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22
마염의 황제 022화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지금 나무를 조종하고 있는 거 방금 전의 엘프 씨?”
[네.]“…….”
‘쉽게도 밝히는군. 그럼 방금 전의 바람도 자기가 일으키고 자기가 날려갔다는 건가?’
가즈 블레이드가 맥 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엘프라는 애들도 인간만큼이나 어리바리한 모양이네. 근데 찾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니?”
로자리아는 상관없다는 얼굴로 웃음 지었다.
“아무렴 어때. 오히려 잘됐지. 이걸로 이 숲에 엘프가 있다는 건 확실해졌잖아. 방금 전의 그 녀석을 인질로 잡으면 마을로 향하는 길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여자애를 인질로 잡겠다니… 역시 넌 저급한 악당이구나.”
“시끄러워!”
가즈 블레이드를 한번 쏘아본 로자리아는 부채를 접고 나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엘프를 불렀다.
“얘야… 엘프 꼬마야… 어디 있니? 다시 한 번 나타나주지 않을래?”
[다가오지 마라. 숲의 분노가 떨어진다. 그리고 실례예요. 숙녀에게 꼬마라니.]“호호, 이미 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게 너라는 건 알고 있어. 언니한테 장난치면 못쓴다. 냉큼 나타나렴.”
나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로자리아는 옆쪽 무성한 수풀을 헤쳤다.
“여기 있나? 아니면 이쪽인가? 어디 있니, 엘프 꼬마야!”
나무 주위의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는 로자리아. 조금 떨어진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던 여자 엘프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 조용히 쫓아내려고 했는데 자꾸 다가와 버리네요.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걸까요?”
그녀는 가지고 있던 두꺼운 책을 꺼내 펼쳤다. 책 표지에는 ‘방범용 마법 스크롤 모음집’이라고 쓰여 있었다.
소녀는 촤르르 책장을 넘기며 페이지를 찾았다.
“으음, 아까 바람은 썼고… 침입자 퇴치용 주문이 어떤 거였더라? 이건가?”
찌익.
소녀가 스크롤 북 한 장을 찢었다.
콰아앙!
그와 함께 로자리아의 근처에서 요란한 폭발이 일어난다. 난데없는 폭발에 로자리아는 쏟아지는 흙무더기를 피하며 바닥을 굴렀다.
“뭐, 뭐야?”
“그리고 이 주문이랑 이 주문을…….”
쿠웅!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거대한 철구가 나무들을 뚫고 일행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날아간다.
철구가 사라지기 무섭게 이번에는 거대한 쇠기둥들이 하늘에서 나타나 바닥에 내리꽂혔다.
간신히 피하자마자 일어나는 동시다발적 폭발. 숲은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우와아악! 대체 뭐야, 이건?”
“콜록콜록! 꺄아! 내 번들거리는 블레이드가 새카맣게 그을려 버렸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숲. 공격을 몽땅 피해 낸 이터를 제외한 로자리아 일행은 먼지투성이로 엉망이 되었다.
나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숲을 파괴하지 말고 돌아가라, 인간. 그렇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하겠다.]“파괴하고 있는 건 그쪽이잖아!”
무슨 놈의 엘프가 숲을 이렇게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단 말인가. 나무는 계속해서 경고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용서해 주겠다. 빨리 숲에서 사라져라.]“이익! 여우같은 엘프 계집애가!”
“야, 허접 마녀! 괜스레 흥분하지 마. 더 이상 내 몸에 흙이 튀는 건 사양이라구.”
먼지투성이가 된 가즈 블레이드가 과장스럽게 법석을 떨었다. 굳이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로자리아는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쳇, 함정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쉽게 접근할 수가 없잖아. 원격 조종을 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아야…….’
일행 중에 유일하게 멀쩡한 이터가 끼어들었다.
“숨어 있는 장소만 알면 되나?”
“응? 일단은 그렇지.”
