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12
마염의 황제 012화
네리아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결례를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데몬이시여.”
“훗! 뭐 상관없다. 그렇잖아도 바람을 한번 쐬고 싶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역시 저런 어린아이 하나를 상대로 내가 직접 나서는 건 그림이 좋지 않군.”
으득.
데몬이 오른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자 녹색의 피가 배어나와 땅에 떨어졌다. 그의 핏방울이 두어 방울 바닥에 떨어지자 데몬은 명령했다.
“나와라, 나의 종들아.”
그으으.
악마의 피가 배인 땅에서 마물들이 일어났다. 이 땅에서는 볼 수 없는 마계(魔界)의 마물들이다. 마치 지옥 한가운데가 지상에 강림하기라도 한 듯 숲은 근 100에 달하는 마물들로 빽빽이 메워졌다.
“마계 마물 100마리.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데몬이 손가락을 튕기자 의자가 두 개 생겨났다. 데몬이 자리에 앉자 그의 곁에 다른 마물들과는 다른 네 마리의 마수가 자리를 잡더니 부동자세로 그를 호위했다.
남아 있는 의자에 앉으며 네리아는 짧게 미소 지었다.
“데몬께서도 짓궂으시군요.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꼬마를 상대로 마물들의 대군을 내어주시다니.”
“뭘 모르는구나, 인간.”
데몬은 와인 잔을 들고 키득거리며 말했다.
“우리 데몬의 양식은 인간의 공포,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절망 속에서 맺어지는 공포의 과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지. 저 100의 군대는 그것을 위함이다. 생각해 봐라. 곧 이어 겁에 질려서 울부짖을 꼬마의 모습이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느냐?”
네리아의 이마에 긴장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과연 악마. 자신도 그와 계약하지 않았다면 한낱 먹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데몬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인간이여. 네 공포의 맛도 쓸 만하구나.”
“송구스럽습니다.”
“그럼 만찬을 열어보도록 할까?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의자에 앉은 데몬이 손을 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이터를 포위하고 있던 100마리의 마물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처음 몇 번의 공격은 피했지만 숫자가 너무 많다. 이터는 순식간에 그들에게 파묻혀 버렸다.
“벌써 끝인가? 예상은 했지만 더 시시하군.”
데몬이 웃으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나 그가 채 잔에서 입을 떼기도 전에 이터를 파묻은 마물들 중앙에서 무언가가 강하게 폭발했다.
터어엉!
커다란 힘의 울림!
지상에서 수직으로 터져 올라가는 힘에 휘말린 마물들의 몸이 하늘 위로 튕겨올랐다.
마물들을 날려버린 것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이터의 주먹이었다. 마물들의 집중공세를 당했건만 그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호오?”
크아아아!
힘에 밀려 주춤한 마물들이 다시 이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터의 신형도 마주 움직였다.
쩌엉!
이터의 주먹이 맨 처음 달려드는 마물의 얼굴에 작렬했다. 동시에 양 옆에서 떨어지는 할버드. 몸을 뒤로 살짝 띄운 이터는 할버드의 날 위로 올라섰고 단숨에 도약해 무기를 쥔 마물의 머리를 터뜨렸다.
무너지는 마물들 뒤로 다른 마물들이 밀려들었다.
“핫!”
사방에서 밀려오는 마물들을 향해 이터는 오른손을 뻗으며 기합성을 터뜨렸다. 그러자 순백의 투기가 일어나 마물들을 휩쓸고 폭발했다. 그 범위 안에 든 마물들은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아, 아니……!”
네리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계의 마물들은 일당백의 병사와도 맞서싸울 수 있는 괴물들이다. 그런 것을 혼자서 쥐어패고 있다니. 데몬도 의외였는지 오른팔로 턱을 괸 채 표정을 굳히고 지켜보았다.
“…….”
