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96)
마법을 품다 (96)
어쩌다 보니 상업 지구에서 살 게 늘었다.
포션 제작을 위한 약초를 사들이고, 양손 무겁게 집으로 돌아왔다. 역마차가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날 밤, 로딘은 어제 리치몬드 후작가의 공자라는 남자에게 훔친 조각상을 망가뜨렸다.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내부의 마법 회로 몇 개는 복구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이 정도면 영혼도 못 나오겠지.’
봉인된 상태라서, 영혼을 직접 없앨 순 없었다. 그렇다고 영혼을 꺼내기 위해 몸을 대 주는 건 더 꺼림칙했다.
대신 영혼이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 둔 통로를 망가뜨렸다. 영혼이 제아무리 강해도 문이 열리지 않으면 나올 방도가 없을 것이다.
‘내가 좋은 놈은 아니지만.’
영혼을 심은 볼라스 왕국의 누군가에게 딱히 앙금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도 살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질렀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다. 운 없는 누군가의 인생을 강제로 뺏겠다는 게 도적질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특히나 리치몬드 후작가는 자신과 동생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상한 영혼 때문에 집 주변이 혼란스러워지는 건 달갑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고.’
로딘은 그날 밤, 어제 조각상을 훔친 자리의 구석에 말 형태의 조각상을 버렸다. 흙으로 슬쩍 덮어 놔서, 잘 안 보이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대로 찾아가려나?’
치안대가 움직일지, 어제 ‘공자님’이라고 불렸던 남자가 직접 와서 찾아갈지.
어차피 망가진 물건이니, 누가 가져가든 상관없었다.
“중앙 대륙이 서대륙의 전쟁에 참전한다……, 좋은 선택 같진 않아.”
영혼 문제는 머릿속에서 지웠다. 대신 오늘 용병 길드에서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레녹스 왕국을 포함한 다섯 국가가 서대륙의 전쟁에 참전하기로 했다.
전력을 동원하진 못할 테고, 아마 여유 병력 일부만 보내는 정도일 것이다. 대신 용병을 많이 고용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정도로 잉그렘 제국을 이길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잉그렘 제국군의 힘은 중앙 대륙의 왕국보다 훨씬 강했다. 다섯 국가가 더해진다고 승패가 달라질 확률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승리를 위한 참전은 아닐 거야.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지.”
잉그렘 제국은 마수림이라는 문제를 태생부터 안고 있었다. 30여 년 전에 실패한 대규모 토벌로 한동안 잠잠하지만, 또다시 마수가 준동할 확률은 언제든지 존재했다.
중앙 대륙의 왕국들은 그때까지 시간을 끌어서, 13국 연합을 존속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아니군. 13국 연합이 아니라 10국 연합이라고 해야 하나?”
이미 망한 나라가 3곳이었다. 리아즈 왕국, 베로스 왕국, 패리 왕국은 이제 세상에 없는 나라였다.
중앙 대륙의 왕국들이 이미 망한 나라까지 살려 줄 리는 없다. 잉그렘 제국도 완전히 점령한 땅을 순순히 내줄 만큼 호구는 아니었고.
“하아, 이 문제도 신경 쓰지 말자. 난 이제 중앙 대륙 사람이니까.”
억지로 잊으려고 해도 자꾸 관심이 갔다. 서대륙에서 태어나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서대륙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생긴 모양이다.
17일 후, 로딘은 포션 제작을 마무리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조금 더 걸렸다. 프루발 환영의 수업에 집중하느라, 포션 제작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포션 제작은 끝났다. 로딘은 정확히 403개의 포션을 들고 용병 길드를 찾았다.
“상처 치유 포션입니다. 확인해 보세요.”
“아! 잠시만요.”
400개에 달하는 개수에 카운터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포션 1병을 들고 급하게 달려가는 뒷모습이 다급해 보였다.
‘효과는 만족스럽겠지.’
이번에 만든 포션은 고대 비전 포션이었다.
어차피 길드에서 일괄적으로 모아 놓고 공급할 터. 포션의 효능이 유별나게 좋은 걸 나중에 알아챈다고 하더라도, 누가 만들었는지 조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재료비가 싼 고대 비전의 포션을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도 아주 조금이지만 고대 비전의 포션이 편했다.
“와! 효과 좋은데요. 거의 마샬 마탑에서 만든 포션 수준입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포션을 직접 제작하십니까?”
“예. 직접 만들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아니라고 하면 어디서 산 거냐고 물을 텐데 그러면 계속 거짓말을 보태야 했다. 그게 더 귀찮았다.
“혹시 앞으로 계속 공급해 주실 수 있습니까? 동패 용병 의뢰로 쳐 드리겠습니다.”
“거절하겠습니다.”
“아니, 왜요? 가격도 많이 올랐는데. 팔면 이득이지 않습니까?”
“들이는 재료나 품을 생각하면, 별 이득이 아니라서요. 차라리 아티팩트를 만들어서 파는 게 낫습니다.”
