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109
마염의 황제 109화
“안 돼. 위험해요, 이터 씨.”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엘리스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아카디엘을 막을 수 없었다. 아니, 아카디엘의 투기 앞에 제대로 버티고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러는 사이, 뇌인마살을 위한 에너지가 완벽히 모여들었다.
“꺼져라.”
아카디엘은 섬전무극창을 휘둘렀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푸른 전개의 지옥. 뇌인마살이 다시금 펼쳐졌다.
“뇌인마살!”
이번에는 아까처럼 장난을 치는 게 아니다. 받아칠 수도 없고 막아도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이다.
“나는…….”
이터의 주위로 불꽃의 바람이 불었다. 이터는 붉은 눈을 치켜떴다.
“아직 질 수 없어!”
휘이이이!
그리고 이터의 주위에 불어 닥치던 불꽃은 불의 돌풍으로 변했다.
“아니?”
뇌인마살로 치고 들어가던 순간 불길함을 느꼈다. 불꽃의 한가운데에 선 이터가 이상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바람은 뭐지?
“가만. 바람이라고?”
아카디엘은 흠칫했다. 그제야 엘리스도 이터가 펼치는 불꽃 바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 바람은 설마…….”
쿠우우우!
휘몰아치는 불꽃의 바람. 이터를 가운데로 해서 펼쳐지는 그것이 뇌인마살의 뇌력과 부딪혔다. 하지만 아까처럼 맞붙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발 물러서 뇌인마살의 힘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치고 들어오는 마력을 자신의 힘을 바꾸고 있었다. 그 놀라운 광경에 지금까지 거의 놀란 적이 없던 아카디엘의 얼굴마저 굳어졌다.
‘뇌인마살의 뇌력을 빨아들이고 있어?’
엘리스가 소리쳤다.
“저건!”
저 바람은 이터를 상대로 한 이데아로크가 내놓았던 최강의 비술. 바로…….
“패왕격!”
“패왕격이라면 이데아로크의 녀석의…….”
기도 차지 않았다. 설마 그때 본 이데아로크의 기술을 그 사이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생각을 길게 할 여유는 없었다. 무시무시한 불꽃의 돌풍이 아카디엘마저 끌어들이는 것이다. 아카디엘은 자신을 당기는 그 힘을 두 다리로 버티며 코웃음을 쳤다.
“흥. 이까짓 거!”
이까짓 바람쯤은 당장에 끊어버리겠다!
하지만 아카디엘의 바람대로는 되지 않았다. 불꽃 바람을 베어버리기는커녕 팔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다. 아카디엘은 억지로 팔을 움직이려 했다.
“이… 이까짓… 이까짓 거…….”
아카디엘이 억지로 힘을 끌어냈지만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얼어붙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무겁게만 느껴졌다. 비단 팔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봉쇄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람은 아카디엘을 집어삼켜버렸다.
“으윽?”
아카디엘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설마 하니 자신이… 나이트의 일원인 자신이 고작 이런 바람 하나 막아낼 수 없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의 몸은 하늘에 내팽개쳐졌다. 이터가 만들어내는 불꽃의 돌풍이 아카디엘을 허공에 처박았다.
“우아아악!”
아카디엘의 균형이 무너지자 이터는 검을 옆으로 나뉘었다. 불꽃의 돌풍에 휘말린 아카디엘이 저 너머에 있었다. 이터는 불타오르는 검을 쥐고 소용돌이를 향해 달렸다.
“지금이에요, 이터 씨!”
엘리스의 외침. 이터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는 것을. 이터는 부러진 기간틱 블레이드를 휘둘러 극에 달한 소용돌이를 갈랐다.
“패왕격!”
콰아아!
검에 잘린 불꽃의 소용돌이가 갈라지며 그 안에 갇힌 아카디엘에게 날아들었다. 오러 블레이드의 일격에 뇌인마살의 번개와 불꽃까지.
모든 에너지가 아카디엘에게 집중되어 쏟아졌다.
“하아아아아!”
콰아앙!
찢어질 듯한 거대한 비명을 내지르는 대지. 허공에서 폭발한 불꽃의 소용돌이는 사방에 열기를 뿌리며 뭉쳐져 한 번 더 폭발을 일으켰다. 검으로 바닥을 겨우 지탱하고 선 이터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하아! 하아!”
