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53
마염의 황제 053화
그러나 하네스의 예측은 빗나갔다.
휘이이이!
바다가 갈라져 드러난 바닥 위로 강한 돌풍이 일어났다. 돌풍은 바람의 벽이 되어 다시 합쳐지려는 바다를 가로막았다. 성난 바다가 요동치며 밀어냈지만 바람의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터는 바다가 벌어진 길을 유유히 걸어갔다. 두 번째 방도 통과다.
‘저 넓은 바다까지 힘으로 제압하다니.’
두 번째 단계의 마법진도 깨어지자 조금은 초조해지는 하네스였다. 가장 나이스한 전개는 마법진이 이터를 제거해 주는 것이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전력을 가다듬을 시간 정도는 벌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금방금방 뚫려서는 장치가 없는 것만 못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이터는 세 번째 단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화르륵.
세 번째 단계는 동굴로 이루어진 거대한 불의 지옥이었다.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열기가 가만히 서 있는데도 체력을 빼앗는다. 주위의 바닥이 녹으며 유해한 가스를 내뿜는다. 열기가 어찌나 대단한지, 공간 자체가 녹아든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3단계의 화염은 마계에서만 피어오르는 지옥의 불꽃, 사염(死炎)이다. 그 열기는 마장기, 타이탄의 장갑조차 단숨에 녹여버리지.”
힘으로 제압할 수 없다. 주먹이 닿으려 하면 주먹을 녹일 것이고 검이 닿으려 하면 검을 녹일 것이다. 아까처럼 돌풍으로 억지로 밀어내려 한다면 오히려 사염에 먹혀 이터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
이터는 한참을 말없이 불꽃의 벽을 바라보았다. 하네스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생각이 길어진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관문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네스는 몰랐다. 이터는 이미 사염의 돌파구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휘이…….
작은 바람. 지옥의 열기 속에서 작은 바람 한줄기가 불었다. 그것은 눈에 띄지 않게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천천히 공기의 흐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불길의 방향을 바꾸었다.
“뭐야?”
힘을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거친 불꽃의 흐름을 다른 쪽에 흘려내며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길을 터낸다. 부드러운 바람의 흐름을 따른 불꽃의 장막이 양 옆으로 벌어지며 가운데에 길을 내어주었다. 이터는 그 사이로 걸어갔다. 세 번째 관문도 통과했다.
하네스는 할말을 잃었다.
‘어떻게 된 녀석이냐? 던전의 지식으로 만든 마법진을 한치의 막힘도 없이 풀어내다니.’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하나뿐이다. 하지만 그만큼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이기도 했다. 이곳만큼은 절대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통과하지 못해야 한다.
“……?”
문을 열고 들어간 이터의 앞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하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런 길도,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제일 처음 들어갔던 어둠의 방과 흑백만 바뀐 듯한 광경이다.
하지만 여기는 빛이 있다. 어둠의 방과는 달랐다. 어둠의 방처럼 흑으로 눈을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 길과 출구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무의 공간’이다. 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구도 사라진다. 네 녀석은 텅 빈 공간에 갇혀버리는 거다.”
하네스는 미소를 지었다. 억지로 깨부수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나오려 해도 대상이 존재해야 효과가 있다. 출구조차 없는 공간에서 빠져나올 방법 같은 건 없다.
“무(無)라면.”
이터가 입을 열었다.
“유(有)로 바꿔버리면 된다.”
마법은 의지.
진실로 아무것도 없는 ‘무’라는 것이 존재할 리가 없다. 이 마법진의 의지가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것뿐. 그렇다면 그 마법진에 새겨진 의지를 뛰어넘는 의지로 유를 부르면 된다. 그리고 이터는 불렀다.
“열려라!”
쿠우우우!
이터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거대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이터의 의지가 공간을 바꾼다. 비틀리는 무의 공간. 그것은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유리처럼 깨어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공간이 사리진 자리에는 거대한 철문을 가진 작고 음침한 방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터는 마지막 출구를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의지만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하네스는 질렸다는 얼굴이었다.
“정말 뭐 저런 놈이…….”
철문 밖에는 드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정원 위에는 아만다티움 골렘 수십 기와 마장기, 타이탄 2기, 200에 달하는 흑마법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 중앙사당의 모습이 보였다.
이터는 흑마법사들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안녕.”
“나, 나타났다!”
“당황하지 마라. 놈은 혼자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흑마법사들의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단신으로 그 많은 병력과 마법진까지 뚫고 여기까지 들어온 괴물이다. 두려운 것은 당연했다. 그나마 쪽수라도 압도적이지 않았으면 감히 이렇게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흑마법사와 골렘, 마장기의 숫자는 꽤 많았다. 일일이 상대해서 모두 쓰러뜨리지 못할 것은 없었으나 그만큼 시간의 소모도 클 것 같다. 자신의 목표는 이런 잔챙이들이 아니다. 알 제라드의 수장. 목표는 그 하나뿐. 그렇다면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이터는 펜릴을 움켜쥐고 재빨리 앞으로 달려나갔다.
“온다!”
당황한 흑마법사들은 재빨리 마법을 캐스팅했다. 하지만 이터는 그들을 노리고 있지 않았다. 이터는 달리던 자세 그대로 마창을 바닥에 박아넣고 그 도약력으로 하늘로 뛰어올랐다.
목표는 타이탄. 치켜 든 마창의 날이 3단계로 벌어졌다.
“펜릴, 기동(起動)!”
콰아아!
