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98)
마법을 품다 (98)
100명이 넘는 무리가 모우드 황무지에 나타났다. 모두가 검은색 옷을 입었고, 가슴에는 묘한 자세의 뱀 모양 자수가 황금색 실로 새겨져 있었다.
“이곳인가?”
“예. 장로님. 이곳이 카라미스 습지가 맞습니다.”
“아무리 봐도 습지는 아닌 것 같은데.”
“수천 년이 흐르면서 지형이 변한 것 같습니다. 지각 변동도 심했던 것 같고요. 그래도 문헌에 의하면 이곳이 카라미스 습지가 확실합니다.”
장로라 불린 노인이 모우드 황무지를 느긋하게 구경했다.
곳곳에 버려진 채광 도구가 널려 있었다. 파다 만 갱도도 20곳이 넘었다.
“최근에는 사람이 온 적이 없다고?”
“예. 3년 6개월쯤 전이 마지막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퍼지면서 채굴 작업을 중단했습니다.”
“전염병?”
“예. 사람이 이유도 없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당시의 병을 조사하기 위해서 마탑에서도 나섰지만, 알아낸 게 없다고 합니다. 저희 판단으로는…….”
부하가 말을 멈추고, 장로를 올려다봤다. ‘판단’에 대해 말해도 될지, 허락을 구하는 모습이었다.
그들 조직에서 ‘판단’할 수 있는 직책은 정해져 있었다. 하부 조직원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그뿐.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되었다.
“말해 보라.”
“고대 유물 중 하나에 저주가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유물의 기운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예. 제 판단은 그렇습니다. 변변치 않은 의견이니, 장로님께서는 무시하셔도 됩니다.”
장로는 부하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밑에서 일했던 유능한 부하였다. 그가 ‘저주’를 언급했다면 그만한 근거가 있을 터였다.
“마도 제국의 유산이라……, 만약 문헌에 적힌 게 사실이라면 온전하게 얻는 첫 번째 유산이지?”
“마도 제국으로 한정하면 그렇습니다.”
“마도 제국으로 한정? 웃기는 소리야. 마도 제국을 제외하면, 진정한 마법을 익혔던 나라는 없었다. 오직 마도 제국의 마법만이 진짜야. 그 후대든, 선대든 마찬가지야.”
장로는 마도 제국 이외의 마법을 모두 아류로 치부했다.
마도 제국의 마법을 복원하다 우연히 건진 마법, 마도 제국의 마법을 흉내 내서 만든 가짜는 진짜 마도 제국 마법에 비할 수 없었다.
“프루발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전설일 뿐이야. 아니, 그냥 당시의 누군가가 쓴 소설이라고 봐야지.”
장로도 프루발에 관한 기록을 본 적이 있긴 했다. 오래된 기록물에서 아주 짧게 나온 단어였고, ‘마도 제국 황실조차 예의를 갖췄다.’라는 대목이 적혀 있어서 ‘설마?’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프루발에 관해 몇 년을 조사했다. 혹시나 마도 제국 이상의 왕국은 아니었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딱히 건진 건 없었다. 프루발이라는 단어가 적힌 기록을 하나 더 찾긴 했는데, 다른 차원에서 넘어왔다는 소설 같은 얘기가 전부였다.
그때부터 장로는 프루발에 관한 조사를 접었다. 너무 허무맹랑해서 조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비싼 장비니, 조심히 다루고.”
“예. 장로님.”
부하들이 움직여서 수십 개의 장치를 곳곳에 설치했다. 장치의 크기가 크고 숫자가 많아서,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무려 60개가 넘는 부품이 합쳐져야 효과를 내는 아티팩트였다. 제작 기간도 길었지만, 제작에 들어간 재료도 죄다 고가였다.
거의 2시간이 흐른 후에야 장비의 설치가 끝났다.
마지막 가동만 남겨 둔 상태일 때, 장로가 앞으로 나섰다.
“시작하지.”
장로가 장비들의 중앙에 서서 주문을 영창했다. 주문이 시작되자, 장비가 희미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주문이 이어질수록 빛은 점점 강해졌다.
“발현하라! 에인션트 오브젝트 디텍션!”
60개가 넘는 장비에서 회색빛이 치솟았다. 그 빛은 60여 개의 장비에 잠깐씩 머물더니, 이내 한곳으로 흘러갔다.
“저깁니다.”
“그렇군.”
에이션트 오브젝트 디텍션.
고대의 유물이나 흔적을 찾는 마법으로, 그들의 조직이 긴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낸 마법이었다.
서클로는 고작 5서클. 낮은 수준의 마법은 아니지만, 고위 마법사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룬어가 워낙 어렵고 수식 계산이 복잡해서 사람이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대마법사조차 10번을 시도하면 10번 모두 실패하는 마법이었다.
로딘이 이 장비를 봤다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미세 마력을 감지하는 장비를 만들었구나.’라고.
