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23
마염의 황제 023화
각자의 소개가 끝나자 엘리스는 엘프 마을로 가는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사실 엘프의 마을로 가는 길이라는 게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에요. 숲은 엘프, 엘프는 숲. 숲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우리 엘프들이 사는 곳이거든요.”
휘이이.
엘리스가 손을 뻗자 작은 녹색의 빛 덩어리들이 숲에 흩어졌다. 마치 물감이 지워지는 것처럼 지워져가는 숲. 다음 순간, 커다란 떡갈나무들이 가득한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부드러운 향유가 솟아나오는 분수대에는 자그마한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로자리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환영해요, 인간 여러분. 엘데라드 엘프의 마을에 오신 것을…….”
엘리스는 팔을 활짝 크게 펼쳐 보이며 마을에 신호를 보냈다. 방문객들을 환영하는 축포와 연주를 하는 신호. 엘프들의 신나는 환영 인사가 일행을 반길 것이다.
“…….”
반겨야 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 이상하네. 다른 분들은 다 어디 계시지?”
그러고 보니 마을이 이상했다. 평소라면 마을 정원에서 뛰놀고 있어야 할 엘프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 기대어 노래하는 엘프들도, 땀방울을 흘려가며 검술과 마법에 열중인 엘프들도,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마을 안쪽의 집에서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백발이 무성한 땅딸보 엘프였다.
“장로님?”
“엘리스… 큭!”
장로라고 불린 엘프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깜짝 놀란 엘리스가 그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장로님, 괜찮으세요?”
아무도 없는 엘프 마을과 피를 토하는 장로. 로자리아는 불길함을 느꼈다. 엘프의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것인가?
장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놈의 관절염 때문에…….”
“…….”
괜히 헷갈리게 분위기 잡지 마! 관절염인데 피는 왜 토하는 건데? 로자리아는 솟구치는 핏대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장로가 일행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엘리스, 이분들은?”
“이분들은요…….”
엘리스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녀의 설명을 듣고 난 엘프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엘데라드 엘프 마을의 보구를 보고 싶다고?”
“네. 저는 인간 마법사입니다. 마법이 걸린 물건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어 구경을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꺄악!”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거짓말하는 로자리아의 모습에 코웃음 치는 가즈 블레이드였지만 초를 치기 전에 로자리아가 재빨리 날을 꺾어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잠시 생각하던 엘프 장로가 승낙했다.
“뭐, 좋겠지. 마을의 보구는 마을을 찾는 어떤 종족에게라도 견학을 허락하고 있으니.”
“정말인가요? 그럼 당장 구경해 보는 것도 괜찮겠죠? 네?”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로자리아. 엘프 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세. 일이 정말 쉽게 풀리는구나.’
“근데 지금은 없어.”
“네? 왜요?”
엘프 장로는 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잃어버렸거든.”
“아, 그렇군요.”
잃어버려서 그렇구나……. 웃으면서 마주 고개를 끄덕이는 로자리아와 엘리스. 그리고 다음 순간 두 여자는 동시에 소리쳤다.
“네에?”
***
폭포수 동굴. 마을 뒤편 계곡의 폭포와 연결되는 이 동굴은 엘프들이 마을의 보물을 보관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고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넓은 동굴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휑한 보고네.”
주위를 돌아본 로자리아의 짧은 감상이었다.
엘프 장로가 입을 열었다.
“원래는 이 휑한 보고도 진귀한 보물로 가득 차 있었지. 얼마 전에 다크 엘프들이 마을로 쳐들어오기 전까지는. 엘데라드 숲 속에 자리 잡은 녀석들이 마을의 보물들을 모조리 쓸어가 버렸어.”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에요?”
엘프 장로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막으려 했다. 하지만 다크 엘프 놈들이 워낙 막강해서 막을 수가 없었지. 마을의 젊은 녀석들은 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는 엘프 장로. 그 표정에서 로자리아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다크 엘프들에게 당해 버린 거군요.”
엘프 장로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 글쎄… 나를 빼고 봄놀이 꽃 관광을 떠났다지 뭐냐. 썩을 놈들!”
“…….”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오는 로자리아였다. 비어버린 보고를 보던 엘리스가 분하다는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샤필로스 녀석, 내가 마을에 없을 때 이런 일을 벌이다니.”
“샤필로스? 그게 누구야?”
“다크 엘프들의 대장인 엘프의 이름입니다.”
로자리아에게서 시선을 돌린 엘리스는 과거를 회상했다.
“다크 엘프 샤필로스는 저희 언니, 레피아의 라이벌이었어요. 하지만 언니는 엘프 전사 중 최강이었던 분. 샤필로스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았지요. 그런데 그런 언니가 죽자마자 이런 일을 벌어다니… 비겁해.”
엘리스가 샤필로스의 만행에 분노하고 있을 때였다.
“걱정하지 마시죠, 엘프 아가씨. 빼앗긴 보구는 내가 되찾아줄 테니.”
폭포 동굴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오고 있었다. 로브로 몸을 가린 금발의 머리와 푸른 눈동자를 가진 청년. 그의 뒤를 뿔테 안경을 눌러쓴 사제복 차림의 청년이 따르고 있었다. 망국 페이샨의 왕자, 그레이센 지그프리드. 그리고 그의 심복, 론 바할트였다.
“장로님, 저들은?”
“며칠 전부터 마을에서 머물고 있는 인간들이란다. 저 사람들도 우리 보구를 구경하겠다고 찾아왔지.”
