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52
마염의 황제 052화
바닥에 내려서는 이터를 골렘 하나가 몸을 날려 덮쳤다. 이터는 자신을 덮치는 골렘의 몸체를 팔을 뻗어 받쳤다. 이터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지금이다. 몽땅 덮쳐라!”
다급한 흑마법사들의 외침과 함께 남아 있는 골렘들이 이터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나, 둘, 셋, 다섯, 열, 열셋. 천지를 흔드는 진동과 함께 통로 안에 골렘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산이 생겨났다. 맨 아래에 깔린 이터는 보이지도 않았다.
흑마법사들은 긴장한 눈으로 침을 삼켰다.
‘끝났나?’
13기나 되는 골렘의 무게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다. 저런 것에 깔렸으니 멀쩡할 리가…….
쿠구구구!
막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터를 깔아뭉갠 골렘들의 몸체가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거대한 골렘의 산이 조금씩 위로 움직인다.
“으그그그그.”
골렘의 산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터. 이터가 골렘들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들어올릴 수 있단 말인가. 저 엄청난 무게를?”
흑마법사들이 그렇게 경악할 때 이터의 몸이 휘청거렸다.
“큭.”
골렘을 들어올리던 이터의 팔이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일어서던 이터의 몸이 다시 무너졌다. 흑마법사들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힘이 다한 건가?’
그럼 그렇지. 골렘 13기가 애들 장난인가? 들고 싶으면 마음대로 집어 들게? 괴물 같은 꼬맹이였지만 이걸로 끝난 거다!
회심의 표정을 짓는 흑마법사들. 그때 돌연 이터가 씩 웃었다.
“뻥이야.”
쿠오오.
이터가 골렘 13기를 하늘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흑마법사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우어어어.”
“이, 이쪽에 떨어진다!”
“우으악!”
쿠웅!
바닥에 떨어진 13기의 골렘들이 통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거대한 골렘의 몸에 깔린 흑마법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일어나는 바닥에서 마창을 뽑아낸 이터는 처참하게 박살난 통로를 휘적휘적 지나갔다. 하네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됐어. 애초에 골렘은 믿지도 않았다.”
아만다티움의 골렘이 처참하게 당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었던가. 지금의 이터에게 그런 잔수가 통할 리 없었다.
통로를 지나고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자 거대한 철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중앙사당으로 향하는 철문. 흑마법사1이 말한 대로였다. 그 앞을 갑주를 걸친 네 명의 전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이 이상은 지나갈 수 없다.”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네 사람. 그들의 냄새가 낯익다. 바르엘과 같은 냄새. 마나동력로를 가진 생체 병기들이다.
이터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는 인간이 아니군.”
네 명의 전사는 대꾸 없이 자신들의 팔을 변형시켜 검으로 만들었다. 몸 안의 마나동력로가 뜨거운 마나의 열기를 뿜었다. 붉은 핏빛의 블레이드. 무한의 마나로 만들어지는 인피니티 오라 블레이드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넷.
그러나 이터는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비켜라. 너희를 상대하고 있을 여유 없다.”
네 전사들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들은 조제된 생체 병기들 중에서도 성공해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개체였다. 그런데 얕보는 말 따위를 하다니.
“그런 건방진 소리는 우리를 쓰러뜨리고 난 다음에 하시지!”
바닥을 박찬 4인의 개량 생체 병기들이 네 방향에서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들어왔다.
이터는 손에 쥔 펜릴을 회전시켜 그들의 검격을 막았다.
카아아아아!
네 개의 인피니티 오라 블레이드가 펜릴의 블레이드와 부딪히며 요란한 불똥을 터뜨렸다. 투기와 투기가 부딪혀 사방에 열기를 뿌렸다.
네 명의 검을 동시에 받아낸 이터가 감상을 밝혔다.
“역시 너희는 바르엘보다 약하다.”
그리고 이터는 신형을 전개했다.
“윽?”
투화아악!
가장 선두에 나서 있던 수염이 덥수룩한 전사의 몸이 찢겨나간다. 어느새 날아든 펜릴의 블레이드가 그의 몸을 반으로 찢어버린 것이다. 그는 상황을 채 인지하기도 전에 시체가 되어 바닥을 굴렀다.
이터는 셋으로 줄어버린 전사들을 응시하며 말했다.
“다음.”
“이, 이놈!”
“죽어라!”
남은 세 명의 전사들이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터에게는 닿지 않았다.
몸을 숙여 가로로 길게 베는 검을 피한 이터는 타이탄 브레이커를 소환해 금발 전사의 가슴을 강타했다.
퍼어억!
완전히 으깨어진 가슴. 이터의 주먹에 맞은 전사의 몸이 박살나 흩어져 바닥을 구른다.
“아니!”
벌써 두 명의 동료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주춤하는 젊은 검사의 팔과 다리로 예리한 은빛 섬광이 날아들었다. 문 크레센트를 이용한 월영참. 팔과 다리가 끊어진 젊은 검사는 제대로 된 힘도 써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으, 으아악! 이 빌어먹을 자식이!”
홀로 남은 마지막 전사가 괴성을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무서운 소리와 함께 대기를 가르는 오라 블레이드는 스치기만 해도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은 박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터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피했다.
이터의 얼굴에 불쾌감이 떠올랐다.
