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99)
마법을 품다 (99)
마법진으로 보이는 벽의 룬어만 선별해서 먼저 살폈다. 모르는 룬어는 건너뛰고, 마법진의 정체만 대강 유추했다.
어떤 목적으로 만든 마법진인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공격을 막는 마법이야. 외부와 내부 모두.”
벽 전체에 이 정도로 마법진을 새기려면 마나석도 엄청나게 소모했을 것이다. 상급 마나석으로 수만 개? 어쩌면 그보다 더 높은 등급의 마나석 수백 개가 사용됐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방어를 높인다는 건, 단순히 적을 막기 위해서라고 보기 어려워.”
이 공동은 긴 시간 뭔가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장소였다. 즉, 벽에 새겨진 어마어마한 숫자의 방어 마법은 적뿐 아니라 긴 세월에 맞서 싸우기 위한 준비라고 봐야 했다.
“어딘가에 상태 보존 마법도 걸려 있겠지.”
당장은 어디에 있는 어떤 룬어가 상태 보존 마법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상태 보존 마법이 있어야 말이 된다.
적어도 수천 년을 방치됐을 이곳에서 책이 거의 상하지 않은 채로 쌓여 있었다. 상태 보존 마법이 없었다면, 진즉 낡아서 해지고 사라졌어야 했다.
“그런데 책을 왜 이렇게 대충 쌓아 놨을까?”
공들여 만든 공간에 비해 책의 관리는 엉망이었다. 상태 보존 마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마구 쌓아 놓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으음. 설마?”
로딘은 책 가까이 다가가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책 안쪽에서 마력을 가진 뭔가가 다수 느껴졌다. 적어도 여러 개의 아티팩트가 책에 덮여 있는 것 같았다.
“아티팩트를 가리겠다고 책을 쌓아 놨다? 그건 더 이상하잖아.”
매직 핸드를 사용해서 책을 잔뜩 잡아 옆으로 옮겼다. 하나로는 오래 걸릴 듯해서, 매직 핸드 4개를 더 만들어서 동시에 조종했다.
수북하게 책을 들어서 옆으로 옮기기를 한참.
결국 책 아래에 깔려 있던 바닥이 드러났다. 그리고 바닥 옆에 나무 파편과 책이 아닌 물건 8개가 놓여 있었다.
“여기서 마력이 느껴지는데.”
갑옷이 2벌, 검이 1자루, 방패가 하나, 창이 하나였다. 이건 카리스와 제나가 쓸 무기와 방어구가 분명했다.
“나중에 줄게.”
[괜찮습니다. 마스터.] [명을 기다릴 뿐입니다.]카리스와 제나는 딱히 아티팩트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형. 마스터가 가지라면 가지고, 놓으라면 놓는 존재였다.
무기와 방어구 외에 팔찌와 목걸이도 하나씩 있었다.
“이건 그러면 전대 마스터의 물건인가?”
8개의 물건은 부서진 듯한 나무 파편 위에 있었다.
원래는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이나 단상 같은 구조물 위에 놓여 있던 물건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목조 구조물이 부서진 것 같았다.
“정체가 뭐려나?”
덩치가 가장 큰 갑옷부터 살폈다. 내부에 마력을 주입해 보니, 몇 가지 마법은 바로 읽을 수 있었다.
“강화, 소환, 굴절, 경량화, 축소화. 그 외에 2개의 마법이 더 있는데.”
나머지 2개에는 모르는 룬어가 너무 많았다. 앞뒤로 룬어를 읽고 맥락으로 유추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갑옷 2개는 같은 종류고.”
둘 다 가죽 갑옷이었다. 하지만 심장과 명치 같은 중요 부위를 보호할 수 있는 철판이 붙어 있었다. 리치몬드 후작령에서 이런 갑옷은 풀 플레이트 메일의 절반 값에 팔린다.
물론 이 갑옷을 그 가격에 팔 생각은 없었다.
갑옷에는 로딘도 모르는 룬어가 잔뜩 사용된 마법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구를 위해서도 절대 팔아선 안 되었다.
게다가 확실하게 알아낸 기능만으로도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물이었다.
확인하지 못한 기능까지 알아낸다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
“검에도 모르는 룬어가 있네.”
검과 방패, 창에는 강화를 뜻하는 마법진과 마나를 흡수하는 마법진, 크기를 줄이는 축소화, 그 외에 알 수 없는 마법진 몇 개가 추가로 붙어 있었다.
“나중에 연구하면 되겠고. 남은 건 팔찌하고 목걸인데.”
팔찌부터 살폈다. 내부에 새겨진 마법진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았다.
“공간과 소환, 보관, 다른 좌표 계산? 말도 안 돼. 아공간이잖아.”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마법진이었다. 룬어만 읽어서 기능은 알아냈지만, 수준이 너무 높았다. 지금 실력으로는 설사 재료가 있더라도 제작은 언감생심이었다.
