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50
마염의 황제 050화
***
하네스는 할말을 잃었다. 곁에서 루시펠이 어깨를 으쓱했다.
“최종 병기가 뻥! 해버렸네.”
“…….”
***
바르엘은 사라졌다. 긴장이 풀린 로자리아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끝났… 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터는 바르엘이 사라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알 제라드의 본거지가 남았다. 지금 녀석들의 본거지를 친다.”
난데없는 그 말에 일행은 깜짝 놀랐다. 녀석들의 본당을 치겠다니? 지금 이런 상태로 말인가. 아니, 그건 둘째 치더라도 아직 놈들의 본당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지도 못했는데?
“이터.”
꼬르륵.
투지를 불태우던 이터의 어깨가 축 처졌다.
“배고파.”
“…….”
일행은 긴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여간 중요한 순간마다 저런다니까.’
“그것보다…….”
아직도 피떡이 된 채로 길가에 쓰러진 그레이센이 입을 열었다.
“역시 녀석들, 우리 따윈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지?”
“아무래도요…….”
그레이센과 론이 발견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
내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분노하라.] [그러면 너는 진짜 힘을 얻을 것이니.] [신들조차 너를 넘보지 못하리라.] [그 힘으로]마음속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진다.
[세상을 멸해라.]Chapter 2-9. 한 명으로 이뤄진 군대
새하얀 구름이 하늘 위에서 흘러간다. 열기로 붉게 물들어 있던 하늘은 어느새 청명한 푸른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하늘 아래에 펼쳐진 폐허. 처참할 정도로 초토화된 마을 어귀에서 엘리스는 조용히 손을 맞잡으며 눈을 감았다.
‘다들 자연의 품에서 편안히 쉬시기를.’
바르엘과의 지옥 같은 싸움에서 몇 시간이 지났다. 무너진 건물 위에 걸터앉은 로자리아가 마을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을씨년스럽네. 그 활기차던 마을이 하룻밤 사이에 이런 꼴이 되어버리다니.”
곁에서 잔해에 등을 기대고 누워 있던 그레이센이 대꾸했다.
“뭐, 사람 일이라는 게 하루 이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거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야.”
“그래도 의외네. 방패막이 다음에는 죽은 마을 사람들을 위한 무덤이라. 너란 남자한테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폐허가 된 마을 안에 자리한, 불에 타거나 조각난 마을 사람들의 시체를 모아 만든 무덤들. 그 무덤들은 그레이센이 만들자고 한 것이다.
그레이센은 짧게 코웃음 쳤다.
“흥. 신경 쓸 것 없어. 별일 아니니까.”
‘그런 폼 잡는 말들은 도와주면서 하라고요!’
태양빛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덤을 만드는 론이 투덜거렸다. 그레이센은 무덤을 만들자고’만’ 했다. 일거리는 전부 그의 몫이었다.
그레이센이 소리쳤다.
“어이, 론. 저쪽에 시체 두 구가 비었다.”
‘정말, 부려먹기만 하고!’
진짜 이놈의 내시 짓… 아니, 신관 짓을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론은 투덜거리며 삽질을 계속했다.
“무덤인가?”
로자리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짓밟혔다. 멀쩡한 마을도 다음 날에는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알 제라드는 그런 녀석들이었다.
“그러니까 사라져야 된다. 알 제라드는.”
일행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이터가 곁에 다가와 있었다.
“이터, 밥 다 먹은 거야?”
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즈 블레이드는 가드를 덜컥거리며 말했다.
“너도 참 대단한 인간이야. 이런 시체들 틈 속에서도 먹을 게 넘어간다니. 어우, 비위 상해.”
“내 힘은 체력을 많이 소모한다. 기운을 차리려면 어쩔 수 없다.”
이터의 답변에 로자리아는 눈을 깜빡였다. 그간 함께 다닌 로자리아도 이터에게 이런 말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하긴, 이터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저런 조그만 몸으로 그런 힘을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겠지. 녀석의 폭식은 그런 이유였던 건가?’
가만히 폐허를 바라보는 이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조각만 빼앗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소류의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놈들을 혼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녀석들이 이 이상 나쁜 짓을 꾸미기 전에 놈들을 없애버려야만 한다.”
그레이센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기분은 알겠지만 우리에겐 녀석들의 본거지를 찾아낼 단서가 아직 없잖아. 지금 당장 쳐들어가는 건 무리라고.”
“아니.”
이터는 고개를 저었다.
“녀석들의 본거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뭐?”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터는 설명했다.
“녀석이 죽는 순간 기억을 봤다. 거기에 본거지에 대한 것도 있었다.”
죽는 순간 기억을 봤다?
‘설마 바르엘을 이야기하는 건가?’
로자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남의 기억을 읽는 마법은 절대 쉬운 스킬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대상이 일정 경지를 뛰어넘은 실력자라면 더했다. 최후에 바르엘의 체력이 최하까지 떨어졌다고 가정해도 그 짧은 시간에 녀석의 기억을 들춰보다니.
‘하긴, 이제 놀랄 일도 아닌가?’
이터에게 놀란 것이 어디 한두 가지였던가. 정말 이터의 능력에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이제는 참을 수 없다. 이 시간부로 녀석들을 파괴한다.”
이터는 일행을 돌아보며 웃었다.
“그러니까 갔다 올게.”
“호, 혼자 가겠다는 거야?”
