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15
마염의 황제 015화
로자리아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보물을 봉인한 것은 어쩌면 이데아로크의 힘일지도 모른다. 그 보물이 바로 이데아로크의 다섯 조각 중 하나일 확률도 있다는 거야.”
“그렇군.”
조용히 경청하던 이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즈 블레이드는 심드렁하게 날을 떨었다.
“뭐야. 결국 그럴 것 같다는 추측일 뿐이잖아. 확실치도 않은 걸 찾기 위해서 이 먼 길을 돌아가고 있다니… 인간들은 이해 불능이야.”
“시끄러워. 그럼 네가 좋은 수단이라도 내보든가.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쓸모없는 고철덩어리 주제에 잘난 척은.”
“꺄아! 또 나를 고철이라고 불렀어. 이 개념 없는 마녀가!”
발끈하는 가즈 블레이드를 이터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쓸모없는 건 맞다.”
“넌 닥치고 있어!”
잠시 어수선해진 분위기. 로자리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데아로크는 마(魔)와 흑(黑)이 맺어진 결실. 강력한 마신이야. 그 막강한 힘은 몇 번이나 세계를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갔다고 해. 수많은 마법사들과 용맹한 기사들이 도전했지만 결과는 시체의 산뿐이었지. 그 어떤 왕국도 이데아로크를 당해 내지 못했어. 그야말로 지상 최강의 괴물이었지. 그런 힘을 얻는다면 이 세상에 그 어떤 마법사도 갖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되는 거야.”
가즈 블레이드가 다시 태클을 걸었다.
“넌 그 힘으로 마녀의 탑을 만들 거라고 했지? 그런 힘으로 고작 탑 하나 세우겠다는 건 너무 촌스럽지 않아?”
“모르는 소리 마. 완벽한 마법의 탑이야말로 모든 마녀들이 꿈꾸는 로망이란 말이야. 훗! 하긴, 허접한 철 쪼가리가 뭘 알겠어?”
“또! 또……! 내 이름은 가즈 블레이드야. 고귀한 신의 이름이 새겨진 검이라고!”
“그럼 신의 검답게 쓸모라도 좀 있든가.”
으르렁거리는 검과 마녀.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이터는 배를 어루만졌다.
꼬르륵.
“나 배고프다.”
“저 녀석들인가?”
약간 떨어진 수풀 속에서 일행을 관찰하던 슈페른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건 완전히 애들이잖아?”
그는 도포 안에서 보고서를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로자리아. 알센데린 숲에서 주로 활동한 마녀. 다양한 저주와 공격 주문을 사용할 수 있다. 밝혀진 능력은 5서클에 가까운 4서클 마스터 급으로 파악됨.”
슈페른은 살짝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저 나이에 4서클 마스터라니, 여자치곤 제법이다.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군.’
명줄은 오늘까지겠지만.
“다음은 이터… 이건 저 꼬맹이의 이름인가?”
슈페른은 이터에 대한 정보를 읽었다.
“정확히 알려진 정보 없음. 스톤 골렘을 단검 하나로 박살냄. 아만다티움 골렘을 철대검으로 쪼개낼 수 있는 완력을 가지고 있음. 네리아의 잠적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됨. 정확한 능력치 판단 불가. 위험인물로 추정……?”
보고서를 다 읽은 슈페른이 혀를 찼다.
“어떤 병신 같은 놈이 문서를 이따위로 작성해 놓은 거야? 뻥도 정도껏 쳐야지. 누가 늙은이 부하 아니랄까봐. 쯧쯧. 돌아가면 이 문서 작성한 놈부터 죽여버려야겠구만.”
어쨌거나 일은 일이다.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야지. 바닥을 박찬 슈페른은 단숨에 로자리아 앞에 내려섰다.
난데없이 숲에서 사람이 튀어나오자 로자리아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 뭐야, 당신은? 갑자기 나타나면 사람이 놀라잖아!”
그러나 불쑥 나타난 이 불청객은 미안한 표정 하나 짓지 않으며 마치 취조라도 하듯 물었다.
