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ergency Exit to Freedom RAW novel - Chapter 18
18]
정태욱 공군참모총장은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의 뒷좌석에 몸을 기대앉으며 운전병에게 출발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얼마 전 해군참모총장인 김갑수 대장과의 전화통화를 떠올렸다.
[그래서 고민이오. 얼마 전 올라온 보고로는 유철웅 준장의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다더군. 이제 그를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할지 아주 난감한 지경이오. 게다가 무슨 일인지 작전사령관 여병순 중장이 직접 나서서 그를 옹호하며 이전에 그가 무슨 짓을 했든 마지막엔 군을 위해서 박의원을 잡는 일에 적극 나섰고 그런 와중에 총상까지 입었으니 그의 죄를 더 이상 묻지 말자고 하는데…….] ‘작전사령관이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건 뭔가 이유가 있을 듯한데…….이유가 뭔 것 같소?’[글쎄. 말로는 어찌됐든 군을 위해서 작전에 임하다 총상까지 입은 준장에게 벌까지 줘가며 제대시킬 이유가 뭐냐는 거요. 그리고 군내의 그것도 해군특수전여단장이 군의 기밀문서 유출에 개입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좋을 것이 없다는 군.] ‘그건 상당히 공감이 가는 말이군. 그래 대장 생각은 어떻소?’
[아직 생각 중이오. 쉽게 내릴 결론도 아니고……..박의원 그가 현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준장의 이름을 거론했고 합동참모의장도 상당부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탠데 그냥 덮기에는 너무 문제가 많소.] ‘흠………합참의장이야 해군 내에서 일어난 문제니 해군참모총장인 김대장 결론에 따를 것이고 문제는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박의원이 문젠데……사실 작전사령관 말대로 해군 내부에서 기밀문서 유출에 관계되었다면 여론이 아주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것은 명백하지.’
[끙……그러니. 내가 지금 죽을 맛이오. 다음 주에 합동참모본부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하는데……..] ‘그렇군. 골치 꽤나 아플 것 같소.’
[훗. 그래도 이번 작전을 완벽히 수행하는데 정대장 둘째 아들 공이 컸소.] ‘흠……..그렇소?’
슬쩍 웃음기가 담긴 정태욱 장군의 질문에는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잔뜩 담겨있었다.
[그렇소. 대장이 아들들은 여하튼 아주 대단한 놈들로 뒀더구만.] ‘고맙소. 껄껄껄.’김대장의 칭찬에 결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터트리는 정태욱 장군은 가슴 가득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김대장과의 통화가 있은 지 이틀 후 정태욱 장군은 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해군작전사령관인 여병순 중장의 전화였다. 그리고 그가 직접 만나서 의논할 일이 있다는 말에 이렇게 여병순 중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여중장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떠올리며 정태욱 장군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해군작전사령관이 왜 공군참모총장인 자신을 만나려 하는가………? 그리고 자신을 만나 의논할 것이 무어란 말인가……..? 무언가 보고사항이 있다면 그의 상관인 해군참모총장을 만나야 했다. 그런데 여중장과 자신과의 사이에 무슨 의논할 일이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의도가 궁금해 정태욱 장군의 눈은 더욱 의문의 빛을 띠고 있었다.
정태욱 장군은 경기도에 위치한 꽤 이름이 알려진 고급 한정식집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은은하게 들려오는 타악기의 부드러움이 식당을 더욱 고풍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곧바로 안내되어진 곳은 깊은 내실인 듯 몇 번의 작은 문을 통과한 후에야 방으로 안내되었다.
정태욱 장군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있던 여병순 중장이 재빨리 일어서 정장군에게 경례를 붙였다.
“필승.”
“필승. 앉지.”
“네.”
서로를 마주보며 앉은 두 사람은 한동안 안으로 음식을 들여오는 종업원의 행동을 지켜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드디어 상에 음식이 차려지고 종업원이 물러가자 여중장이 입을 열었다.
