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42
마염의 황제 042화
“뭐?”
알 제라드와 싸워야 한다는 말에 놀란 게 아니다. 조각이 뭐 어쨌다고?
로자리아는 황급히 물었다.
“알 제라드가 나머지 조각들을 가지고 있다니? 진짜야? 어떻게 그걸 알아낸 거야?”
“모른다. 하지만 난 알 수 있다. 조각은 놈들이 가지고 있다.”
저 바다 너머를 바라보는 이터의 왼손에 살짝 빛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로자리아는 고민했다.
‘다른 녀석이 하는 이야기라면 웬 헛소리냐고 무시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이터의 말은 무시할 수 없다. 지금껏 그의 말이 단 한 번이라도 빗나간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저번엔 아예 조각 중 하나인 마창, 펜릴과 공명까지 일으켰었다.
‘뭔진 몰라도 이터에겐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찾아낼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는 건지도 몰라.’
처음부터 알 제라드가 다른 조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들이 다른 조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 그들이 가지고 있다면 맞부딪힐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고민했던 문제였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가지고 있을 경우의 답은 그때도 같았다.
‘무력으로라도 빼앗아야겠지.’
길게 한숨을 내쉬는 로자리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차피 마주칠 녀석들이라면 고민할 것 없이 후딱 처리해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그레이센은 골치 아픈 얼굴이었다. 가즈 블레이드와 펜릴까지 갖게 된 이 녀석들이 알 제라드를 치러 간다는 건 자신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알 제라드는 골치 아픈 녀석들인데… 귀찮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턱.
이터는 들고 있던 마창을 소류에게 던져주었다. 창을 받아 든 소류에게 이터가 말했다.
“당분간은 네게 그 창을 맡겨두지.”
“엑!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터!”
“너.”
황망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소류에게 이터는 웃으며 말했다.
“공짜가 아니다. 창을 맡겨두는 대신에 우리를 돕는 거다. 함께 알 제라드와 싸우자.”
소류는 알 것 같았다. 이터가 함께 싸우자는 것은 결코 그가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자신들 호아족 때문이었다. 이터가 떠난다고 해도 알 제라드는 보복성으로 쳐들어올 위험이 컸다. 펜릴이 없는 자신이 얼마나 그들의 공세를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터와 그가 함께 알 제라드를 부수러 떠난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자신들을 막기 위해서도 부대의 운용을 함부로 할 수 없다. 혼자서도 대군의 골렘 군단을 박살낼 수 있는 두 사람이다. 그런 둘을 막는 것만으로 벅찬데 다른 곳에 돌릴 여력이 있을 리 없다.
만약 마을 사람들을 인질로 잡는 작전을 펼친다고 해도 디파가 있는 한 피해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둘 중 어느 쪽도 알 제라드가 원하는 그림은 아니다.
펜릴을 받아 든 이터는 묵묵히 돌아서며 말했다.
“호의에 감사하도록 하지.”
그리고 소류는 이터 일행과 함께 여행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
‘알 제라드의 본거지인가?’
본거지를 치자는 게 말이 쉽지, 그곳의 위치는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암호로 전달되고 있을 정도로 철저히 숨겨진 곳이다. 이데아로크의 조각처럼 아예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나서는 것보다 편했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엇비슷하게 다가가고 있는 건가?’
최근 들르는 마을마다 마물이 습격해 오는 일이 잦았다.
흑마법사들은 자신들이 만든 마물들을 마을 부근에 풀어 시험한다. 알 제라드, 혹은 적어도 덩치가 큰 흑마법사가 이 일대 부근에 있을 것이다. 알 제라드의 본거지가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흑마법사를 잡으면 실마리는 찾을 수 있다.
‘저쪽도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진 않겠지.’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 제라드의 목적도 이데아로크의 조각이니까. 머지않아 일행과 알 제라드 사이에 격전이 벌어질 것이다.
로자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지금은 걱정해도 어쩔 수 없나?’
로자리아가 주위를 환기시키며 말했다.
“자, 이제 움직이자. 이터, 너도 뼈 그만 핥아먹고 일어나. 일단 방부터 구하고 쉬자고. 더 늦으면 방 구하기도 어려워.”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어.”
샤방.
금빛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뒤로 넘기며 그레이센이 입을 열었다. 곁에는 금화가 두둑한 주머니를 든 론이 서 있었다.
“원하는 곳 아무 곳에나 가서 쉬어. 이 마을은 이미 내가 사뒀으니까.”
“…….”
하루 쉴 마을을 사버리다니. 역시 이 왕자도 제정신이 아닌 게 틀림없다.
아무튼 일행은 마음에 드는 아무 여관에 들어가서 방을 잡고 휴식을 취했다.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를 꿀꺽한 이터는 침대에 누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잠들어 버렸다.
“여유만만하네. 남은 언제 적이 쳐들어올까 신경이 날카로운데.”
로자리아는 잠든 이터를 살짝 흘겨보며 말했다. 스스로 자처했다고는 하지만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긴장은 자기 혼자만 하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이터가 얄밉게 느껴지는 로자리아였다.
‘이게 이터 씨가 잠든 모습.’
그와 반대로 엘리스는 이터의 누운 모습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조심스럽게 살짝 이터의 뺨에 손가락을 대어본 그녀는 자신의 붉어진 뺨에 손을 대고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귀여워……!”
“…….”
로자리아는 식은땀을 흘렸다. 저 엘프는 저 엘프 나름대로 위험하다.
둘에게서 시선을 뗀 로자리아는 방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소류는 어디 갔지?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데.”