“먼저 확인부터 하도록 하지. 로자리아 림 아슈벨. 자네 이름이 맞나?”
“어떻게 내 이름을?”
“확실히 맞는군.”
로자리아의 물음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슈페른은 자기 할 말만 했다.
“알 제라드의 슈페른이다. 거기 늙은이가 너희를 없애고 가즈 블레이드라는 걸 가지고 오라더군.”
로자리아가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자, 자객?”
“이라는 말보다는 스페셜 청부업자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만.”
자신들을 없애고 가즈 블레이드를 가져가겠다… 그런 말을 할 놈들은 하나뿐이었다. 그 흑마법사들이 속해 있는 조직. 알 제라드라는 건 그 조직의 이름인가.
“역시나 아직도 쫓아오고 있었군. 그렇다고는 해도 명색이 자객이라는 사람이…….”
로자리아는 재빨리 메모라이즈해 두고 있던 파이어 볼을 불러냈다. 순식간에 일어난 세 개의 불덩어리가 슈페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다니, 바보 아냐?”
“그러니까 자객이 아니라…….”
고개를 살짝 돌려 불덩어리 하나를 피해 낸 슈페른은 그대로 몸을 돌려 날아오는 나머지 두 개의 불덩어리를 걷어찼다.
“스페셜 청부업자라니까.”
콰아앙!
기로 보호한 다리가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그대로 로자리아에게 되받아쳤다. 날아간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파이어 볼을 보며 당황한 로자리아는 황급히 주문을 외웠다.
“시, 실드!”
“늦었어.”
실드가 구현되는 것보다 불덩어리가 날아가는 속도가 더 빠르다. 슈페른은 싱겁다는 미소를 지었다.
‘끝났군. 역시나 시시해.’
그러나 그 순간, 로자리아의 앞을 이터가 막아섰다.
“응?”
“방어.”
콰아아앙!
이터의 왼손에서 튀어나온 백색 광채가 파이어 볼과 함께 폭발하며 사라졌다. 물론 이터와 로자리아의 몸에는 작은 그을음 하나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 방어다.
로자리아를 구한 이터가 슈페른을 보며 말했다.
“로자리아를 괴롭히지 마라. 계속 공격하면 혼내줄 거다.”
“호오?”
슈페른의 눈에 광채가 어렸다. 저런 주문을 정면에서 한 손만으로 막아내다니. 문득 보고서의 내용이 떠올랐다.
아만다티움 골렘과 네리아를 쓰러뜨린 꼬마.
‘보고서의 내용이 농담이 아니었나? 뭐, 우연인지 아닌지는 시험해 보면 알겠지.’
슈페른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공격의 자세를 잡았다.
“어디, 큰소리칠 만한 실력인가 보도록 할까?”
파앗.
바닥을 박찬 슈페른의 신형이 이터를 향해 쏜살같이 쏘아져 나갔다. 이터 역시 마주 치고 나갔다.
파팟!
요란한 충격파와 함께 중앙에서 둘의 팔이 맞부딪힌다. 팔을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두 사람. 슈페른이 두어 걸음 뒤로 밀렸다.
‘이놈 봐라?’
슈페른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기를 실은 자신의 권은 강철의 벽도 한 방에 깨부순다. 그런 일격을 막아낸 것도 놀라운데 자신을 밀어내다니?
이터를 튕겨내며 뒤로 물러선 슈페른은 재빨리 자세를 추슬렀다.
“흠. 힘은 세군. 하지만 내 속도를 따라올 수 있을까?”
슈페른의 몸이 고속으로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잔상조차 남지 않을 정도였다. 들려오는 바람소리가 아니었다면 그가 사라졌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로자리아의 눈으로는 이미 슈페른을 쫓을 수 없었다.
‘빨라!’
당황한 로자리아와 멍히 서 있는 이터를 보며 슈페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떠냐. 못 쫓아오겠지? 다음 일격으로 단번에 숨통을 끊어주마.’
그렇게 슈페른이 이터를 향하려 할 때였다.
“흐음,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이터가 신형을 움직였다. 그와 함께 슈페른과 똑같은 고속 이동을 하는 이터가 순식간에 슈페른의 정면을 파고 들어간다.