리치몬드 후작령으로 온 후, 이미 아티팩트 몇 개를 만들어 팔았다. 조사하면 다 나올 테니, 굳이 입을 다물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아! 아쉽네요.”
“그러면 의뢰는 완수된 거죠?”
“예. 403개의 포션을 받았고, 동패 의뢰 4회 완수하셨습니다. 용병 길드를 대표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 포션값입니다.”
용병 길드에서 매입한 포션 1병의 가격은 27골드. 서대륙에서 40골드 이상에 팔던 걸 생각하면 완전 헐값이었다.
하지만 중앙 대륙에선 이조차 최근에 많이 오른 가격이었다. 서대륙 전쟁에 참전한다고 결정하기 전까지는 25골드 이하에서 거래되었다.
“감사합니다.”
“포션 제작! 꼭 생각해 보십시오.”
“예. 생각은 해 보죠.”
인사를 하고 용병 길드를 나왔다. 오늘따라 바깥바람이 차가웠다.
‘슬슬 겨울로 접어드나?’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변을 감상하며 생각에 잠겼다.
리치몬드 후작령은 상당히 발달한 영지였다. 건물은 깨끗했고, 치안도 좋았다. 교역 도시라 유동 인구가 정말 많은데도, 큰 사고가 벌어지는 일은 드물었다.
‘좋은 곳이야. 래리와 비앙카가 살기에는.’
* * *
비앙카는 두 달 후, 새해까지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날에 첫 서클을 생성했다.
특수군 양성소의 훈련생들이 평균 3개월 이상 걸린 걸 고려하면 상당히 빨라 보이는 속도였다.
하지만 당시와는 조건이 달랐다.
로딘이 직접 개량한 마력 연공실은 특수군 양성소의 그것과 비교해 마력 변환율이 족히 2배는 되었다. 거기다 집 전체에 마나 집적 마법진을 만들어 둔 것도 있었다.
물론 마력 연공을 10회 반복한다고 마력이 10배 쌓이는 건 아니었다. 마나 집적 마법진이 있어도 실제로 쌓이는 마력은 고작 몇십 퍼센트 향상이었다.
그래도 이래저래 합치면 특수군 양성소 때보다 훨씬 빨라야 정상이었다.
그러니 두 달 만에 첫 서클을 만든 비앙카가 특출하게 빠르다고 보긴 어려웠다.
어찌 됐든 비앙카는 1서클의 마력을 가졌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마법 수업을 시작했다.
특수군 양성소의 교육과는 조금 다른 방식을 택했다.
로딘은 이론을 상당히 중시하는 편이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마법은 오히려 자신을 해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룬어를 가르칠 때는 의미와 발음을 꼼꼼하게 알려 줬다. 좌표 계산 역시 정확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캐스팅하도록 했다.
비앙카가 마법을 배우는 동안 래리도 조금씩 성과를 보였다. 몸이 탄탄해졌고, 검술도 제법 매서웠다.
로딘이 볼 때는 아직 멀었지만, 그건 기준이 너무 높아서일 뿐. 이제 막 13살이 된 걸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다시 3개월이 흘렀다. 15살이 된 로딘은 마력 연공실에서 큰일을 앞두고 있었다.
“후우, 6서클. 오래 걸린 게 아닌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것 같지?”
5개의 서클 전부에 마력이 충만하게 들어찼다. 이제 6번째 서클을 만들 차례였다.
“한 번에 넘어야 해. 실패하면 곤란해져.”
부드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한번 주저앉으면 다음에는 더 힘들어진다.
주변의 마나를 빠르게 끌어모았다. 일시적으로 주변에 마나 공백이 생기자, 멀리 있던 마나가 끌려왔다.
‘더, 더.’
의지를 투사해 마나를 계속 모았다. 마나 공백, 다시 마나 채우기를 서너 차례 반복했다.
‘지금.’
한계까지 끌어모은 마나를 빠르게 돌렸다.
몸 전신을 타고 이동한 마나가 특정한 지점에서 성질이 변했다. 마력으로 바뀐 것.
로딘은 바뀐 마력을 심장의 서클 주변으로 뭉쳤다. 더 강하게 의지를 부여해, 흩어지지 않도록 강제했다.
‘역시 마력이 말을 잘 들어.’
원래 마력은 모여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나일 때의 습성이 남아서, 적당한 간격으로 흩어져 있는 걸 좋아했다.
서클을 새로 만들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 있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서클의 마력들이 새로운 마력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마력은 자아가 있다.’
로딘은 지난 한 달 동안 마력에게 가르쳤다. 새로운 마력은 필요하다고, 너희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새로운 마력의 띠를 만들려니, 마력 중 일부가 반발했다. 대세를 거스르는 일부의 반란이었다.
‘이런 멍청한 마력도 있는 법이지.’
로딘은 반발하는 마력만 따로 잘 선별했다. 그리고 5서클 마법 임팩트 배리어를 펼치면서, 그런 마력만 사용했다.
