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24
마염의 황제 024화
샤필로스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인간들?”
***
같은 시각, 엘데라드의 마을을 나온 이터 일행은 엘리스를 따라 망각의 골짜기라고 불리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크 엘프들의 본거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여기 망각의 골짜기 안 어디라는 것이죠. 이곳은 엘데라드에서 가장 죽음의 기운이 강한 곳. 무지하게 기분이 나쁜 곳입니다.”
엘리스의 말대로 주위는 삭막했다. 나무는 죄다 말라 비틀어져 있었고 반쯤 썩어버린 꽃들은 부딪히기만 해도 부스러져 사라졌다. 메마른 땅은 여기저기 갈라져 있었다. 같은 엘데라드 숲에 속한 곳인지 의문이 갈 정도였다.
로자리아는 코를 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한 악취까지 나네. 이런 곳에 본거지를 만들다니 정말 악취미야. 그렇지, 이터?”
“응.”
이터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자리아의 품에 안긴 가즈 블레이드가 이상하다는 듯 가드를 까닥였다.
“좀 이상하지 않아, 허접 마녀? 저 꼬마, 오늘따라 분위기가 심각한데.”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이터야 원래 좀 무뚝뚝한 면이 있었으니까.”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레이센과 론이 일행을 따라오고 있었다.
론이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왕자님, 괜찮을까요? 저 녀석들과 동행해도. 저는 자꾸만 걱정이 됩니다. 녀석들이 선수를 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 어린 론의 말에 그레이센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내시들은 쓸데없이 걱정만 많다니까.”
‘또 시작이군.’
머리에 힘줄이 돋아나는 론을 뒤로하며 그레이센은 입을 열었다.
“확실히 계산 밖의 상황이긴 하지. 하지만 오히려 잘된 것일 수도 있어. 녀석들과 다크 엘프들을 싸우게 만들어 그사이에 우리가 먼저 엘프들의 보구를 손에 넣는다. 그게 이데아로크의 조각이라면 럭키인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보구에 봉인된 힘은 고스란히 우리가 가질 수 있게 되지.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거야.”
“그렇군요.”
론은 퉁명스럽게 답하며 속으로 툴툴거렸다.
‘하여간 왕자니 뭐니 폼은 다 잡으면서 치사한 쪽으로만 머리가 돌아가요.’
“그리고 만약에 잘못되더라도.”
그레이센은 가볍게 주먹을 쥐며 웃었다.
“그때는 ‘그걸’ 쓰면 되니까.”
그레이센과 론은 걸음을 재촉해 이터 일행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지나가자 그때까지 아무런 기척도 없던 나무 사이에서 누군가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들이 왜 이런 숲까지 찾아왔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
회색 머리카락을 뒤로 묶어내린 흑의의 중년인이 미소를 지었다. 스페셜 청부업자 슈페른 마이어. 일전에 이터에게 호되게 당했던 그는 그날 이후로 복수의 칼을 갈며 이터 들을 몰래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정보는 잘 들었다. 엘프들의 봉인된 힘은 이 슈페른님이 가지도록 하지.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저 꼬맹이 놈을 박살내 버리겠다.”
슈페른이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이터 일행 앞에 이상한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잠깐. 뭔가 와요.”
우우우.
작은 바람과 함께 흐릿하게 네 명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체가 아닌 일루전 영상. 다크 엘프, 샤필로스와 그의 부하들이었다.
“흐응… 인간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왔나 했더니 엘프 하나가 끼어 있었군.”
샤필로스와 시선을 마주한 엘리스가 메고 있던 활을 꺼내 들었다.
“다크 엘프!”
“그 활은……?”
활의 정체를 깨달은 샤필로스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저 활은 자신의 라이벌이 애용하던 무기였으니.
“레피아의 빛의 활. 네가 어떻게 그걸?”
“내가 바로 레피아 언니의 동생, 엘리스다. 언니한테 가위바위보 한번 이긴 적 없는 주제에 치사하게 언니가 죽은 틈을 노리고 보물을 훔쳐? 얼른 내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푸욱.
엘리스의 말이 샤필로스의 정곡을 찔렀다.
‘레피아의 동생이란 말이지.’
언니나 동생이나 남 신경 건드리는 데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흥! 젖비린내 나는 엘프가 건방지게……. 큰소리치는 것만큼이나 실력이 있는가 보도록 할까?”
쿵!
샤필로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세 개의 문이 일행 앞에 떨어졌다. 열린 문 안에는 차원의 통로가 펼쳐져 있었다.
“이 문은 내가 있는 성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보구를 돌려받고 싶다면 여길 통과해서 성으로 오도록. 통과할 수 있다면 말이야.”
비웃음과 함께 샤필로스와 다크 엘프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기다려!”
엘리스가 소리쳤지만 이미 그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로자리아가 미심쩍은 눈으로 세 개의 문을 바라보았다.
‘세 개의 문 중 하나로 들어오라고? 아무래도 함정 같은데… 어떻게 하지?’
일단은 생각을 해봐야…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터가 왼쪽 문으로 달려 들어갔다.
“앗, 이터! 잠깐만!”
불렀지만 이터는 이미 차원의 문으로 뛰어든 뒤였다. 그가 들어가자 문은 자동으로 닫히며 서서히 사라졌다.
“문이 사라졌다?”
“저 멍청이, 혼자서 뭘 하는 거야? 함정인지도 모르는데.”
발을 구르는 로자리아.
방금의 상황을 지켜본 슈페른이 짧게 미소 지었다.
“들어가면 사라져 버리는 문인가보군. 좋아.”
타앗!
숲 속에서 뛰어나온 슈페른이 오른쪽의 문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로자리아는 깜짝 놀랐다.