“드십시오. 제가 미리 음식을 준비시켜 놨습니다. 예전에 여기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어 이리로 모셨습니다. 대장님 입에 맞으실란가 모르겠습니다.”
“음…….음식이 아주 맛있어 보이는군.”
정태욱 참모총장은 여병순 중장의 높낮이 있는 사투리를 들으며 얼굴에 친근한 웃음을 지었다. 이미 몇 번의 만남을 가졌던 두 사람은 비록 이런 단둘만의 만남은 처음이었지만 서로의 호탕한 성격을 알기에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얼마동안 젓가락질을 하며 음식을 맛보던 정태욱 장군은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여중장을 바라보았다.
“날 보자고 한 용건이 뭔지 궁금하네.”
“………정지혁 소령하고 관련된 문젭니다.”
“뭐!”
정태욱 장군은 놀란 눈으로 맞은편의 여중장을 바라보았다. 대전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내 중장의 용건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별별 생각을 다했었지만 자신의 아들 지혁이 관련된 문제일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아들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여중장이 자신을 긴히 만날 일이 무어란 말인가…….?
정태욱 장군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여중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냥 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현재 병원에서 치료중인 유철웅 준장에 대해서는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중장의 말에 정태욱 장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유철웅 준장한테 딸이 하나 있는데 그 딸이……..정지혁 소령하고 사랑하는 사입니다.”
!!
이건 또 무슨 말이란 말인가……..? 누구? 유철웅 준장? 하! 기가 막혀서……..현재 군내의 기밀문서 유출 사건과 밀접하게 얽혀있는 그 유철웅 준장의 딸!
여중장의 말을 들은 정태욱 장군은 놀라운 마음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하! 아니 여자가 없어 그런 범죄자의 딸과………내 이놈을 당장에!
“소령이 목숨같이 여기는 여잡니다. 처음에는 준장의 죄를 알고 소령을 말릴라 했는데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소령은 군을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여자를 버리지는 않을 깁니다.”
이런 미친놈………젠장. 일이 아주 꼬이고 있었다. 정태욱 장군은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지며 꼬인 실타래를 풀려 애쓰고 있었다.
아들놈을 알고 있었다. 두 아들놈 모두 한번 마음먹은 것은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는 놈들이었다. 하긴 그런 성정까지도 자신을 닮았으니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니지만…….그런 놈들이 한번 마음 준 여자에게 어떻게 하는지는 큰 아들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제가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려 그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들지를 않나……..게다가 생전 자신에게 부탁이나 머리 한번 숙이는 일이 없던 놈이 제 여자를 위해서 자신이 있는 공군본부로 직접 찾아와 머리 숙여 부탁까지 하지 않던가……..
거기까지 생각한 정태욱 장군은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발한 생각에 눈을 가늘게 떴다.
호오……..이것도 기회인가………큰 아들놈과 서먹하던 관계를 이제 큰며느리가 된 지윤을 통해 풀고 지금은 전화통화까지 하고 거기다 가끔씩 며느리와 손주까지 데리고 집으로 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놈의 작은 아들놈과도 서먹한 관계를 풀어야겠는데 도저히 실마리가 없어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긴 아들들과 서먹한 관계를 만든 자신의 죄가 가장 컸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엇 하랴……..젊은 시절 그저 군대에만 매여 아들들을 돌보지 못하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거늘……….
그런데 뭐…….?…….훗. 누가 형제 아니랄까봐 이번에도 여자문제로 작은 아들놈과 화해할 길이 열렸으니 이 무슨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자.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푼다…….저 중장이 나를 만난 이유도 같은 것이리라. 물론 바라는 바는 틀리지만 어쨌든 목적은 같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정지혁 소령을 위해 유철웅 준장을 구해야겠다?”
“예. 맞습니다.”
“이유는?”
