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28
마염의 황제 028화
“뭐, 좋을 대로 해봐.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뭐야?”
끝까지 비웃음으로 일관하는 이터의 모습에 샤필로스는 눈이 뒤집혔다.
‘내가 저걸 박살내지 못하면 다크 엘프가 아니다!’
샤필로스는 레이피어를 부러뜨려 봉인을 풀려 했다.
“그만둬, 샤필로스!”
누군가가 샤필로스의 앞을 막아섰다. 엘리스였다.
“그 봉인은 우리의 선조들이 숲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렵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 암흑의 힘을 개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거냐!”
“알 게 뭐야, 그런 거. 내가 강해진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게 정말 강해지는 거야?”
엘리스가 소리쳤다.
“네가 그 힘을 가져 강해진다고 해도 그건 그 힘이 강한 것이지, 네가 강한 것이 아냐. 남의 힘을 훔치는 걸로 만족하는 그게 네가 추구하는 강함인 거야? 그런 정신 상태로는 넌 절대로 레피아 언니를 넘어서지 못해!”
“……!”
순간이지만 샤필로스는 주춤했다. 자신에게 당돌하게 소리치는 엘리스의 모습에서 레피아의 얼굴을 본 것이다. 힘을 얻고 싶다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얻어내라. 자신의 라이벌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레피아…….”
“마을의 보구를 돌려줘. 그 이상은 우리도 바라지 않아. 보구만 돌려주면 즉시 물러나겠다.”
엘리스는 이터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터 씨, 이걸로 괜찮겠죠?”
“뭐, 난 어느 쪽이든 그다지 상관없어.”
이터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돌렸다. 샤필로스는 망설였다. 그때였다.
“흥. 웃기고들 있군!”
“……?”
난데없는 냉기가 샤필로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옆으로 물러나는 샤필로스. 그와 함께 누군가가 샤피로스의 손에서 레이피어를 빼앗는다. 바로 스페셜 청부업자, 슈페른이었다.
“네놈은?”
평소라면 이런 기습에 당할 리가 없었겠지만 지금의 샤필로스는 이터에게 두들겨맞아 체력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태다. 샤필로스는 힘없이 레이피어를 빼앗기고 말았다.
멀찌감치 물러난 슈페른은 이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꼬마 녀석, 전에는 잘도 망신을 줬겠다. 각오해라. 이번에야말로 네놈을 저승으로 보내주겠다.”
“그런데…….”
이터가 진지하게 물었다.
“아까부터 시끄러운데 넌 대체 누구냐?”
“…….”
슈페른은 경악했다.
‘까먹고 있었다. 이 자식, 나를 까먹고 있었어!’
“용서 못 한다, 이 자식!”
“……?”
영문을 모르겠다는 이터의 얼굴을 뒤로하고 슈페른은 검은 레이피어를 쥐고 그대로 꺾어버렸다.
“안 돼!”
로자리아와 그레이센이 깜짝 놀라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한 발 늦었다. 검을 보호하는 봉인이 깨어지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봉인의 문자가 흩어지듯 지워진다. 그와 함께 일어나는 커다란 폭발. 그리고 검은 레이피어가 반으로 쪼개져 나갔다.
“꺄악!”
가둬져 있던 힘이 날뛰기 시작한다. 깨어진 레이피어를 중심으로 검은 바람이 폭풍처럼 일어났다.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라도 할 기세로 몰아치는 바람에 엘리스 일행은 날려가지 않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버텨야 했다.
암흑력이 넘치는 바람을 보며 슈페른은 팔을 벌렸다.
“크흐흐흐. 너를 깨운 것은 바로 이 스페셜 청부업자 슈페른 마이어님이시다. 와라, 그리고 나의 힘이 되거라!”
촤아악!
그 말에 답이라도 하듯 암흑력의 바람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회색의 점액질이 떨어지는 촉수.
“이건?”
슈페른은 반사적으로 피했다. 그러자 촉수는 방 안의 기둥을 휘감고 그대로 으스러뜨려 버렸다.
