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21
마염의 황제 021화
“그것 봐. 너한테는 배울 게 없다니까.”
“……!”
재능이 있는 소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렇게 어린 소년 고수가 존재할 줄이야. 그런데도 자신은 눈이 어두워 그런 것도 알아보지 못했다니.
‘그래도 이런 곳에서 질 순 없다.’
마스터가 되기 위해 혹독한 수련을 해왔다. 그리고 그 결실을 맺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까보냐.
아직 자신에게는 최후의 패가 남아 있었다. 가를로프는 검 자루를 움켜쥐고 마나를 주입했다. 그와 함께 영롱히 피어오르는 푸른 마나의 검날, 이름하여…….
“오라 블레이드(Aura Blade)!”
콰아아아!
섬광처럼 타오르는 푸른 검날이 족쇄를 깨부수고 어두운 안개를 날려버렸다. 검이 일으키는 푸른 선풍이 주변의 땅과 나무를 초토화시켜 버렸다. 무서운 속도로 튕겨져 나오는 파편을 피한 소년이 가를로프의 검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마나를 검날로 바꾼 기술이군. 비슷한 기술을 쓰는 녀석들을 보았지만 그 녀석들보다 몇 배는 정교하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군.”
소년이 씨익 웃었다.
“재미있다. 나도 가지도록 하지.”
“뭐?”
가지겠다니? 그러나 그 말뜻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소년이 대검을 들었다. 그리고 검날에 마나를 밀어넣었다.
쿠오오오오.
블레이드에 밀어넣은 마나가 검을 타고 일어나 백색의 광채를 띠었다. 2m나 되는 블레이드를 감싼 빛이 터질 듯한 기세로 뻗어오르며 검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것은 가를로프가 가진 것과 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뚜렷하고 강한 빛을 가진…….
“오, 오라 블레이드!”
가를로프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런 아이가 오라 블레이드를 만들어내다니! 그것도 자신의 것보다 훨씬 강렬한 빛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그를 경악하게 만드는 것은 소년이 들고 있는 대검의 크기였다. 저만 한 크기의 검 전체에 오라를 맺히게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양의 마나가 필요한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저렇게 넓은 범위에 오라를 맺을 순 없다.
“간다.”
소년이 대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백색의 오라 블레이드가 허공을 갈랐다.
콰아아아아!
백색의 검기가 예리한 파도가 되어 가를로프와 주위를 휩쓸었다.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지는 가를로프의 오라. 그의 검이 끊어진다. 놀라 주저앉는 가를로프의 뒤로 백색 오라의 돌풍에 휘말린 나무들이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숲에 길이 일자로 뻥 뚫렸다.
멍하게 주저앉은 가를로프를 보는 소년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인간들은 고작 이런 걸로 극의라는 말을 읊는가. 웃기지도 않는군.”
그의 입에서 방금 전까지와는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자신이 일생 동안 쌓아온 것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가를로프는 소년의 그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소년은 대검을 어깨에 걸친 채 그를 지나쳐서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네놈은 뛰어넘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나?”
“…….”
소년이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가를로프는 그 자리에 멍하니 주저앉은 채였다. 뛰어넘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느냐고?
그는 주위를 바라보았다. 부러진 자신의 검. 그리고 폐허가 된 주변. 꿈이 아니었다.
“검성께서 나타나 꾸지람을 준 것인가? 미약한 경지에 도달했음에 만족함을 느끼고 멈춰섰다고…….”
깨달음을 얻어 한계를 초월했다. 오라 블레이드를 만들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자신의 초월한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스스로 만들어놓은 검의 틀에 묶여 있었다. 아직도 그는 마스터라 불릴 만한 극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것이다. 그걸 저 소년이 몸으로 가르쳐주었다.
가를로프는 안일했던 자신에게 창피함을 느꼈다. 그가 걸음을 돌려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 수행을 재개했음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응?”
대검을 어깨에 메고 길을 가던 소년은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렸다. 그의 눈동자와 분위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뭐지? 방금은…….”
뭔가 변화가 일어났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전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난 장작을 구해 오기로 했었지.”
분명히 장작도 다 만들어둔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다시 주위에 있는 나무를 쪼개 장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년은 미처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날부터 소년은 오라 블레이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한참 기다렸잖아.”
돌아오는 소년을 불퉁한 얼굴의 여인이 맞이했다. 여행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 차이나 드레스 차림의 여인. 뒤로 말아올린 머리카락은 드레스만큼이나 짙은 흑빛이었다.
“장작을 가지러 간다더니 한 시간도 넘게 걸리고… 또 무슨 암습이라도 있었던 건 아닌지 걱정했단 말이야.”
부채를 부치며 투덜거리는 그녀의 말에 바닥에 기대어져 있던 검 한 자루가 덜컥거리더니 몸을 떨며 코웃음 쳤다.
“그것보다 이터가 없어지면 자객들이 자길 노릴까봐 걱정한 거겠지.”
“흥! 고철 검이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뭘 안다고 떠들어.”
“알 수 있어. 넌 속이 쉽게 들여다보이는 저렴한 인간이니까.”
투닥거리는 검과 여자. 그리고 그들 옆에서 장작을 내려놓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소년. 그들은 마녀 로자리아의 일행이다.
검은 드레스의 여자가 바로 알센데린의 마녀, 로자리아 림 아슈벨. 흑마법을 예술로 승화시키겠다는 그녀는 장난기가 많지만 반면 열혈적인 성격을 가진 도도한 마녀다.
