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10
마염의 황제 010화
로자리아는 기분 좋은 얼굴로 사과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네리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얼른 먹어라. 그 사과를 먹는 순간이 네 제삿날일 테니.”
로자리아의 입과 점점 가까워지는 사과. 그녀가 막 사과를 베어물려고 할 때였다.
“잠깐.”
이터가 로자리아를 환기시키며 손을 내밀었다. 그게 무슨 의민지 모르는 로자리아는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응? 왜 그래? 아, 이게 먹고 싶은 거야? 여기도 많은데 마음껏 먹어.”
“안 된다. 그거여야 된다.”
“……?”
자신의 손에 들린 사과를 가리키는 이터를 보며 로자리아는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다 똑같은 크기인데 남의 떡이 더 커 보여서 그러나?’
하긴, 먹을 걸 좋아하는 이터니까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뭐, 오늘은 돈도 잔뜩 벌어왔으니 조금 서비스해 주는 것도 괜찮겠지.’
로자리아는 손에 든 사과를 넘겼다.
사과를 받은 이터는 잠시 가만히 왼손으로 사과를 쥐고 있다가 다시 건넸다.
“이제 됐다.”
“뭐?”
다시 돌려준 사과를 받으며 로자리아는 더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다시 돌려주다니? 받아보니 별로라고 생각한 건가? 로자리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사과를 베어물었다.
‘이상한 녀석.’
“됐다. 녀석들이 먹었어요, 네리아님.”
언제 돌아왔는지 네리아의 곁에서 흑마법사가 쾌재를 불렀다. 아직 떼어내지 않은 매부리코가 덜렁이며 춤을 췄다.
네리아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상한 척하며 웃었다.
“훗, 촐싹거리지 마라. 처음부터 내가 뭐랬더냐. 결국 이번 일도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버렸군.”
이제 고통에 겨워 쓰러지는 상대를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언제 쓰러질까. 10초는 버틸까? 아니, 5초라도 버티려나?
“음… 맛있다. 할머니가 말한 대로야. 굉장히 맛있는걸?”
‘어? 안 쓰러져?’
쓰러지기는커녕 오히려 즐겁게 사과를 먹고 있는 로자리아를 보며 네리아는 약간 당황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사과를 먹었는데? 어째서 중독이 되지 않는 거지?
‘약효가 천천히 듣는 건가? 흠… 뭐, 약간의 개인차가 있을 수 있을 테니까 더 기다려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원하는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광주리에 있는 사과를 다 먹었음에도 로자리아는 중독되기는커녕 빈혈기조차 없어 보였다. 물론 그녀가 먹기 전에 사과는 모두 이터의 왼손을 거친 뒤였다.
“이럴 수가!”
험악한 인상이 된 네리아가 흑마법사의 멱살을 움켜쥐며 눈을 부라렸다.
“어째서냐. 어째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그, 그걸 제게 물어보시면… 켁!”
네리아는 불쾌한 얼굴로 흑마법사를 내팽개쳤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저런 맹독의 사과를 먹고도 어찌 무사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설마 독이 안 발라진 사과들이랑 바뀐 건가?’
아까 자신이 먹던 것과 같은 사과로 바뀌어서? 처음부터 제대로 점검을 하지 않았던 게 실수였다. 대상이 만만하다고 해서 너무 얕보았던 건가.
“에에익! 운 좋은 녀석들 같으니.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네리아는 또 다른 뭔가를 꺼내 들었다. 대나무를 짧게 잘라 속을 깎은, 흔히 어쌔신들이 입으로 독침을 불어 날릴 때 쓰는 관이었다.
“이번에는 이걸 쓰도록 하지.”
“이번에는 독침입니까?”
흑마법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시 끼어들었다. 네리아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비슷하기는 해. 하지만 평범한 독이 발려진 침이 아니야. 저주가 걸려 있는 침.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저주침(詛呪鍼)이라고나 할까?”
“어떤 저주가 담겨 있는 것인지……?”
네리아는 머리에 손을 댔다가 옆으로 흩어버리는 시늉을 했다. 흑마법사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머리통이 터지는 저주입니까?”
“쯧! 그런 게 아니야. 빠지는 거다.”
“빠져요?”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얼굴의 흑마법사를 보며 여법사, 네리아는 짧게 웃었다.
“머리카락 말이다. 이 독침에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저주가 담겨 있지. 누구든 이 독침을 맞는 자는 대머리가 되어버리고 마는 거란다.”
머리가 빠지는 독침이라니. 흑마법사가 침을 꿀꺽 삼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기, 네리아님. 그런 걸로 괜찮을까요? 머리가 빠지는 것도 좋지만 왠지 강도가 약한 것 같은데요.”
“멍청하긴… 여자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게 뭔 줄 아나? 바로 외모다. 여자들에게 있어 머리카락은 생명과도 같은 부분이지.”
“그렇습니까?”
뭔가 미심쩍기는 하지만 감히 토를 달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언제 여자를 사귀어본 적이 있어야 알지.
네리아는 말을 이었다.
“그런 머리카락이 몽땅 빠져버린다. 대머리가 되어버린 자신을 보면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엄청난 절망감에 사로잡혀 스스로 무너져 버리겠지? 그럼 우리는 유유히 녀석들에게 다가가 가즈 블레이드를 빼앗아 가지고 나오면 되는 거야.”
“과연, 그렇게 되는군요.”
“호호. 녀석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군. 그럼 어디…….”
그 시간에 이터 일행은 여관을 발견하고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로자리아의 목을 정확히 조준한 네리아는 재빨리 저주침을 날렸다.