“알았다. 그럼 내가 찾아줄게.”
“저 엘프가 어디 있는지 알겠어?”
이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터의 신형이 한 방향을 향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이터를 보며 엘프 소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다가오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도… 어쩔 수 없지.”
그녀가 다시 스크롤 북을 찢었고, 이윽고 폭발이 일어난다.
콰앙!
하지만 이터는 폭발의 범위를 정확하게 피하며 달렸다. 하늘에서 철구와 쇠기둥이 떨어져 내렸지만 이터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라! 계속 다가오네. 그러면… 에잇. 에잇.”
엘프는 스크롤 북을 찢었다. 나무들이 불타고 숲이 폭발했다. 그러나 이터는 멀쩡했다.
“어째서 당하지 않는 건가요?”
콰앙!
마지막 폭발까지 텀블링으로 피해 낸 이터가 엘프 소녀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로 내려섰다. 깜짝 놀란 그녀가 허겁지겁 스크롤 북을 찢으려는데 이터가 빼앗았다.
“이제 그만둬라.”
“아… 저, 저리 가요!”
스크롤 북을 빼앗긴 엘프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그런 엘프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방금 일으킨 불꽃에 불이 붙어 쓰러지는 나무였다.
“어?”
피할 시간이 없다.
어린 엘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나무가 덮치며 요란한 소음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나무에 짓눌렸음이 분명한데 신기하게도 고통은 없었다. 의아해하면서 눈을 뜬 엘프는 자신이 이터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다가온 이터가 그녀를 낚아채 안고는 왼손으로 불타는 나무를 받쳐 든 것이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인간이 나를 구했어?’
“하앗!”
퍼억!
기합과 함께 이터의 왼손이 빛을 발했다. 불타는 나무는 그대로 터져나갔다. 시커멓게 타버린 나뭇조각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이터는 자신의 품에 안겨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엘프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괜찮나?”
“아… 아! 네.”
엘프는 얼굴을 붉혔다. 흩어지는 불꽃을 배경으로 흩날리는 붉은 머리카락과 이터의 얼굴이 멋져 보여 화끈거린다.
그녀의 눈에 그을린 이터의 왼팔이 보였다. 자신을 구할 때 생긴 상처.
“당신 팔이…….”
“별거 아니다.”
엘프는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그렇게 심하게 공격했는데 이 쿨가이는 자신을 구해 주려다가…….
그녀는 이터의 왼팔을 살며시 쥐며 주문을 외웠다.
“조용히 부는 바람아. 엘프들의 친구인 자연과 생명의 바람아. 피곤하고 지친 자들을 위해 불어주렴. 화이트 윈드(White Wind).”
부드러운 바람이 숲 안으로 불어온다. 순백의 빛을 띤 바람이 이터의 왼팔을 감쌌고, 곧 상처는 아물었다.
엘프 소녀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서투른 바람에 겁만 준다는 것이…….”
“이터, 괜찮아?”
로자리아와 가즈 블레이드가 허겁지겁 이터의 뒤를 쫓아 달려왔다. 이터와 함께 있는 엘프 소녀를 본 로자리아는 소리쳤다.
“찾았다, 난폭한 엘프 꼬마!”
“실례입니다. 난폭하다니요. 저는 엘프들의 마을을 찾는 당신들에게 경고를 한 것뿐입니다.”
“이게 경고라고?”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은 여기가 숲이었는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여기저기가 패이고 박살나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엘프는 로자리아에게 눈밑을 내려 보이며 혀를 내밀었다.
“전 모릅니다. 이건 다 애초에 당신들이 제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요. 메롱!”
그 말과 함께 숲 속으로 후닥닥 도망치는 엘프 소녀를 향해 로자리아가 소리쳤다.
“야, 거기 서!”
“하지만.”
문득 달려가던 엘프 소녀가 걸음을 멈췄다. 나무 앞에 멈춰선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부끄러운 표정으로 다리를 비비 꼬며 입을 열었다.
