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107
마염의 황제 107화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내면의 이터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터는 손을 뻗으며 외쳤다.
“기다려-!”
***
“기다!”
이터는 허공에 손을 뻗은 자세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위는 칠흑과도 같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완벽한 어둠의 공간은 아니었다. 여기는 현실의 공간이었다. 온몸이 축축하게 땀으로 젖어 있다. 이터는 여기가 어떤 동굴 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터 씨, 괜찮아요?”
고개를 돌려보니 당황하는 엘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터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것을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이터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여기는. 큭.”
일어나던 이터가 다시 자리로 무너졌다. 엘리스가 황급히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
“아. 아직 움직이면 안 돼요. 회복주문 걸긴 했지만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어요.”
이터를 제대로 눕힌 엘리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이터 씨가 깨어나서. 쓰러져서 깨어나지 않았을 때는 정말 어떻게 되는 건가 해서… 정말 걱정했었다고요.”
그제야 아까의 일들이 조금씩 기억났다. 자신을 나이트라고 밝히며 이터 앞에 나타난 아카디엘. 그리고 그의 섬전무극창의 뇌인마살. 그 끔찍한 공격에서 엘리스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던 자신은 마지막 순간에 남은 힘을 다 쥐어짜내서 인근 숲으로 순간 이동했다.
그 뒤의 일이 생각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때 기절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엘리스가 정신을 잃은 자신을 데리고 이 동굴 안으로 들어온 것이겠지.
이터는 눈물을 글썽이는 엘리스를 달래며 말했다.
“미안. 이젠 괜찮으니 걱정 마라. 이런 상처… 회복주문으로 단번에 해결할 수 있으니까.”
휘이이.
이터의 왼손에서 치유의 빛이 뻗어나왔다. 이데아로크의 싸움에서 보여줬던 회복. 지금 그 빛이 다시 이터의 외상을 치유했다. 순식간에 이터의 몸은 다시 원래의 상태를 회복했다. 아니,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
다시 일어나려던 이터가 다시 휘청였다. 간신히 벽을 짚고 선 이터는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회복이 되지 않아?’
외상은 치유되었다. 회복 주문이 듣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뇌인마살 때문인가.’
뇌인마살을 정면에서 받아낸 충격이 상처를 모두 치료했는데도 몸에 남아 있다는 말인가.
이터는 식은땀을 흘렸다.
뇌인마살… 정말 위험한 공격이다. 아카디엘은 어쩌면 이데아로크보다도 훨씬 더 강할지도 모른다.
“왜 그래요, 이터 씨?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보다 어서 여기서 나가자. 녀석이 언제 이 근처에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순간이동이라면 여기서 당장 먼 곳으로 옮겨갈 수 있을 거야.”
“네.”
내면의 이터도 경고했던 것이다. 될 수 있는 한 아카디엘과는 부딪히지 않아야 한다. 아니, 싸우게 되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물러나서 전력을 다듬어야 할 때다. 엘리스의 손을 잡은 이터는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로 순간이동을 하려고 했다.
“아니?”
이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얼굴에서 불길함을 읽은 엘리스가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이터 씨?”
“순간이동이…….”
엘리스를 바라보는 이터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순간이동이 봉인당했어.”
***
지직. 지직.
새하얀 빛이 투명한 벽 모양을 이루더니 이내 배경에 스며들며 사라져 버렸다. 공간 도약 결계막. 사라지는 빛 옆에는 아카디엘이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이 숲에 벌써 같은 류의 결계막만 수십 개를 박아놓았다.
“이 정도면 결계로는 충분하겠지. 이 숲에 있는 것은 확실하고 이제 이걸로 공간을 열어 도망치는 짓 따위는 하지 못할 거다.”
한 번은 순간 이동으로 놓쳤다.
하지만 같은 수법으로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이터와 엘리스를 숲 안에 가둬버린 아카디엘은 느긋하게 숲 안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러면 샅샅이 뒤져보도록 하지.”
***
이터와 엘리스가 숨은 동굴 안. 엘리스는 이터의 말에 당황스러운 얼굴로 되묻고 있었다.
“순간이동이 봉인되었다니. 이터 씨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순간이동이 되지 않아. 어쩌면 아카디엘. 그 녀석이 뭔가 수를 쓴 건지도. 우리가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건지도 몰라.”
엘리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우리를 숲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 한다니…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안다는 거잖아요. 위험해요!”
당황하는 엘리스에게 이터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해. 아직 들킨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터 역시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큰일이군. 지금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내면의 힘을 끌어 써서 전력을 다해도 이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적인데…….’
지금 아카디엘과 맞붙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게 없었다.
“어떻게든 들키지 않게 이 숲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어. 공간 도약을 막은 결계 범위 밖으로 나가게 되면 순간이동을 할 수 있을 테니.”
이터의 판단은 옳았다. 확실히 지금은 그 방법이야말로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가자, 엘리스.”
그리고 그렇게 이터가 엘리스를 데리고 동굴 밖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이봐, 무속성 나이트 듣고 있나?]“큭?”
숲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놀란 이터와 엘리스는 황급히 동굴 밖으로 뛰어나왔다.
“이 목소리는?”