“예?”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유철웅 준장이 철창신세를 지고 소령이 군에서 쫒겨 나면 그만 아닌가 말이네.”
물론 정태욱 장군도 알고 있었다. 분명 저 해군작전사령관인 여병순 중장은 자신의 작은 아들을 아끼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까지 시간을 내어 자신을 직접 만나러 올 리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상대방의 입으로 직접 자신의 아들을 칭찬하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정지혁 소령은 제가 아끼는 몇 안 되는 대원들 중 하납니다. 저도 저지만 대한민국 해군으로서도 그를 잃는다는 거는 커다란 손실입니다.”
“그런가?”
“소령에게 고마 여자를 포기하라고 협박도 하고 구슬리기도 했는데 이 문디자슥이 눈도 깜짝 안합니다. 인자는 아예 스스로 군을 떠나겠다고 도로 협박까지 하고 있습니다.”
“저런 미친놈……..”
정태욱 장군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뭐? 군을 떠나? 누구 마음대로!……..절대 그렇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외골수적인 성격과 군대생활에만 너무 얽매여 두 아들놈들을 너무 명령과 규율로만 키우다보니 아들들이 자신을 멀리하고 결국 장군 자신은 아들이 둘이나 있지만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되고 말았었다. 그래도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두 아들 모두 자신이 바라던 대로 군인의 길을 택하고 또 훌륭한 군인으로서 커가는 것을 보며 비록 자신을 외면하는 아들들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뭐? 군을 떠나? 그럴 수는 없지………그리고 이제는 큰아들과의 관계도 좋아져 둘째 놈과의 관계만 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울 것이다.
준장은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럴 것이다. 그놈이 누구 아들인데 아무리 상사의 협박이라지만 누구의 협박이나 회유에 굴할 아들이 아니었다. 그놈 고집은 절대 꺽이지 않을 것이다.
분명 그 형에 그 아우라고 여자 보는 눈은 제대로일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무엇보다 지혁이 그 아가씨를 포기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유철웅 준장의 죄를 덮고 조용히 제대 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정태욱 장군은 얼마 전 해군참모총장인 김장군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김장군도 갈등하고 있었다. 이럴 때 자신이 여중장의 의견에 힘을 실어준다면 김장군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결론은 아들을 위한 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해군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어쨌든 군이 그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밖으로 퍼져나가 봤자 좋을 것이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고 쉽게 해결을 지어줄 수는 없지. 이번 기회에 큰 아들놈과 그랬던 것처럼 둘째 놈과도 화해를 하고 또 며느리도 보고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것이다. 거기다 큰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혁이 그놈이 자신에게 머리 숙이고 부탁하는 것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것은 지혁이 그놈에게서 나올 손주들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정태욱 장군은 마침내 결론을 내리고 여중장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지. 우선 내가 직접 정지혁 소령을 만나봐야겠네. 소령더러 빠른 시일 내로 내게 들르라고 전하게.”
“예. 알겠습니다.”
정현은 병원 복도의 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보며 손에 든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소식을 어머니에게 알려야할지 말아야할지 벌써 여러 날 째 고민하고 있었다. 그날 그 커다란 소동이 있었던 날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살아남아 이제는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호전된 아버지를 지켜보며 정현은 아버지의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해야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정현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겨울로 가는 길목이었다. 그래서인지 빗물에서조차 차가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정현은 드디어 결심한 듯 전화기의 폴더를 열었다.
지혁은 병원 복도를 걸어오다 정현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통화를 끝내는 듯 손에 든 전화기의 폴더를 닫는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지혁은 조용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제 좀 쉬어.”
정현은 그의 낮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충분히 쉬었어요……..”
“식사는?”
“아직……..”
정현은 그가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알고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남자였다. 그의 인생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군을 떠날 결심까지 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였다. 어쩌면 자신을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목숨까지도 걸 수 있는 남자였다.
과연 자신이 저런 남자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될까…….? 그의 행복을 저당 잡으면서까지 그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여자일까……..? 그의 사랑에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그녀였다.
