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34
마염의 황제 034화
분명 배를 타고 바다를 떠났을 그들이 왜 이런 숲에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설마 그런 식으로 난파당할 줄이야.”
원인은 출발한 지 5일쯤 되어 바다에서 만난 마물들의 습격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가오리형 몬스터 리프란과, 변이로 인해 거대해진 문어형 몬스터 케플라스가 그들이었다.
로자리아는 엘리스를 흘긋 노려보며 말했다.
“이게 다 어떤 바보 엘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지.”
“실례네요. 저는 리프란들이 배 위에 접근하지 못하게 열심히 쏘아 떨어뜨렸을 뿐이라고요.”
엘리스는 바로 반박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녀의 화살은 배 위로 날아드는 리프란들을 맞혀 떨어뜨린 것뿐이었다. 문제는…….
“그게 배 위였다는 거잖아. 떨어진 리프란들이 돛대랑 갑판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걸 잊었어? 설마 까먹었다고는 말 못 하겠지.”
“그건…….”
우물쭈물하는 엘리스. 하지만 이내 다시 볼을 부풀리며 쏘아붙였다.
“하지만 배를 엉망으로 만든 건 로자리아 씨가 더했잖아요?”
그레이센에게 받은 마력의 타리스만은 착용자의 마나 서클을 1 올려주는 엄청난 고급 아이템이었다. 덕분에 5서클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로자리아는 언제 그 마력을 마음껏 써볼 수 있을까 궁리하던 차였다. 때마침 나타난 몬스터들은 좋은 실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로자리아는 4서클 때는 쓰기 힘들었던 마염의 인페르노를 마음껏 펼쳤다. 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알고는 있지만 사용하지 못하던 주문을 마음껏 사용하는 쾌감! 마법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마염(魔炎)이라는 데 있었다.
“배가 홀라당 타버리고. 선체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라죠, 아마?”
“큭…….”
로자리아는 반박하지 못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그레이센이 짧게 코웃음 쳤다.
“이런 일로 내가 잘했네, 네가 잘했네 하고 싸우다니 여자들이란.”
로자리아와 엘리스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당신도 잘한 것 없어!”
공중의 적들을 로자리아와 엘리스가 맡는 사이, 그레이센은 케플라스를 맡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간 계속된 배 여행이 슬슬 지겨운 차인데 몸 풀기에 좋은 찬스. 그레이센은 곧바로 ‘디센트 프럼 헤븐’의 힘을 사용했다. 화려하게 갑판을 박찬 그레이센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일격에 케플라스의 명을 끊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사, 살려줘! 어푸!”
그레이센은 맥주병이었던 것이다.
“와, 왕자님!”
론이 간신히 밧줄로 배 가까이 끌어다 놓자 그레이센은 배 위로 올라가기 위해 선체를 주먹으로 꿰뚫어 암벽 타듯 올라왔다. 덕분에 배 바닥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수영도 못하는 인간이 바다에는 왜 들어갔대? 배가 가라앉은 일의 반은 그쪽 책임이라고.”
“웃기지 마라. 난 선체가 튼튼한지 확인을 해본 것뿐이다.”
투닥투닥 티격태격하는 일행. 제일 선두에 선 이터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만들 해라. 너희가 배를 험하게 다루니까 부서진 것뿐이다.”
“…….”
일행의 시선이 이터를 향했다. 제일 심한 건 바로 너였다고!
이터는 계속해서 마물들이 몰려들 기미를 보이자 바로 기간틱 블레이드를 이용해서 폭마검으로 쓸어버린 것이다.
폭마검으로 쓸어버린 것까지는 좋았지만 후폭풍은 장난이 아니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거대한 해일이 일어났고 결정적으로 배가 휩쓸린 건 그 탓이었다.
그래도 일행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해일이 덮칠 때부터 지금까지 이터가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터가 만든 풍선 같은 보호막이 하늘로 날아 근처에 있던 이 섬의 산에 내려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선원 분들이랑 흑마법사 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스의 물음에 로자리아는 문제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 그 녀석도 꽤나 실력 있는 녀석이니까 다른 녀석들을 데리고 무사히 잘 피했을 거야.”
그러나 실상은…
“사람 살려! 누가 좀 살려주세요! 흑.”
흑마법사와 선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망망대해에서 통나무를 하나씩 움켜쥐고 둥둥 떠가는 중이었다.
“아쉽네요. 그래도 바다 구경하는 거 좋았었는데. 돌고래 씨랑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웠고.”
“어쨌거나 여기가 어딘지부터 알아야 하니까 일단은 산을 내려가 보자고.”
“응?”
로자리아가 걸음을 재촉하려고 할 때 가즈 블레이드가 가드를 갸웃했다.
“저기 누가 있는 것 같은데?”
나무 뒤에서 누군가가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황색 머리카락의 아직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 일행과 시선을 마주친 그녀는 깜짝 놀라 달아났다.
“앗, 잠깐만! 이봐!”
로자리아가 그녀를 불러세우려 했지만 소녀는 이미 숲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재빠르네. 뭐야, 저 꼬마는?”
“그래도 다행이군. 사람이 있다는 건 무인도는 아니라는 이야기니까. 저 꼬마가 간 길을 뒤쫓아가면 마을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좋아, 어서 뒤따라 가보자.”
그레이센의 말대로 소녀가 도망친 흔적을 쫓아가다 보니 진짜 마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
그런데…….
“왜 또 이렇게 진행되는 거냐고.”
“…….”
