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45
마염의 황제 045화
“이 일격으로 끝장내 주마. 바로 이 진폭마검(眞爆魔劍)으로 말이야.”
“크으…….”
생체 실험으로 만들어진 몸이다. 어지간한 것에는 충격도 받지 않을 뿐더러 충격을 받는다 해도 금세 회복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치유력이 듣질 않았다. 회복되는 속도보다 입은 데미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터가 검을 치켜 들며 미소를 지었다.
“뒈져버려라.”
그리고 이터가 검을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다.
“큭?”
막 진폭마검을 시전하려던 이터가 주춤했다. 팔과 다리가 떨렸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터는 붉은 눈을 부릅뜨며 이를 악물었다.
“이 자식,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건 다른 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이터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면의 이터가 대꾸했다.
[너한테서 위험한 느낌이 난다. 널 이대로 내버려둘 순 없다.]“무슨 병신 같은 소리야, 이런 상황에서! 저놈한테 죽고 싶으냐?”
혼자 멈춰서서 이를 악물고 소리치는 이터의 모습에 일행은 불안함을 느꼈다.
“이터가 어딘가 이상한 것 같지 않아?”
“갑자기 쩔쩔매는 것 같은데?”
이터가 소리쳤다.
“누군 나서고 싶어서 나서는 줄 아는 거냐? 네가 한심하게 당하고 있으니까 내가 나서는 거잖아. 알아들었으면 까불지 말고 물러나 있어.”
이터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은 바르엘도 눈치 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찬스인 것 같군.”
바르엘은 이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터는 입술을 깨물었다.
“까불지 마!”
퍼억!
이터의 주먹이 바르엘의 안면을 후려갈겼다. 바르엘의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하지만 튕겨나진 않았다. 바르엘은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텼다.
“크윽.”
바르엘이 잘 버틴 것이 아니다. 주먹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터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이 빌어먹을 자식!’
“죽어라!”
그리고 빈틈이 드러난 이터의 가슴에 바르엘의 오라 블레이드가 작렬했다.
콰아앙!
“이터!”
실 끊어진 인형처럼 하늘로 튀어오른 이터가 바닥에 처박혔다. 쓰러진 이터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바르엘은 쓰러진 이터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아직 녀석의 호흡이 살아 있었다.
‘어떻게 된 녀석이냐. 오라 블레이드를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죽지 않아?’
“그럼 지금이라도 끝장을 내주도록 하지.”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바르엘은 검을 들었다.
“놀랐다. 덕분에 오랜만에 전율이란 감정을 기억해 냈군. 감사의 의미로 고통 없이 단방에 끝장을 내주마.”
바르엘의 검이 움직였다.
“……?”
순간 싸늘한 살기가 그의 몸을 옭아맨다. 바르엘은 재빨리 이터널 소드를 휘둘렀다. 그를 노리고 날아든 보이지 않는 열두 개의 검날이 바닥을 뒹굴었다. 로자리아의 트웰브 섀도 소드다.
검날을 막아내기가 무섭게 성령의 빛으로 충만한 그레이센이 다가와 주먹을 휘둘렀다.
물러나는 바르엘을 엘리스의 빛의 화살이 노렸다.
“흥.”
검으로 빛의 화살을 끊어버린 바르엘이 바닥에 내려섰다. 어느새 쓰러진 이터의 주위로 그의 동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시끄러운 파리 떼들이 몰려왔군. 동료를 지키겠다는 건가? 좋아. 정 죽고 싶다면 상대해 주지.”
그레이센이 쓰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이쪽은 상대할 생각 없어. 론!”
“흐름에서 벗어난 차원의 길이여, 지금 여기에 열려라. 워프(Warp)!”
휘잉.
론의 외침과 함께 연보랏빛의 마법진이 그들을 감쌌다.
“도망치려는 거냐!”
콰쾅!
그들의 생각을 읽은 바르엘이 급히 검기를 날렸지만 론의 마법이 한 발 빨랐다. 일행의 모습은 사라졌고 검기는 애꿎은 건물만 때려부쉈다.
“쳇. 생쥐 같은 놈들.”
노리던 먹이는 놓쳐버렸다. 그러나 바르엘의 얼굴엔 그다지 낭패한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즐거운 표정으로 히죽였다.
“뭐, 오히려 잘됐어. 이런 재미를 빨리 끝내 버리면 아쉽지.”
놈들은 도망쳤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다. 스스로 마나를 만들어내는 마나동력로. 그것을 몸에 지닌 바르엘은 이 세상 누구보다 마나에 민감하다.
이미 이터의 마나는 기억해 둔 뒤였다.
“그래. 이대로 끝내긴 너무 아쉽잖아. 안 그래, 이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바르엘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떠올랐다.
“조금 더 즐겨보자고.”
Chapter 2-7. 새벽의 결전
마을에서 벗어난 숲 속의 으슥한 동굴.
마을에서 탈출한 이터 일행은 동굴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로자리아가 론에게 물었다.
“어때, 론. 추격은?”
론은 지그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쫓았다. 곧 눈을 뜬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녀석은 아직 그 자리에 있군요. 움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론의 말이 끝나자 일행 사이에서 짧은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에서 탈출하던 순간 론은 워프 주문과는 별도로 다른 주문을 바르엘에게 걸어놓았다. 위치추적 마법, 로케이션(Location)이다.
동굴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그레이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케이션. 원래는 상대를 추적할 때 주로 사용하는 주문이지만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쫓겨 몸을 숨길 때 상대가 쫓아오는지 않는지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주문이기도 하지. 과연 내시다운 발상이다.”
울컥.
론은 그레이센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정말 이 인간은 이런 상황에서까지 이런 농담을.’