“가자. 우선 뭐라도 먹자.”
“아니. 생각 없어요. 또 아버지가 언제 깨실 지도 모르고……”
“간병인 아주머니 계시니 괜찮아. 말 들어.”
그리고 자신의 손을 움켜쥐고 걸음을 옮기는 그를 속수무책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병원 식당에는 식사시간이 한참 지나서인지 몇몇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어있었다. 정현은 그가 가져다주는 쟁반을 앞에 두고 한동안 바라만 보다 그의 재촉에 마지못해 숟가락을 들었다.
“식사는 꼭 챙겨 먹으라고 그렇게 일렀는데…….후……..밤에는 간병인에게 맡기고 아파트에서 자도록 해.”
정현은 입으로 가져가던 숟가락을 다시 탁자에 놓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럴 수 없어요. 무슨 짓을 했든 어떤 사람이든 저 위에 누워있는 사람은 제 아버지예요. 그 사실조차 부정할 수는 없어요.”
정현은 보았었다.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 구석에 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다 총에 맞는 아버지를………그 사실이……..그 사실만으로 지난 세월이 모두 보상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라는 진실만큼은 외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버지는 당신도 모르게 가족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아버지를 부정하라고 한적 없어.”
조용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그를 바라보며 정현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그가 뭐라 했다고…….오직 그녀만을 사랑하고 그녀만을 위하는 그가 무슨 죄라고………
“……….미안해요……..내가 너무 예민했어요.”
“그래……..더 먹어.”
정현은 그의 말대로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정현은 결국 반도 채 먹지 못하고 식당을 나서고 말았다.
“바람 쐬고 싶어요.”
“꽤 쌀쌀해.”
“병원은 너무 답답해요……..”
지혁은 그녀의 가라앉은 표정을 바라보며 정현을 병원의 뒷문을 통해 작은 벤치가 놓여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내일 대전에 다녀올 거야. 아마 병원에는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 같다.”
“그냥 아파트로 가요. 매일 병원에 오지 않아도 돼요.”
지혁은 그날 이후 자꾸만 자신을 멀리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자신에게로 돌려세웠다.
“유정현………”
“………”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아무 것도요……..아무 생각도 안 해요.”
지혁은 자신과 눈을 맞추지 않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다. 왜 그러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를 보호하려는 거겠지…….
“준장님이 걱정되나?”
“아뇨…….이젠 상당히 회복되셨고 모레쯤이면 어머니도 오실 거예요. 걱정 안 해요…….”
“그럼 준장님이 어떤 처벌을 받을지 걱정스러운가?”
정현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어떤 처벌을 받을지 결정이 났나요?”
“아니. 아직.”
정현은 그의 대답이 떨어지자 몸을 홱 돌려 저만치 걸어갔다. 그리고 그를 외면한 채 입을 열었다.
“이제 병원엔 오지 말아요. 이만큼 했으면 됐어요. 아니 넘쳐요. 계속 이렇게 드나들어 당신한테 이로울 것 없어요. 해군 내 윗사람들한테 괜한 의심을 받을지도……..”
정현은 갑자기 자신의 팔을 잡고 돌려세우는 그의 힘에 놀라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의 눈이 사나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슨 뜻이지? 아니. 무슨 뜻인지 알겠군. 날 속이고 떠나려했던 이유와 같은 것이겠지. 내 몸이나 사리라 이건가? 너는 버려두고 그건가? 몇 번을 다시 말해야 하나! 젠장. 내가 분명히 말했어. 군을 떠나야 한다면 떠나겠다고. 아니 말하지 마. 입도 벙긋 하지 마. 떠난다느니. 날 위해서라느니. 그따위 말을 할 생각이면 입 다물고 듣기만 해. 그 작은 귀를 활짝 열고 내 말을 듣고 그 머릿속에 새기라고! 군을 떠나더라도 그건 내 선택이야. 이미 알고 시작했던 일이었다. 뭐가 더 필요해? 빌어먹을!”
