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101
마염의 황제 101화
마치 5천 년 전에 그들의 손에 이데아로크가 찢겨져 나갔었던 것처럼.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폭발은 사라지고 폐허가 된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에 내려선 이데아로크는 주변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 크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마침내 쓰러뜨렸다. 5천 년 전부터 자신을 괴롭혀왔던 끔찍한 신의 추종자들. 하나도 남김 없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데아로크는 연신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키득거렸다.
“모두 끝났다. 그 잘난 이터 녀석도, 5대 정령왕도 쓰러졌다. 이제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어! 크크크.”
엘리스는 폐허 속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실프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만은 건졌지만 그뿐이었다. 아네스는 의식을 차리지 못했고 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도저히 이데아로크를 막을 수 없었다. 이터도, 5대 정령왕조차도 당해내지 못하는 괴물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응?”
이데아로크는 웃음을 멈추었다. 폐허가 된 잔해 속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이데아로크는 곧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터?”
“이, 이터 씨?”
잔해를 헤치고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붉은 투기를 뿜어내는 이터였다. 엘리스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설마 그 폭발 속에서도 무사했다니.’
이데아로크도 이번만큼은 예사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살아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폭발 때의 상처로 엉망진창이면서도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그것은 결코 패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기분 나쁘다. 자신보다 약하면서 이렇게 찰거머리처럼 덤벼오는 녀석은 보지 못했기에 더 그랬다.
이데아로크는 인상을 찡그린 채 마력을 개방했다. 장난도 이제 접을 때가 되었다.
“정말로 지긋지긋한 녀석이구나, 이터. 아직도 일어서 있다니. 네 녀석은 정말 인간인가? 아니, 네 녀석이 무엇이든 이제 상관없다. 가지고 노는 것도 지쳤으니까, 너와의 장난은 이걸로 끝이다. 이대로 끝장을 내주마.”
콰아아아!
전력으로 개방한 이데아로크의 마력이 주변을 울렸다. 정령왕을 뛰어넘는 그 엄청난 마력 앞에서 엘리스는 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끝이야… 이제.”
“하하. 자, 어떠냐. 이 이데아로크의 힘이, 너희는 이 자리에서 완전히 소멸하는 거다.”
이터는 고개를 들었다. 그와 이데아로크의 힘 차이는 절망적일 정도였지만 이터는 주눅들지 않았다.
그는 몰아치는 이데아로크의 마력을 마주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로자리아에게 지켜준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어. 그녀는 너에게 처참하게 살해되어 버렸지.”
“이터 씨.”
“두 번은 싫어.”
이터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의 끝에 엘리스가 보였다.
“그러니까 너만은… 반드시 지켜줄게, 엘리스.”
큭.
이터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이데아로크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지켜? 뭘? 자기 몸 하나 성치 않은 녀석이 누굴 지켜준단 말이냐. 지금 네 처지나 어떻게 할지 걱정하시지!”
“있어.”
이터의 눈이 이데아로크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굳은 결의로 가득차 있었다.
“너를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 단 한 가지가.”
“뭐?”
이데아로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이 지경에 와서 허풍을 치는 건가?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엘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터 씨, 설마?”
“엘리스, 만약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고 해도…….”
이터는 엘리스에게 등을 돌린 채로 말을 이었다.
“이터라고 불러줘.”
“자, 잠깐만요, 이터 씨!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불길함을 느낀 엘리스는 허겁지겁 이터를 향해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이터가 힘을 전개하자 그 기운에 밀려 다가가지 못했다.
“꺄악!”
“아직도 그 정도의 힘이 남아 있었나.”
이데아로크는 얼굴을 굳혔다.
“넌 정말 기분 나쁜 녀석이다. 아무리 짓밟고 때리고 부서도 전혀 이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녀석. 정말 불쾌함이 따로 없군.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너에게 승산은 없어. 나를 이길 수 있다고? 그런 허풍 따위 내겐 안 통해.”
이터가 양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몸 주위로 붉고 강렬한 빛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터는 입을 열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내게는 숨겨진 힘이 있다. 그건 내가 가진 기억의 파편… 그걸 쓰면 아마 너라고 해도 이길 수 있을 거다.”
“숨겨진 힘이라. 웃기는군. 그럼 지금까지는 전력을 다한 게 아니란 말이야?”
이데아로크는 바닥을 박차며 이터를 향해 달려나갔다. 저런 시답잖은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더 이상 농담 따먹기 같은 말을 하고 싶진 않아. 꺼져버려라!”
콰아아아!
이글거리는 불꽃이 이데아로크의 손을 타고 용의 형상을 이룬다. 이데아로크의 폭염 주문, 이터널 플레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용이 이터를 향해 괴성을 내지르며 날아들었다.
엘리스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위험해요!”
하지만 엘리스의 외침보다 이데아로크의 주문이 한발 더 빨랐다. 이터널 플레어는 이터가 서 있는 자리를 삼킨 것도 모자라 주변까지 불태우며 위용을 떨쳤다. 불지옥을 방불케 하는 주위를 바라보며 이데아로크는 키득거렸다.
“크크, 이걸로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버렸겠지.”
그러나 그것은 이데아로크만의 생각이었다. 걷혀가는 불길 속에 무언가가 보였다. 몰아치는 불길에도 굴하지 않고 우뚝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이.
