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102
마염의 황제 102화
불꽃의 섬광이 거대한 주먹의 형상을 이룬다.
“소환! 타이탄 브레이커!”
“이터널 플레어!”
불타오르는 타이탄 브레이커. 이데아로크가 거기에 내어놓은 수는 불꽃의 용, 이터널 플레어. 하지만 두 힘의 격돌은 의외로 시시했다. 불의 타이탄 브레이커가 이터널 플레어를 단번에 뚫고 날아든 것이다.
“체엣!”
이데아로크는 즉시 몸을 날렸다.
간발의 차이로 타이탄 브레이커를 닿지 않았다. 커다란 동작이었기에 빈틈도 많았다. 이터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이데아로크가 그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정통으로 작렬하는 일격. 이데아로크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동시에 몸을 돌려 이데아로크를 잡은 이터가 그대로 그를 바닥에 내려다 꽂아버렸다.
콰아앙!
“으윽. 이게…….”
자신의 공격에 되려 카운터를 당한 이데아로크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주춤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이를 파고들며 이터의 발경(發勁)이 날아들었다. 정통으로 가슴을 얻어맞은 이데아로크는 그대로 뒤로 주루룩 밀려나 버렸다.
“윽!”
가슴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통증. 입가에서는 선혈이 흐른다.
눈을 부릅뜬 이데아로크의 앞으로 이터가 달려들었다. 그의 권과 이데아로크의 권이 서로 얽히며 격렬하게 부딪혀 간다.
몰아치는 둘의 공방은 호각에 달했다.
이터의 권이 이데아로크의 턱을 흔든다. 이데아로크의 일장이 이터의 내장을 뒤흔든다. 강력한 일격을 주고받는 그들은 둘 다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그만큼 치열한 일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터 씨.”
엘리스는 주먹을 꼬옥 움켜쥐었다. 이터를 말리고 싶지만 말릴 수도 없었다. 이미 발동이 걸린 저 승부는 둘 중에 누구 하나가 죽어버리기 전에는 결단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이터가 이긴다고 해도 이 모든 싸움이 끝난 뒤의 이터가 자신이 알던 그일지는 알 수 없었다.
엘리스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목청껏 외쳤다.
“지지 마요! 힘내요, 이터 씨!”
‘이터 씨가 어떤 모습이라도…….’
“엘리스는 이터 씨의 여자라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절대로 지면 안 돼요!”
촤아악!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이데아로크의 양쪽 어깨에 피가 튀었다. 찢겨져 나간 어깨 뒤로 은빛의 섬광이 사라져갔다. 문 크레센트가 그의 어깨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이데아로크는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까불지 마라!”
우우웅.
발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이데아로크는 무수히 많은 마법탄을 허공에 띄워 올렸다. 하나하나가 경이로운 위력을 담은 마법탄이 이터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터 역시 지지 않고 마법탄을 만들어 받아쳤다. 허공에서 부딪히는 둘의 마법탄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나갔다. 속사포처럼 쏘아지고 부딪혀 폭발하는 마법탄.
자욱한 먼지와 함께 마을은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이 떨렸다. 마법탄들이 만들어낸 먼지를 헤치며 이터가 달려들었다.
“소환. 기간틱 블레이드!”
왼손의 빛과 함께 거대한 대검이 튀어나온다. 그것을 움켜쥔 이터가 붉은 눈을 치켜뜨며 기합을 내지르며 덤벼들었다.
“우아아아아!”
“제길.”
이데아로크의 얼굴에서는 이미 아까와 같은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여유는커녕 그의 얼굴은 조금씩 공포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고작 이런 인간 꼬마에게 겁을 집어먹다니?
하지만 그것은 이터가 단순히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쓰러뜨려도, 쓰러뜨려도 쓰러지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덤비는 괴물 같은 꼬마.
이미 스테미너도 한계에 달했을 텐데 이 인간 꼬마는 자신을 향한 저돌적인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마치 이데아로크를 공격하는 것만이 그가 움직이는 이유라도 되는 듯 이터의 공격은 쉬지 않고 날아들었다.
이데아로크는 점점 자신이 싸우고 있는 상대에게 질려가고 있었다. 붉은 눈을 치켜뜬 이터는 더욱더 광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
‘왜 싸우는 거야.’
누군가 묻는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이터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잘 알았다. 그것은 또 다른 자신의 목소리, 내면에 잠들어 있는 자신, 붉은 눈의 이터의 목소리였다.
그가 다시 물었다.
“그냥 너의 원래의 기억, 원래의 힘을 손에 넣으면 그걸로 끝인 것을.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이터는 볼 수 있었다. 내면의 이터가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이터에게 던진 질문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냐고?”
이터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그런 건 몰라. 그냥… 단지.”
이터의 머릿속에 얼마 전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 무너진 알제라드의 사원에 앉아 엘리스가 들려주었던 이야기.
-사람은 죽어도 추억이 남아 있대요.
이터는 미소를 지었다.
“추억이니까.”
그러니까 지키고 싶어져서…….
“그래서.”
이터는 미소를 지었다. 내면의 이터의 붉은 눈동자 속에 그 미소가 조용히 각인되었다. 이터는 말했다.
“싸우는 거야.”
***
“우아아!”
충혈된 눈으로 괴성을 지르며 덤벼오는 이터와의 싸움은 이미 승부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 되고 있었다. 그 저돌적이고 방어를 무시하고 들어오는 공세에 이데아로크는 지금껏 몇 번이나 무너질 뻔한 몸을 다시 일으켰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터의 검은 더욱 빨라져 갔다.