목소리는 하늘 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카디엘이 공중에 떠 있었다. 하늘은 숲 전체를 한번에 보기 좋은 장소, 아카디엘은 그곳에서 공기에 기를 실어 숲 전체에 자신의 목소리를 날리고 있었다.
“이 숲에 숨어 있는 거 다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일일이 찾으려면 귀찮아서 말이지. 지금부터 숲의 일부를 하나씩 날려버리겠다. 숲과 함께 날아가 버리고 싶지 않다면 기어 나오는 게 좋을 거야.”
아카디엘이 보여줬던 힘을 생각하면 지금의 말은 단순한 허풍이 아니다.
그는 이터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면 이런 숲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날려버릴 수 있는 실력자였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이미 눈치 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숲에는 공간 도약을 막는 결계가 쳐져 있다. 어줍잖은 기술로 도망칠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터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방금의 말로 순간이동을 막은 것이 아카디엘이라는 것은 확실해졌다. 지금 이 상태에서 지상을 이동해서 결계를 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이터가 망설이는 것을 본 엘리스가 급히 그를 말리며 말했다.
“저 사람의 말을 들으면 안 돼요, 이터 씨. 저 사람은 이터 씨를 데려가려고 하고 있어요. 이터 씨가 죽을 정도로 공격할 리가 없어요. 잘 숨어 있기만 하면…….”
“바보 같은 소리. 나는 무사해도 너는 당한다.”
“하지만 이터 씨가 나가면 둘 다 당해버리잖아요.”
“그건.”
이터는 엘리스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아카디엘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자신과 엘리스는 순식간에 당해버리고 말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잠시 허공에 뜬 채로 주위를 바라보던 아카디엘은 이 숲에 숨어 있을 이터에게서 아무런 답이 들려오지 않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거 경고가 경고처럼 들리지 않는 모양인데. 그럼 시범삼아…….”
일단은 동쪽 숲부터.
아카디엘은 천천히 왼손을 뻗었다. 그의 왼손이 푸르게 물들며 강렬한 빛을 사방에 뿜었다. 아키디엘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으랏차~”
슈욱.
이글거리는 푸른 구탄. 아카디엘의 왼손에서 튀어나온 구탄이 무서운 속도로 지상에 떨어져 내렸다.
고작해야 사람 머리통만한 크기의 작은 크기. 하지만 지상에 부딪히는 순간 벌어진 일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콰아아앙!
사방에 푸른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고열의 푸른 폭염이 하늘로 치솟는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푸른 폭염에 닿은 숲은 거대한 구덩이로 변해버렸다. 숲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충격은 이터와 엘리스가 선 곳까지 영향을 미쳤다.
“크윽!”
“어, 엄청난 파워야.”
흔들림이 끝나고 대지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구덩이에는 아카디엘이 찾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아닌 모양이군. 그럼 저쪽을 날려보실까?”
아카디엘은 몇 개의 구탄을 더 날렸다. 모두 하나같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구체들. 일부러 이터가 죽지 않을 정도로 힘 조절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대로는 숲이 다 박살날 판이었다.
그리고 저 구체가 이곳에 떨어진다면 엘리스는…….
“이번엔 여기.”
아카디엘이 또 다른 구체를 쏘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땅에 닿지 못했다. 무언가가 허공에서 구탄과 부딪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부메랑. 그것은 이터의 월영참이었다.
월영참은 구탄과 부딪히며 허공에서 산산조각나 흩어졌다.
“그만둬!”
부서지는 월영참의 뒤를 잇는 이터의 외침. 숲 속에 숨어있던 이터가 아카디엘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여기 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무차별적인 파괴는 그만둬라.”
“이터 씨…….”
마침내 이터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카디엘은 미소를 지으며 이터가 있는 숲으로 내려섰다. 그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이터와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훗. 그 엘프 여자 꼬마를 구하기 위해서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건가? 어이없는걸. 정말 어딘가 고장이 난 모양이구나. 뭐,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난 너만 데리고 도망가면 되니까. 이제 그만 순순히 따라오라고.”
주먹을 움켜쥔 이터가 냉기를 풀풀 풍기며 차갑게 말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마라. 난 너 같은 녀석들을 모른다. 네가 말하는 동생도 아니야. 따라갈 이유 따윈 없어.”
아카디엘은 피식 웃었다.
“그러면 깨닫게 될 때까지 좀더 맞아야겠군.”
이터와 아카디엘은 다시 서로를 마주했다. 여유로 가득 찬 아카디엘과 그에 반해 긴장된 표정의 이터.
곁에서 지켜보는 엘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무리야. 이터 씨의 힘으로는 저 사람을 상대할 수가 없어.’
상대는 이데아로크… 혹은 그 이상급이다. 저 정도의 힘으로 상대할 수가 없다. 이데아로크를 쓰러뜨린 것도 따지고 보면…….
거기까지 생각한 엘리스는 흠칫했다.
“이터 씨… 설마.”
이터는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아카디엘의 힘은 이미 눈으로 확인했다. 지금 이대로 덤비는 것은 계란에 바위치기에 불과할 뿐.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놈을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야. 다시는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데아로크마저 무릎을 꿇게 만들었던 자신의 힘. 다시 한 번 내면의 힘을 끌어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