물론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터였다.
이데아로크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아니?”
이터널 플레어를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하게 서 있다고?
엘리스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이터 씨.”
당혹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보는 이데아로크를 향해 이터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이 힘은 쓰고 싶지 않았다. 붉은 눈의 이터가 가진 힘은 너무나도 위험하니까. 만에 하나라도 내 몸을 빼앗게 된다면 그는 너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가 되고 말거다. 어쩌면 더 끔찍한 일을 벌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터는 이를 악물었다.
“네 녀석은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돼.”
이터의 눈이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몸을 감싼 붉은 투기가 더욱 짙어져갔다.
“내가 전력으로 붉은 눈의 그를 막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5분. 그 안에 널 쓰러뜨리고 난 그의 의식과 함께 잠들어 버릴 거다. 그러면 모든 게 다 끝난다.”
이데아로크가 혀를 차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미치겠군. 5분이 아니라…….”
타악.
바닥을 박찬 이데아로크가 이터의 목을 노리고 손을 뻗었다.
“5만 년이 걸려도 넌 날 이길 수 없어!”
이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자신’을 깨웠다.
‘깨어나라. 잊혀진 기억이여. 내 스스로 닫아 가두려 했던 힘이여.’
지금이야말로 깨어나…….
‘날뛰어라!’
쿠아아아아!
이터의 눈이 붉게 물든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붉은 투기가 마치 살아 있는 화염처럼 이글거리며 솟구쳤다.
“우아아아아아!”
“윽?”
이터를 향해 덤벼들던 이데아로크는 제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춤했다.
‘뭐야, 이 투기는…….’
이터에게서 불길함이 느껴졌다.
정확히 뭐라고 딱 집어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놈에게 덤벼들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자신을 멈추게 했다.
‘설마 내가 겁을 먹었단 말인가?’
천하의 이데아로크가 고작 저런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꼬맹이 따위에게?
이데아로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흥… 웃기지 마라!”
이데아로크는 순간이나마 이터에게 주춤했던 자신을 한심해하며 더욱 무서운 속도로 이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작은 얼굴이다. 자신의 주먹 한 방으로 터트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이번에야말로 숨통을 끊어주마!’
“이터 씨!”
퍼어억!
이데아로크의 주먹에 맺혀 있던 주먹의 힘이 사방으로 폭사하며 터져나갔다. 이데아로크는 미소를 지었다. 이터 녀석, 가루가 되어버렸겠지.
하지만 투기가 걷혀가는 자리를 본 그의 눈은 크게 벌어졌다.
“크…….”
“아니?”
뻗어나간 주먹은 그러나 이터에게 닿지 않았다. 이터의 손이 자신의 주먹을 허공에서 낚아채 쥐고 있었다.
‘맨손? 그것도 한 손으로 잡았어?’
이터는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이마에는 크고 작은 핏줄들이 돌출되어 기괴한 느낌을 풍겼다.
이터가 투기를 전개하며 외쳤다.
“시간이 없다. 단숨에 끝내자, 이데아로크!”
“큭!”
타앗.
이데아로크는 재빨리 이터의 손을 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자세를 바로 잡은 이데아로크는 코웃음을 쳤다.
“흥. 단숨에 뭘 어째? 우연일 뿐이야. 고작 주먹 한 번 막아냈다고 잘난 처…….”
퍼어억!
뺨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과 함께 이데아로크의 고개가 꺾였다. 순간적으로 몸이 무너져 내린다.
“크윽?”
튕겨나듯 물러나 간신히 몸의 균형을 바로 한 이데아로크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턱을 후려갈긴 이터를 바라보았다.
‘뭐였지? 방금 건… 보, 보이지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 이터의 공격 따위 훤하게 읽고 있다. 보이지 않을 리가 없지 않는가. 그가 당혹해하는 사이, 이터는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그의 왼손이 이글거리는 불꽃으로 타올랐다.
“지워라-! 불!”
이터의 폭염구, 이것 역시 몇 번이나 받아본 기술이다. 이데아로크는 조소하며 주문을 흩어버리기 위해 손을 뻗었다.
“쳇. 이까짓 거. 그냥 튕겨버…….”
순간, 이터의 폭염구를 받아낸 이데아로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들어갔다. 자신의 일격에 불꽃이 흩어지지 않는다?
“아니?”
콰아아아!
이터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난 기세로 치솟아 이데아로크를 집어삼켰다. 이데아로크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을 덮치는 불길에 몸을 가리는 것뿐이었다.
이어, 상상도 못 할 열기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큭. 크아악!”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 그을음이 일었다. 여기저기가 타서 찢겨져 나간 옷은 엉망진창이었고 몸 전체가 따끔한 것이 화상까지 입은 모양이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이데아로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이 정도로 밀어붙이는 불꽃이라면 그 위력이 이터널 플레어 이상이 아니면 어림도 없을 텐데. 이터가 그런 불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자식.”
이데아로크는 그답지 않게 흔들리는 눈으로 이터를 바라보았다. 설마 저 자식 진짜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때, 이터가 노성을 터트렸다.
“간다, 이데아로크!”
쿠아아아!
이터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대쉬해 들어왔다.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불길을 휘감은 그의 주먹이 거침없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