몸은 이제 한계였다. 하지만 다행히 최후의 일격은 성공했다. 자신의 폭염에 뇌인마살의 힘까지 더했으니…….
아무리 아카디엘이라고 해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이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몸이 버텨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끝낸 건가.’
이터의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엘리스도 이터의 승리를 깨달았다. 그녀는 환한 얼굴로 소리쳤다.
“해, 해냈어요. 해치웠어요, 이터 씨.”
엘리스의 즐거워하는 미소를 보며 이터도 마주 웃어주었다. 하지만 이내 이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피해, 엘리스!”
“네?”
난데없이 당황하는 이터의 모습에 영문을 모르는 엘리스는 주춤했다. 그와 함께 그녀의 옆의 바닥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나갔다.
“꺄아아악!”
“엘리스!”
이터는 폭발의 여파에 튕겨나가는 엘리스는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큭!”
이터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긴장된 눈으로 자신을 막은 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카디엘…….”
이터를 막아선 것은 아카디엘이었다. 여기저기 옷이 찢어지고 상처들과 먼지로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그 차가운 살기는 아카디엘이 틀림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이터를 마주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법 아팠어. 고작해야 무속성 나이트의 일격이었는데… 아팠다고!”
뼛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예리한 살기, 이터는 순식간에 그 기세에 압도되었다. 아카디엘은 이터 앞으로 달려들어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으윽!”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은 이터는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주먹은 아카디엘에게 닿지 않았다.
오히려 아카디엘은 이터의 팔을 붙잡아 비틀어 버렸다.
“크, 크윽!”
“쓰레기 같은 주먹이다. 완전히 박살내주지.”
뚜두둑!
아카디엘은 그 말과 함께 일말의 동정도 없이 이터의 팔을 꺾어 부러뜨렸다. 멀쩡한 팔이 부러져 꺾이는 고통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 으아아아악!”
퍼억!
아카디엘은 비명을 지르는 이터의 다리를 차서 넘어뜨렸다. 바닥에 처박혀 신음을 내뱉는 이터의 목을 발로 밟으며 아카디엘은 침을 뱉었다.
“이제 됐어. 너 같은 불량품… 마스터께서도 필요로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대로 뒈져버려라!”
“끄… 으윽.”
아카디엘은 괴로워하는 이터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의 발은 당장이라도 이터의 목을 부러뜨릴 기세였다.
“죽어.”
쿠르르.
아카디엘이 막 이터의 목을 부러뜨리려는 찰나였다. 웅장한 소음과 함께 무언가가 바닥에서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거대한 암석으로 만들어진 손이었다.
“아니?”
자신을 움켜쥐려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며 아카디엘은 물러섰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건.”
콰앙!
정체불명의 암석 손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등에 따끔한 충격이 일어난다. 실프가 만들어낸 바람의 검이었다. 인상을 찌푸린 아카디엘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엘리스가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하아. 하아.”
“엘프 꼬마년? 그 일격을 맞고도 죽지 않았던가. 정말 이것 참. 피곤하게 만드는 녀석들이군.”
씨익.
아카디엘은 엘리스와 이터를 번갈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얼굴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감히 벌레들 주제에 내 성질을 계속해서 돋워? 그렇게 죽고 싶다면 아주 개박살을 내주도록 하지!”
터엉!
그 말과 함께 무형의 힘이 엘리스를 날려버렸다. 거대한 암석에 부딪힌 엘리스. 하지만 그녀를 밀어붙이던 힘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씩 암석이 깨어지면 엘리스의 몸이 안으로 박혀 들어갔다.
“아악! 아아악!”
“에, 엘리스.”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이터가 신음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아카디엘은 코웃음을 치며 엘리스를 압박하는 힘의 강도를 더 세게 올렸다.
“넌 거기서 얌전히 지켜보기나 하라고. 이 여자 아이가 산채로 쥐포가 되어버리는 모습을.”
“아아아악!”
으드득.
암석과 아카디엘의 힘 사이에 짓눌린 엘리스는 뼈가 으스러지는 것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이터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그만둬. 그 아이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내가 알게 뭐냐. 감히 엘프 따위가 이 몸을 건드리다니 가루로 만들어도 시원찮다고. 완전히 박살을 내주겠다.”
이터는 입술을 깨물었다. 엘리스가 더욱 깊이 암석에 박혀 들어갔다.
“그만해. 그만해.”
으득.
이터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포효하듯이 외쳤다.
“그만해-!”
콰아아아!