“고장 났구나. 이거였어. 책이 왜 이렇게 방치되어 있나 했더니.”
원래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 전부가 아공간에 보관되어 있었다. 아공간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이니, 책이 낡거나 상할 걱정도 없었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팔찌에 문제가 생겼다. 물리적으로 마법진이 깨졌고, 그 때문에 안에 보관되어 있던 책 전부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렇다고 아공간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야.”
로딘은 팔찌에 마력을 넣고 꼼꼼하게 다시 살폈다. 몇 시간 동안 보고 또 보고, 다시 보기를 반복했다.
“여기군.”
한참을 들여다보고서야,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마법진을 이루는 룬어에 이상한 이물질 하나가 끼어 있었다. 그로 인해 룬어에 변질이 생겼다.
“임의로 고쳐도 될까?”
고민은 했지만, 답은 나와 있었다.
지금 팔찌를 가지고 누구한테 고쳐 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저 엄청난 양의 책을 가지고 나가려면, 아공간은 반드시 있어야 했다. 아공간 없이 저 책을 수백 권씩 옮기려면 다 옮기는 데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카리스, 내가 이 팔찌를 마음대로 고쳐도 될까?”
[마스터의 뜻대로.]“제나, 네 생각은 어때?”
[가능성이 있다면 도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무뚝뚝한 카리스와 다르게 제나는 진짜 사람처럼 대답했다. 멍하게 듣고 있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깜빡할 정도로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래. 제나, 네 말이 맞아. 해 봐야지. 딱 획 하나만 손대는 건데. 이조차 못하면 마법 때려치워야지.”
팔찌에 마력을 불어 넣고, 이물질을 살폈다.
마법진이 아니라 재료를 녹여 팔찌를 만드는 과정에서 끼어든 이물질이었다.
티끌만큼 작은 이물질인데, 하필이면 이 이물질이 룬어의 끄트머리에 걸쳤다.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설사 이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보통은 아티팩트를 검수하는 과정에서 알아채고 고치기 마련이었다.
“이물질을 빼내는 건 어렵고. 덮어서 없애는 게 최선이네.”
이렇게 고치면 아티팩트 수명에 문제가 생긴다. 당장은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때우지만, 나중에는 재료를 알아내서 제대로 고쳐야 했다.
팔찌를 이루는 몸체에서 마법진이 새겨지지 않은 부분을 살짝 녹였다.
정말 티끌만큼.
그렇게 녹인 자리로 이물질을 끌고 오고, 녹인 액체를 이물질이 있던 자리로 옮겼다.
우우웅!
팔찌가 미약하게 진동했다가 가라앉았다. 팔찌에 새겨진 아공간 마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후우.”
팔찌는 바로 오른쪽 손목에 착용했다. 마력을 살짝 주입하고 아공간을 떠올렸다.
그러자 시커먼 공간이 눈앞에 드러났다. 오직 착용자의 눈에만 보이는 공간이었다.
“됐네.”
남은 건 이제 목걸이 하나였다. 왼손에 쥐고, 마력을 미세하게 뽑아서 주입했다. 내부의 마법진이 보였다.
“으음, 이건 너희들 수납 공간이구나.”
팔찌처럼 목걸이 안에도 공간 마법진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공간과는 달랐다.
아공간은 내부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 전투 인형을 넣을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보관 용도 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목걸이의 공간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또 감각을 소유자와 연결하는 마법진이 들어 있어서, 내부에 보관된 전투 인형은 소유자가 보고 듣는 것을 함께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다른 마법진도 있긴 있는데.”
검, 창, 방패, 갑옷에 있던 것과 같은 마법진이 목걸이 내부에도 새겨져 있었다. 문제는 어떤 기능을 하는 마법진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게 뭔지 모르겠네. 제나.”
[예. 명령만 내려 주세요.]“명령은 아니고. 물어볼 게 있는데. 이 목걸이, 뭔지 알아?”
[예. 저희가 머무르는 공간이에요. 마스터의 집과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어요.]다행히 제나는 목걸이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전의 주인이 목걸이와 전투 인형을 사용해 본 게 분명했다.
“이 목걸이의 효과가 또 있어?”
[목걸이의 공간에 들어가면 우린 마스터가 보고 듣는 걸 함께 보고 들을 수 있어요.]“또?”
[고장이 났을 때, 저절로 수리도 되고요.]‘수리’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몰랐던 마법진의 기능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복원 혹은 수리. 부서진 부분을 자체적으로 원상태로 되돌리는 기능이었다.
검, 창, 방패, 갑옷에도 같은 기능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장비 파손 시에 전투 인형과 마찬가지로 저절로 복원되는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였다.
“혹시 너희들, 저 무기도 사용해 봤어?”
[예. 원래 저희가 쓰던 무기예요.]“지금 들고 있는 건 뭔데?”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이전의 마스터께서 우리 장비를 회수하고 주신 무기예요.]“확인해 봐도 돼?”
