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32
마염의 황제 032화
가게 안.
기괴한 점술 도구로 가득 찬 방 안 탁자 앞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음침한 복장과 연륜이 배어 있는 듯한 주름진 이마, 신경질적인 눈매. 그냥 척 보기만 해도 유능한 점쟁이처럼 보이는 복장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분장. 그의 정체는 바로 처음부터 줄기차게 등장해 왔던 알 제라드의 흑마법사였다. 그는 이터 일행에게 네 번째 조각의 정보를 흘리기 위해서 여기에 파견되었던 것이다.
“네놈들과는 지독한 인연이었지.”
아픈 과거가 떠오른다. 지난번의 독침에 당해 발라당 까진 머리는 아직 한 올도 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로자리아에게 맞은 것 때문에 이젠 아침에 텐트도 안 쳐진다. 잠적한 네리아의 실책은 전부 그가 뒤집어썼고, 출세 길은 막혀 이젠 완전 3류 악당 역할 말고는 맡겨지는 일도 없었다.
동기들 사이에서 그는 이미 왕따였다. 그뿐이랴. 나름대로 2권째, 3회 출연인 베테랑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이름 한번 나오지 못한 서러운 인생이었다.
흑마법사는 꾸욱 움켜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번만큼은 무능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겠어.”
이번 일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이미 이곳으로 끌어들이게 하는 사전 작업은 다 마친 상태였고, 이터 일행이 이곳을 향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자신은 이터 들에게 호아족 놈들과 조각에 대한 정보만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분장은 완벽하다. 예언용 멘트도 이미 만들었다. 들킬 위험도, 실패할 이유도 없다. 남은 것은 녀석들이 이 가게로 들어오는 것뿐.
‘자, 어서 와라!’
똑똑.
“실례합니다. 계신가요?”
‘왔군.’
흑마법사는 재빨리 복장을 바로 했다. 방 안에 들어오는 이터 일행을 향해 흑마법사는 입을 열었다. 무척이나 노력해서 만든 음침한 목소리를 낮게 깔며.
“어서들 오시게. 기다리고 있었네.”
“에? 우리가 올 걸 알고 계셨나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에 로자리아가 깜짝 놀란다. 흑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야 여기로 유인했으니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로자리아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손바닥을 쳤다.
“정말 용한가봐.”
“한심하긴. 원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쟁이들 18번 영업용 대사다. 바보 아냐? 끄윽!”
코웃음을 치는 그레이센의 발을 로자리아는 사정없이 밟아버렸다.
흑마법사는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군. 그렇다면 내가 정말 기다리고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줘야겠지. 너희가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 알고 있다. 이데아로크의 네 번째 조각의 행방을 알고 싶은 거지?”
“어머, 맞아요. 정말 족집게네!”
점쟁이가 자신들의 목적을 단번에 알아맞히자 그레이센도 조금은 놀란 듯했다.
“대단하군. 우리 내시보다 더 잘 맞히는데?”
“에효…….”
이젠 내시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에도 지친 론이었다.
로자리아는 기대에 부푼 눈으로 물었다.
“그럼 그 조각의 행방도 알려줄 수 있나요?”
“훗, 그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점쟁이는 수정구슬에 손을 가져갔다.
투명한 수정구슬 안이 먹물이 물 속에 퍼지듯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덩달아 어두워지는 방 안. 순간, 수정구슬에서 무서울 정도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고 이내 사라졌다. 방 안도 다시 밝아졌다.
신기해하는 일행을 보며 흑마법사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출에 신경 좀 썼다.
“동쪽으로 7일간 바다를 건너는 길. 섬들이 무리를 지은 해협에 도착하면 그레트라는 섬을 찾아라. 그곳에 살고 있는 호랑이 털을 가진 인간이 너희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동쪽? 히야! 대단해. 정말 점괘가 바로 나왔어.”
감탄하며 넘어가는 로자리아를 보며 흑마법사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작전은 성공했다. 자신은 정확히 정보를 전달했다.
“그럼 어서 동쪽으로 떠나자고.”
“잠깐.”
서두르는 로자리아를 그레이센이 말렸다.
“한심하긴. 점괘를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해석을 해야지.”
“해석?”
“원래 점이나 예언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함축적인 내용은 짧은 말에 담아서 진짜 의미를 숨기지. 그러니까 들리는 말이 아니라 그 말 안에 내재된 진정한 내용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흑마법사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 거 없…….”
“일리 있는 말이네. 그럼 방금의 점괘는 무슨 뜻일까?”
이미 로자리아와 그레이센은 눈앞의 흑마법사도 잊고 점괘 해석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동쪽은 태양이 뜨는 곳, 태양신과 관련 있지 않을까? 또한 7일은 창조주가 세상을 만든 데 걸린 시간이지. 바다에도 해신 트라이온이 있고…….”
“세 개의 신이 모여 있는 곳… 혹시 그건 신들의 낙원을 가리키는 말일지도…….”
“신들의 낙원은 천공에 있다. 그렇다면 섬들이 무리를 지었다는 것은 전설로만 존재하는 천공 방주들을 뜻하는 것 같군.”
“…….”
전혀 관계없어!
이마가 지끈거리는 흑마법사였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지만 저건 너무 심하잖아. 어떻게 상황을 수습해 보고 싶었지만 일행은 이미 다른 세계로 날아가 버리고 있었다.
“휴우, 천공의 방주라니. 난이도가 너무 높은데? 그건 또 어떻게 찾는담.”
난이도가 높다는 로자리아의 말에 그레이센도 동의했다.