“녀석이라면 바깥으로 나갔어.”
“혼자 말이야?”
테이블에 앉아 론이 따라주는 고급 와인을 마시던 그레이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하러 간다던데.”
***
마을에서 꽤 떨어진 숲.
커다란 나무 하나가 요란한 소음을 토해 내며 넘어갔다.
예리하게 베인 절단면 너머에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밴 소류가 서 있었다. 주위에는 이런 식으로 넘어간 수십 그루의 나무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소류는 마창, 펜릴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며 외쳤다.
“펜릴 기동(起動)!”
콰아아아!
3단의 블레이드가 활짝 펼쳐지며 황금의 투기를 토해 낸다. 마창을 젖힌 소류는 단번에 바닥을 박차며 힘차게 창을 내리쳤다.
“타아앗!”
격렬한 충격파가 숲을 휩쓴다. 소류가 그린 궤적을 따라 숲에 거대한 창흔이 남았다.
원래대로 돌아온 마창을 바닥에 박아넣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녀석이 보여준 건 이런 게 아니었어!”
소류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앞에 계속 이터의 모습이 떠오른다. 전율적인 힘으로 마장기를 박살내 버리던 그 모습이.
‘부족해.’
부족하다. 지금 이 정도로는 이터를 넘어설 수 없다.
‘넘어선다. 반드시 넘어서고야 만다.’
자신은 호아족의 전사. 마창, 펜릴의 주인이다. 뛰어넘고야 말겠다. 소류는 다시 창을 휘둘렀다. 몇 그루의 나무가 다시 무너져 내렸다.
“멋진 창술이야. 제법 쓸 만하군. 그런데 힘이 너무 들어갔어. 다리와 허리도 너무 굳었네. 동작은 가볍게. 힘을 주는 건 베는 순간에만 강렬한 것이 좋다고.”
“웬 놈이냐!”
난데없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소류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거기엔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를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근육이 드러나 보이는 타이트한 셔츠와 검은 조끼 차림의 사내다.
소류는 식은땀을 흘렸다. 바로 등 뒤에서 나타났는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대체 언제부터 여기에 와 있었던 거지?’
“내 이름은 바르엘.”
자신을 향해 마창을 겨누는 소류를 보며 바르엘은 손가락을 겨누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쪽은 소류지? 호아족의 전사이자 마창 펜릴의 주인.”
“……!”
‘나를 알아?’
적인가? 소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바르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무서운 표정 짓지 마. 너한테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까. 대신 물어볼 게 있는데, 이터라는 놈을 알고 있나? 이 근처에 있다고 들어서 말이야.”
이터를 찾고 있는 묘한 위화감의 실력자.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소류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 녀석, 알 제라드의 녀석이냐?”
“흐음… 글쎄.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해둘까? 그보다, 이터는 어디 있지?”
소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당장에라도 베어버릴 수 있도록 자세를 바꾸었다.
바르엘의 입가가 묘하게 틀어졌다.
“호오… 대답을 듣고 싶다면 실력으로 해보라는 건가? 싸워서까지 지키려는 것을 보니 꽤 친분이 있는 녀석인가 보군.”
“웃기지 마. 그런 놈과 친분 따위 있을 것 같으냐!”
마창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놈과의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녀석을 넘어서기 전에 다른 녀석에게 지게 놔둘 수 없을 뿐이다.”
“후, 그래?”
바르엘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소류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흘렀다.
“그렇다면 내가 네 녀석을 쓰러뜨리면 되겠네?”
***
“……!”
“꺄악!”
잠들어 있던 이터가 눈을 번쩍 떴다. 막 이터의 입에 뽀뽀를 하려던 엘리스가 깜짝 놀라 입술을 집어넣었다.
“이, 이터 씨… 죄송해요. 볼만 살짝 만져본다는 것이 너무 귀여워 보여서 그만.”
굳은 표정의 이터를 보고 엘리스는 울상이 되었다. 이터가 자신을 이상한 여자로 보면 어쩌지?
그러나 이터의 얼굴이 굳어진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로자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뭔가 불길한 것이 온다.”
“불길한 것?”
쿠웅!
일행이 그 말의 의미를 찾기도 전에 강렬한 진동이 건물을 뒤흔들었다.
방 안에서 팩을 즐기던 그레이센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지진인가?”
일행은 황급히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지진은 아니었다. 커다란 폭음과 함께 마을 한복판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뭐지? 저 불꽃은!”
콰아앙!
강렬한 충격음과 함께 건물 하나가 통째로 박살나 버린다. 박살나는 건물 사이로 누군가가 튕겨나와 바닥을 굴렀다. 그건 일행이 익히 알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었다.
“소, 소류?”
기절한 소류의 몸은 어디 하나 멀쩡한 곳이 없었다. 전신에 검상을 입은 소류는 피투성이였다.
로자리아는 재빨리 소류의 몸을 살폈다. 다행히 끊어질 정도로 미약했지만 호흡은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이봐, 이봐. 벌써 뻗은 거야? 난 아직 몸도 풀리지 않았어.”
“……!”
일행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무너진 건물 너머로 한 사내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알 제라드의 생체 병기, 바르엘이다. 이터 일행은 직감적으로 소류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르엘은 기절한 소류를 보며 코웃음 쳤다.
“기절해 버렸나? 허약하긴. 뭐, 하네스가 원한 것엔 네 목숨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바르엘은 씨익 웃으며 주먹을 치켜 들었다. 그리곤 쓰러져 있는 소류를 향해 바닥을 박차고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