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100
마염의 황제 100화
퍼억!
다시 이데아로크에게 맞고 튕겨나며 이터는 두 개의 부메랑을 던졌다. 은색의 초승달, 문 크레센트.
“합일, 월영참!”
“이런 애들 장난쯤…….”
이데아로크는 수도로 가볍게 월영참을 깨뜨렸다. 그러나 그것은 이터가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월영참을 깨뜨리는 순간, 이터의 발경이 턱으로 날아든다. 피할 시간이 없었던 이데아로크는 손으로 받아내며 물러섰다. 손이 저린다.
이데아로크는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한다니까.”
“뭔가 하려면 빨리 해봐요. 5속성의 정령왕이든지 뭐든지! 빨리요.”
재촉하는 엘리스의 말을 뒤로하며 아네스는 조용히 수인을 맺었다. 그녀의 주위로 은은한 빛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조용히 이 자리에 잠들어 있을 정령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잠들어 있는 정령들이여, 긴 잠에서 깨어나 다시 한 번 무기를 들라. 그대들의 숙적, 세계를 파괴하는 악신의 부활을 막기 위해서, 다섯 속성의 정령왕들이여.”
아네스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그녀의 머리 위로 크고 작은 마법의 원들이 생겨나 각기 다른 방향과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뚜렷하게 형상화된 목소리가 아네스의 귓가에 들렸다.
“너는 누구기에 멋대로 우리를 잠에서 깨우는가.”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몸이 무너질 것 같은 중압감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정령들 중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달한 자. 정령왕의 위압감. 예상대로 봉인의 기운과 함께 그들은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또 다른 목소리가 노함을 감추지 않고 소리쳤다.
“악신의 부활은 우리 역시 느끼고 있었다. 허나, 너 같은 한낱 인간이 감히 우리에게 명령을 하다니!”
여러 가지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서로 다른 다섯 가지의 목소리. 이것은 이 자리에 봉인되었다는 5대 정령왕의 목소리인가?
그들은 하나같이 아네스를 질책하고 있었다.
“인간은 우리 정령에게 명령할 수 없다.”
“우리에게 명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넘어서는 존재뿐…….”
“인간의 여자야. 너에게 그런 자격이 있단 말이냐?”
정령왕들의 힘이 실린 목소리에 아네스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릎을 굽힐지언정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성력의 빛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초월적인 존재를 앞에 두고도 그녀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또박또박한 말투로 말했다.
“인간의 이름으로 명하는 것이 아니다.”
아네스의 주위로 따스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신의, 여신의 이름으로 명하는 것이다.”
아네스가 뿜어내는 광채.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빛과 함께 아네스를 짓누르던 정체불명의 위압감도 사라졌다.
“…….”
“…….”
방금 전까지도 노한 목소리로 외치던 정령왕들이 입을 다물었다.
무형의 공간 너머에 존재하는 그들은 아네스가 만들어내는 빛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이터와 이데아로크가 만들어내는 굉음이 시간이 멈춰버린 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듯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다시 정령왕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는가, 인간?”
“물론이다.”
누군지 모를 정령왕이 짧게 신음을 내뱉었다. 또 다른 목소리가 아네스에게 들려왔다.
“신의 이름으로 우릴 부른다는 것은 그에 걸맞는 신성력을 우리에게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여신급의 신성력을 소유할 수 있는 인간 따위는 없지. 그러함에도 억지로 우리를 불러내려 한다면… 너는 네가 가진 신성력과 함께 그대로 소멸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도 좋단 말이냐?”
신성력과 함께 소멸한다.
무시무시한 이야기였지만 아네스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온하기까지 한 그녀의 표정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 담담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정령왕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각오로군.”
“하긴 이데아로크의 부활은 간과할 수는 없는 문제기는 하지. 녀석의 존재는 이 세계뿐만이 아니라 천상계와 마계마저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거야.”
“좋군. 그렇다면 한 번 실력 발휘를 해보도록 하지.”
정령왕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네스의 몸에서 힘이 주욱 빠져나갔다. 바닥에 쓰러질 뻔한 아네스가 간신히 버텨 섰다.
몸 안에서 무서울 정도로 엄청난 신성력이 빠져나갔다.
“신성력이…….”
“그 정도에 허덕거리지 마라, 인간.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쿠우우우.
하늘이 열리고 깊은 잠에 빠졌던 이들이 깨어난다. 허공에서 거대한 형상을 가진 적, 녹, 백, 청, 황의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크윽!”
퍼엉!
또 한 번 날아든 이데아로크의 이터널 플레어를 버텨내지 못한 이터가 바닥을 굴렀다.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터를 바라보며 이데아로크는 짧은 조소를 머금었다.
“아무래도 너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모양이군. 조금 특별하긴 했지만 역시나 너도 버러지 같은 인간들과 다를 것이 없어. 시시해졌다. 이제 그만 죽어라.”
이데아로크는 이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조금만 힘을 주면 자신의 마력이 이터를 통째로 짓이겨 버릴 것이다.
‘응?’
막 마력을 방출하려던 이데아로크는 멈칫했다. 뭔가 기분 나쁜 기운이 몸을 옥죄어 왔다. 상당히 불쾌한 느낌.
하지만 그러면서도 상당히 낯익은 기운들이었다.
“이 기운은…….”
콰르릉!