로자리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창을 들고 흉흉한 살기를 피워내는 이들이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 너머에는 아까 숲에서 보았던 소녀의 모습도 있었다. 팔과 다리가 주황색 털로 덮여 있는 이들은 바로 호아족의 청년들이었다.
그 중 하나가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비겁한 놈들. 역시 우리를 속일 셈이었구나.”
“속여?”
갑자기 뜬금없이 속이다니?
“닥쳐라! 우리가 네 녀석들의 속셈을 모르고 있을 줄 알았느냐?”
“어서 소류를 불러들여. 녀석들이 마을에 나타났다고.”
뭔가 사정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로자리아는 최대한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기, 잠시만요.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일단 제 얘기를 좀…….”
“오해는 무슨 오해.”
“네놈들과 할 이야기 따위가 있을까보냐!”
상대는 막무가내다. 게다가 계속 말을 끊어대니 이쪽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살벌한 분위기.
그때 이터가 나섰다.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했다. 단지 이 섬의 숲에 떨어져 길을 잃은 것뿐이다.”
청년들이 코웃음을 쳤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의 숲에 떨어졌다고? 그걸 우리보고 믿으란 말이냐?”
“하지만 사실이다.”
“웃기…….”
소리치려던 자가 입을 다물었다. 소년의 시선이 닿자 숨이 탁 막힐 것 같은 위압감이 몸을 짓누른다. 당장에라도 창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 소년에게서 이런 두려움을 느끼게 되다니!
“너희가 믿든 말든 상관없다. 하지만 내 동료들을 계속 위협한다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
“우… 으…….”
청년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서기 시작했다. 겹겹이 에워싼 포위망은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때 문득 이터가 미간을 좁혔다.
“뭔가 온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난데없이 태양이 사라지자 로자리아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뭔가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뭐지? 구름인가?”
그러나 그것은 구름 같은 것이 아니었다. 하늘을 가르는 거대한 와이번. 호아족의 전사, 소류가 애용하는 디파였다. 마을에서의 신호를 보고 해변에서 급히 와이번을 끌고 나타난 것이다.
와이번의 등에서 뛰어내린 소류가 펜릴을 쥐고 마을에 내려섰다.
어른들 틈에 불안한 얼굴로 숨어 있던 티나가 소류를 보고 환해졌다.
“오빠!”
“네 녀석이 놈들의 전사인가?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느낌이 다르긴 하군.”
소류는 거칠 것 없는 위압감을 뿜어내는 이터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터가 물었다.
“너는?”
“나는 호아족의 전사, 소류. 비겁하게 마을 사람들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밖으로 나와라. 네놈이 원하는 대로 승부해 줄 테니.”
로자리아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
“도대체 몇 번을 이야기해야 알아듣는 거야? 우리는 그저…….”
우우웅.
로자리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터의 왼손이 하얗게 빛난다. 거기에 반응해 소류의 마창이 희미한 금빛으로 물들었다. 다른 일행도, 소류도 놀란 얼굴이었다.
‘펜릴과 공명하고 있다?’
이터는 느낄 수 있었다. 이유는 몰라도 몸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소류가 들고 있는 펜릴은 바로…….
“이데아로크의 조각.”
“뭐라고?”
조각이라는 말에 바로 반응하는 로자리아와 그레이센. 소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확실히 네놈은 놈들이 보낸 것이 맞는군.”
“그런 게 아니라니까. 애초에 ‘그놈들’이라는 녀석들이 누군지도 우리는 모른다니까……!”
“됐어, 로자리아.”
뭐라고 더 말을 하려는 로자리아를 이터가 제지했다.
“어차피 우리가 뭐라고 해도 들리지 않는다. 말로 해서 먹히지 않는다면 일단 때려눕힌 다음에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터의 입가에 작은 미소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강한 녀석이랑 싸우는 건 재미있잖아.”
“이터.”
저렇게 살기를 피우는 상대 앞에서 재미를 따지다니.
하지만 이터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자신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터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이터는 웃으며 말했다.
“좋아, 싸우자. 대신 내가 이기면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넌 못 이길 테니까.”
호아족의 사람들과 이터 일행 그리고 소류는 마을을 나서 해변으로 향했다.
넓은 모래사장 한가운데서 소류와 이터가 마주섰다. 소류가 마창을 옆으로 누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거냐. 1대 1? 그렇지 않으면 몽땅 덤빌 거냐? 난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어.”
“승부라면 당연히 1대 1이다.”
“훗.”
소류는 차갑게 웃었다.
“나중에 졌다고 후회나 하지 마라.”
그리고 둘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이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와라.”
“사양하지 않도록 하지.”
타앗!
차가운 웃음을 흘린 소류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며 나아갔다. 모래사장 위라고는 믿을 수 없는 움직임으로 거리를 좁힌 그는 가로로 길게 베었다.
이터는 허리를 숙여 창날을 피했다. 그리고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가며 소류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
피잇.
이터의 주먹이 소류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소류. 겉으로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속으로는 적잖이 놀랐다.
‘빨라.’
“뭘 그리 멍하게 있는 거냐. 덤벼라.”
“흥.”
소류와 이터의 신형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리고 허공에서 터져나가는 불똥. 펜릴의 블레이드와 이터의 주먹이 부딪히면서 일어난 것이다.
‘맨손으로 마창의 블레이드를?’
평범한 인간의 손이라면 이미 찢어지거나 박살이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새하얀 빛에 둘러싸인 이터의 주먹은 펜릴의 블레이드와 부딪히면서도 전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잘 세공된 명검과 부딪히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