[물론이죠. 마스터는 묻지 말고 명령하시면 돼요.]제나가 자기가 가진 무기를 건넸다.
로딘이 제나가 건넨 무기의 내부를 살펴봤지만, 특별한 마법은 담겨 있지 않았다. 심지어 검의 재질도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됐어. 이건 버리고 이제 원래 무기 써.”
[감사합니다. 마스터.]카리스와 제나에게 검, 창, 방패, 갑옷을 돌려줬다. 둘은 그 자리에서 원래 착용 중이던 장비들을 벗더니, 로딘에게 받은 것을 입고 착용했다.
‘아직 갑옷에는 모르는 마법진이 하나 더 있지만.’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은 장비에서 관심을 끄기로 했다.
남은 건 책.
확인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책을 원래 보관되었던 아공간에 넣기로 했다.
“시간이 좀 걸리겠네.”
아공간 팔찌의 사용법은 쉬웠다. 팔찌에 미량의 마력을 담은 후,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물건을 쥐고 넣겠다고 생각하면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책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과정이 간단해도 몇만 권의 책을 모두 넣는 건 상당한 중노동이었다.
“그래도 넣어야지.”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려면 책을 넣긴 해야 했다. 나중에 허겁지겁 책을 챙기느니, 여유가 있을 때 책부터 챙기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일단은 내 짐부터.”
이곳으로 오면서 가지고 온 공간 확장 배낭을 아공간 팔찌에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공간에 들어갈 것 같던 배낭이 다시 튕겨 나왔다.
“아! 공간 간섭이 문제구나.”
아‘공간’ 팔찌에 ‘공간’ 확장 마법이 걸린 배낭은 들어가지 않았다. 공간끼리 충돌하며 서로 밀어내고 있었다.
“쩝.”
어쩔 수 없이 배낭에 들어 있던 짐만 다 빼서 아공간 팔찌에 넣었다.
마가렛이 챙겨 준 육포와 건량, 프루발의 보물이 들어 있었던 상자, 상당한 양의 돈, 옷과 야영 장비까지 아공간 팔찌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간 확장 배낭과 조리 도구를 소환하는 요리사 조각상은 따로 챙길 수밖에 없었다.
“쯧, 기껏 좋은 배낭을 만들었는데 아공간 팔찌를 얻다니. 오히려 짐만 늘었어.”
괜스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포션 제작법을 복원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온갖 책을 뒤져 가며 기껏 포션 제작법을 복원했더니, 그보다 더 뛰어난 고대 비전의 포션 제작법이 뚝 하니 떨어졌다.
“이번은 그때보다 더하네.”
투덜투덜하며 책을 몇 권씩 잡고 아공간 팔찌에 넣었다. 로딘의 행동을 본 제나도 후다닥 달려와서 책을 들었다.
반면 카리스는 호위처럼 로딘과 일정 거리를 유지할 뿐, 책을 들고 도와주진 않았다.
카리스는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는 오직 호위만 생각했다.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자기 임무에 충실한 성격이었다.
‘인형에게 성격이라는 게 좀 이상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카리스와 제나를 서로 다른 성격으로 만들어 놨다. 그게 로딘에겐 재미있게 느껴졌다.
“후우.”
열심히 책을 쥐고 아공간 팔찌에 넣었다. 넣고, 넣고 또 넣다 보니 책이 조금씩 줄어드는 기미가 보였다.
“티가 나긴 하네.”
한참 책을 수납하다 보니 속이 허했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 들어온 이후 한 끼도 먹지 않았다.
“거의 12시간을 굶었네.”
요리 조각상을 꺼내 조리 도구를 소환했다. 그리고 문이 있던 곳에서 만든 요리를 그대로 만들었다.
“카리스, 제나. 너희들도 먹어?”
[명하시면 먹겠습니다.] [먹을 수 있지만, 의미 없습니다.]전투 인형은 먹는 것으로 에너지를 얻지 않는다.
자연 상태의 마나를 그대로 흡수해서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당연히 식사는 의미가 없었다.
“먹을 수 있다는 건 먹어 봤다는 얘기네?”
[예. 전대 마스터의 명으로 시험 삼아 먹어 봤습니다.]“그러면 먹은 음식은 어떻게 했는데?”
[남이 보지 않을 때, 땅을 파고 버렸습니다.]이전의 마스터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당연히 오래전에 죽었을 테지만, 만나서 대화라도 나눠 보고 싶었다.
‘나하고 성격이 잘 맞으려나?’
별로 잘 맞을 것 같진 않았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좀 허세 같은 게 보인다고 할까.
먹는 능력은 전투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기능이었다.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불필요한 기능을 넣은 거였다. 효율을 중시하는 로딘과 안 맞았다.
“나 좀 먹을게.”
[저희도 먹을까요?]“아니.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억지로 먹을 필요 없어.”
로딘 혼자 만들어 둔 음식을 먹었다. 오래 굶어서인지, 입구에서 먹을 때보다 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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