“침입자기는 해도 이제 곧 어두워지는데… 인간들에게 밤의 숲이 위험하기도 하고…….”
“……?”
도망치다 말고 몸을 꼬는 엘프를 로자리아는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게 약 먹었나? 갑자기 왜 저래?’
엘프 소녀가 수줍은 표정으로 이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아… 어쩔 수가 없네요. 거기 붉은 머리 소년님.”
“나?”
이터가 자신을 가리키자 엘프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홍조를 띤 그녀는 재빨리 이터의 곁으로 다가와 팔짱을 꼈다.
“소년님은 저를 구해 주셨으니까 저희 마을에서 하루 머물게 해드릴게요. 보답을 위해서라면 나중에 어른들도 뭐라고 하진 않으시겠죠.”
“이터 혼자만 데려간다는 말이야?”
엘프 소녀는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쪽의 팍삭 늙은 인간 아줌마에게 진 빚은 없으니까요.”
“누가 아줌마야!”
로자리아가 눈에서 불을 뿜으며 반박했지만 엘프 소녀는 로자리아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이터를 끌었다.
“자아, 시끄러운 사람들은 무시하고 얼른 마을로 가도록 하죠.”
이터는 팔짱을 풀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 여자는 내가 지켜주기로 했다. 함께 있어야만 해.”
지켜야만 하는 여자. 얼마나 멋진 말인가. 엘프의 눈 안에서 이터의 등 뒤로는 후광이 비치고 그 얼굴은 뽀샤시하게 빛났다. 미화 200%. 샤방 효과까지 일어나는 이터의 모습에 엘프 소녀의 얼굴은 다시금 벌게졌다.
‘정말 너무 멋지다.’
홍당무가 되어버린 엘프 소녀는 부끄럽다는 듯 뺨에 손을 대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할 수 없죠. 하룻밤만이라면 설마 무슨 일이야 생기겠어요. 다 모시도록 하죠.”
엘프 소녀가 이터에게 윙크했다.
“하긴, 하룻밤에 역사가 쓰이기도 하지만요. 호홋.”
로자리아가 식은땀을 흘렸다.
“너 상당히 밝히는 엘프로구나.”
어찌하였거나 이걸로 엘프 마을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쉽게 일이 진행되니 조금 황당하기는 하지만 로자리아로선 대환영이었다.
일행을 마을로 안내하며 엘프 소녀는 이터의 팔짱을 꼈다.
“‘자기’라고 불러도 될까요?”
“……?”
그렇게 인간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 엘프의 마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Chapter 1-9. 다크 엘프, 샤필로스
“자, 그럼 출발해 볼까요?”
소동이 끝난 뒤, 이것저것 보고용 문서를 꾸린 엘프 소녀가 떠날 채비를 마쳤다. 마을로 들어가는 그녀의 얼굴은 일행만큼이나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사실 저도 숲 관리 때문에 오랫동안 마을에 돌아가지 못했거든요. 모처럼 돌아간다니까 왠지 두근거리네요.”
“잠깐.”
이터가 엘프 소녀를 불렀다.
“자꾸 너라고 부르려니 불편하다. 이름이 뭐냐? 내 이름은 이터다.”
‘이름이 뭐냐니? 설마 이거 그 말로만 듣던 이름 교환?’
엘프 소녀는 얼굴이 벌게진 채 도리질을 쳤다.
“모, 몰라요. 전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에요.”
“……?”
로자리아와 가즈 블레이드는 동시에 식은땀을 흘렸다.
‘가지가지 하는군.’
“엘리스. 제 이름은 엘리스예요.”
기어나오는 듯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엘리스. 이름을 밝히기가 무섭게 그녀는 다시 벌게진 얼굴로 도리질 쳤다.
“아이, 몰라… 부끄러워…….”
하지만 이터는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