몰아치던 바람이 사라진다. 그리고 흩어지는 바람 사이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
언뜻 보면 그것은 나무처럼 보였다. 줄기처럼 생긴 촉수들을 꼬아 우뚝 선 살아 있는 나무다. 나무의 끝에는 회색 얼굴과 팔을 가진 상반신이 붙어 있었다. 나무에 매달린 얼굴이 입을 열었다.
[파괴… 한다. 생명을… 파괴한다.]“저것이 레이피어에 봉인되어 있던 것의 정체인가?”
이데아로크의 조각이 아니다. 로자리아와 그레이센은 안도했다.
하지만 나타난 녀석은 결코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쿠웅.
살아 있는 나무가 바닥에 뿌리를 내린다. 뿌리가 내린 바닥이 검게 물들고 그와 함께 나무 여기저기에 무언가 피어났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세포 덩어리로 이루어진 열매다.
피어난 열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죽음의 열매. 바닥에 떨어진 세포 덩어리들이 땅에 달라붙어 파도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세포들이 해일처럼 지나간 자리는 생명력을 잃고 썩어버렸다.
“이건 대체……?”
짙어져가는 죽음의 기운을 느끼며 엘리스는 몸을 떨었다. 생명력을 빼앗는 죽음의 세포. 아주 약간이라도 생명력을 가진 것이라면 이 세포 덩어리와 융합되어 생명력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쳇, 빌어먹을 괴물 놈!”
그레이센이 달려드는 촉수를 검으로 베어버렸다. 검기를 맺은 검이 세포 덩어리들을 조각낸다. 여기저기 찢어진 세포들이 기분 나쁜 점액질을 토해 냈다.
“우리도 가요.”
엘리스는 빛의 화살을 날렸다. 로자리아도 트웰브 소드를 꺼내어 세포 덩어리들을 난자했다. 세포 덩어리들의 움직임이 주춤한다. 일행의 공격이 효과가 있었다. 이대로 계속 공격해 조각을 내서 태워버리면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엘리스 일행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
스으으…….
찢어진 세포 덩어리가 부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상처가 재생된다. 새로운 줄기가 반쯤 날아간 나무를 복원시킨다. 그러나 단순히 원래대로 재생한 것만이 아니었다. 찢겨져 나간 세포들도 새롭게 재생하고 있었다. 단번에 암흑세포 덩어리는 두 배로 늘어났다.
“마, 말도 안 돼!”
[생명을 가진 것들을… 모조리 파괴한다.]두 배로 늘어난 세포들이 다시 확장을 시작했다.
“제길!”
그레이센과 로자리아 들은 있는 힘을 다해 세포들을 베고 태웠다.
하지만 증식이 멈추는 것은 벤 그 순간뿐이었다. 곧 세포들은 다시 분열, 재생하여 수배로 불어났다.
아무리 베어도 소용없었다.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방 안을 뒤덮는 세포 수도 늘어나는 것이다.
일행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포는 무서운 속도로 성을 집어삼켰다.
‘무한히 재생하는 죽음의 세포라. 이런 걸 만들어서 지상의 숲을 모조리 파괴할 생각이었나? 드래곤도 재미있는 생각을 했군.’
로자리아 일행이 밀리기 시작했다. 아직 촉수에 휘감기거나 당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지금대로라면 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지금 로자리아를 잃는 것은 곤란했다. 이터는 왼손을 들었다.
“정말 귀찮게 하는 인간들이군.”
우우우웅.
이터의 빛이 크게 확장하며 일행을 보호하는 막이 되었다. 검은 세포 덩어리들은 막 밖으로 밀려 튕겨나갔다.
“이 막은?”
“뭔가… 갑자기 졸음이…….”
막 안에 들어온 로자리아 일행과 슈페른, 샤필로스는 갑자기 몰려오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이 정신을 잃은 것을 확인한 이터가 바깥의 세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는 곤란하니 물러가라. 너도 나를 느낀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테지.”
[생명… 가진 것들… 파괴해라.]쿠웅!