“아무래도 이대로 진행하는 데는 문제가 있겠군. 아니면 차라리 이렇게 어려운 점괘로 고민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때?”
“다른 방법이라니?”
귀가 솔깃해진 로자리아가 물었다.
“조각을 찾는 목적 말이다.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모으는 건 단순히 그 힘이 목적이 아니라 그 힘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겠지?”
“그거야 그렇지.”
그레이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것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걸 이루어주는 것이 꼭 이데아로크의 힘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거잖아?”
“아, 그러네. 다른 힘이어도 상관없어.”
상관없으면 안 돼!
흑마법사는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 갑자기 이야기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냐.
로자리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레이센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당신 꽤나 이데아로크의 조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네? 내가 그걸 제대로 이야기해 준 기억은 없는 거 같은데.”
뜨끔.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움찔하는 그레이센은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무, 무슨 소리야. 전에 네가 엉겁결에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아니면 내가 어떻게 알겠나? 하하하.”
“흐음……. 수상한데. 하지만 일단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점쟁이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로자리아를 보며 그레이센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 하마터면 들킬 뻔했군. 눈치 빠른 마녀 같으니라고.’
조각 찾는 걸 포기하게 만들고 가즈 블레이드를 자연스럽게 받아가려 했더니 실패다. 들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그레이센은 입맛을 다셨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로자리아는 흑마법사에게 물었다.
“그럼 점쟁이 씨. 우리 이데아로크의 조각 말고도 제가 원하는 걸 얻을 방법은 없을까요?”
“그, 그런 건 없어! 네가 원하는 건 이데아로크의 조각 말고는 절대 이루어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와서 다른 걸 찾으면 어쩌라고. 너희는 꼭 그 섬으로 가야만 한단 말이야.
“그래요? 하지만 보화로 가득 찬 던전 하나만 찾아도 이룰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안 돼. 넌 액운이 강해서 던전 들어가면 함정 두 개 정도 작동하고, 지층 무너져.”
“마법 시약은 어때요? 그런 걸 팔아서 돈을 벌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안 돼. 사기당하고 쪽박 차.”
“그럼 돈 많은 남자랑 결혼을 한다면?”
“그것도 안 돼. 명줄이 길어.”
그건 둘째 치더라도 돈 많은 남자가 파이어 볼 맞았냐. 마녀랑 결혼하게.
그레이센이 로자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넌 정말 재수없는 여자구나.”
“시끄러워!”
로자리아는 볼멘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요. 천공의 방주 같은 거 우리가 찾으러 다닐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몇 년이 걸릴 줄 알고.”
“그러니까 그런 거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니…….”
“이봐.”
그때 흑마법사와 로자리아 사이에 이터가 끼어들었다. 그는 흑마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기억 알고 싶다.”
“뭐?”
흑마법사는 당황했다. 이 괴물 꼬마는 또 뭐라고 하는 건가.
로자리아가 짝 소리가 나게 손바닥을 치며 소리쳤다.
“맞아! 이터는 기억을 잃어버렸지. 이렇게 용한 점쟁이라면 틀림없이 기억을 찾을 방법도 알고 있을 거야.”
“내, 내가 의사냐? 그걸 어떻게 알아?”
당황해서 역정을 내는 흑마법사를 로자리아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밖에는 무엇이든 알고 싶은 건 다 알려준다고 적어놨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그런 건 난이도가 높아서… 돈… 그래, 돈이 많이 든다고.”
“훗!”
그레이센이 머리를 넘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쩔 수 없군. 얼마 남지 않은 비자금이지만 선심 좀 쓰도록 하지. 론!”
“네, 왕자님.”
쿵.
테이블 위에 커다란 주머니가 올라갔다. 아까 마을에서 뿌린 것보다 더 많은 금화다.
그레이센은 반짝이는 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얼마 되지는 않아. 마을 하나 살 정도? 점괘 값이라고 생각해.”
“…….”
흑마법사는 입을 쩍 벌렸다. 이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이런 금화를 껌 값처럼 꺼내 들다니. 로자리아도 식은땀을 흘렸다.
‘얼마 남지 않은 비자금이란 게 대체 얼마나 남은 건지.’
“어쨌든 돈은 이 정도면 되겠죠? 그러니까 다른 것도 봐주세요.”
“그, 그게…….”
“어서요…….”
장난스럽게 수염을 잡아당기는 로자리아. 그런데 수염이 쑥 빠진다. 잡아당긴 로자리아도 빠진 흑마법사도 순간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수염이 빠졌어?”
“아니, 이건 그러니까…….”
수염을 당기자 쏙 빠져버린다? 엘리스는 신기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흑마법사의 곁으로 다가간 그녀는 가만히 그를 관찰하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보았다.
훌러덩.
“와아… 머리도 빠진다. 머리 뚜껑이에요, 머리 뚜껑.”
“이, 이게 무슨 짓이냐!”
가발이 벗겨지자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린 본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서둘러 엘리스에게서 가발을 빼앗아 썼다.
‘아, 알아보진 못했겠지?’
두근거리는 눈으로 로자리아를 돌아보는 흑마법사.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하…….”
그녀가 씨익 웃는다. 흑마법사도 마주 웃었다. 친근한 얼굴의 로자리아가 그의 목을 팔로 감으며 말했다.
“누군가 했더니 너였구나?”
“아… 하하하! 그, 그간 안녕하셨어요?”
그리고 잠시 후, 가게 안은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제, 제발 거기는 벌써 세 번… 으갸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