이터의 발차기가 허공에 궤적을 그릴 때 수마리 마물들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이터가 주먹을 휘두르면 가슴이 박살나 꿰뚫렸다. 이터의 권각이 마물들을 압도했다. 순식간에 절반에 가까운 마물들이 그에게 목숨을 잃었다.
“도와줘라.”
데몬이 짤막하게 입을 열자 그의 곁을 호위하던 네 마리의 마수들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각각 불과 물과 얼음과 하늘의 속성을 가진 마수들은 그들의 장기를 이터에게 퍼부었다.
살아 있는 듯 혀를 날름거리는 불길이 이터의 진로를 방해했고, 날카로운 물의 소용돌이가 그가 움직이는 거리를 예측하여 반 초 빠르게 떨어졌다. 떨어지는 번개가 이터가 만들어내는 투기의 돌풍을 막았고, 얼음의 벽이 이터의 발차기를 막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적의 등장에 이터는 처음으로 공세를 멈췄다.
“엘리멘털 나이츠. 네 개의 속성을 절묘하게 섞어 공방을 이어가는 녀석들의 연계기는 일품이지.”
데몬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찾아왔다. 네리아도 안심했다. 이터의 분전은 놀랍지만 엘리멘털 나이츠의 등장에 주춤하고 있다. 설령 만에 하나 그들을 쓰러뜨린다고 해도 이쪽은 데몬이 있었다. 질 리가 없다.
그러나 한 악마와 한 인간이 착각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이터가 멈칫한 것이 엘리멘털 나이츠의 공세 때문이 아니라 일격필살의 반격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왼손에 마법의 빛이 어렸다.
“지워라, 불. 얼어라, 얼음. 내리쳐라, 번개. 일어나라, 물.”
뻗은 손은 하나인데 튀어나온 것은 네 개의 빛이었다. 엘리멘털 나이츠는 재빨리 흩어지며 피했지만 빛은 네 방향으로 틀어 그들을 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엘리멘털 나이츠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을 노리고 흩어진 네 속성의 마법은 각 나이츠들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속성의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불을 끄려면 불에 물을 대야지, 불에 불을 더하면 불꽃[炎]밖에 더 되겠는가.
“키에에엑!”
그러나 곧 이어 들려오는 마수들의 처절한 비명은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불꽃의 마수는 전신을 덮쳐온 화염의 돌풍에 휘말려온 전신이 타들어가며 한 줌 재로 변했다.
물의 마수는 거대한 물기둥에 갇혀 끽소리도 못 하고 압사해 버렸다. 하늘의 마수는 번개에 구워졌고, 얼음의 마수는 얼음에 꽁꽁 얼어 다음 순간 산산이 터져버렸다.
순식간에, 그것도 가장 유리한 속성의 공방에서 압도적으로 패한 엘리멘털 나이츠의 모습에 네리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데몬도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인간 중에 저런 전사가 있다니.”
오히려 이제 주춤하는 것은 마물들 쪽이었다. 공포를 모르는 그들이 이터에게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터는 그들 사이로 뛰어들며 왼손을 뻗어 그의 검을 불렀다.
“소환, 기간틱 블레이드(Gigantic Blade).”
촤아악!
허공에 생겨난 마법진에서 검 자루를 움켜쥔 이터가 집채만 한 검을 꺼내 들었다.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두터운 타격음과 함께 수마리의 마물들의 몸이 끊어져 나갔다.
패닉 상태에 빠져드는 마물들을 향해 검을 겨누며 이터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지워라, 불[火]. 부러져라, 천풍(天風).”
불꽃이 바람을 타고 블레이드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터는 그것을 머리 위에서 크게 휘두르며 일자로 내리찍었다.
“폭마검(爆魔劍)!”
콰아아아아!
블레이드 밖으로 뻗어나간 열풍이 주위를 집어삼켰다. 깜짝 놀란 네리아는 배리어를 펼쳤다.