반발하던 마력이 마법을 만들면서 자리를 비웠다. 로딘은 그 틈을 노렸다.
‘지금.’
뭉친 마력을 홱 돌리며 서클 형태로 빚었다. 마력은 꼬이고, 또 꼬이며 선명한 서클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남는 일부 마력은 자리를 비운 마력의 틈을 파고들었다.
‘멍청한 마력은 안녕.’
기존의 서클은 새롭게 만들어진 서클에도 반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기듯이 서클 간의 거리를 조정했다.
6개의 서클이 시원하게 돌았다. 속도는 빠른데, 안정적이었다. 서로 반발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후우우. 깔끔하게 끝났네.”
시간을 보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식사를 건너뛰었지만, 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6번째의 서클이 기분 좋은 만족감을 느끼게 했다.
“그래도 먹긴 먹어야겠지.”
연공실을 나와 1층으로 올라갔다. 때마침 카르도스 검관에서 훈련을 마친 래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 형.”
“래리, 훈련은 어때?”
“좋아요. 다들 친절하고. 훈련은 힘들지만, 보람은 있어요.”
보람이 있다곤 말하는 래리의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무슨 문제가 있나 싶었다.
“그래. 열심히 해라.”
“들어가요. 배고파요.”
래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서 공부 중이던 비앙카가 웃으며 달려 나왔다.
“오빠!”
“공부 열심히 했어?”
“응.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요즘은 재밌어.”
응접실 겸 식당에 앉아 있으니, 마가렛이 저녁을 내왔다. 로딘은 식사를 앞에 두고, 잠시 손을 들었다.
“마가렛, 또 별채에서 식사할 생각이죠?”
“예. 사장님. 그러려고요.”
“그럼, 지금 얘기해야겠네요. 급여를 좀 올릴게요. 요즘 매튜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고.”
매튜는 꾸준히 운동을 해서, 지금은 원래의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마당을 쓸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꼼꼼하게 집과 주변을 점검했다.
잡초가 보이면 잡초를 뽑았다. 오물 같은 게 묻어 있으면, 바로바로 지웠다.
마가렛이 시장에 갈 때는 따라가서 짐꾼 노릇을 했고, 비앙카가 심심해하면 놀아 주는 사람도 매튜였다.
어쩌면 이 집안에서 마가렛보다 하는 일이 더 많은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여기서 지내게 해 주시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데요.”
“그것하곤 별개죠. 일을 잘하면 많이 받는 게 당연한 거예요. 마가렛은 40골드, 매튜는 30골드. 어때요?”
기존에 마가렛은 25골드, 매튜는 15골드였다. 아파서 한동안 재활만 한 매튜에게는 과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매튜는 성실하고, 상냥했다. 비앙카의 어리광도 잘 받아 줬고, 항상 웃는 모습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너무 많습니다. 매튜는 2배로 오르는 건데.”
“그만큼 많은 일을 하니까요.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만 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아, 참! 내일 외출할 것 같아요. 좀 오래 나가 있을 것 같은데.”
“육포하고 간단하게 먹을 것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고마워요. 마가렛.”
마가렛을 보내고, 저녁을 먹었다. 래리와 비앙카가 로딘을 보며 히죽 웃었다.
“왜 웃어?”
“그냥 좋아서. 돈 많은 오빠라서 다행이야.”
“식기 전에 먹자.”
이 집에서 식사 속도가 빠른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비앙카와 래리가 좀 급하게 식사하는 편이었는데, 느릿하게 꼭꼭 씹어 먹는 로딘 때문에 전부 그 속도에 맞춰졌다.
느릿한 식사가 끝났다. 식기가 나가고, 로딘은 래리, 비앙카를 잡았다.
“아까 마가렛한테 하는 말 들었지? 내일부터 외출을 좀 해야 할 것 같아.”
“얼마나요?”
“모르겠다. 최대한 서둘러 보겠지만, 한 달 이상 걸릴지도 몰라.”
로딘은 내일 바로 모우드 황무지로 가 볼 생각이었다. 이전에는 5서클 마법사라 열지 못했던 문이었지만, 지금은 열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래요?”
“응. 래리, 너도 훈련 끝나면 되도록 집으로 와서 비앙카하고 같이 있어 줘.”
“예. 노력은 해 볼게요.”
“비앙카는 항상 하던 연습 계속하고. 공부도 쉬지 말고.”
“예.”
“더 잔소리할 필요는 없지?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을게.”
미리 당부해 두고, 오늘도 평소와 같은 일과를 이어 갔다.
로딘은 방에서 프루발 환영의 수업을 들었다. 서서히 2시 수업도 마무리되는 중이었다. 빠르면 10일 안에 3시 수업을 시작할 수 있을 듯했다.
래리와 비앙카는 저녁 연공을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둘 다 해가 진 이후에야 연공 효율이 극대화되는 체질이라, 연공만큼은 같은 시간에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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