론 바할트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엘리스에게 말했다.
“그레이센 왕자님의 무예는 이미 최상급의 익스퍼트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다크 엘프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왕자님이라면 쉽게 보구를 되찾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왕자?”
로자리아는 왕자 일행이라는 둘을 유심히 살폈다. 왕가 쪽하고는 연이 없는데 이상하게 낯익다.
한참 생각하던 로자리아는 생각났다는 듯 그레이센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앗! 이제 알았다. 넌 술집의 그 싸가지남!”
그레이센 역시 로자리아를 알아보았다.
“아니? 너는 대낮의 음주녀?”
“실례네! 대낮에 술 마시고 있었던 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로자리아의 곁에는 그날의 그 괴물 꼬마도 있었다. 그레이센은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마주치게 될 줄이야. 그러고 보니 너희에게는 갚아줘야 할 빚도 있었지.”
반짝.
그의 이빨 하나가 유난히 반짝인다. 전에 이터에게 한 대 맞고 박살난 이빨이 금니로 때워져 있었다. 로자리아가 부채를 펼치며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흥, 그거 하나 가지고 되겠어? 나머지도 몽땅 뽑아내야 균형이 맞을 것 같은데. 이 기회에 남은 것들까지 죄다 뽑아줄까?”
그레이센은 현기증이 돈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아… 끔찍하군. 어떻게 여자의 입에서 저리도 천박한 말이 나온단 말인가?”
“이빨 하나에 앙심을 품고 있는 쫌생이보단 나아.”
그레이센은 불같이 노해 소리쳤다.
“쫌생이라니! 감히! 이 이빨이 어떤 이빨인 줄 아느냐? 어마마마께서 ‘왕자야, 하루에 세 번은 양치를 해야 치아가 건강하단다’, ‘단것만 먹으면 이가 썩어요’ 하시며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관리해 주신 이빨이란 말이다. 감히 그런 이빨을 모욕하다니. 덤벼라, 결투다!”
“와, 왕자님, 진정하세요.”
“내시는 빠져!”
“전 내시가 아닙니다!”
조용한 동굴 안이 우왕좌왕 티격태격하는 인간들로 소란스러워졌다. 엘프 장로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감상했다.
“허허, 활기가 넘치는 인간들이로군.”
“다크 엘프들은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나?”
장로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에게 질문한 것은 이터였다. 이터의 왼손이 동굴과 공명하며 빛나고 있었다. 붉은 기가 감도는 눈으로 이터가 물었다.
“가르쳐줘.”
***
“따분하군.”
휘황찬란한 보석들로 가득 찬 왕좌. 그 위에 단발로 머리를 짧게 깎은 여인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엘리스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귀를 가진 여자. 그러나 평범한 엘프와는 달랐다. 그녀의 머리칼은 엘프의 금발이 아닌 흑발이었고 피부색도 구릿빛이었다.
전형적인 전사의 복장에 뺨에는 마법의 문양을 새긴 그녀는 바로 엘데라드의 다크 엘프 수장, 샤필로스였다.
그녀가 손에 쥔 보석들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보석들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레피아 녀석이 멋대로 죽어버린 이후로 이 모양이다. 뭘 해도 의욕이 나질 않아. 지루하다고.”
부들부들.
주먹을 움켜쥔 샤필로스가 몸을 떨었다. 그녀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치사해. 치사하단 말이다! 녀석에게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검도, 활도, 마법도! 심지어는 가위바위보조차 한 판도 이기지 못했어. 그런데 죽어버리다니.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내버려둘까 보냐. 살려내겠다. 반드시 살려내서 이번에야말로 다시 승부를 내고 말겠어.”
그녀가 수집한 대부분의 보물이 삶과 죽음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유니크 아이템들인 이유는 그래서였다. 그녀의 목적은 죽어버린 자신의 라이벌을 부활시키려는 것이었다.
왕좌 아래에는 세 명의 부하가 부복하고 있었다. 머리에 검은 터번을 눌러쓰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어쌔신 다크 엘프, 레뮤어. 커다란 덩치를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후드로 감추고 있는 다크 엘프, 탈리스. 마지막으로 커다란 검을 등에 채운 깡마른 키에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크 엘프, 일리아. 그들은 샤필로스가 부리는 심복 3인이었다.
레뮤어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샤필로스님, 만약 다시 살려내도 지면요? 새로운 필살기 같은 건 준비되어 있는 건가요?”
“…….”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힌 샤필로스가 어색한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무…물론이지. 나를 뭘로 보는 거냐.”
‘없었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거야.’
‘또 지겠군.’
어색하게 웃던 샤필로스가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날카롭게 물었다.
“네놈들 지금 속으로 아무 생각도 없었다고 날 비웃었지?”
레뮤어와 탈리스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서, 설마 그럴 리가요. 저희는 샤필로스님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입니다.”
“그렇습죠. 저희가 어찌 감히…….”
‘하여간 귀신이라니까.’
‘속마음 읽는 능력은 레피아보다 몇 수는 위일걸.’
그렇게 심복들이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을 때였다.
위이잉…….
낮은 경고음이 방 안을 울렸다. 샤필로스가 가늘게 눈을 치켜떴다.
“음? 뭐야?”
“샤필로스님, 계곡 입구에 침입자입니다.”
과묵하게 서 있던 일리아가 짧게 답하며 영상을 연결했다. 커다란 수정구슬이 계곡을 비췄다. 계곡을 일단의 무리가 넘어오고 있었다. 이터 일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