“……!”
로자리아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이터가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허공을 걷어찼다.
“이터? 왜 그러니?”
“됐다. 해결했다.”
“뭐?”
또 영문 모를 소릴 하다니. 로자리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잊어버리고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상한데? 지금이면 효과가 나야 할 텐데…….”
이것도 시간차가 있었던가? 네리아가 좀 기다려보려는데 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우와아악! 내 머리카락!”
흑마법사의, 그나마 얼마 남지 않았던 백발이 우수수 땅에 떨어졌다. 그의 목에 독침을 맞은 흔적이 빨간 점으로 남았다.
네리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네 머리가 왜 빠지니?”
“그걸 저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합니까!”
실은 침이 로자리아에게 닿으려는 순간, 이터가 되돌려차 흑마법사를 맞힌 것이지만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네리아는 당황했다.
“어라, 내가 잘못 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네.”
“이상하면 답니까? 제 머리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요!”
허전하게 빈 머리를 가리키며 소리치는 흑마법사. 네리아는 어색하게 호호 웃었다.
“미안, 미안. 사소한 실수였어. 미안해.”
“이게 어디가 사소한 실수입니까! 머리카락은 생명이라면서요. 이게 어떤 머린지 아십니까?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나마 남은 거 안 빠지게 철저히 관리를 하면서 지켜온 머리란 말입니다. 책임지세요. 네리아님이 책임지시라고요!”
불같이 화를 내는 흑마법사의 어깨를 붙잡으며 네리아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너 죽을래?”
“…….”
결국 힘센 놈이 짱이다. 흑마법사는 그렇게 억울한 눈물을 흘리며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주워담아야 했다.
네리아는 다음 작전을 세웠다.
“정말 운 하나는 좋은 녀석들이로군. 하지만 이번에는 그리 쉽지 않을 거야.”
그녀는 웃으며 긴 머리카락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로자리아의 머리카락이었다.
“살짝 수만 써둔다면 머리카락 하나 뺏어내는 것쯤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그리곤 품에서 저주의 인이 새겨진 봉제인형을 꺼냈다. 인형에 로자리아의 머리카락을 묶으며 네리아는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간단하게 구해 낼 수 있는 머리카락 하나로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알면 놀랄 거다.”
대상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저주의 인형. 흔한 저주 도구지만 그 효과만큼은 발군이다. 간단한 조립 과정을 거치는 것만으로 대상을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 갈 수 있다.
그냥 죽이는 데는 맹독류가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지만 대상의 괴로움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여흥 도구였다. 여법사인 그녀가 악녀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럼 시작할까?”
저주 인형을 가지고 저주를 걸려던 네리아는 손을 멈추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을 다 잃어버린 흑마법사가 침울한 표정으로 구석에 처박혀 앉아 있었다. 네리아는 살짝 양심이 찔렸다.
‘내가 너무 심했나? 뭐, 조금쯤은 서비스해 줄까?’
“야.”
“네, 네리아님.”
대답은 했지만 다가오는 품이 영 의기소침한 모습이다. 네리아는 그에게 저주 인형을 내밀며 말했다.
“그 녀석한테 많이 당했다고 그랬지? 이거면 당한 만큼 그대로 되갚아줄 수 있을 거다. 쓰도록 해.”
“제가요? 저, 정말 이걸 제게 주시는 겁니까?”
“안 하면 도로 가져간다?”
네리아의 마음이 바뀔까 흑마법사는 번개 같은 속도로 인형을 채갔다.
“감사합니다!”
네리아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단순하긴. 부려먹기 딱 좋은 놈이라니까.’
악녀라 불리는 여법사, 네리아가 만든 저주의 인형을 받아 든 흑마법사는 두근거림을 달래며 조심스럽게 인형을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러자 그와 함께 여관 복도를 걸어가던 로자리아가 바닥에 넘어졌다.
“아얏!”
로자리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넘어질 때 잘못되었는지 무릎이 까졌다. 가즈 블레이드가 코웃음 쳤다.
“애도 아니고 덜렁거리기는. 철딱서니가 없다니까.”
“엿이랑 바꿔버린다, 너!”
“꺄아! 나 같은 절세의 검을 엿 따위랑 바꾸겠다니. 역시 개념 없는 인간이야!”
티격태격하는 둘을 두고 이터는 고개를 돌려 여관 밖을 바라보았다.
“호호, 이번에는 잘되는 모양이군.”
투시경으로 여관 안을 바라본 네리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는 용케도 피했지만 이번만은 요행이란 없었다. 주술이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흑마법사는 신이 나서 저주 인형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크크, 이 망할 년. 오늘 한번 혼 좀 나봐라.”
“악!”
로자리아가 다시 바닥에 넘어졌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넘어지니 여관 안의 시선이 다 쏠린다. 깔깔거리는 가즈 블레이드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일어나려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일어나지지도 않는다. 바닥에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휘청거리다가 다시 바닥에 넘어진다.
“뭐, 뭐야? 꺅!”
짝!
로자리아가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얻어맞으면서도 로자리아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몇 대를 스스로 때리다가 일어난 로자리아는 여관 한복판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관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지 마.”
이터가 여관 밖, 정확히는 네리아와 흑마법사가 있는 방향을 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 방금 전까지 멋대로 춤을 추던 로자리아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리고 대신 다른 쪽이 조종당하기 시작했다.
“어, 어라?”
인형을 조종하던 흑마법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흑마법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며 다리로 개다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