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자리아도, 다른 사람들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움직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내가 간다.”
“그렇지만 알 제라드의 본거지라고. 녀석들의 남은 병력이 집결되어 있는 건 당연지사고 어떤 함정이 기다릴지도 모르는데, 혼자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터 혼자 가야 하는 거다.”
차가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거대한 마창을 쥔 소류가 다가와 있었다. 조금 초췌해진 모습이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로자리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이터 혼자 가야 한다니? 이터 혼자 알 제라드와 싸우게 내버려두라는 말이야?”
“그럼 한 가지만 묻지. 로자리아, 지금의 네가 이터를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곡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질문에 로자리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건…….”
축적해 둔 마나는 이미 다 써버렸다. 마력의 타리스만 덕에 회복은 되었지만 지금 그녀의 상태로는 3서클의 마법사도 제대로 상대하기 힘들었다.
“네 말대로 알 제라드의 본거지에는 강력한 병력이 포진되어 있다. 그런데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지금의 우리가 가서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우리가 가면 도움은커녕 이터에게 방해밖에 되지 않아. 그렇지 않나, 이터?”
“응.”
이터는 솔직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엘이라는 놈, 강했다. 녀석들의 본거지로 가면 그런 녀석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녀석들 틈에서 모두를 보호하면서 싸우는 것은 자신 없다.”
“이터.”
마창을 쥔 소류의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분하지만 여기는 이터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얌전히 마을에 앉아 있는 것뿐이야.”
소류의 말은 사실이었다. 마스터마저 초월한 바르엘조차 상대가 안 된 이터의 싸움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로자리아는 이터의 머리에 딱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튕겼다.
“잘난 척하지 마, 꼬맹아. 아직 우리 약속했던 건 끝나지 않았으니까. 날 지켜준다고 그랬지? 돌아오지 않으면 가만 안 놔둘 거야.”
이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이터 씨, 이거.”
엘리스가 이터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정성스럽게 싸여진 그것은 도시락이었다. 엘리스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손가락을 배배 꼬았다.
“이터 씨를 생각하면서 만든 도시락이에요. 시간이 없어 변변찮은 것들뿐이지만.”
“고맙다, 엘리스. 잘 먹을게.”
미소를 짓는 이터를 보며 다시 러브러브 모드에 빠지는 엘리스. 활활 타오르는 엘리스를 보며 로자리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쳇, 약삭빠른 엘프 녀석. 이터가 먹을 거에 약한 건 금방 파악했군.’
“갔다 오라고, 꼬마. 네가 없으면 이야기 진행이 안 되니까.”
그레이센이 이터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커다란 금화였다. 그레이센은 고상하게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내가 가진 건 돈뿐이라서 말이지. 그렇게 보여도 행운의 금화다. 살아서 돌아와.”
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다들 쉬고 있어라.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잠깐, 이터.”
이터를 불러 세운 소류가 마창을 건넸다. 기간틱 블레이드만큼이나 거대한 블레이드를 가진 마창, 펜릴.
“이데아로크의 다섯 조각 중에서도 ‘힘’에 해당하는 마창이다. 도움이 될 거다. 나로서는 그 능력을 다 끌어낼 수 없었지만 너라면 가능하겠지.”
창 너머로 소류의 마음은 확실히 전달되었다. 이터는 웃으며 답했다.
“잘 쓰겠다.”
금화도, 도시락도, 마창도 모두 챙겼다. 이터는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간다.”
휘이잉…….
그 말과 함께 왼손에서 일어난 빛이 이터를 집어삼켰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이미 이터는 없었다.
로자리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꼭 옆집 놀러 가는 것 같은 모습이군. 정말 신기한 녀석이란 말이야.”
끝 모를 강함뿐만이 아니다. 어떤 엄청난 일이 벌어져도 이터와 함께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기분이 든다. 이터라면 반드시 해낼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로자리아는 허공에다 대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힘내, 이터! 이데아로크의 남은 조각 모두 가지고 돌아와야 해!”
이터는 떠났다. 엘리스는 조용히 기도했다.
‘대지모신님, 이터 씨를 지켜주세요.’
***
“하암! 교대는 아직 멀었나?”
알 제라드의 사원의 통로.
경계근무 중인 흑마법사가 길게 하품을 했다. 오늘도 초과근무다. 그렇잖아도 사원의 내부를 지키는 병력이 적어 힘든 근무인데 얼마 전, 슈페른이라는 웬 망나니가 한번 난동을 피우고 간 뒤로는 그나마도 모두 몸져누워서 3교대로 뛰게 되었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다. 눈은 감기고 몸은 무겁다. 교대자 녀석이 빨리 나타나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응?”
지직.
조용하던 통로의 허공이 갑자기 갈라지며 이상한 빛을 뿜었다. 그와 함께 요란한 폭발이 통로를 휩쓴다.
“뭐, 뭐야.”
걷혀가는 먼지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붉은 머리의 어린 꼬맹이였다.
흑마법사는 난데없는 소년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아니, 이 꼬마 녀석이 어떻게 들어온 거지?’
“누구냐, 너는!”
흑마법사는 소년을 경계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붉은 머리의 소년은 대꾸 없이 주위만 둘러보고 있었다.
흑마법사는 손에 검은 불길을 맺었다.
“네 녀석,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온 것이냐. 여기는 흑마법사 연합, 알 제라드의 본당. 이곳을 본 이상, 어린아이라도 살아 돌아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