열린 하늘이 울부짖는다. 마치 하늘 가운데가 뻥 뚫린 듯 거대한 광채가 그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빛 속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다섯 존재들. 좌, 우에 10장이 넘는 붉은 날개를 펼친 독수리 머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불의 정령왕. 날카로운 삼지창을 치켜들고 두터운 꼬리로 몸을 휘감고 있는 청의 정령왕. 마치 조각처럼 무표정한 모습과 빛나는 일곱 개의 뿔을 치켜든 빛의 정령왕. 여덟 개의 팔로 수인을 맺고 녹색의 기운을 온몸에 풍기는 사자 머리의 녹의 정령왕.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깨비처럼 무시무시한 형상의 머리를 치켜들고 거대한 지팡이로 땅을 내리찍는 대지의 정령왕.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는 거대한 괴물들.
이들은 이데아로크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좁혀진 미간 너머로 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5대 정령왕?”
“기억하고 있군, 이데아로크.”
청의 정령왕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곁에서 붉게 타오르는 불꽃의 정령왕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도 알고 있겠지!”
대지의 정령왕이 짜증이 역력히 배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성이 주저앉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얌전히 잠들어 있으란 말이다. 피곤하게 만들다니.”
“당신이 부활하면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게 될 테지요. 당신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다시 한 번 잠들어줘야겠습니다.”
빛의 정령왕의 말이 끝나자 사자머리의 녹의 정령왕이 주먹을 움켜쥐며 외쳤다.
“일부러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지. 이대로 단번에 끝내주마. 우리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 일격에!”
흩어지듯 사라진 정령왕들이 순식간에 이데아로크의 다섯 방향에서 위치를 잡고 섰다. 그리고 미처 이데아로크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그 주변의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섯 가지 빛으로 물드는 마법진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결코 예삿 것이 아니었다.
다섯의 정령왕이 진의 이름을 외쳤다.
“천마봉진!”
쿠아아아아!
그와 함께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엄청난 중압이 진을 덮쳤다. 마치 공간 그 자체를 으스러뜨려 버릴 것만 같은 엄청난 중압. 그 힘이 어찌나 컸던지 물러나 있는 엘리스와 아네스마저 버티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굳게 다문 두 사람의 입가에 선혈이 흘렀다.
“대단한 힘이다…….”
정령왕 중 하나가 진 안에 갇힌 이데아로크를 향해 소리쳤다.
“5천년 전에 널 다섯 조각으로 찢어버렸던 힘이다. 이번에도 그때와 똑같이 그렇게 만들어주도록 하지!”
덮쳐오는 거대한 힘이 이데아로크의 몸을 찢어발기려고 발악을 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단숨에 공중에서 찢겨져 나갈 듯했다. 하지만 진의 가운데에 선 이데아로크는 그 힘을 정면으로 받아내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을 중심으로 흩어진 다섯의 정령왕을 바라보며.
“후후. 이것 참… 설마하니 네 녀석들과 이렇게 빨리 마주하게 될 줄이야. 나도 예상하지 못했어. 뭐, 잘된 일이지.”
이데아로크의 몸 주위로 검은 기운이 몰아쳤다. 그 기운 속에서 이데아로크는 차갑게 웃었다.
“찾아서 없애버릴 수고를 덜었으니.”
휘이이이.
몰아치는 강력한 힘의 돌풍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이데아로크의 몸은 찢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처음 발현될 때 잠시 멈칫했을 뿐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자신들의 힘은 점점 소모되는데 이데아로크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자 다섯의 정령왕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천마봉진은 이미 시작되었을 텐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니.”
피식.
이데아로크는 당황하는 정령왕들을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멍청한 정령 놈들. 같은 수법에 언제까지나 당할 거라고 생각했나? 10년도, 100년도 아니다. 장장 5천년이나 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동안 나는 놀고 먹고 있었는 줄 아느냐?”
이데아로크를 짓누르던 힘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니, 그것은 이제 이데아로크의 힘이 되어 그 주위에서 몰아치고 있었다. 라그나 블레이드가 정령왕들의 천마봉진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의 태풍이 다섯의 정령왕들을 끌어당겼다. 보통의 힘이라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정령왕들을 밀어붙일 수는 없었겠지만 그들이 전력을 다해 만들어낸 천마봉진의 힘이 그들을 끌어당기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정령왕들은 이데아로크가 만들어내는 기의 폭풍 속에 빨려 들어가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럴 리가… 천마봉진이 이렇게 깨어지다니!”
“빠, 빨려 들어간다!”
“크윽!”
정령왕들은 끝까지 사력을 다했지만 그것은 그들의 최후를 잠시 늦춰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엘리스와 아네스의 눈앞에서 정령왕들은 기의 태풍 속에 빨려 하늘로 휘감겨 올라가 버렸다.
“저, 정령왕들이…….”
이데아로크는 조소와 함께 라그나 블레이드를 움켜쥐었다.
“꺼져버려라.”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라그나 블레이드, 그리고 또 한 번 이데아로크의 최강 일격이 소용돌이를 갈랐다.
“패왕격!”
상대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위력이 배가되는 패왕격.
정령왕들의 천마봉진은 그 위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라그나 블레이드에 베여 폭발하는 소용돌이. 그 위력은 하늘이 찢어지는 듯했다. 정령왕들의 몸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찢겨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