정현은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을 끌어안는 그를 마주 끌어안았다. 이 사람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그의 곁에 머물며 그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예쁜 아기도 낳고 싶었다. 아기……..그의 아기……..
정현은 그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눈물을 흘렸다.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었다. 하지만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당신의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가족을 사랑할 줄 몰랐던 아버지…….그런데 결국 아무 것도 남은 것 없이 당신의 온 마음을 바쳤던 군대로부터 내려질 처벌만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이젠 아버지를 원망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야망과 권력에 대한 야욕이 빚어낸 결과지만 아버지의 딸인 그녀는 아버지를 원망할 수 없었다.
“……..일이 어떻게 되던……..당신이 무슨 선택을 하든……..우리 당분간만 떨어져 있어요…….”
“안 돼!”
단호하게 대답하는 그의 안타까움에 정현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제발……..당신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날 위해서예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고 오랜 시간 계획했던 자유로운 삶을 위해 떠나려했어요. 그러다 당신을 만나고 뭐가 뭔지 모르게 깊은 늪처럼 당신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어 아무런 판단도 내릴 수 없었어…….날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어요. 마치 태양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처럼 당신의 궤도에 끌려 당신만을 생각하고 당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만 생각했어요………..이젠 날 위한 시간을 갖고 싶어요…….모두를 떠나 누구를 위한 삶도 아니고 누구에게 영향 받는 그런 삶이 아닌 누구의 간섭도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살아보고 싶어요…….”
정현은 그의 부정하는 눈빛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난 나 자신이 약하다 생각 안 해요. 난 강한 여자예요. 힘들고 외로운 생활을 살아왔지만 한 번도 희망을 잃지는 않았어요. 혼자서 꿈도 꾸고 상상도 하고 계획도 세우고…….내가 얼마나 강한 여자인지 당신은 반도 모를걸요……..사랑해요…….살아오면서 당신만큼 원해본 것이 없어요. 당신만큼 지켜주고 싶은 그 무엇도 없었어요……..내가 할 수 있게 해줘요. 군을 떠난 당신을 상상할 수 없어요. 당신 삶을 지켜주고 싶어요.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내 행복을 지켜주고 싶다고? 내 행복은 널 내 곁에 두는 것뿐이야. 안 돼.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 수 있어. 날 떠나겠다는 것만 아니라면 뭐든지 들어줄 수 있어. 네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 네 꿈이었다던 어디론가 떠나 여행을 하고 싶다던 네 꿈. 그 모든 것은 나와 함께 한다는 전제하야. 다른 생각 하지 마. 날 사랑한다면 날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내 곁에 있어. 날 믿고 내 말을 들어. 그러면 돼. 그거면 돼.”
정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입술을 덮는 그의 입술의 감촉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자신의 사랑은 이렇게 힘겨운지…….그는 왜 이런 힘겨운 자신을 사랑하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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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올리나요….? 그래도 5일은 안넘겼죠? 죄송합니다. 수정이란게 생각보다 어렵네요…. 그리고 주말에 시골에 다녀오느라…..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여자저격수에 대해 궁금해하시네요…………사실은 여러분들의 짐작대로 다음 작품의 주인공으로 생각중이었는데 고민중입니다. 너무 군 관련 이야기만 쓰게되면 많은 분들이 식상하실 것 같고 게다가 비슷한 분위기라 겹쳐지는 부분도 생길것 같아 쓸지 말아야할지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까지 합치면 총 3개의 소설을 수정해야해서 아무래도 새로운 작품 연재는 시간이 많이 걸릴 듯 합니다. 그동안 고민을 많이 해서 여자 저격수를 쓸지 말지 결정을 하겠습니다.
어쨋든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에 제가 이리 힘을 내서 글을 쓰게 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