이데아로크의 얼굴이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웃기지 마. 나는 이 세계를 파멸로 이끌 사상 최고의 마신이다. 너 같은 놈에게… 너 같은 꼬마 따위에게 그렇게 간단히 당할 것 같으냐!”
카아앙!
기합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이데아로크는 전력을 다해 이터를 튕겨내었다.
‘질 수 없어.’
이데아로크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가지고 있는 투기를 전부 다 뿜어내며 소리쳤다.
“질 수 없단 말이다!”
고오오오.
라그나 블레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주위의 힘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주변의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상대를 격퇴하는 이데아로크의 최강의 비술!
“패왕격!”
‘지금까지의 패왕격과는 다르다. 이 이데아로크가 전심전력을 다해 만들어낸 최강의 패왕격이다.’
이데아로크는 라그나 블레이드를 쥔 손에 힘을 가하며 외쳤다.
“이걸로 끝장을 내주마!”
“이터 씨!”
몰아치는 폭풍이 이터를 휘감는다. 아무리 각성한 이터가 강하다고 해도 상대의 힘을 흡수해 되받아치는 패왕격을 이길 수는 없다.
그때였다.
“지워라, 불.”
거대한 폭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하지만 그것은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와 함께 패왕격의 소용돌이가 비틀어지기 시작한다. 비틀어지는 틈의 중앙에는 이터가 서 있었다.
불타오르는 기간틱 블레이드를 움켜쥔 이터가.
“부러져라, 천풍!”
콰아아아!
이터의 주문과 함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휘몰아치듯 일어난 소용돌이가 반대 방향으로 꺾이며 비틀어지더니 새로운 바람으로 변해갔다.
불의 돌풍.
그것은 거대한 불의 돌풍이었다.
“뭐… 뭐라고?”
이데아로크는 당황했다.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패왕격 쪽이 이터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이터가 만들어낸 불의 소용돌이가 이데아로크를 빨아들였다. 그 엄청난 흡입력에 이데아로크는 견디지 못하고 허공에 팽개쳐졌다.
“크… 크윽!”
그리고 불의 소용돌이에 갇힌 이데아로크에게 이터의 일격이 날아들었다.
“진폭마검-!”
콰아아아!
소용돌이를 가르며 이데아로크의 가슴에 대각선으로 날카로운 검흔이 새겨진다. 입속에서 터지듯이 선혈이 뿜어져 나온다.
“미, 믿을 수 없어. 너 같은 녀석에게 내가…….”
온몸을 휘감는 열기는 꿈이 아니었다. 가슴이 끊어져 나가는 것 같은 이 고통 또한 꿈이 아니었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현실이었다.
‘웃기지 마.’
몸을 태워버리려는 기세로 달려드는 불꽃 속에서 이데아로크는 눈을 부릅떴다. 내가 졌다고? 이런 꼬맹이에게 당했다고?
“웃기지 마-!”
파아앗!
이데아로크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을 덮치는 불꽃을 찢었다. 저 앞에 진폭마검으로 자신을 벤 자세 그대로 이터가 서있었다. 이데아로크는 이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날카롭게 뻗은 라그나 블레이드가 이터의 심장을 노렸다. 이것이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 짜낸 그의 최후의 일격이었다.
“으아아아아!”
퍼억!
라그나 블레이드가 이터의 가슴을 꿰뚫었다. 이터의 등 뒤로 삐져나오는 검날을 보며 이데아로크는 미소지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아… 아니.”
붉은 빛.
붉은 빛이 눈 안에 가득 들어찼다. 너무나도 황홀한 그 빛은 이데아로크의 몸을 휘감고 태우기 시작했다. 옷이 녹아가고 손가락이 문드러져 갔지만 이데아로크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그는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빛을 본 기억이 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마! 당신은…….”
붉은 빛은 황홀했다. 하지만 그 빛은 이데아로크의 존재를 허락지 않았다. 그 빛에 닿은 이데아로크의 몸이 불타 재로 변해 사라진다. 그러나 이데아로크는 그 힘에 거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절규할 뿐이었다.
“어째서, 어째서입니까. 저는 당신들이 분부하신 대로 했을 뿐인데… 이 모든 것은 당신들이 원했던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당신이 저를!”
몸이 사라진다. 감각이 사라진다. 이데아로크는 이터가 내뿜는 붉은 빛 앞에서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끝내 맺지 못한 그의 마지막 말이 허공에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어째서… 나이… 트여…….”
불꽃에 탄 이데아로크의 몸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격렬한 소음으로 가득찼던 성 위에 죽음과도 같은 적막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사방에 드리워져 있던 먹구름이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엘리스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 하늘이…….”
***
“크르르…….”
이마에 강철 화살을 5개나 박고 몸 안에 여섯 개의 검이 박혔는데도 멀쩡히 움직이던 마물들이 몸을 돌려 숲 속으로 사라져 갔다.
방금 전까지 그들과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있던 다크 엘프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무슨 일이지?”
“녀석들이 흩어집니다.”
일리아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샤필로스는 그 말에 고개를 까닥이며 마물들이 사라지는 숲 너머를 바라보았다.
“나도 알고 있어.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마물들이 밀리는 싸움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싸움을 포기해 버린 걸까? 샤필로스의 뇌리에 짚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설마…….”
엘데라드의 마을 안에서 장로는 미소지었다. 태양을 얄밉게 가리고 있던 먹구름이 걷혀 사라져가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장로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