마도 제국의 아티팩트는 외부로 흘러나오는 마력이 거의 없었다. 대마법사조차 가까이에서 한참을 집중해야 간신히 ‘마력이 있다’ 정도로 느낄 만큼 마력의 기운이 약했다.
이 미미하고 미약한 마력을 느끼기 위해서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했다.
원래 재능 측정에 사용되는 도구를 미세 마력 측정기, 혹은 미세 오러 측정기라고 부른다. 이름처럼 미세한 마력, 혹은 오러를 측정하기 위한 장비였다.
그런데 이 측정기로도 마도 제국 시절의 아티팩트에선 마력을 읽어 내지 못했다. 그보다 더 세밀하고, 더 민감한 장비가 필요했다.
이들 조직은 긴 시간 동안 개발한 끝에 미세 마력 측정기보다 더 미세한 마력을 탐지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만들었다. 오늘 이곳에 가져온 60여 개의 아티팩트였다.
“가시죠.”
“흐음.”
장비가 가리키는 갱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갱도 옆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설마 사람이 들어간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이미 리치몬드 후작령에 사람을 풀어서 오랫동안 조사했습니다.”
갱도 옆에 나 있는 구멍은 작았다. 사람이 들어간다면 어떻게든 들어갈 수는 있는, 하지만 엄청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크기였다.
이런 작은 구멍에 몸을 구겨 넣는 것보단 차라리 큰 돌들을 들어내는 게 편했다.
마법사라면 매직 핸드로 돌들을 치웠을 테고, 기사였다면 힘으로 돌들을 끄집어냈을 것이다.
“리치몬드 후작령과 상관없는 사람이 들어갔을 확률은?”
“그래 봐야 도굴꾼이거나 좀도둑일 텐데. 유적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입구부터 정리해라. 오늘 중으로 끝내고, 내일 아침에 들어갈 수 있게 해라.”
“알겠습니다.”
마법사들이 일제히 매직 핸드 마법을 사용해서, 갱도를 정리했다. 마법으로 돌을 치우고, 물을 뿌려 먼지를 가라앉혔다.
입구는 큰 덩어리의 바위가 없어서 금방 끝났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통로를 막은 바위가 커졌다.
* * *
통로에서 공동으로 넘어가는 딱 한 걸음을 남겨 놓고 로딘이 숨을 골랐다.
언제든지 도망칠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 내디뎠다.
“하아.”
전투 인형은 공격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곳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정답이었군. 근데 저기서 마력 패턴을 읽는다? 저게 말이 돼?”
입구에서 오른쪽 구석까지는 대략 20미터, 왼쪽 구석까지는 대략 25미터였다.
전투 인형들은 절대 가깝다고 할 수 없는 거리에서 마력 패턴을 읽고 공격할지 말지를 결정했다.
“뭐, 나도 되니까 이상한 건 아니지만.”
일단 의문은 접어 두고, 앞에 수북하게 쌓인 책을 멍하게 쳐다봤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책부터 읽고 싶었다.
“아니야.”
지금 자신의 마력 패턴은 익숙하지 않은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이대로는 마법을 쓸 때도 한 번 더 생각해야 했다.
“일단 저 녀석들부터 봐야겠지.”
창을 들고 있는 오른쪽의 전투 인형에게 다가갔다. 혹시나 공격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코앞까지 갈 때까지 창을 든 전투 인형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잠깐 실례.”
전투 인형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내부에 마력을 주입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공격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려 애썼다.
“하아, 이건…….”
예상대로 전투 인형은 마력이 아니라 마나 기반의 아티팩트였다. 내부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마법진이 잔뜩 새겨져 있었는데, 하루 이틀로 다 파악하는 건 힘들었다.
“오늘 다 파악할 필요는 없지.”
우선 명령권과 관련된 마법진만 찾으면 된다. 공격받지 않도록, 가능하면 명령권을 가질 수 있도록 특정 마법진을 손보는 게 먼저였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이건…… 이런 방식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었구나. 마나 블레이드라고 해야겠는데? 흐음, 아무튼 이것도 아니고.”
마법진이 워낙 많아서, 하나하나 찾아보는 데에만 몇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꼼꼼하게 살핀 끝에, 원하는 마법진을 찾아냈다.
“이건데.”
로딘이 뒤를 힐끔 돌아봤다. 저 멀리 20대 여자 모습을 한 전투 인형이 보였다.
“마력 패턴을 바꾸면 저기서 공격해 올 텐데. 시간 안에 되려나?”
지금 눈앞에 있는 전투 인형의 명령권을 로딘이 원래 가지고 있던 마력 패턴의 소유자로 바꿀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원래의 마력 패턴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 이 마력 패턴이 명령권을 가진다는 걸 창을 든 전투 인형에게 알려 줄 수 있었다.
문제는 그사이에 멀리 있는 다른 전투 인형에게 공격받게 된다는 점이었다. 검과 방패를 든 여자 전투 인형에게 공격받기 전에 창을 든 전투 인형의 마법진을 조작해야 했다.