“다른 놈들도 싫지만 네 녀석들은 특히 싫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고 동료들까지 상처 입힌 바르엘. 이미 소멸해 버렸음에도 그에 대한 분노가 남은 이터였다.
“모두 박살내 버리겠다.”
카아앙!
마지막 남은 전사의 검이 부러져서 하늘을 날았다. 그의 검을 끊어버린 대검, 기간틱 블레이드. 검에 맺힌 새하얀 오라가 눈부신 광채를 내뿜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검은 전사의 몸을 절반으로 쪼개버렸다.
이터의 외침이 주위를 울렸다.
“알 제라드!”
네 명의 생체 병기들이 순식간에 박살나 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하네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역시 미완성품들로는 무린가.”
조제에 성공했다고는 하나 바르엘 정도의 완성품은 없었다. 완성형이었던 바르엘의 인피니티 오라 블레이드조차 꺾어버리는 이터를 미완의 힘으로 막아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다고 바르엘처럼 마나동력로를 이용한 폭탄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사원과 함께 자신들까지 몽땅 날아가 버린다.
‘상황이 좋지 않군.’
골렘도 마장기도 통하지 않는 이터다. 전열도 제대로 가다듬지 못한 지금 상태에서 막아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직 골렘과 마장기가 남아 있었지만 이터를 막지는 못하리라.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마법진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나.’
외부에서 강대한 적의 군단이 쳐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중앙사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총 4단계로 이루어진 방어용 대마법진이 존재하고 있었다. 중앙사당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 마법진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디 언젠가 부딪히게 될 신성제국의 대군단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든 함정인데, 설마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이야.
‘마법진들을 구축하고 있는 법칙은 골렘들과 함께 던전에서 얻은 지식에 기초하고 있다.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고 해도 이번만은 쉽게 통과할 수 없을걸.’
네 명의 생체 병기를 쓰러뜨린 이터는 거대한 철문을 열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어둠.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칠흑 같은 어둠이 이터를 맞이했다. 이터는 앞으로 나아가보았다. 하지만 한참을 걸었음에도 길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어둠이 방향 감각을 빼앗는다. 이미 입구가 어느 방향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터는 길을 잃고 말았다.
“4단계의 마법진 중 1단계, 어둠의 방이다. 그야말로 한 줌의 빛도 존재하지 않는 칠흑의 어둠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지.”
아무리 나아가도 어둠 속에 가려진 길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 방향을 잃고 영원히 어둠 속에서 헤매게 만드는 마법진. 그것이 바로 어둠의 방인 것이다.
강력한 적이 나타난다면 차라리 편하다. 쓰러뜨려 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들 길이 보이지 않는 방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
하네스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 평생 동안 어둠의 공간 속에서 헤매는 거다.”
“흐음.”
잠시 주변의 어둠을 바라보던 이터가 왼손을 들었다. 그와 함께 왼손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온다. 짙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작은 빛. 하네스는 코웃음 쳤다.
“소용없다. 그런 작은 빛 하나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어둠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이터의 생각은 달랐다.
“어둠을 걷어내는 데 작은 빛 하나면 충분하다.”
휘이이…….
어둠 속에 반짝이는 작은 빛. 조그맣게 시작된 빛이 점점 환하게 차올랐다. 타오르는 빛은 어느새 한줄기의 강렬한 섬광이 되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어둠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공간 전체를 뒤덮는 이터의 빛이 어둠을 지워버렸다. 거짓된 길은 사라지고 거대한 공동으로 이루어진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너머에는 입구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철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터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슨 터무니없는!”
하네스는 기가 막혔다. 공간을 메운 어둠을 어둠보다 더 강한 빛을 뿜어내 갈아치워 버렸다. 이 무슨 무식한 방법이란 말인가. 1단계의 마법진을 이런 식으로 깨부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네스는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일이 전부 잘 풀릴 거라 생각진 마라.”
그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거대한 바다였다. 입구 앞에 딛고 설 수 있는 작은 바닥을 제외하고는 육지 하나 존재하지 않는 망망대해. 그것이 이터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네스는 웃었다.
“어떠냐, 이 대해를 넘어올 수 있겠느냐?”
배도 없고, 딛고 지나갈 길도 없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으르렁거리는 폭풍은 플라이 주문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바다를 건널 길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이터는 기간틱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검을 꺼냈다? 무슨 생각이지?”
하네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핫. 설마 저 검으로 바다를 갈라 버린다거나 하는 터무니없는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 터무니없는 짓을 하려고 하고 있는 거 맞았다.
“지워라, 불. 부러져라, 천풍.”
쿠아아아!
용솟음치는 불의 돌풍이 블레이드를 타고 휘몰아쳤다. 타오르는 검을 치켜 든 이터는 그대로 뛰어올라 바다를 일자로 내리쳤다.
“폭마검(爆魔劍)!”
콰아아아!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강렬한 투기가 수면에 작렬했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이터의 참격에 맞아 반으로 쩍 벌어졌다.
“컥! 뭐, 뭐라고?”
하네스는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멀쩡한 바다를 갈라버리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현실이다. 바다는 홍해바다 갈라지듯 일자로 길게 찢어졌다. 하네스는 애써 침착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 그래봤자다! 용케도 바다를 갈랐다만 바다는 금속 같은 게 아니다. 다시 합쳐진다. 힘으로 바다를 제압하려면 바닷물을 몽땅 날려버리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한 일일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