“아니!”
쩡!
막 박차고 나가려던 슈페른은 황급히 이터의 주먹을 막았다. 팔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이터를 돌려찼다.
이터가 그의 발차기를 맞받아찼다. 부딪히는 두 개의 기에 주변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그 틈에 파고든 슈페른은 양 손바닥을 이용해 이터의 명치를 노렸다.
이터는 슬쩍 물러나 피한 다음 번개처럼 안으로 들어왔다. 연속으로 찔러 들어오는 이터의 주먹을 슈페른은 급히 막았지만 타격이 전해진다.
“이놈!”
슬슬 약이 오른 슈페른이 살기를 담아 번개처럼 쌍장을 내질렀다. 스친 손가락이 이터의 웃옷 자락을 찢으며 물러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초. 진짜는 뒤이어 매서운 칼날처럼 날아드는 발차기였다. 타이밍을 빼앗아 단번에 숨통을 끊어버리는 기술이다.
그러나 이터는 가볍게 텀블링을 하는 것으로 슈페른의 공세를 피해 물러서 내렸다.
슈페른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된 놈이냐. 내 움직임을 따라잡는 꼬마라니…….’
자신의 움직임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라면 적어도 검성 급의 경지에 달한 마스터여야 할 텐데.
“좋아. 잘한다, 이터. 박살내 버려!”
신나서 소리치는 로자리아의 모습에 슈페른은 얼굴을 굳혔다.
“이렇게 되면…….”
스윽.
슈페른이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곤 마치 그대로 돌이라도 된 양 움직이지 않았다. 이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
파앗.
그 순간, 이터의 뒤에서 슈페른이 나타났다. 목뼈를 부러뜨릴 기세로 내리치는 당수를 이터는 재빨리 몸을 틀어 옆으로 피했다. 공격이 일으킨 파동이 애꿎은 바닥을 길게 갈랐다.
슈페른은 입술을 깨물었다.
“쳇, 쥐새끼 같은 녀석!”
이터는 고개를 돌렸다. 그때까지도 남아 있던, 굳어 있는 슈페른의 모습이 연기 꺼지듯 사라졌다. 그것은 이터의 시야를 속이기 위해 슈페른이 순간적으로 만든 환영이었다.
환영이 사라지는 걸 지켜보던 이터가 슈페른을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거 재밌다. 나도 할 거다.”
“뭐?”
슈페른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흥, 환영잔상권이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느냐? 쓰고 싶다고 마음대로 쓰게.”
“아니다. 할 수 있다. 봐라.”
스윽.
이터의 몸이 멈췄다. 방금 전의 슈페른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서, 설마?’
“환영을 만들어냈어!”
로자리아도 놀란 얼굴이었다. 슈페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하니 내 기술을 그대로 흉내 내다니? 하지만…….’
“표절한 기술 따위에 당할쏘냐?”
슈페른은 돌아서며 바로 발차기를 날렸다. 그 자리에는 몰래 나타나던 이터가 있었다. 슈페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걸렸다.’
그리고 슈페른의 발차기가 이터를 뚫고 허공을 지나간다. 환영.
“뭐라고?”
“여기다.”
목소리는 위에서 들렸다. 고개를 들기가 무섭게 양손을 깍지 낀 이터가 슈페른의 머리를 후려쳤다.
퍼억!
난데없는 공격에 얻어맞은 슈페른은 튕기듯이 떨어지며 물러났다.
“크윽!”
아픈 와중에도 기가 막혔다. 2중 환영잔상권이란 말인가.
“잘한다. 끝장을 내버려, 이터!”
“감히, 나를 화나게 만들다니.”
욱신거리는 이마는 둘째 문제다. 천하의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이 어린 꼬마에게 맞는다는 건 자존심 문제였다.
슈페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눈에서 흉흉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짙은 살의를 뿌리며 그가 입을 열었다.
“어린애라서 얕보았더니 망신살이 뻗쳤군. 고통 없이 죽여주려고 했다만 이제 용서할 수가 없어. 이 슈페른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