“시간은 2초 이내. 그 안에 끝내야 하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마법진을 조작하려면 적어도 5분은 필요했다. 이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시간이었다.
“아니지. 지금 내가 명령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 이질적인 마력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 로딘이 두 전투 인형의 주인이며 명령권자였다.
지금 자신이 지시를 내리면 두 전투 인형은 당연히 지시대로 움직일 것이다.
“명령을 내리려면 이름을 알아야 할 텐데.”
마법진을 다시 살폈다. 하나하나 살핀 끝에 창을 든 전투 인형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카리스.”
“하로. 크아리.”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창을 든 전투 인형이 대답했다. 앞만 보던 자세도 로딘에게 고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전투 인형의 입에서 나온 소리를 로딘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모르는 고대어였다.
“내 말을 알아듣긴 하는 건가?”
“테노사트리아. 크아리.”
[알아듣습니다. 마스터.]“아!”
이번에는 입 밖으로 나온 말 외에 의미까지 머리로 전해졌다. 텔레파시 마법이었다.
로딘이 사용하는 언어가 낯설다는 걸 알게 된 전투 인형이 말과 함께 텔레파시 마법을 함께 사용했다.
이거면 대화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인지 모를 고대어를 배우는 것도 가능해졌다.
“내 옆에 따라와.”
“하노. 크아리.”
[예. 마스터.]로딘은 검과 방패를 든 여성형 전투 인형에게 다가갔다. 똑같이 마법진을 하나하나 살펴서, 이름을 알아냈다.
“제나.”
“하노. 크아리. 스토리비아.”
[예. 마스터. 말씀하세요.]같은 전투 인형인데도 말투가 달랐다. 전투 인형 제나의 목소리가 훨씬 부드러웠고, 표정도 다채로웠다.
“앞으로 너희들은 입 밖으로 말하지 마. 텔레파시 마법만 사용해.”
[예. 마스터.] [그렇게 할게요. 마스터.]이해할 수 없는 발음의 말과 텔레파시 마법으로 전해지는 뜻이 섞이니 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일단 배제하기로 했다.
“카리스, 제나.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30분 동안은 움직이지 마. 누구도 공격하면 안 돼.”
[알겠습니다. 마스터. 30분 동안 대기할게요.] [알겠습니다. 마스터.]카리스와 제나에게 명령을 내려 두고, 카리스의 마법진부터 건드렸다.
명령권을 가지는 새로운 마력 패턴을 입력하기 위해, 기존에 등록되어 있던 마력 패턴을 지웠다. 그 자리에 자신의 마력 패턴을 새기고 손을 뗐다.
“후우. 카리스.”
[예. 마스터.]다행히 정상적으로 명령권자가 바뀌었다. 이젠 원래의 마력 패턴을 유지해도 전투 인형 카리스에게 공격당할 위험은 없었다.
“내가 마스터가 맞지?”
[예. 마스터.]“됐어. 대기해.”
카리스 다음으로 제나의 마법진을 손봤다.
이전에 내려 둔 명령 때문에 마법진을 건드리는데도 둘은 반응이 없었다.
“후우. 끝났다. 제나.”
[예. 마스터.] [예. 당연히 저의 마스터가 맞습니다.]“다행이군.”
너무 집중했더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진이 다 빠져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운다인. 좀 씻겨 줘.”
―히히히.
운다인이 생성한 찬물이 몸 전신을 쓸고 지나갔다.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카리스와 제나 때문에 잠깐 위험할 뻔했지만, 지금은 다 지난 일이었다.
이미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다. 벌써 해가 지고 있을 텐데, 그간 한 일이라고는 전투 인형 카리스와 제나의 명령권을 가져온 게 전부였다.
“책이 정말 많은데.”
마음이 안정되니, 그제야 책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몇 권인지 감도 안 잡힐 정도로 많은 책이 쌓여 있었다. 차곡차곡 쌓은 게 아니라, 그냥 마구 던져 놓은 것처럼 무질서한 책의 산이었다.
“대체 왜 관리를 이렇게 하는 거지?”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엉망으로 방치된 책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시간이 충분하면 책장을 만들어서, 분류별로 하나하나 정리하고 싶었다.
“후우, 속이 답답해.”
당장 정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나중에 이곳의 책을 쌓아 놓고 읽을 생각을 하니, 뭔가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이곳에는 살면서 읽은 모든 책을 다 합친 것보다 몇 배는 많은 양의 책이 있었다.
책을 정말 빨리 읽는 로딘이라도 저 많은 책을 다 읽으려면 수십 년은 걸리지 싶었다.
“여기에 온 건 최고의 선택이었어.”
책에 관심이 갔지만, 우선은 주변부터 돌아봤다.
“우선 룬어부터.”
벽은 위부터 아래, 사방 전부에 룬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대충 봐도 아는 룬어보다 모르는 룬어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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