남아 있던 마물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재로 변했다. 황폐하게 변해 버린 숲 가운데서 네리아는 콜록거리며 배리어를 거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이런 무지막지한 힘이라니. 만약 배리어를 펼치지 못했다면 자신도…….
‘데몬은?’
순간 불안한 네리아였지만 다행히 데몬은 무사했다.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선 그의 맞은편에는 조금 거리를 두고 이터가 서 있었다.
데몬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법이구나. 설마 내 부하들을 이렇게 간단히 쓰러뜨릴 줄이야.”
“빨리 저주를 풀어라.”
훗. 데몬은 자신에게 당돌하게 대드는 이터가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말했다.
“죽이기에는 아까운 인간이로구나. 어떠냐? 내 부하가 되어보지 않겠느냐?”
“데, 데몬이시여… 무슨 말씀을?”
네리아는 기가 막혔다. 계약자가 죽여달라고 부탁한 자에게 도리어 힘을 주겠다니? 그러나 데몬은 그런 네리아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마계에 강자들은 많다. 하지만 너와 내가 힘을 합하면 최강이 될 수도 있다. 인간계에서는 가질 수 없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지. 어떠냐? 생각이 있느냐?”
이터는 답했다.
“내가 너보다 더 강한데 왜 네 부하가 되냐?”
“…….”
데몬은 순간 할말을 잃었다. 잠시 멍하게 서 있던 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재미있는 꼬마구나. 네가 지금 나 데몬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거냐?”
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건방진.”
데몬이 웃음을 지웠다. 가라앉히고 있던 기운이 다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투기에 숲이 흔들렸다.
“쓸 만한 실력이라 거두려 했더니 하늘 높을 줄 모르는구나. 좋아. 보여주마, 나 데몬의 진정한 힘을.”
격렬하게 떨리던 숲이 마침내 조용해졌다. 데몬의 주위로 암흑력으로 만들어진 흑빛의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데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것이 나의 암흑력이다.”
‘대, 대단해.’
네리아가 침을 꼴깍 삼켰다. 흑마법을 연구하며 살아온 그녀는 누구보다도 암흑력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그녀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데몬의 힘은 막강했다. 소드 마스터의 오라 블레이드가 아니면 벨 수 없다는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지켜보던 이터가 감상을 말했다.
“별거 아니군.”
“……!”
데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공포로 미쳐버렸나? 아니면 힘의 차이를 깨달을 능력도 없는 건가? 너 같은 녀석을 교육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도 없다. 3초. 3초 만에 네 녀석을 박살내주마.”
그 말과 함께 데몬은 날개를 펼치고 땅을 박찼다. 화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이터와의 거리를 좁힌 그가 이터의 심장을 향해 손톱을 내질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손톱은 허공을 꿰뚫었다.
“여기다.”
“……!”
왼쪽 뒤에서 기척을 감지함과 동시에 강한 충격이 얼굴을 뒤흔들었다. 이터의 발차기가 데몬의 얼굴을 후려갈긴 것이다.
뒤로 튕겨나가는 데몬을 향해 이터는 도약해 들어갔다.
“큭!”
바로 균형을 잡은 데몬이 이터를 후려갈겼다. 달려들다 바로 주먹을 맞은 이터는 그대로 튕겨나 나무 두 그루를 꿰뚫고 바닥에 처박혔다. 간단치 않는 타격을 입었으리라.
하지만 이터는 금방 일어났다. 옷이 약간 찢어지고 먼지가 내려앉은 것을 제외하곤 충격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이터가 말했다.
“3초는 이미 지났다.”
“이놈!”
데몬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이터에게 달려들었다. 이터는 기간틱 블레이드를 바닥에 박고 데몬에게 마주 달려갔다.
있는 힘껏 내지른 둘의 주먹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콰쾅!
“으윽!”
두 주먹이 맞부딪히며 뿜어내는 엄청난 충격파에 네리아는 휘청거렸다.
대단한 힘의 격돌. 그러나 그것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