그녀와 함께 열을 올리며 으르렁거리는 검은 가즈 블레이드. 마신 이데아로크의 힘을 나눈 다섯 개의 조각 중 ‘인격’에 해당하는 검으로, 지독하리만큼 수다스러운 검이다. 로자리아와는 성격 탓인지 걸핏하면 이렇게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검으로 나무를 쪼개고 소드 마스터의 오라 블레이드까지 흉내 내는 이 소년이 바로 이터. 길에 쓰러져 기억을 잃고 있던 것을 로자리아가 거두었다. 이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자세히 밝혀진 것은 없다. 단지 끝 모를 강함을 가진 소년이라는 것 외에는.
“자,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가자.”
악신 이데아로크의 힘을 봉인한 다섯 무구. 그 다섯 조각을 모은 이는 이데아로크의 강대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전해진다. 로자리아 일행은 그 다섯 조각을 찾아 여행하는 중이었다.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을 최고의 마녀 탑을 세우기 위해서.
그리고 가즈 블레이드를 노리는 알 제라드의 자객들을 몇 번이나 물리친 일행은 지금 적막의 숲, 엘데라드를 향하고 있었다. 도미크의 도둑 길드에서 산 정보에 따라 엘데라드 엘프의 보물이 이데아로크의 다섯 조각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꽤 오랜 시일이 지난 여행 끝에 그들은 마침내 엘데라드에 도착했다.
“여기가 엘프가 산다는 적막의 숲.”
소설이나 전설 속에서 듣기만 했던 엘프들의 숲과는 달랐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은 제멋대로 자라난 풀에 덮여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삭막하고 쓸쓸해 보이는 숲. 이런 숲에 진짜 엘프들이 살고 있단 말이야?
“일단은 움직이자. 이런 곳에서 멍하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할 생각인데?”
달칵거리며 물어오는 가즈 블레이드. 로자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엘프들의 마을부터 찾아야지. 엘프들은 숨어 살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숲에 있는 것만은 확실해. 샅샅이 뒤지다 보면 녀석들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런 고생 정도로 찾을 수 있다면 이미 예전에 발견되었겠지.”
“그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고 우리가 직접 해본 적은 없잖아? 걷지도 않는 주제에 잔말 말고 그냥 끌고 가는 대로 따라와.”
가즈 블레이드는 혀를 차며 가드를 저었다.
“과거의 전례들이 분명히 있는데도 똑같은 방법으로 확인해야만 인정하다니……. 인간은 정말 비효율적이라니까.”
어쨌거나 그렇게 일행이 숲 안을 조사하러 움직일 때였다.
“꺄악!”
푸드드득!
비명소리에 놀란 새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소란 사이로 두 개의 커다란 안광이 시퍼렇게 빛난다. 나무. 일행을 놀라게 한 것은 큰 눈과 입을 가진 거대한 나무였다.
“나, 나무가 말을 해?”
몬스터인가? 허겁지겁 싸울 준비를 하는 로자리아를 향해 나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인간들이여, 왜 엘프의 마을을 찾는가? 그곳은 인간들의 발길을 허락지 않는 곳. 돌아가라.]아까 로자리아가 한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엘프의 마을을 찾지 말고 돌아가라니.
‘이 나무, 엘프의 마을과 뭔가 관련 있는 나무인가? 예를 들자면 수호수라거나…….’
생각이 거기에 미친 로자리아가 서둘러 말했다.
“잠깐만. 우리는 엘프의 마을에 뭔가 나쁜 짓을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잠시 들르려는 것뿐이야.”
[만약 지금 돌아가지 않는다면 숲의 분노를 보여주겠다.]가즈 블레이드가 덜컥거리며 말했다.
“전혀 듣지 않는데?”
“칫. 썩은 고목 주제에! 좋아, 그렇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로자리아는 시뻘건 불덩어리를 소환했다. 3서클 공격 마법 파이어 볼. 얼마나 무서운 녀석인지는 몰라도 나무는 나무다. 이 불덩어리 한 방이면 금세 잿더미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막 그녀가 파이어 볼을 날리려는 순간, 난데없는 돌풍이 주위에 몰아쳤다.
“윽! 뭐야?”
자연적으로 부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위력의 돌풍. 로자리아의 불덩어리를 순식간에 꺼뜨린 바람이 숲을 뒤흔들었다.
“괴, 굉장한 바람이다…….”
로자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다. 이대로라면 돌풍에 휘말려 날려가 버릴 것이다. 바람은 더욱더 거세어졌다, [돌아가라. 어서 돌아… 꺅!]
쿠당탕탕!
일행 앞으로 무언가가 굴러 떨어졌다. 그와 함께 나무의 시퍼런 안광도, 몰아치던 바람도 사라졌다.
“아야! 아후, 또 넘어졌네. 바람이 너무 셌나?”
일행의 앞에 넘어진 것은 어린 여자 꼬마아이였다.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문지르는 소녀는 또랑또랑한 푸른 눈동자에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금발 머리카락 사이에는 뾰족하고 커다란 귀가 솟아나와 있었다.
“아!”
머리를 문지르던 소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의 시선을 느끼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녀는 나무 뒤로 후닥닥 모습을 숨겼다.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로자리아는 정신을 차렸다.
‘금발에 뾰족한 귀를 가진 인간… 확실해. 틀림없어. 저 녀석은…….’
“엘프… 엘프다!”
[흠흠… 다시 말하겠다. 돌아가라, 인간들이여.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숲의 분노가 떨어질 것이다.]다시 푸른 안광을 뿜는 나무. 그러나 이미 나무를 보는 일행은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로자리아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