세포 덩어리들이 한데 뭉쳐 막을 내리찍는다. 그 위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막과 함께 성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이터는 혀를 찼다. 저 괴물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조잡한 놈이로군. 넌 아군, 적군도 구별 못 하나?”
[파괴하라. 파괴하라.]그러나 세포 덩어리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이터는 기간틱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보호막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 상관없어. 너 같은 불량품은 드래곤도 필요로 하지 않겠지.”
보호막 밖으로 이터가 걸어나오기 무섭게 촉수들의 그의 몸을 휘감았다. 이터의 생명력을 빼앗으려는 것이다.
촉수에 묶인 이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없애버리기 전에 한 가지 질문하지. 성을 먹어치우는 데다 계속 재생하는 괴물을 날려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나?”
[파괴한다. 파괴한다.]“틀렸어.”
투화악.
이터의 몸을 묶은 촉수가 폭발하듯 터져나간다. 한 손으로 기간틱 블레이드를 하늘 높이 들어올리며 이터가 씨익 웃었다.
“성째로 날려버리면 돼.”
쿠아아아!
이글거리면서 피어오르는 폭염이 블레이드를 달군다. 몰아치는 바람이 돌풍을 일으킨다. 기간틱 블레이드를 순백의 오라가 휘감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강대한 에너지가 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지워라, 불. 부러져라, 천풍.”
이터의 검이 일직선으로 죽음의 나무를 내리찍는다.
“잘 봐둬라. 이게 바로 진짜 폭마검, 진폭마검(眞爆魔劍)이다.”
[파괴…….]콰아아!
순백의 빛이 세포에 작렬하며 폭사한다. 무시무시하게 일어난 열기가 숲과 함께 검은 세포들을 쓸어버렸다.
이어지는 대폭발. 엘데라드 숲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빛이 하늘로 터져올랐다.
격렬한 폭발의 끝에 남은 건 성이 무너져 생긴 폐허와 로자리아 일행을 감싼 보호막, 그리고 그 옆에 기간틱 블레이드를 들고 선 이터였다.
“이 정도 힘을 썼다고 벌써 피곤해지는군.”
이터가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의 몸이 휘청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내린다.
“뒷일은 네게 맡기지.”
***
며칠이 지났다. 이터를 제외한 로자리아 일행은 전원이 무너지는 성에 깔려 엘프 마을에서 요양하게 되었다. 엘리스는 샤필로스도 길게 머물며 치료하기를 권했지만 그녀는 거절하며 마을을 떠났다.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채.
“오늘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다음엔 쉽지 않을 거야. 그때까지 성장해 있으라고. 이제부터 내 목표는 너니까.”
엘리스에게서 레피아를 느낀 샤필로스는 그녀를 강하게 성장시킬 생각을 했다. 그녀를 새로운 라이벌로 키워내어 쓰러뜨리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엘프 마을은 이런저런 소동으로 정신없이 돌아갈 듯했다.
“하지만 결국 엘프들의 보물은 이데아로크의 조각과 관계가 없었네.”
다시 여행길에 오른 로자리아가 숲 너머에 있을 엘프들의 마을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가즈 블레이드가 말을 받았다.
“그게 더 다행 아니야? 부러진 건 엘프의 보물이었으니까. 진짜 조각은 아직 무사한 거잖아.”
“그것도 그렇지.”
하지만…….
“이런 녀석들이 따라오게 될 거라곤 생각 못 했다고.”
로자리아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뒤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그레이센이 황금이빨을 번쩍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때, 로자리아? 날씨가 정말 쾌청하지 않아? 여행을 떠나기 좋은 날씨야. 하하.”
망국의 왕자 그레이센, 그리고 그의 심복 론. 마을을 떠나는 로자리아에게 돌연 이 둘이 달라붙은 것이다.
물론 절대 달갑지 않은 로자리아였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양팔에 채워진 아티팩트 ‘마력의 타리스만’을 어루만졌다. 이런 예쁜 것을 뇌물로 바치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