“아니, 저 영감은!”
틀림없는 그 스페셜 어쩌고 하는 살인광이다.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 답을 찾기도 전에 오른쪽의 문도 사라져 버렸다.
‘그럼 남은 문은…….’
“하나!”
엘리스와 로자리아, 그리고 그레이센 일행은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중앙의 문으로 뛰어들었다.
“무엄하다. 물러나지 못할까!”
“비켜. 내가 먼저 들어갈 거야.”
“여러분! 차례를 지키세요.”
“꺄아아악! 어딜 만지는 거야. 하여간 인간들은 개념이 없어!”
왁자지껄 떠들며 소란을 떠는 일행. 그리고 잠시 후, 잠잠해졌다. 일행 모두가 차원의 통로를 넘자 마지막 문이 닫히며 사라졌다.
수정구슬로 지켜본 샤필로스가 부하들에게 명했다.
“파티 시작이다. 준비들 하도록.”
“네.”
그와 함께 세 명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샤필로스는 즐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호호, 오랜만에 재미있는 유희가 벌어질 것 같군.”
***
짙은 안개가 뻗어 있다.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안개. 안개를 헤치고 나아가며 로자리아가 투덜거렸다.
“음침하군. 정말 다크 엘프 녀석들, 사람을 이런 기분 나쁜 곳에다가 처박아놓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엘리스가 대꾸했다.
“다크 엘프들은 우리와는 달라서 상당히 호전적인 종족입니다. 아마 우리의 힘을 시험해 보려는 생각이겠죠.”
“그러니까 그런 걸 왜 이런 기분 나쁜 장소에서 하느냔 말이야.”
다크 엘프들이 준비한 차원의 통로를 지난 뒤부터 계속 이런 길이다. 이래서는 제대로 방향을 잡아서 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잖아.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앞서가던 엘리스가 로자리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로자리아 씨는 이터 씨와 무슨 관계시죠? 혹시 연인 사이인가요?”
풉.
하마터면 사레가 걸릴 뻔했다. 로자리아는 황당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무슨 소리야. 난 그냥 녀석을 잠시 돌봐주고 있는 것뿐이야. 그런 어린애랑 연인이라니. 말도 안 돼.”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엘리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이터 씨를 좋아해도 괜찮은 거겠죠?”
켁!
이번에는 제대로 사레가 걸렸다. 로자리아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지, 진심이야? 너 정말로 이터를?”
“네.”
고개를 끄덕인 엘리스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너무 멋져요, 이터 씨는. 그 강한 모습과 무뚝뚝하면서도 자상한 얼굴,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줄 것 같은 넓은 등. 전 정했답니다. 이터 씨를 반드시 제 인생의 남자로 만들기로요.”
“저기, 하지만… 그런 건 먼저 본인 동의를 얻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 말에 엘리스는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반드시 절 좋아하게 만들 테니까요.”
돌아서는 엘리스를 보며 가즈 블레이드가 날을 달칵이며 물었다.
“이야… 엘프들이 원래 이렇게 대담한 종족이었냐, 허접 마녀?”
“…….”
일행은 다시 안개를 헤치고 나아갔다. 안개의 길은 아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로자리아의 심기는 아까보다 훨씬 더 불편해져 있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
‘왠지 분한데. 내가 왜 이런 꼬맹이의 말에 화가 나는 거지?’
모를 일이다.
그때였다.
“피해요!”
콰아앙!
엘리스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바닥이 폭발한다. 다행히 재빨리 피해 일행 중에 폭발에 휘말린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 충격파를 피하다니 제법 날쌘 녀석들이로군.”
안개가 걷혀간다. 그러자 저 너머에 서 있는 이의 모습이 보였다. 후드로 몸을 가린 다크 엘프의 몸 밖으로 비어져 나온,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오른팔에서 무서운 기가 느껴졌다.
“너는?”
“나는 샤필로스님의 부하, 탈리스. 너희를 여기에 묻어버릴 분이시지.”
“그 말은 적이라는 말이네.”
로자리아는 탈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파이어 볼을 소환해 날렸다. 일직선으로 뻗어 날아가는 파이어 볼. 직격 코스였다.
“흥.”
탈리스가 오른팔을 들어 주먹을 움켜쥔다. 그러자 그 안에서 뻗어나온 충격파가 파이어 볼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 버렸다.
‘주먹을 쥐는 것만으로 날려버렸어?’
엘리스가 레피아의 활을 꺼내 시위를 메웠다.
“빛의 화살. 라이트닝 애로우(Lightning Arrow)!”
성스러운 빛으로 만들어진 빛의 화살이 시위를 놓음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다. 그러나 탈리스는 비웃을 뿐이었다.
“소용없다!”
콰아아아!
주먹을 휘두르자 강한 파동이 일어나 빛의 화살을 소멸시켜 버린다.
탈리스는 키득거리며 오른팔을 들었다.
“내 팔은 폭발적인 기를 응축시켜 충격파를 만들지. 이 충격파의 벽을 뚫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걸 응용하면.”
탈리스가 일행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위험해요!”
콰아앙!
탈리스가 만들어내는 충격파가 바닥을 폭발시켜 구멍을 뚫는다. 무시무시한 괴력. 로자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수인을 맺었다.
“쳇, 바람의 열두 자락, 어둠의 권능을 받아 암흑의 검이 되리. 트웰브 소드!”
휘이잉…….
보이지 않는 투명 검 열두 개가 탈리스의 몸 주위를 포위했다. 보이지 않았지만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탈리스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건?”
“네 주위에 보이지 않는 열두 개의 칼을 깔아놓았다. 움직이면 그대로 저승행일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