이터의 비명과 같은 외침과 함께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엘리스를 끝장내려던 아카디엘이 주춤했다.
“뭐야, 이건.”
이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불타오르는 손을 뻗어 불의 탄을 날릴 뿐이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꽃을 보며 아카디엘은 비웃음을 흘렸다.
“흥. 이런 불꽃쯤…….”
다 죽어가는 놈이 날리는 불꽃 따위에 무슨 힘이 있다는 말인가. 아카디엘은 이터의 불꽃을 손으로 튕겼다.
아니… 튕기려 했다.
“아니… 이, 이건!”
불꽃은 튕겨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휘감으며 커다란 폭염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아카디엘은 순식간에 적염에 휘감겨 버렸다.
“우아아아악!”
파아앗!
불꽃에 삼켜져 재가 되려는 순간, 아카디엘은 있는 힘을 다해 불꽃을 갈라버렸다. 간신히 불꽃에서 빠져나온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불타는 이터를 바라보았다.
“정말 놀랄 노 자로군. 아직도 이런 힘을 숨겨두고 있었다는 건가.”
지금까지 얕보고 있었던 이터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아직 아무런 속성을 얻지 못했는데 이 정도의 힘이라니.
‘만약 자신의 힘에 눈을 뜨게 된다면…….’
마스터의 후환이 될지도 모를 녀석이다. 아카디엘은 표정을 굳혔다.
“아무래도 이 자리에서 미래의 악재는 제거를 해야겠…….”
휘청.
순간 아카디엘은 의식을 잃을 뻔했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그는 경악하는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비단 손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설마 내가 충격을 받았단 말인가? 고작 저런 녀석의 공격을 받고?’
쳇.
아카디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좋지 않군. 너무 얕본 건가.’
아카디엘은 굳은 얼굴을 들어 이터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뜨거운 불꽃을 뿜어내는 이터는 자신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이봐, 무속… 아니, 이터라고 그랬던가? 오늘은 처음이니 이쯤에서 물러가도록 하지. 하지만 너무 좋아하지는 마. 목숨이 잠시간 연장되었을 뿐이니까.”
아카디엘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터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우리 나이트는 나까지 포함해서 총 다섯 명. 아직 나 말고도 네 명이나 더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나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 지금부터 그들이 너를 쫓게 될 것이다. 네게 승산은 없어.”
간신히 암석을 빠져나온 엘리스가 그 말에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저런 괴물 같은 녀석들이 넷이나…….”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라고. 우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그때는 오늘 너에게 받았던 이런 굴욕까지 깡그리 정리해 주도록 하지.”
아카디엘은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터에게 가볍게 손인사를 해보이며 하늘로 뛰어올랐다.
“도망칠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 세상에서 우리의 손을 피해 달아날 곳은 없을 테니까. 그럼 다음에 또.”
“…….”
아카디엘은 나타났던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더 이상 시선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이터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주위에 타오르던 열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 이터 씨! 정신 차려요. 이터 씨!”
엘리스의 외침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대신 내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의 말대로야. 이제 이 세상에서 네가 피할 자리는 없어.”
내면의 이터의 목소리. 차갑고 어떻게 보면 슬프게도 들리기도 하는 그 목소리 속에서 이터는 정신을 잃었다.
내면의 마지막 목소리가 뇌리에 새겨졌다.
“이제부터 끔찍한 싸움이 시작될 거다. 기대해도 좋을 걸.”
***
아카디엘은 비행 주문을 이용해서 숲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었다. 입가에 피를 닦아내던 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모처럼인가. 이런 짜릿한 기분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떨림이다. 방심했다고는 하나 나이트인 자신을 물러나게 만들 정도의 저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아카디엘은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는 이렇게 쉽게 보내주지 않는다. 기억하고 있어. 무속성의 나이트…….”
아니.
“이터.”
***
“아무래도 때가 된 모양이군.”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있던 누군가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중절모를 눌러쓰고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는 바로 일 년 전에 루시펠의 성에서 자취를 감춘 쉐드였다.
“방심하지 마라. 괜히 어정쩡하게 건드리면 우리가 당한데이.”
쉐드의 어깨에서 작은 붉은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그는 이조르네와 계약을 했던 정령수, 프리야였다. 그의 말을 웃음으로 흘리며 쉐드가 답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알고 있어.”
쉐드는 고개를 들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가려진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그럼 시작해 보실까?”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