교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지만, 그나마 잉그렘 제국의 공세를 버티고 있는 곳은 란데르트 왕국이 유일했다.
또 란데르트 왕국와 아스란 왕국은 서대륙에서 동쪽에 붙은 나라였다. 중앙 대륙과 그나마 가까웠고, 그래서 무역도 활발했다.
“포션, 공짜로 주는 건 아니죠?”
“물론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 사 오든, 직접 만들든. 제값을 주고 길드에서 매입할 예정입니다.”
“길드라……, 리치몬드 후작은 참전하지 않는 겁니까?”
“리치몬드 후작은 다른 영지의 영지전을 돕기로 약속해서, 당장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국의 방침이 정해졌으니, 일이 끝나면 참전할 겁니다.”
리치몬드 후작이 참전까지 미루며 돕는 영지는 메이븐 왕국의 로튼 후작이었다.
타국의 귀족을 돕는 일이라 말이 많았는데, 리치몬드 후작은 개인적인 친분 때문이라며 강행하기로 했다.
“이 의뢰, 제가 받겠습니다. 100개가 의뢰 내용인데, 더 많이 팔면 어떻게 됩니까?”
“개수만큼이죠. 400개를 팔면 동패 의뢰 4회로 기록됩니다. 1,000개를 팔면 10회로 기록되고요.”
“알겠습니다. 포션 준비해서 찾아오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