순백의 투기. 소류의 황금 투기와는 다른 빛이 벌어진 블레이드 사이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은 그대로 타이탄의 머리를 꿰뚫었다. 이터는 일전과 마찬가지로 부서진 틈으로 투기를 밀어넣었다.
펑! 콰쾅!
“우, 우아악!”
타이탄 조종사의 비명과 함께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킨 타이탄의 몸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대폭발. 흑마법사들은 혼비백산했고, 마장기와 골렘들은 주춤했다.
이터가 부서진 타이탄의 파편 속에서 튀어나왔다.
“소환, 타이탄 브레이커(Titan Breaker).”
거대한 강철의 주먹이 이터의 팔에 채워졌다. 이터는 그 손으로 두 번째 타이탄의 발목을 잡고는 그대로 들고 휘둘렀다.
쾅! 우직!
“흐, 흐아악!”
“우우우!”
이터가 타이탄을 들고 휘두르자 근처에 있던 골렘들이 그 몸체에 얻어맞고 박살났다. 흑마법사들은 사방에서 튀어 날아오는 파편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부러져라, 천풍.”
콰아아!
휘몰아치는 돌풍이 타이탄의 몸을 휘감아 하늘로 팽개쳤다. 떨어지는 타이탄을 향해 이터는 타이탄 브레이커를 뒤로 젖혔다.
“지워라, 불.”
화아악.
타이탄 브레이커의 손에 불꽃이 맺혔다. 극도의 불꽃으로 전개하는 극렬폭염장! 타이탄 브레이커로 사용하는 기술이 떨어지는 타이탄의 몸에 작렬했다.
콰쾅!
요란한 소음과 함께 타이탄의 허리가 끊어져 나간다. 두 갈래로 찢어진 타이탄의 몸체가 바닥을 뒹굴었다.
최강의 전력인 타이탄. 그 2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고철로 변하자 흑마법사들의 전의는 땅에 떨어졌다.
손의 먼지를 털어낸 이터가 흑마법사들을 바라보며 험악한 인상을 지어 보였다.
“다음은 누구냐. 너희냐?”
“히, 히익!”
이터가 지목하자 흑마법사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농담이 아니다. 마장기를 혼자서 깨부수는 괴물과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다.
대열이 무너졌다. 혼비백산해서 서로 먼저 도망가려고 발버둥치는 흑마법사들 때문에 정원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이 멍청이들, 어디로 가는 거냐! 싸워라. 어이!”
도망치는 부하들을 보며 지휘관인 흑마법사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대열을 어찌할 순 없었다. 결국 정신을 차렸을 때는 부하들은 모두 도망친 뒤였다. 정원에는 이터와 그, 단둘만 남았다.
썰렁하게 부는 바람. 이터와 시선을 마주한 지휘관은 곤란한 표정이었다.
이터가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넌 뭐냐?”
“네? 아… 그러니까 저는… 으으, 시, 실례했습니다!”
90도로 머리를 숙인 지휘관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이제 정원에 남은 것은 이터와 굴러다니는 골렘과 타이탄의 파편뿐이었다.
참다못한 하네스는 바닥에 수정구슬을 내던졌다. 박살난 수정구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머저리들! 그 많은 대가리로 5분도 제대로 버티질 못하다니.”
자신이 거느린 흑마법사들의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 던전에서 발굴해 낸 아만다티움 골렘도, 마장기도, 마법진도 통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이터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것뿐인가?”
하네스는 봉인해 둔 금고를 열었다. 결계가 풀리자 두 개의 신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신의 얼굴이 새겨진 악령의 지팡이, ‘솔 이터(Soul Eater)’.
저주받은 흑빛으로 빛나는 마왕의 성배, ‘다크 로드 캘릭스(Dark Load Calix)’.
각각 마력과 정신을 상징하는 악신, 이데아로크의 조각이었다.
하네스는 두 개의 조각을 각 손에 나눠 쥐었다. 가라앉은 듯 조용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전신으로 퍼지는 이데아로크의 힘이.
하네스는 바깥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이터. 네 녀석은 이 하네스 드라이엘이 멈춰주겠다.”
이데아로크, 두 조각의 힘으로.
***
폐허의 잔해에 앉은 로자리아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명하게 빛나는 하늘. 이터가 알 제라드의 본거지를 치겠다고 떠난 지도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엘리스는 도시락을 주고, 그레이센은 금화를 주고, 소류는 펜릴을 줬는데…….’
아무래도 아무것도 전해 주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 로자리아였다. 그녀는 손에 쥔 가즈 블레이드를 슬쩍 바라보았다.
‘가즈 블레이드라도 줄 걸 그랬나?’
로자리아의 시선을 느낀 가즈 블레이드가 날을 휘며 말했다.
“뭘 뚫어지게 보는 거야, 민망스럽게? 내 섹시한 블레이드 라인이 부러운 거야?”
“…….”
로자리아는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역시 줘봤자 쓸모없었겠지?’
그녀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구름은 여전히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터는 잘 싸우고 있을까?”
Chapter 2-10. 이데아로크의 두 개 조각
중앙사당의 넓은 예배당. 바깥의 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이곳은 밝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음침했다. 하네스는 모든 신도들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제작된 예배당 성좌 앞에 서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좋아. 여기라면 괜찮겠지.”
흑마법사들의 예배당 안은 사악한 주술의 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기(魔氣)가 충만한 곳. 이곳이라면 하네스가 가진 흑마법의 힘이 증폭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흘러넘치는 기운의 보조를 받을 수도 있다. 쳐들어온 적과 싸우기엔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