진짜 농담인지는 구별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일단 한숨을 돌렸군. 엘리스, 두 사람은 어때?”
엘리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소류 씨의 상태는 나쁘지 않아요. 체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긴 하지만 상처는 다 치료했으니 곧 깨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터 씨의 상태가…….”
“역시 그 인피니티 뭔가 하는 오라 블레이드에 당한 상처 때문인가?”
그레이센의 말에 엘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사실 이터 씨에겐 아무런 외상도 없어요.”
이번엔 로자리아가 놀랐다. 외상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도 분명히 오라 블레이드에 검상을 입어서 출혈이…….”
“맞아요. 그런데 그게 사라졌어요.”
“사라졌다?”
엘리스는 일행을 이끌어 동굴 바닥에 누워 있는 이터에게 데려갔다.
피 묻은 셔츠는 완전히 걸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풀어헤친 가슴에 있어야 할 검상은 없었다.
로자리아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믿을 수 없어. 아무리 놀라운 회복 마법이라고 해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흉터도 없이 회복시키는 것은 무리일 텐데.”
“동굴에 뉘였을 때 이미 이터 씨에게 외상은 없었어요. 지금의 이터 씨는 육체적으로는 완전히 회복한 상태예요.”
그레이센은 안도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다행이군. 그러면 그 소드 마스터가 온다고 해도 이터만 깨우면 상대할 수 있는 거잖아. 마을만 아니면 망설일 일도 없을 테니 이번엔 해볼 만하겠군.”
“그렇지 않아요.”
엘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이터 씨의 몸은 치유되었어요. 하지만 여길 만져보세요.”
“뜨거워.”
이터의 몸을 만져본 로자리아가 흠칫했다. 이터의 몸은 불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뜨거웠다.
‘손이 델 정도의 열이라니.’
“아무리 치유력을 높여주는 주문을 사용해도 이 열만은 내릴 수가 없었어요. 이대로 열이 내려가지 않는다면 외상이 없다고 해도 위험해요.”
“그런…….”
그레이센은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것 참. 기껏 여기까지 힘들게 데려왔더니 쓸모가 없군.”
“그레이센!”
“아, 네. 입 조심하도록 하지요.”
로자리아는 그레이센을 흘겨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얄미운 말만 골라서 하는 남자라니까.’
엘리스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터를 바라보았다.
‘이터 씨.’
“크… 으으!”
그때, 누워 있던 이터가 신음을 토하며 눈을 부릅떴다.
핏빛처럼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 새빨갛게 타올랐다.
“이터 씨?”
“크아아아아!”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진다. 이터가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터, 왜 그래?”
로자리아가 깜짝 놀라 이터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터는 팔을 휘둘러 단숨에 그녀를 떨쳐냈다.
“꺄악!”
이터의 완력을 당하지 못한 로자리아가 튕겨났다. 만약 그레이센이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대로 동굴 벽에 내팽개쳐졌을 것이다.
“어이, 괜찮아?”
“난 괜찮아. 근데 이터가…….”
“크아아!”
파팟!
이터가 순식간에 바닥을 박차며 동굴 밖으로 뛰어나갔다. 눈앞을 거대한 나무가 가로막았다.
콰쾅!
이터는 그것을 향해 짐승의 발처럼 구부린 손을 휘둘렀다. 나무는 두꺼운 줄기가 무색하게 일격도 버티지 못하고 꺾여나갔다.
이터는 무차별로 주위를 때려부수며 숲의 안쪽으로 질주했다.
“이터!”
“성가시게 하는군.”
그레이센은 인상을 찡그리며 재빨리 이터의 뒤를 쫓았다.
“빨리 쫓아와. 녀석이 난동 피우다가 소드 마스터 놈에게 발각당하기 전에. 서둘러!”
“크르르.”
이터는 달렸다. 수많은 나무와 수풀이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이터의 눈이 짙은 붉은 빛을 뿌렸다. 그가 숲에서 포효한다.
“크아아아!”
***
“아직 때가 되진 않았지만 할 수 없잖아.”
새하얀 공간.
그 가운데에 붉은 머리를 한 소년이 지루한 얼굴로 서 있었다.
붉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자신과 마주선 다른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얼굴. 다만 눈빛만 자신과 다를 뿐인 소년.
붉은 눈의 이터가 내면의 자신을 향해 말을 걸었다.
“너에게 맡겨놓는 건 위험해. 성체가 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건만 벌써부터 한계 상황이라니. 차라리 내가 컨트롤하는 게 낫겠다. 넌 물러서서 구경이나 하고 있어.”
내면의 이터가 답했다.
“그건 안 돼. 난 너를 인정하지 않았다.”
훗! 붉은 눈의 이터가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인정이 필요해? 난 네 잃어버린 기억이야. 네가 완전하게 될 수 있는 마지막 열쇠라고. 너도 과거의 기억을 찾고 싶어했잖아. 나와 하나가 되면 알 수 있어. 네가 누군지, 네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지를. 그게 네가 바라던 거 아냐?”
“난 이터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해.”
“착각하지 마. 넌 이터가 아니야. 그 정도는 너도 알고 있잖아?”
내면의 이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붉은 눈의 이터는 차갑게 웃으며 돌아섰다.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어쨌든 지금 이 몸을 쥐고 있는 건 너니까. 하지만 기억해 둬. 기억을 갖지 못한 너는 언제까지고 반쪽짜리로밖에 남을 수 없다는 걸. 그리고…….”
붉은 눈의 이터가 공간 속으로 사라져갔다.
“난 언제든 네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
이번엔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물러나지는 않을 거라는 걸 내면의 이터는 잘 알았다. 그리고 언젠가 그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